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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1월 20일 예배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6.11.20 13:36 조회 752 추천 0


2016년 11월 20일 예배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6_Nov_27)
< 아직 남은 기회와 시간 >  데살로니가후서3:6~13


<떠나서 더 존경받는 감독>
  지난 마포지방 교역자 회의 시간에 서강교회 여우훈 목사님이 서울연회 감독의 임기를 다 마치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목사님의 대한 호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감독으로 불러야 하는지? 목사로 불러야 하는지?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말을 꺼낸
목사님이 덧붙인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감독의 재임 때 보다 떠나서 더 존경받으시는 목사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감독직의 사역을 마지막까지 매듭을 잘 지으시라는 것과 남은 목회 사역도 후배들이 더 존경할 수
있도록 멋지게 매듭을 잘 지으시라는 뜻으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근대사와 현대사의 역대 대통령 중에 진정으로 존경을 받는 자가
그리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대통령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는 처음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좋지 않아서입니다. 멋진 매듭을 짓지 못했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수고하여 공든 탑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이 좋을 때 그것이 더 빛이 나고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주일>
  오늘이 11월 셋째 주이지만 교회력으로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 주부터 우리는  
‘그분의 방문’(His Advent)을 기다리는 강림절, 대림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우리 모두에게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게 되고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마지막의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마지막의 매듭을 잘 지으면
우리는 하늘에서도 환영을 받을 뿐 아니라 남아 있는 자들에게도 떠나 있으나 오히려 더
생각나게 하는 사람, 더 존경받는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간의 금을
그으셨습니다. 그래서 나의 궁극의 마지막을 잘 준비할 것을 교훈하십니다.


<하루를 영원처럼, 영원을 하루처럼>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데살로니가에 파송했던 디모데로부터 이제 막 개척된
데살로니가교회가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서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에 사도 바울은 몇 가지 교훈을 담아 첫 번째 편지를 디모데 편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편지를 전해주고 돌아온 디모데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로 인하여 다시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데살로니가후서입니다.
  그 교회의 문제는 임박한 종말사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재림신앙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대로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이 곧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데, 하던 일을 다 그만두고 오로지 신앙생활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바람대로 예수님이 곧 오셨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는데, 문제는 오신다는 예수님이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재림이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은 일을 하지 않으니
궁핍할 수 밖에 없었고, 교회는 그들을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 열심이
있는 그들은 사사건건 교회 일에 간섭하고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규모 없는 사람들’ 이라고 규정합니다. 이 ‘규모 있다’ 는 말은
군대 용어인데 엄격한 군대 질서를 따라 직위를 주고, 그 직위에 따라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여
그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에 ‘안 되다’ 라는 부정 접두어가
붙어서 반대의 의미가 되는 것인데, ‘규모 없다’ 라는 말은 직위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고,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교회를
헤치는 이들에 대해서는 단호했습니다. 엄중히 경고하고 성도들을 보호하고자
목소리를 힘껏 높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권합니다. 본을 따르고 본이 되는 삶을 살아라.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 중에는 지금 자신의 삶의 자리를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림신앙의 핑계를 대고 게으르며 일하지 않았습니다. 재림의 때가 이미 도래했으니 일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무질서하게 생활했습니다. 지금의 사이비, 이단과 같은 생활 양태입니다. 이런
삶의 방식은 주님께 배운 것도 아닙니다. 사도들의 본을 따르는 삶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포함하여 성도들은 지금이나 초대교회 때나 제자입니다. 제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셨던 주님의 본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천막을 지으며, 일하면서 복음을 위해 살아왔던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섬김의 마음으로 다른 성도들과
이웃들의 필요를 잘 살펴서 본을 따라 살 뿐만 아니라 본이 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하라는 교훈은 운동선수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는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참된 소망의 약속을 붙들고 오늘을 진리로
충실하게 채우는 일입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영원처럼, 영원을 하루같이 사는 자가
바른 성도요 제자입니다.


  서울연회에서 목회를 배우는 수련목 과정에 있는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앞으로
진로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 어느 한 전도사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교회에서 함께 사역을 하는 전도사인데, 자기보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그 교회의
사역자 중에 가장 신뢰한다고 하며, 은근히 여자 친구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그 여자 친구 전도사를 그렇게 믿고 좋아한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도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했나요? 아무튼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지만 몇 차례 그런 일이 있어서 교회에 설치되어 있는 CCTV에 녹화되어 있는 영상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영상에 결혼할 여자 전도사가 영상에 잡혔는데, 아무도 없는
사무실과 로비를 청소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 후에 비슷한 일이 있어서
또 그렇게 영상을 보는데, 역시 청소하는 전도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실하고 착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나이 차이가 무려 11살이라고 합니다.
교회 성도님들은 ‘복 받은 남자’라고 하고 친구들은 ‘도둑놈’이라고 한다며 자랑의 빙점을 찍었습니다.


