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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03.10 14:07 조회 1,621 추천 0
2013년 3월 10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고독孤獨, 지성소로 가는 길 창세기32:22~32

     

매번 장례를 집례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의 이름 앞에 죽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故’자 붙이기가 힘들었는데, 홍성호장로님의 돌아가심 앞에는 더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죽음이

라는 것이 뜻 밖에 오는 손님이기는 하지만 장로님의 소천 소식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고, 황망한 사

건이었습니다.

장로님의 소식을 듣고 세미나 일정을 뒤로하고 급하게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으로 달려가서 박명옥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장례 절차를 의논하시다가 저를 만나자 -제 느낌은 그랬습니다. - 마치 친정 

아버지를 대하듯 너무도 혼란스러워 어떻게 감정을 추스를지 모르던 권사님이 작은 신음을 그제서야 

내시며 흐느끼시는 모습을 그저 아무 말 없이 손만 잡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의 말에 한계

가 있음을 절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박명옥권사님은 때로는 의연하게, 때로는 복받쳐 오르는 눈물과 탄식을 반복하며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의 현실을 싸워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저와 우리 교우의 마음은 참 많이 

아팠습니다. 

감정이 정돈 되지 않을 만큼 충격이 컸지만 박명옥권사님과 사랑하는 자녀들, 유족 모두 그리고 함께 

아파했던 한서교회 성도들의 위로로 장례의 모든 과정은 경건하고도 엄숙한 교훈의 장이었고, 따뜻한 

사랑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도 이길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감동으로 가르쳐 준 힐링캠프였고, 삶과 

죽음을 해석할 수 있는 신앙에서 주는 믿음의 신비가 얼마나 놀라운 큰 능력인 것을 배우게 한 영성훈련의 

장이었습니다. 

하관예배를 마친 다음에 김홍순장로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홍성호장로님은 정말 복된 

죽음을 맞이한 것이지요. 오랫동안 병치레 없이 깔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복이지요. 저도 그렇게 

기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온 교회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 최선을 다한 환송을 받으며 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예요. 오늘 발인예배와 하관예배는 정말 감동이었어요. 우리 한서교회가 정말 

귀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충격이 컸지만 장로님들을 중심으로 온 성도가 하나가 되어서 잘 유월하였고, 잘 극복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한서교회의 저력과 가능성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왜 교회이어야

 하는지를 멋지게 보여준 시간들이었습니다. 

홍성호장로님의 돌아가심에 대하여 우리가 슬퍼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같이 가줄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죽음은 그야말로 아무도 가 줄 수 없는 홀로 가야만 하는 길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같이 가 줄 수 없는 길을 같이 가 줄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홍성호장로님 절대로 혼자 가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손잡고 함께 가 주셨습니다. 그러니 걱정을 내려놓으시고 장로님 잘 보내드리시고 

마음의 평안을 갖으시기를 바랍니다.

   

영성의 길이란 무엇인가요?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천국은 영성의 길의 종착역으로 영원히 주님과 함께 매일을 사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예수님을 너무 멀리했습니다. 내 갈길 가기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내 일에만 너무 집착하며 

살아왔습니다. 나만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내가 길이 되어 주님을 따라오라 했습니다. 내 길을 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가끔 지금 잘 가고 있는가를 물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길로 삼은 자들인데, 

그 길이야말로 진리이고 생명임을 믿기에 그 길을 가기로 따라 나선 자들인데, 그 길을 잘 가고 있는 지를 

가끔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가끔 고독의 자리로 누구와도 방해를 받지 않는 주님과 홀로 독대할 수 있는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아니 찾아오십니다. 

  

헨리 나우웬은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했습니다. 외로움을 ‘광야’로, 고독을 ‘동산’으로 묘사했습니다. 

외로움이란 광야를 아름다운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동산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고독으로 보았습니다.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독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고독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잠시 세상과 사람들과 멀리하여 하나님과 깊은 사귐과 교제와 친교로 풍성한 은총으로 가득 

채움 받는 시간인 것입니다. 이 은혜의 채움이 있어야 우리의 영혼이 살고, 평안을 유지할 수 있고, 사역의 

동역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나우웬은 “외로움으로부터 고독으로 가는 움직임이 모든 영적인 삶의 시작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영적 삶의 풍요를 얻으려면 잠시 홀로 떠나는 여행을 갖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토저는 홀로 있음에 

대한 필요성을 지도자들에게 역설합니다. “큰 독수리는 홀로 날아간다. 큰 사자는 홀로 사냥한다. 위대한 

사람들은 홀로 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 있기 위하여 홀로 있음을 즐거워하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십니다. 사람들과 의미 있는 함께 있음을 위해 홀로 고독의 시간을 갖는 자를 찾으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의 주인공은 야곱입니다. 야곱의 인생여정 중에서 그의 인생의 방향에 전환점이 되었던 때는 

하나님을 만났던 고독의 시간이었습니다. 야곱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은 고독한 밤에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인격적인 만남을 갖게된 때는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안락한 어머니의 

