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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2월 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02.03 14:26 조회 1,627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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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3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八福팔복, 복의 진수眞髓  마태복음5:1~10

  오늘 본문의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흔히 ‘산상수훈’이라 합니다. 산 위에서 가르치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체계적인 설교를 하신 것이 바로 이 팔복에 
관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첫 설교의 주제를 복으로 정하신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복에 관한 주제를 다루신 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처럼 복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급한 교정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진수(眞髓)라는 말은 사물이나 현상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을 뜻합니다. 복의 본질, 복의 성경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소유를 의지하려는 마음을 비운 것이 가난한 심령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란 자기에게 절망한 사람입니다. 경제적인 빈부에 관계없이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려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 사람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보기에 실패요 화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무산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복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세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야말로 나 자신에게 절망할 때이고, 그때야말로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만 의지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돈으로 다 해결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복된 삶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능력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게 있는 것을 감사는 것도 좋은 믿음이지만, 내게 없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더 성숙한 믿음입니다. 
내게 없는 그것이야말로 나의 심령을 가난하게 해 주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빈 심령 안에 언제나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고, 가난한 사람의 소망은 하나님나라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전까지는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모두에게 부족함을 주셨나 봅니다. 인간은 모두 잘 할 수는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사랑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지식은 있는데 건강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은 잘 크고 있는데 돈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인격은 있는데 실력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있는데 인격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이 필요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인생을 더 아름답게 산 사람들이 많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네 살에 겨우 말을 
시작했고 일곱 살에 겨우 글을 배웠습니다. 아이작 뉴턴은 초등학교 시절에 성적이 맨 꼴찌였습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담임선생에게 “12동안 교편 생활 중에 이렇게 둔한 학생은 처음”이라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신문사 
기자로 취직했지만 편집국장으로부터 아이디어가 부족해서 신문기자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해고당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6학년 때 낙제해서 학교를 일 년 더 다녔습니다. 베토벤은 32세에 귀머거리가 되었지만, 그 후에 
주옥같은 제9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돈키호테를 쓴 스페인의 최고 작가 세르반테스는 전쟁터에서 왼팔을 잃은 
상이군인이었습니다. 앞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었던 헬렌 켈러는 대학교의 인기 강사였으며 수많은 책을 썼습니다. 
다 채워야만 복이 아닙니다. 부족함이 오히려 더 큰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무명 용사의 기도’는 우리에게 충분한 감동을 줍니다.

무어나 얻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으나, 
나는 약한 몸으로 태어나 
겸손에 복종하는 것을 배웠다. 

큰일을 하기 위하여 
건강한 몸을 구하였으나, 
도리어 병을 얻어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부를 얻어 행복하기를 간구하였으나, 
나는 가난한 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지혜를 배웠노라. 

한 번 세도를 부려 
만인의 찬사를 받기 원했으나, 
세력 없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생을 즐기기 위해 
온갖 좋은 것을 바랬으나, 
하나님은 내게 생명을 주사 
온갖 좋은 것을 즐길 수 있게 하셨다. 

내가 바라고 원했던 것은 
하나도 받지 못하였으나, 
은연중 나는... 
희망한 모든 것을 얻었나니, 

나는 부족하되 
내가 간구하지 않은 기도까지 
다 응답되었으며 
이제 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서서 
가장 충족한 축복을 얻었노라. 


  두 번째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통하여 얻게 되는 따뜻한 위로가 얼마나 힘이 되고 
든든한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릅니다. 죽을 만큼 힘이 들어도 함께 울어주고 아파해주는 마음이 느껴지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됩니다. ‘애통하다’라는 헬라어 ‘펜데오’는 ‘가슴이 찢어지도록 처절하게 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가슴이 찢어지도록 처절하게 울 때 하나님은 우리의 아픈 가슴에서 내는 소리를 들으시고 찾아오십니다. 눈물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씻어 주십니다. 울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안정됩니다.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카타르시스’라고 하지요. 
눈물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약입니다.
  지금 보다 그 이전에 우리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찬송을 부르다가, 기도하다가, 말씀을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흠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해서, 하나님 말씀 따라 살지 못한 죄송스러움에,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하고 
섬기지 못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난 지방 신천장로과정교육 중에 산마루교회 여장로님이 제가 강의하는데, 자꾸 눈물을 닦으시는 것입니다. 
강의 후에 여쭤보니 이화여대 사회학교수이신데, 그렇게 예배 중에도 은혜가 될 때마다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입니다. 
눈물이 메마른 시대에 그 분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진 소나 양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애통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위로와 소망을 
주시기 원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평안하며 행복한 것입니다.  

