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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0월 2일 예배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6.10.02 13:41 조회 748 추천 0


2016년 10월 2일 예배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6_Oct_2)
< 가을 묵상, 입장 바꾸기 >  마태복음22:34~40


<목양기도>
  기도하고 묵상하기 좋은 계절, 10월을 또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더 넓고 깊게 보게 하시고, 그 은혜로 인하여 범사에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 감사의 재료로 빚어 우리의 신앙과 인격에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가
가득 맺히게 하여 주옵소서.
  10월은 전도의 계절입니다. 한 번이라도 우리의 입술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나로 인하여
한 생명이라도 주님께 인도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10월 한 달 동안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 살게 하시되, 무엇보다 거룩한 주일을
성수하게 하시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하시고,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즐거움으로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가정이 평안하고 화목하고
행복하게 하시고, 자녀들의 미래가 시온의 대로처럼 열리게 하시고, 바라고 기도하는 제목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성만찬을 통하여 거룩한 신비를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통하여 새로운 깨달음이 있게 하시고, 순종하여 성경에 약속한
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저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와 헌신을 흠향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을 묵상>
  가을은 그 어느 계절 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깊고 큰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과일과 열매를 보면서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지금 무슨 열매를 맺고 있나?”  “나는 얼마큼 익어가고 있나?”


  햇빛에 반사된 가을의 나뭇잎, 단풍은 그 어느 물감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그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며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닮고 싶어 하는 예수님에게 얼마나 물들어가고 있나?”


  이렇듯 가을은 묵상의 계절입니다. 성숙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합니다. 어른다운 삶을,
신앙의 선배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사실, 부족한 나 자신과 맞닥들이는 것 자체가 창피하고
부끄러워 선뜻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잘 물들어가고 잘 익어가는 성숙한
사람들을 보며 부족한 걸음이지만 그리스도의 완전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내딛어 봅니다.
조심스럽게 살핀 성숙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모습은 항상 자신 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살핀다는 것입니다.


  부목사 시절 교회의 배려로 아주 오래 전에 미국을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어느 곳이든 여행은 배움이 크죠. 미국 여행 중에 인상 깊게 본 것 중에 하나가 국민들의
태도와 의식이었습니다. 대형 마트에 갔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형 마트처럼 카트를 끌고 이동합니다. 그런데 동선이 겹쳐 마주치려하면 반드시
먼저 서 줍니다. 그리고 먼저 지나가는 사람은 ‘Excuse me’ 양해의 인사를 합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저는 그것을 매우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율법의 대강령>
  율법 전체의 계명은 613가지입니다. 그 중에 248개는 ‘~을 하라’는 계명이고,
365개는 ‘~을 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이 모든 계명을 10가지로 정리한 것이 십계명이고,
이 십계명의 핵심을 정리하면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걸고, 내 인생을 걸고, 온전히 섬기라는 것입니다.


