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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월 27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01.27 14:16 조회 1,941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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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7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3_Jan_27)
너는 복福이 될지라 창세기12:1~9

<축복>
  시편 기자는 파란만장한 인생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과 잇대어 있으면 복락의 강물이 내 안에 흐리게 하신다는 것과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 위하여 예배의 자리에 오신 여러분 모두는 정말 지혜로운 자이며, 복된 자입니다. 오늘 
하나님과 가까이 함으로 치유와 회복과 소생과 평안의 은총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옆에 있는 성도를 축복하겠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통로>
  최윤호, 안성미집사의 아들 원혁이가 뇌와 관련된 시술을 잘 마쳤습니다. 뇌혈관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마치 가파른 언덕을 넘는 것과 같이 이 치료의 과정을 언제 넘나?하는 버거움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난 25일 시술을 잘 마치고 건강하게 퇴원했습니다. 잘 넘고 나니 그 모든 과정 속에 
원혁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더 크게 느껴져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원혁이의 뇌혈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렇게 조기에 알 수 있었던 것은 가벼운 교통사고 때문이었습니다. 태권도 학원을 마치고 
횡단보도 길을 건너다가 차와 부딪쳤습니다. 넘어지면서 혀를 깨물어 일부 혀를 꿰매는 수술을 받았는데, 
머리에 이상이 있나 검사하는 중에 더 큰 원혁이의 병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원혁이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제 마음에 주시는 생각이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이 잠깐의 어려움을 통해 
그 가문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복의 통로를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최근에 이덕주교수님이 쓰신 [한국교회 이야기]라는 책을 읽으며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초기의 한국 선교사로 아펜젤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펜젤러 이전에 
일본 유학 중에 이미 기독교로 개종한 한국인이 우리말 성경을 번역하여 책을 만들었고, 그 책을 
한국에 선교하기 위하여 경유지인 일본에서 배를 타는 아펜젤러에게 우리말 성경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는데, 이수정이라는 자입니다. 그는 또 미국에 편지를 보내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 편지는 아펜젤러가 한국 땅에 오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마케도니아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는 본래 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의 혼란 속에서 명성왕후의 목숨을 지키는데 
공헌한 공로로 일본에 개회된 문명을 배울 수 있는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츠다센이라는 
감리교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선교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하신다는 ‘Missio Dei’라는 진리를 다시 확인하였고, 
축복의 통로를 선택하시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다는 것을 깊은 감동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 시대에 축복의 통로로 선택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3-4) 얼마나 놀라운 권세이며 축복입니까?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에게 전권을 맡긴 것입니다. 
말한 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복과 저주의 주권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 복의 통로가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은 이삭과 야곱과 열두 지파인 
후대들에게 이어졌고, 마침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시게 되었고, 그 예수님을 
통해서 온 인류가 구원과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복의 사람, 아브라함을 통하여 세상에 
복을 내리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할 질문이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인가? 왜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복의 통로로 삼으셨을까요? 아브라함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복덩이가 된 이유를 찾아보면 우리도 그 
누군가의 축복의 통로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나로 인하여 누군가가 복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가슴 
뿌듯할까요?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 되고,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나라의 한 부분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보람이 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될까요? 이렇게 
살 때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것이 진정한 축복이 아닌가요? 찾아봅시다.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하신 이유를 말입니다.

