자유글 / 인사말

연탄한장

  • 글쓴이 김희복 날짜 2015.01.18 18:26 조회 487 추천 0

연탄 한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하고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당선되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당선되어 등단함. 주요 작품으로는 <안도현의 아침엽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연어>, <외롭고 높고 쓸쓸한>, <짜장면> 등이 있다.





▲ 이전글 : 나는하나님의 몽당연필
■ 현재글 : 연탄한장
▼ 다음글 : 술취하지 말라
고찬일 2015.01.19 11:41:48
좋은 글 올려주심에 주일 설교의 말씀을 되뇌이네요
감사^0^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