  셋째로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온유라는 말을 오해하고 그릇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결단력도 없고 무기력하고 일을 맺고 끊을 줄도 모르는 사람을 좋게 표현해서 ‘저 사람은 참 온유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온유’라는 헬라어 ‘프라우테스’는 야생동물의 성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야생동물의 성품은 거칩니다. 그러나 조련사가 훈련시키면, 거친 성품은 그대로지만 그 
성품을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쓰지 않습니다. 주인을 위해서 씁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마구간에서 태어나 훈련받은 
말보다 훈련받은 야생마가 더 비싸다고 합니다. 훈련된 야생마는 야생의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마구간에서 
태어난 말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강한 성품을 주인만을 위해 사용하기에, 뛰어가라고 주인이 박차를 
가하면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는 적진 속으로도 뛰어갑니다. 반대로 아무리 더 달리고 싶어도 주인이 고삐를 당기면 
즉각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섭니다. 이처럼 온유는 철저하게 주인을 위한 성품이기에, 때론 산들바람처럼 부드럽지만 
때론 폭풍처럼 거세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특정인에게 온유하다는 말이 직접 사용된 예는 단 두 번뿐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29)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12:3)
  예수님과 모세가 온유했다고 소개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실 
때의 예수님께서는 부드러운 봄바람이십니다. 그러나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꾼을 몰아내고 상과 의자를 뒤엎으실 
때는 폭풍이셨습니다. 모세는 궁에서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였습니다. 광야학교를 거치면서 길들여지고 출애굽 
대장정을 이끄는 온유한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온유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은 땅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예수님과 모세는 이 세상에서 단 한 평의 
땅도 없었습니다. 우리 말 땅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게’는 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나라’ 혹은 ‘세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얻는다는 것은 세상을 얻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수 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를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세상을 얻으신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 중에 ‘받는다’는 동사는 ‘상속받는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달리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 온유함으로 살면 이 세상을 얻을 권리를 상속시켜 주
신다는 것입니다. 땅을 목표로 살면 죽고 나서 문제와 후유증만 남기게 됩니다. 그러나 온유한 삶을 목적으로 하면 이 
세상을 떠난 뒤에 오히려 세상을 얻게 됩니다. 
  요즘 이 세상에 복을 누리고 있다는 자들,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는 이들, 땅을 목표로 삼고 사는 이들의 끝이 
어떤가를 우리에게 학습교보재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온유하게 사는 자가 최후의 땅을, 세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진정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예전에는 심장이 뛰면 살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은 뇌가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를 생사의 분기점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뇌사, 심장은 뛰지만 뇌가 죽었으면 죽은 것으로 판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있다는 
진전한 증거는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는 데 있습니다. 
  무엇에 굶주리고 무엇에 목말라 하느냐에 따라 한 개인과 국가의 역사가 달라집니다. 히틀러는 맹목적인 권력에 굶주
렸기에 수천만명이 살상을 당했습니다. 자유에 대한 타는 목마른 사람이 있어서 4·19혁명이 가능했습니다. 헝그리 정신이 
금메달을 따게 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것이 복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다는 
것은 영적으로 싱싱하게 살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를 수 밖에 없고, 
또한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말씀을 늘 삶의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 영의 양식을 늘 채우고 사는 사람, 영혼이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 이 사람은 배부른 사람입니다. 의를 
위해 살아 배부른 자에게는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혔으나 
오히려 ‘기쁘다, 감사하다’라고 고백하고 자기를 염려하는 교우들을 향하여 ‘기뻐하라, 감사하라’라고 권면합니다. 
의를 위해 산자에게 주시는 영혼의 흡족함을 누리고 있기에 감옥 속에서도 지고의 행복을 고백할 수 있고, 자신 있게 
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팔복 중에서 사복까지 말씀드렸고, 다음 주에 나머지 복을 이어 말씀드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물질적으로 더 많이 가져야, 세상적으로 더 크게 되어야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서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우리 모두는 하늘의 
위로와 소망을 얻을 때 진정한 안정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위로를 받기 원하면 울어야 한다고 합니다. 
애통해야 한다고 합니다. 죽었으나 오히려 믿음으로 더 크게 말하는 자, 세상을 얻은 자입니다. 최후에 승리한 자입니다. 
땅을 목표로 살지 않고,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온유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싱싱하게 살아있기 위해서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말씀을 삶의 중심으로 두고 살면 어떤 환경 중에서도 
행복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고, 추구하는 복이 참된 복인지 오늘 말씀을 비추어 점검해 
보시고 진정한 복이 있는 사람, 우리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
  하나님 우리 한서의 성도들이 2013년 정말 복을 많이 받는 사람, 복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정히 원하옵나이다. 
마음이 가난하게 하옵소서. 애통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온유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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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원옥 2013.02.05 16:30:53
목사님! 저는 목사님 말씀에 늘 큰은혜 받고있습니다.
목사님 기도 하신대로 꼭 그렇게 될줄 믿습니다....
최재선 2013.02.08 11:10:58
배권사님은 복이 있는 사람이십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담은 글로 그 복을 나누시기까지 하시니 복의 통로이시기도 하구요..말씀에 힘이 된다는 고백만큼 목사에겐 더 큰 보람이 없지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