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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03.24 14:32 조회 1,468 추천 0
2013년 3월 24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어느 병사의 고백  마가복음15:33~39

<사순절 영성훈련>
  사순절 영성훈련을 잘 받고 있습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영성훈련에 
동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습니
다. 새벽기도회는 꾸준히 150여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연속기도회도 계속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담당 기도회 시간을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의 환한 얼굴을 
볼 때 은혜가 됩니다. 다니엘 939기도는 분주한 일상에 쫓겨 사는 우리에게 하나
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탯줄과도 같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바쁘게 
살면서 잃어버릴 뻔한 정말 소중한 것을 일깨워주고 찾게 해주었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말씀 읽기와 집중성경읽기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금식과 선행과 회개운동을 통해서 예수님이 가신 길
을 우리도 걷고자 했습니다. 힘이 들고 신경이 쓰였지만 훈련이 주는 유익과 보람
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성과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한 
영적인 기쁨과 마음만 굳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습니다.

  이제 사순절의 절정인 고난주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 보다 더 강한 
각오와 의지를 갖고 사순절 영성훈련에 임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우리는 이 고난주
간 동안 사랑과 용서, 헌신과 희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십자가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내겐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 묻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가장 불쌍한 죽음>
  로마인들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도구로 800년 동안 십자가형을 시행했습
니다. 십자가형은 너무 끔찍해서 그 처형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로 
로마법을 위반하지 않고 싶도록 만들었습니다. 세네카(Seneca)는 십자가형에 대해서 
말하기를 “만약 당신이 붙잡혀 십자가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있다면 차라리 자결하
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또 키케로(Cecero)는 십자가형에 대해서 말하기를 “노
예들에 대한 가장 최악의 형벌”, “가장 잔인하고 역겨운 형벌‘이라고 불렀고, 
요세푸스(Josephus)는 ”가장 불쌍한 죽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십자가형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주요 도로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범죄를 억누르
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십자가 형틀의 세로 기둥은 형장에 세워져 있고, 죄
수는 태형을 받은 후 약50Kg 정도의 십자가 가로 형틀을 지고 갔습니다. 일반적으
로 죄수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거나 또는 끌어내려져서 동물들이 시신을 먹어치울 
때까지 십자가 근처에 버려져 있게 됩니다. 일부 시신은 쓰레기 더미에 버려지기도 
하고, 가족들이 요구하지 않으면 뼈가 그냥 땅에 흩어지기도 했습니다. 

  십자가형의 목적은 가능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최고의 고통을 가하는 것입니다. 
사형수들은 완전히 숨을 거둘 때까지 수일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기도 했습니다. 
형을 집행하는 로마 군인들의 편의에 따라, 손목에 못질을 가해 죄수들의 팔을 십
자가 형틀에 고정하거나 또는 끈으로 묶어 고정시켰습니다. 반면 죄수들의 발은 항
상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혔던 것 같습니다. 이 십자가형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고통
을 가해서 죽게 하는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매달린 상태로 피 흘리고 벌거벗겨진 채로 6시간 동안 고통을 당하시다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왜, 십자가인가?>
  우리는 왜 유대 지도자들, 군중, 로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자 했는
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왜 예수님은 이 십자가 죽음을 마치 자기 사명의 일부인 것
처럼 적극적으로 자원해서 받아들였을까요? 그리고 왜 하나님은 이런 비극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을까요?   

  우리는 이 답을 찾기 위하여 로마서 5장 6~11절의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독으로 읽겠습니다. “6 우리가 아직 연약한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
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 십자가는 우리가 받아야할 형벌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신 받으심으
로 우리를 살려주신 구원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피는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 보혈의 능
력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용서받았습니다. 그래서 살았습니다. 천국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고통을 통해 
인간의 죄성의 깊이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보여 주
셨습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속죄제물,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
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
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
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
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
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사54:4~10)

  창세기 4장에서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께로 희생 제물을 가져가는 것을 봅니다. 인간
은 감사, 헌신, 사랑 그리고 예배의 표현으로 하나님께 곡식, 동물, 포도주, 기름, 헌
금 등을 바쳤습니다. 그런 제물을 드리면서 성도는 하나님과 연합하였습니다. 우리가 
십일조와 예물을 드릴 때, 그저 단순히 교회의 재정적 필요를 채우고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예물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표시이긴 하지
만, 그것은 그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집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경외
하고 사랑하며, 그분을 우리 삶에 첫 번째로 모시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으로 예물을 드
리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예물을 드리는 것은 성도에게 있어서 예배의 행동인 것입니다. 

