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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월 11일 예배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6.12.11 13:33 조회 634 추천 0


2016년 12월 11일 예배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6_Dec_11)
< 리포트(Report), 성탄의 목격자들 >  누가복음2:22~35


<축복>
  희망과 구원과 기쁨과 평화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강림절의 은총입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 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이 강림절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움, 하나님의 형상>
  강림절, 대림절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즉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아기 예수로 오신 첫 번째 강림을 기념하고, 준비하는 때입니다.
두 번째는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말씀과 예배를 통해 지금 우리 삶 속에 현존하시는 주님에게 더

견고하게 머무르는 시기입니다.


  그 기다림의 다른 말은 그리움입니다. 그 그리움의 실체는 예수님의 초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에 닿아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을 닮은 나, 죄 묻지 않은 본래의
순결하고 맑았던 나, 처음 창조되었던 나’
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본래 우리에게 주셨던
아름다움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보고, 너를 보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우리 얼굴에서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그런 얼굴로 사는
사람이 진정한 축복을 받은 것이고, 진정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교회에 와도, 예배를 드려도, 봉사를 해도 여전히 불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우리가 회복해야할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아들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우리의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신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십니다. 사랑하며, 이해하며, 용서하며, 용납하며, 섬기며, 헌신하며, 손해 보며, 내려놓으며,
죽으며 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본래의 얼굴을 찾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워했던
그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 그래서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의 얼굴은 다릅니다. ‘잘 생겼다, 못 생겼다.’를 떠나서 그 얼굴을
보면 그냥 좋습니다. 따뜻합니다. 포근합니다. 손을 잡고 싶습니다. 안기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진짜 예쁜 얼굴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즈음에 떠오르는 찬양이 있지요?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우리 다같이 찬양할까요.     


<첫 번째 성탄절의 풍경 그리고 두 번째 성탄절의 풍경>
  성경이 알려주는 첫 번째 성탄절의 몇 가지 풍경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은 다시 오실
두 번째 성탄절의 예표이며, 그 날을 기다리는 우리가 교훈을 삼아야 모습일 것입니다.


  먼저는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간절하게 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가 갈라지고, 나라를 빼앗기는 처절한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 선지자들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며 회복하실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예언을 700년 동안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경이적인 모습으로 강림하시기를 고대하고 고대했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가 자주 부르신 복음성가 중에 ‘주님 고대가’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경이 이와 비슷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1.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2. 고적하고 쓸쓸한 빈들 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기대하고 기다리오니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3.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해
     머리 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4. 내 주님 자비한 손을 붙잡고 면류관을 벗어들고 찬송부르면
     주님계신 그곳에 가고 싶어요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5. 신부되는 교회가 흰옷을 입고 기름준비 다해놓고 기다리오니
     도적같이 오시마고 하신 예수님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6.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우리 안에 주님을 향한 이런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는가? 뒤 볼아 봅니다. 구원해 주신
예수님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이 있는가? 예수님이 정말 좋은지? 예수님을 정말 닮고
싶어 하는지?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하는지?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 것인지? 내 안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계시기는 한 건지? 예수님을 앙망하고, 그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갈망이 있는 건지?
첫 번째 성탄절 풍경에서 보여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고대, 기다림을 보면서
나를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성탄절에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한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첫 번째 성탄절의 풍경은 온누리에 찬양이 가득했습니다. 순종의 여인
마리아의 찬양은 순결함과 신성함의 감동을 줍니다. 양을 치는 목자들의 찬양은 순박함과
순수함의 감동을 줍니다. 땅에서 목자들이 합창이 있었다면 하늘에서는 천군천사들의 찬양이
있었습니다. 그 찬양에서는 웅장함과 신비로움의 감동이 느껴집니다. 이토록 온 세상에
찬양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지금 보다 성탄의 찬양이 더 많이 울려 퍼졌습니다. 적어도 한 달 전부터
캐롤이 울렸습니다. 교회마다 성탄행사를 준비하느라 찬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군 복무할 때에
트럭을 타고 중대마다, 관사마다, 중요한 초소마다 새벽 송을 불렀던 추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해가 갈수록 성탄의 노래, 캐롤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이, 더 크게 불러야 합니다.