  첫째,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서 떠났습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1절 말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는 이유는 지금 있는 그 곳, 우르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땅입니다. 이 우르는 지금 이라크의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유역입니다. 이곳은 비옥한 
농토지역이어서 일찍이 문명의 꽃을 피운 곳입니다. 사람들은 농경신인 바알과 함께 달신도 섬겼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장사를 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십계명에도 분명히 명시했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하셨고,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은 하나님 보다 다른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것을 못 견뎌하십니다. 성경은 
그런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의 이해를 위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복을 받고 복의 사람으로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있는 과감한 용단과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막 시작한 2013년을 여러분들이 
서로 축복과 덕담을 나눈 것처럼 ‘새해 복 많이 받기’위해서는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헤아릴 수 있는 
지혜와 그 분이 나에게 복을 주실 만한 관심의 대상이 되도록 복 받을 만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상의 자리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우상을 스스로 진단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루를 보내는 중 어디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를 
보면 압니다. 지금도 한방을 노리는 돈이 우상이 된 사람은 강원도 정선 카지노에 있을 것입니다. 쾌락의 우상에 
빠진 자는 오늘은 어디에서 누구하고 놀까를 고민하고 밤이 새는 줄 모르고 거기에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예배드림과 신앙생활은 취미가 되어버렸다면 우리는 어떤 우상에 빠진 것일까요?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
  우리는 몽골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용규선교사의 [내려놓음]이란 책을 알고 있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성공의 문이 열린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세상의 명예와 부를 내려놓았습니다. 편안한 길이 아닌 좁을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도전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책을 쓴 이용규선교사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내려놓음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후속으로 [더 내려놓음]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의 서문에서 사람들은 하버드에서 몽골 선교사라는 내용을 부각시킴으로 내려놓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강조합니다. 그가 진정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자기애(自己愛)와 자기의(自己義)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바로 내려놓음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자기 의를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자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교회의 유익, 목회의 조력, 하나님의 영광 보다 자신의 인기나 영예가 늘 먼저입니다. 자신이 교회 일에 
해결사이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을 하며 삽니다. 사람들에 관심이나 반응에 집착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높여주고 박수를 보내는 것에 만족합니다. 이 모든 것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진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용규선교사는 진정한 내려놓음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라고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애와 자기의를 부둥켜안고 삽니다. 
자기애와 자기의를 아직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 아집과 내 안에 우상을 붙잡고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에 집착되어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복을 맡길 수 있습니까? 엉뚱한데 쓰고 복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복의 통로로 쓰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헌신과 희생이 되어있는 사람, 이 모든 것이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겸손히 인정할 줄 아는 자에게 전권을 맡길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가끔 우리로 하여금 익숙한 것에서 떠날 것을 명령하십니다. 말을 듣지 않을 때 편안한 자리를 
흔들어 놓으십니다. 우리가 우상과 가까이 있다는 사인이며 경고입니다. 그 은밀한 쾌락과 유혹의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과감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도 속고 있는 자기애와 자기의의 우상에 벗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주의 종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할 때에 들으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2013년, 아니 남은 여러분의 인생이 참으로 복된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복을 받고 복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정말 중심으로 소원합니다. 어렵지만 우상의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올 한 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익숙해져 있고, 편안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을 먼저 하십시오. 
그렇게 한 해 살기를 결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을 축복의 통로로 쓰신 이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었습니다. 4절 말씀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의 삶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림, 성마태의 부르심>
  1600년대 화가 카라즈호바가 그린 '성 마태를 부르심' 이라는 제목의 성화가 있습니다. 마태는 본래 세리였습니다. 
그림에는 유대 세관에서 세리들이 앉아 있는데, 예수님이 가셔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바로 곁에는 베드로가 서 있습니다. 그런데 카라즈호바가 그린 베드로의 몰골이 아주 형편없습니다. 
베드로의 옷매무새를 보면 그 가난한 달동네에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 수 있습니다. 
허름한 옷을 입고 몰골도 초라한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하시는데, 그 세관에 앉아 있는 여러 사람 중 
누구도 예수님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자기 일만 합니다. 그런데 세리 마태만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 
나오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은 하나님이 마태 한 사람만을 찾아가서 귓속말로 "너 따라올래?" 하신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공개적으로 선포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듣는다고 해서 다 따라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방금 읽은 말씀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의 조카 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간 것이 아니고 사람을 따라 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복입니다. 믿음도 축복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여러 번 강조하셨는데, 세상에 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신체의 일부인 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은혜를 입으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경우도 카라즈호바의 그림과 같은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한 사람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복된 귀를 가지고 있었고, 그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순종하여 행동으로 옮겼던 것입니다. 
그가 복이 된 이유입니다.

  오늘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삶의 경험과 신앙적인 체험이 듣는 말씀을 더 지혜롭게 살게 하기 위한 긍정적 도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본문 7-8절 말씀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리나 장막을 친 자리마다 그 곳에서 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단을 쌓았다는 것은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르신 그 자리, 머무는 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높여 드렸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입니다만 이 당연한 일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도 자신을 
위해 예배를 드릴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만족이 예배의 평가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드리는 신천임원취임감사예배가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지 취임이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그 곳이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거룩한 장소라는 고백이며 선포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축복의 땅입니다. 가정에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사업장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내가 머무는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가급적 속회와 심방은 가정에서 드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배의 장소가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심방을 가정방문 하지 않고 교회에서 하면 어떻게 할까요? 
주일날 모인 김에 드려 버리는 속회모임 같은 것, 나를 위한 모임이 아닌가요? 가급적 주일 말고 평일에 집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십시오. 나를 위한 편의주의적인 예배 하나님이 매우 슬퍼하십니다. 적어도 내 가정을 열어 놓을 만큼의 
나눔이 없다면 그 곳에 어떻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며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나요? 교회는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달라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복의 장소로 구별하여 드리십시오. 어느 사이 너무나 쉽게 우리에게는 
신앙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편의주의적 이해가 원칙과 규례로 되어 버렸습니다. 요즘 집에서 드리는 영상예배, 
사이버예배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신앙의 본질을 해치는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머무는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위해 예배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 온전한 예배자이기를 원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축복의 통로로 쓰시는 것입니다. 2013년도 복 받기를 원하시면 예배를 잘 드리시기 바랍니다.    



  2013년도, 남은 우리의 날들이 정말 복된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의 통로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서 과감하게 떠나세요.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그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세요.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드리세요. 그래서 여러분이 복이 되세요.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사람마다 여러분 때문에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한서의 성도 모두 복이 되고 복을 전하는 사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상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말씀을 듣게 하시고 말씀을 살게 하여 주세요. 자신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최선의 예배를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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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섭 2013.01.29 09:47:47
내려놓음에 대해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자신도 속고 있는 자기애(自己愛)와 자기의(自己義)의 우상에 벗어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