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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관계

  • 글쓴이 김희복 날짜 2015.01.13 08:40 조회 608 추천 0
갑을관계는 계약서 상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였던 ‘갑(甲)’과 ‘을(乙)’에서 비롯됐다. 애초 갑을관계는 주종(主從)이나 우열(優劣), 높낮이를 구분하는 개념이 아니라 수평적 나열을 의미한 것이었지만 한국에선 상하관계(上下關係)나 주종관계(主從關係)로 인식되고 있다.
갑을관계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조선일보』 2013년 4월 30일자 기사 「‘甲질(甲의 부당행위)’에 치떨고 ‘乙死조약(불리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약)’ 한탄··· 乙의 삶은 고통 그 자체」는 “갑은 군림하고 을은 비위를 맞추는 ‘갑을(甲乙)’ 문화는 개발 경제 시대를 거치면서 나온 뿌리 깊은 병폐다. 기업이 고도성장 과정에서 과실을 따 먹기 위해, 대기업은 관청에 청탁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납품에 매달리는 구조가 정착됐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한다.1)
한국 사회의 과도한 승자독식 문화가 전근대적인 계층의식과 만나 갑의 횡포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돈이나 권력이 있는 갑들이 ‘내가 어떤 경쟁을 뚫고 이 자리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약자에게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기고 있다. 합리적이고 수평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2)
급속하게 자본주의화가 진행된 한국 사회에서 봉건적 가치관과 서구 계약 문화가 혼재하면서 생겨난 부작용이 갑을관계로 나타났다는 해석도 있다. 계약 당사자는 법적으로 평등하다는 게 서구의 계약 문화지만 실제로는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런 물질적 불균형이 인격적 불균형으로 이어진다는 게 한국적 갑을관계의 가장 큰 비극이라는 것이다.3)
1997년 터진 IMF 사태 이후 갑을관계가 강화됐다는 주장도 있다. IMF 이후 민주화·정보화의 진전과는 반대로 일부 대기업에 권력이 집중되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갑을’로 치환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4)
갑을관계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장은 대기업의 횡포가 극심한 경제계지만 ‘갑을관계의 정치학’은 한국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작동하고 있다.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들 가운데 ‘갑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응답은 72.7퍼센트에 달한다.5) 2013년 대기업 상무가 기내에서 여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리고, 제빵 회사 회장이 호텔 주차 직원의 얼굴을 지갑으로 때리고, 유제품 회사 영업 사원이 대리점 주인을 협박하고 제품을 강매한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갑을관계가 큰 주목을 받았으며, 갑의 횡포는 공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한국 언론은 이를 을의 반란이라고 했는데, 을의 반란이 일어난 이유로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SNS의 확산, 2013년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 등이 꼽힌다.6) 하지만 갑과 을 사이의 권력관계가 역전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인터넷과 SNS 발달은 물론 휴대전화로 녹화와 녹취가 언제든지 가능한 시대가 되면서 을이 억울함을 알리는 방법이 다양해졌을 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7)
갑의 횡포를 방지하고 을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정규는 “누구든 어떤 환경에서는 갑이 된다. 고용인으로서, 구매자로서, 상사로서, 고객으로서 때론 실수한 배우자를 다그치는 집의 마님도 갑이 될 수 있다”며 왜곡된 갑을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선 우선 역지사지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당신이 갑이라면 알아야 한다. 당신도 언제고 을의 처지에 설 때가 있다는 것. 당신이 만나는 을이 여러분의 경력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주변인과 한 다리 건너면 동창이고 친구고 지인이라는 사실이다.”8) 『위키노믹스』의 저자 돈 탭스콧은 “스마트 기기로 모든 사람이 연결된 21세기에 갑을관계 구도로는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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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2015.01.16 11:36:41
갑을관계라는 말만 들으면 안좋은 감정들이 생겨나지만...
좀더 느슨한 사회가 되기를 저는 바랍니다
요즘 너무 빡빡하게되니 사람들도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느슨한 세상 살만한 세상을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노력해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