  세 번째로 첫 번째 성탄절의 풍경을 보면 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탄의 조연자들과 목격자들 모두의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우리가 그리워하는 실체인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사람 시므온, 삶이 기도였던 신실한 안나, 겸손한 길잡이 세례요한의
어머니인 신령한 예언자 엘리사벳, 성실하고 우직한 일꾼 목자들, 별처럼 순수한 동방의
박사들, 순종의 여인 동정녀 마리아, 넓은 가슴을 가진 순수 청년 요셉이 첫 번째 성탄절의
풍경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었고, 성전에 가는 것을 즐겨했고, 어떤 이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경건의 삶을 살기를 힘쓰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으며,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기꺼이 순종했으며, 순수한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칭찬하신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국가도, 교회도, 사회도 정말 착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순수한 사람,
하나님의 뜻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그 뜻에 순종을 넘어 복종하기를 자처하는 사람,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일에, 궂은 일에 한결 같이 그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는 사람, 공동체와
상대방의 덕과 유익을 먼저 생각하여 배려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교회와 주의 종과
성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예배하기를 좋아하고, 기도하기를 힘쓰고, 전도하는 일을
기쁨으로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말을 앞세우지 않고, 말을 가려서 하고, 아는 것과 사는 것의
간격이 넓지 않고,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비슷하고, 남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살피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보다 언제나 하나님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고, 인기나 명예 보다
섬기는 일에 앞장서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기를 힘쓰고,
가급적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목하고, 협력하고, 도우려 하고, 하나가 되려고 하는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죠.


  오늘 우리교회는 오후예배 시간에 당회로 모일 것입니다. 당회에 중요한 업무는 교회에 속한
입교인인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1년 동안 실시했던 일들에 대하여 공유해서 수고한
사람들에게 칭찬과 격려로 용기를 주어 내년도에는 더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교인명부 정리와 각부 보고서와 임원 보고서 등 행적적인 업무를 처리합니다.
그리고 당회에 가장 중요한 업무는 일꾼을 세우는 일입니다. 선교회 회장, 부서장, 팀장, 속장 등
교회의 최 일선에서 섬기는 일꾼들을 임명하는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2년 주기로
위에서 언급한 일꾼을 세우기에 올 해는 결원된 부서의 보선만 하면 됩니다. 일꾼을 세우는 일에
임원을 선출하는 일이 중요하지요. 신천집사와 권사 역시 2년 주기로 선출하기에 올 해는
넘어갑니다. 다만 그동안 공석이었던 장로는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올 해 당회 때 신천장로
몇 분을 천거합니다. 교회에서의 어떤 직이든 자격이 충분해서 세우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안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복잡하고 까다로운 천거의 과정을 거쳐서 어렵게
몇 분을 당회에 천거하게 되었습니다. 한 결 같이 천거위원회에서 교리와 장정을 기본으로 하고,
우리 교회 내규에 따라 기도하고 심사숙고하여 추천한 후보자 모두 부족하여 감당하기 어렵다고
천거를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세우면 잘 할 사람들이기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그렇게 면담의 과정 중에 설득하느라 입술까지 터졌습니다.
이제 앞으로 천거위원회에서 천거했는데, 안한다고 고사하면 그냥 그대로 받을 겁니다.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어요. 이렇게 어렵게 천거했으니, 후보자 본인들도 정말 어렵게 결단했으니
여러분들이 도우셔서 박수를 보내며 세워줘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에, 자라는 과정과 살아온 과정에서 형성된 비뚤어진 자아
때문에,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성탄절 풍경의 사람들의 모습과 거리가
먼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과 연합하여 예수님처럼 살기를 애쓰는 자라는 것이
정확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설명일 것입니다. 그런 자가 예수님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두 번째
성탄절에 예수님을 맞이하는 두 번 째 성탄절의 풍경의 사람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사람들이 우리 교회 일꾼으로 세워져야겠지요.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강림절, 대림절의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첫 번째 성탄절에 오신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을 감사로 기념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단단히 모시고 더 닮아가고 따라갈 것을
결단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첫 번째 성탄절의 풍경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기다림은 그리움입니다. 우리 안에 늘 그리움으로 있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찾게 해주신 예수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너무 고마워서 주님을 진심으로 고대하는 간절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노래는 그리운 사람을 향한 자연스러운 고백이며, 청원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기리는 찬양이
어느새 입술에서, 삶에서 줄어들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평생 찬양을 하겠다는
다윗의 고백이 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를 귀하게 보셨습니다. 우리 안에도 찬양이 끊이지
않아야겠습니다. 내 입술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말입니다. 그 찬양이 이 지역과
대한민국과 세계 열방, 온누리에 퍼지도록 부르고 또 불러야겠습니다.
  그리고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주셨으니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아파서는 안 되겠지요.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교회를 욕되게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면 안 되겠지요. 망하게 하는
앞잡이가 아니라 살리고 흥하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사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살리고, 교회에 유익과 덕이 되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이 두렵고 떨리는 날, 심판의 날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날,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두 손 들고 환영하고 마중 나가 영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하신 예수님에게 마음을 담아
감사를 고백하고, 그 예수님을 닮아가며, 따라가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착한 사람으로 살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영광 중에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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