  또한 희생 예물은 우리의 슬픔과 회개를 표현하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회개와 용서를 청하거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전까지는 그들로부터 단절됩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다투고 난 뒤 자신이 틀렸음을 깨달았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미안해합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후회화고 있다
는 것과 다시 좋은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하려고 할 것입니다. 문자 메시
지나 쪽지나 편지 등으로 말입니다.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은 만나서 미안한 마음을 어
떻게 하던지 표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분과의 관계를 고치고 회복
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셨습니다. 바로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림으로써 그것이 가능하
게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을 어겼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특별한 예물을 드리면서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오 하나님, 제가 저지른 죄로 인해 죄송합니다. 부디 후회와 
회개의 표현을 담은 이 예물을 받아 주십시오. 저를 용서하시고, 다시 깨끗하게 씻겨 
주십시오.” 그렇게 예물을 드림으로써, 사람들은 죄책감으로부터 안도감을 얻고 하나
님과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예배의 일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특별한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성전이 있기 전에
는 성막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하나님의 보좌의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휘장으로 
둘러싸였고, 언약궤와 하나님의 보좌가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은 자신의 
죄와 가족들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수송아지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 제사장은 목욕을 
하고 홀로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백성을 대신하여 염소를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시여, 이 백성들을 대신하여 죽는 이 염소의 피를 받으시옵소서. 
제가 백성들을 대신하여 나와 간구하오니,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더 이상 기억하지 
마옵소서.” 이것은 죄의 심각성과 용서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 주는 강력
한 메시지입니다. 이 희생제사는 속건제와 함께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회개와 하나님과 화목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입니다. 
  일단 염소 한 마리가 백성들의 죄를 위해 드려지면, 제사장은 두 번째 염소를 취하여 
상징적으로 백성들의 죄를 그 염소에 덮어씌웁니다. 이것을 ‘희생양’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진중에서 벗어나 광야로 보내집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양이 멀리 떠나
가 다시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자신들의 죄 역시 멀리 옮겨졌다고 이해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죄제와 속건제 그리고 희생제사의 제물이 되신 것입
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죄의 형벌을 십자가로 다 짊어지시고 몸은 찢기시고 찔려서 물과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옮겨 주셨습
니다. 그 헌신과 희생으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서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시키시고 그 대가로 우리는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신 가슴이 저리는 아픔을 품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
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살려 주신 위대한 용서가 담겨 있습니다. 그 어떤 것으
로도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는 보혈의 능력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던지 상관하지 않고 그 어떤 죄라도 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자
비와 긍휼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는 진노의 자녀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파격적인 관계의 회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화해와 속죄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예수님을 십자가형으로 처형한 골고다 현장을 지키던 한 
병사의 고백에서 듣게 됩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일부 병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지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느라 분주했다고 말합니다. 그 병사들은 예수님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제한적인 눈은 고작 예수님의 옷에 가치를 둘뿐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무한한 가치를 잃어버리면서 말입니다. 하
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한 병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이 어떻게 마지막 숨을 거두는지를 보았습
니다. 십자가형이 집행되는 6시간 동안의 모든 일을 목격한 이 병사는 이렇게 중얼거리
듯, 무엇에 홀린 듯 말을 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오늘 저는 이 병사의 고백 안에서 성도 여러분 자신을 발견하도록 진심으로 초청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의 권능과 신비, 경이로움을 놓친 채 단지 얼마 안 되는 헝겊 
몇 조각을 얻기 위해 제비뽑기에 열중하는 병사들처럼 되고 싶은가? 여전히 십자가 아래
에서 우리가 찾는 것은 비싼 옷, 자동차, 좋은 집, 사업 대박, 높은 지위, 인기 등과 같
은 세속적인 것은 아닌지? 사순절영성훈련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여전히 내 욕망과 욕심
을 채우고, 나를 빛나게 하기 위한 악세서리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병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건을 자세히 목격한 후 
마음이 감동되어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하는 병사가 될 
것인가? 오늘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에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묵상하는 저와 여러
분 되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고백한 한 병사의 고백이 진심을 담은 나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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