  오늘을 성실하게 사는 자가 성도들의 삶의 자세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누가 보든지
상관하지 아니하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그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여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그의 성실함은
인간의 게으름과 악함이 언젠가는 드러나는 것처럼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 하나의 권면은 단호한 돌아섬과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고 게으르며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형제들을 대할 때, 먼저 사도 바울은
그들을 떠나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 말은 잘못된 분위기에 휘말리지 말고 주님께서
원하시고 사도들을 통해서 배운 방식으로 돌아오라는 의미입니다. 삶의 태도들은 단순히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진리나 가르침이 원인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전체에
확산되지 못하도록 단호한 권면의 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전하는 자나 그것을
듣고 분별하지 못하고 동의해 버리는 자나 모두 다 신앙적인 혼란에 빠지거나 결국 교회와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세를 살아갈 때에 더더욱 중요한 것은
분별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이 전해들은 이야기는 최소한 반쪽 정도만 진실일 수 있습니다.
전하고 있는 그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이니까요. 안 좋은 것, 암과 같은 세포는 한 번 발병이
되면 그 파급력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것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조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그랬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위기임에도
그 조치는 약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단의 밥이 되고 있습니다.
이단이 부흥하는 이유입니다. 건강한 교회를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서 때론 단호한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들어야 합니다. 달게 들어야 합니다. 잔소리가 아니라 큰소리로
들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날 공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 당신에게 주신 레마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가르침이 사라진 가정과 사회와 나라는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과 함께 미성숙하고 진리를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이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지속적으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 또한 단호한 권면의
가르침을 전하되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듣기 힘든 말인데, 제가 어릴 때 어르신들이 ‘이 불한당 같은 놈들’ 하며 꾸짖으시는 것을
자주 들었습니다. 도둑이나 강도 같은 나쁜 사람들을 혼낼 때 하시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이 말의
뜻을 알면 그 말이 더 깊게 와 닿습니다. 불한당은 한자로 ‘不汗黨’ 아니 不, 땀 汗, 무리 黨으로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 라는 뜻입니다. 열심히 땀을 흘려서 일하여 정당하게 소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남의 소득을 가로채거나 거저 얻으려 드는 자들을 말합니다. 요즘 이런 불한당 같은 사람들
TV에 자주 나오죠. 그들의 마지막이 어떤지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18세기 영국의 신앙각성운동의 기수이자 감리교를 세운 존 웨슬리 목사님이 강조한 말씀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고, 할 수 있는 대로 저축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나누라’
것입니다. 웨슬리는 이 말을 지키지 않으면 감리교 회원권을 주지 않았을 정도로 나태함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경계했습니다. 웨슬리는 매주 1회 성찬을 나누고, 1~2회 금식을 했으며, 하루가 지나면
영성일기를 쓰며 그날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지를 성찰했고, 선행에 힘썼으며, 감옥과 병원을
다니며 죄수와 환자들의 친구로 살았습니다. 결국 그 열정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함께 걸었고,
영국사회를 변화시켜서 시민폭동으로부터 건져내는 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직 남은 기회와 시간을 사라>
  오늘 우리는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양력으로 이제 이 한 해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이즈음 내 인생에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종말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보시기를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종이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분별의 눈을 가지고 본을 따라 살고, 또 누군가에 본이 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공동체를 흔들고 혼란에 빠뜨리는 자들에게서 단호히 떠나십시오. 포기하지 않는 신앙으로 사랑을
전하는데 더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하루가 주님이 다스리시는 날임을 인정하고 모든 순간,
모든 사람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루를 영원처럼,
영원을 하루같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내게 허락하신 남은 시간과 기회를 사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오늘도 우리는 우리 식구 중에 하늘에 부름을 받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오늘은
정말로 간절히 살고 깊어했던 하루였습니다. 그 날을 우리에게 매일 선물로 주신 것을 감사하고
바르게, 잘 살게 하여 주옵소서. 본을 따르고 본이 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분별력을 가지고 나와 교회를
지키고 교회와 성도들을 더 사랑으로 섬기며 성실하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선하시고,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 마침내 그렇게 착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드러내심을 기억하고
낙심하지 말고 오늘도 선을 심으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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