품을 떠난 삭막한 광야에서, 고독의 밤에, 눈물어린 밤에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에 ‘밤’이라는 단어와 ‘홀로 남았더니’라는 구절을 주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20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정신없이 사랑하고, 정신없이 일하고, 정신없이 부를 축적하고 있을 때 

찾아오시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야곱에게 지난 20년은 하나님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바쁘고 황홀한 

세월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삶은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늘 자신의 마음 한 구석이 남아있는, 

쓴 뿌리 같은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형 에서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형 에서의 문제가 늘 자신을 괴롭히는 

가시였을 것입니다. 그 문제는 결국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독대의 장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길을 가로 막는 것이 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인생의 진정한 축복이 고독의 밤에 찾아 오셔서 만나 주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그 고독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고독은 그동안 함께 해왔던 

모든 것들부터 결별을 선언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지금까지 쌓아왔고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요 역사하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에서라는 문제 앞에서 야곱은 

여전히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 안간힘을 씁니다. 선물을 앞세우고 종들과 가족들을 앞세워서 형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합니다. 인생의 삶과 죽음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여 있다고 하는 사실을 잊고 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부가 쌓이고, 건강이 회복되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꿈을 성취하고, 자녀들이 

승승장구하는 것들을 보면서 자신이 잘 살고 있고, 지금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에서의 문제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법으로 풀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광야의 밤, 얍복강 강가에 홀로 남아있는 야곱은 그제서야 자신이 잘못 살아왔다고 깨닫게 됩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은 은총으로 살았음을 그 하나님과 독대하는 고독의 시간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말씀 

전 창세기32장 9~11절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우리네 사람은 고독할 때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진짜 자신과도 대면하게 됩니다. 

참으로 변해야할 대상이 바로 자신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변화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형 에서가 마음이 누그러졌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라는 소식을 전해 주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변화는 먼저 나 자신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문제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고독한 

밤으로 몰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난 야곱은 변화되었습니다. 개명된 그의 이름이 바로 그 변화의 상징입니다. 발꿈치를 붙잡은 자, 

사기꾼이라는 이름인 ‘야곱’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싸워서 이겼다는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걸으며 쌓아왔던 자아, 자기 의를 환도뼈 부수듯 부수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도 해낼 수 있다는 교만,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꾀, 

간교함을 깨드리십니다. 

제사의 방법 가운데 ‘소제’가 있습니다.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소제의 특징은 고운 가루입니다. 

아주 잘게 부서뜨린 고운 가루입니다. 소제에 쓰이는 고운 가루처럼 우리가 부서져 고운 가루가 될 때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 비로소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입니다. 길 되신 그 분이 내 

인생의 인도자가 되실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진리와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고독이 우리를 진정한 축복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야곱을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야곱이 고독한 

밤에 사모했던 간절한 간구, 환도뼈(허벅지 관절)가 위골 되는 고통 중에도 무섭게도 강청했던 것이 바로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은 일찍이 아버지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아브라함 때에 기근이 임합니다. 그때 가뭄이 든 해에 이삭이 블레셋 땅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축복하시니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창26:12~13)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능력 있고 놀라운 것인지 아버지 이삭을 통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형 대신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 기도를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의 가치를 알고 복 받기를 갈망하는 자에게 복을 베푸십니다. 

야곱의 강청의 간구를 하나님은 들으셔서 야곱이 두려워했던 형 에서와의 화해의 문제, 20년의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에게서 12지파를 세우시며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나가는 족장의 계열을 잇는 가문으로 쓰임 받는 축복을 주십니다. 

  

부목사 시절 담임목사님의 배려로 교역자들에게 1년 중에 정말 쉼과 재충전이 필요할 때 5일 정도 기도원을 다녀올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5일 동안 홀로 보내는 시간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참 좋았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삶에서 

시간이 나를 쫓도록 하는 여유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깊은 사귐과 교제의 시간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찬송가 442장의 가사처럼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님과 함께 있고 싶었고, 변화산에서의 다소 허풍스런 제자의 

고백이 이해가 될 만큼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홀로 있는 시간에 대한 어색함과 두려움은 사라졌고, 

바쁠수록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더 갖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셀라, 쉼표 꼭 필요합니다. 

그것은 사치요 낭비가 아닙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반드시 가져야 할 시간입니다. 



고독은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라 일상의 삶과 일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고독은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압니다. 내가 누군인지, 내가 먼저 변해야 함을, 내 안에 먼저 부수고 깨트려야 할 것이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의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도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축복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를 고독으로 초대하는 특별한 은총의 절기입니다. 잠시 진중의 일상을 멈추고 영혼의 셀라, 

쉼표의 시간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과의 독대의 자리, 지성소 가는 길, 그 고독의 자리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용기를 내어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야곱을 고독의 자리로 부르시고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를 지성소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정말 그 길을 잘 가고 있는 지를 물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사순절, 

우리의 일을 잠시 접고 일상 속에 주님과 독대의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고 홀로 주님과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게 하시고, 나부터 먼저 변화시켜 주옵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안과 행복과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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