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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월 18일 예배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6.12.18 13:42 조회 679 추천 0


2016년 12월 18일 예배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6_Dec_18)
< 기다림이 있는 삶 >  예레미야33;14~16


<축복>
  강림절, 대림절의 4주를 맞이했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촛불을 켭니다.
그 촛불의 의미는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를 심으셨습니다. 그 강림절, 대림절 4주의 은총인 평화가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와 이 땅 대한민국 가운데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평화를 심는 사람이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다.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고 선동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나로 인하여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평화의 사람, Peace Maker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옆에 있는 성도와 서로 축복을 나눌까요?
“우리는 평화의 사람들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 기다림이 있는 삶>
  어느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 이 있는 대한민국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가족과 아주 친한 친구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가족과 친한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저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겠지요. 그 느낌은 정겨움과 따뜻함
그리고 행복함이었습니다. 성과 위주의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밤까지
일해야만 하는 각박한 삶에서 벗어나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사람과의 정을 나누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행복하게 사는 세상,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저녁이 보장되어 있는 삶, 그렇게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인 ‘기다림이 있는 삶’ 도 ‘저녁이 있는 삶’ 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느낌은
아닐까요?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곧 만날 수 있다는 기다림에는 설레임,
기분 좋은 떨림, 따뜻함, 행복함이 깃들여 있습니다.
  군대에 보낸 아들이 첫 휴가를 나오는 날, 보고 싶었던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을 떠올리면
우리는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10달 엄마의 뱃속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먹고 자라 이제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세계 유일한
남과 북의 이산가족의 상봉의 장면을 우리는 가슴 아프게 지켜보았습니다.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날 80, 90세 어르신들이 밤잠을 주무시기 못합니다. 꿈에서나 보였던 장면이 현실인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긴장되고 설레고 떨림이 있어 잠을 이루기 못합니다. 유년 시절 소풍을 앞두고
잠을 자려하는데, 빨리 이 밤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다림이 주는 행복이지요.


<아름다운 변화>
  기다림의 계절과 절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에 예수님을 향한 기다림이 지금까지 우리가
느꼈던 그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잘 믿고, 잘 살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향한 기다림이 그리움이 되어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삶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고, 우리의
삶을 교정하라고 이 절기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강림절, 대림절에는 그 어느 때 보다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요구하고, 일관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그분을 위해 준비된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그 모범으로 마리아를 봅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했고, 그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것,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나려고 하는 그 일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보소서. 저는 주님의 여종이오니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겠습니다.” (눅1:38)


  우리는 이 고백이 쉽게 나온 고백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장차 겪게 될
모든 위험과 고통을 감내하고 그녀는 주님이 내게 오시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실 예수님을 저녁이 있는 삶에서 느끼는 감정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감당해야할 대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그림을 그리며 기다림이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먼저
우리에게 엄청난 혁명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우리의 변화된 태도가 요구됩니다. 이것은 마땅히
내가 통제하고 가꾸어 가야 할 내 미래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내 미래를
섭리해 가시도록 그분께 나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 마리아 안에 이 대림절의
아름다움 전체가 응집되어 있음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강림절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것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릴 것을 요청합니다.(렘33:15)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다윗으로부터 공의로운 가지, 즉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성취되는 날입니다.(렘23:5) 그 날이
오기까지 마리아의 순결함이, 순종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과 15절의 말씀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4~15절)


  여기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 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날은 어떤 날입니까?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서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날’
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은 이루 표현 할 수 없는 고초와
시련 가운데 있습니다. 그간의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인해 각각 바벨론과 앗수르에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희망을 잃었습니다. 사방이 막힌 듯한 순간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위기 속에서 어쩌지 못하고 비참하게 스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어지는 이 예언의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약속에 충실한
하나님’
이십니다. 예레미야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전한 바
있습니다.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렘23:5~6)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오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활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렘30:3)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의 예언은 바로 이 약속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가문으로부터 공의로운 가지를 일으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이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이 약속을 붙들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그 날은 꿈과도 같은 날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공의로운 가지가 일어나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을 위해 하실 일은 무엇입니까?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렘33:15) 정의와 공의,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왕국에 바라시는 통치의 방식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미 앞선 말씀에서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 라고
소개하며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근거해서 훗날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시89:14)


  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판결을 공의롭게 하실 뿐만 아니라, 약자를 돌보고
약자의 권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진심이
느껴지기 않습니까?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16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 진심 그대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다윗의 가문에 공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실 그날, 예루살렘에 이루오질 일들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 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16절)


  메시아가 오시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강림절, 대림절의
시작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나요?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해답을 제시합니다. 다같이 데살로니가전서 3:11~13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전3:11~13)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기다리는 자’ 로서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 기다리는 자의 참된 모습이 있습니다.
내가 고대하고 기다리는 분이 오셨을 때, 내 모습이 부끄럽지 않도록 다듬는 것입니다.
그는 외모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까지 정돈하게 될 것이고 마침내 거룩하고
흠 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말 것입니다. 오실 주님을 향한 고대(苦待)와 기다림이
우리를 그토록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만남의 기쁨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만남을
두려워합니다. 오히려 무서워서 도망치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왔지만 그러나 정작 메시아가 오셨을 때 그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실 메시아를 위해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이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눅21:34~35)


  여기 기다림을 포기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는 것’ 입니다.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지 않으니 자연히 시선이 땅을
향하게 되고 어느덧 땅에 집착하게 됩니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생활의 염려가 그저 일상의
관심사가 됩니다. 그들은 그저 하루의 즐거움에 몸을 맡기고 현실에 집착할 뿐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주님이 오시는 날은 뜻밖의 덫처럼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21:36)


  사도 바울이 기다리는 자의 자세로 ‘거룩하고 흠 없는 삶’ 을 강조했다면, 주님은 기다리는
자의 자세로 ‘기도’ 와 ‘깨어 있음’ 을 강조하십니다. 기다리는 자의 특징은 기도하는 자이고,
기도하는 자의 특징은 깨어 있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 우리는 주님의 처음 오심과 마지막 오심 사이, 즉 중간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오심으로 이루어진 첫 번째 오심을 환호하는
동시에, 주께서 모든 거룩한 자들에게 둘러싸여 다시 오실 그날을 손꼽아 고대하고 있습니다.
어둡고 눈보라 치는 엄동 속에서도 봄에 돋는 새싹을 기대하는 사람은 추위를 탓하며 흥청거리는
겨울이 아닌 씨앗을 준비하는 겨울을 준비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거룩함과 흠 없음이라
했고, 주님은 그것을 기도와 깨어 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변화되어 우리의 내면에
순수하게 응집되는 아름다움이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보전되고, 승화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에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림이 설렘과 떨림과 행복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삶이 거룩함과 흠 없는 삶이게 하시고, 기도와 깨어 있음으로
채우게 하여 주옵소서. 씨앗을 준비하는 겨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마리아에게 있었던
그 아름다움이 우리들 내면에도 순수하게 응집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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