  감신 학생들과 영성수업을 가르치는 제 친구 목사와 수업을 마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친구 목사가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 IS(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소속된 전사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자살 폭탄테러를
한 것처럼, 신학생이라면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성향으로는 충분히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고 이해는 되는데, 처음 만남에서
나누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질문이 저에게
깊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목사이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숨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내 생명도 바칠 수 있기까지 사랑하라는 말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그렇게 전심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입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먼저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칭찬을 받고자 하면
먼저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존중과 존경을 받고 싶다면 주변에 있는 이웃을 존중과
존경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어느 책에서 입장과 관련된 이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 글의 제목은 ‘빼앗기는 것과 나누는 것’입니다. 어느 아가씨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노신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조금 남아 있는 책을 마저 보고 갈 참 이었습니다.
벤치에 앉아서 방금 전 가게에서 사온 크래커를 꺼냈습니다. 그녀는 크래커를 하나씩
집어 먹으며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는데 크래커가 줄어가는
속도가 왠지 빠르다 싶어 곁눈질로 보니, 곁에 앉은 그 노신사도 슬며시 자기 크래커를
슬쩍슬쩍 빼먹고 있는 것이었지요. 은근히 화가 났지만 무시하고 크래커를 꺼내 먹었는데,
그 노신사의 손이 슬쩍 다가와 또 꺼내 먹는 것이었습니다.
  눈은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의 신경은 크래커와 밉살스러운 노신사에게
잔뜩 쏠려 있었습니다. 크래커가 마지막 한 개가 남았는데 그녀는 참다못해 그 노신사를
향해 "뭐 이런 웃기는 노인이 다 있어?" 하는 강렬한 눈빛으로 얼굴을 쏘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은 씨익 웃으며 소리 없이 자리를 뜨는 것이었습니다.
  기분 나빠서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가 사가지고 온
크래커는 새 것인 채로 무릎 위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그 노신사의
크래커를 집어 먹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것을 빼앗기고도
부드럽게 웃던 노신사. 하지만 그 노신사는 크래커를 빼앗긴 게 아니고,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남의 입장을 헤아리고 나누었다고 생각하는 그 노신사는 나누는 자의 기쁨과 행복을 얻었지요.
그러나 그 아가씨는 온통 화가 나서 따뜻한 햇살과 흥미로운 책의 내용조차 빼앗긴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상대방의 호의마저도 오해하고, 오해에서 멈추나요?
그 오해된 이해를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인양 소문을 퍼뜨리는 일이 얼마나 많나요?
목회를 해 보니 교회의 특성상 일일이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이런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그 노신사가 그랬던 것처럼 그냥 웃어야만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 사실이 아닌 일이 밝혀지면
아니라고, 틀렸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아니면 말고’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을
살피지 않는 사람이 그런 오해를 받으면 난리가 나지요.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어요.
그래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고 살필 줄 아는
교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적을 뿐만 아니라 큰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빼앗겼다는 생각에서
나누었다는 생각을 가진 그 노신사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기를 우리는 더 기도해야겠습니다.


  지금 나를 기준해서 위로의 방향으로 섬겨야 할 대상에 대해서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는 자세와 태도가 있어야 하고, 아래로의 방향으로 섬겨야 할 대상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라고 하나님이 큰 교훈으로, 큰 명령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살기를 애쓰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이 가을 우리가 깊이 묵상하며 닮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어느 의사의 침묵>
  [영상자료; 입장] 설교를 준비하면서 여러 자료를 참고합니다. 그래서 자료가 될 만한
것들은 일단 저장을 해 둡니다. 그 자료 중에 입장과 관련된 영상자료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본 배경으로 삼고 영상을 보시면 각자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 수 있다면, 오늘 설교는 좋은 설교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한 가족 여러분!
  이 설교의 제목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까요? ‘배려, 사랑이 지나간 자리’
제가 몇 년 전에 설교했던 제목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배려라는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남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는
마음이 사람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감동으로 머물게 됩니다.
  한서교회 담임목사로서 정말 안타깝게 보여주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조금만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면 별것도 아닌 일로 원수처럼 지내는 것을 보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조금만 마음의 빗장을 열어주시면 어떨까요? 여러분들이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 중에
먼저 작은 것이라도 그 입장을 살펴주면 어떨까요? 여러분들이 저에게 바라는 것 중에
여러분들도 그렇게 조금만 입장을 헤아려주시면 어떨까요? 
  이 가을에 우리는 생각합니다. 묵상합니다. 이제는 내 입장만 먼저 고집하는 마음에서
조금만 하나님의 마음도 헤아리고, 상대방의 입장도 살펴보겠다고 마음을 열고 먼저 손을
내밀어 보시면 어떨런지요?


<기도>
  또 우리에게 가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가을 묵상합니다.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지?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과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가까이에 있는 우리 가족부터, 우리 한서의 식구부터 배려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이 가을 더 겸손히 익어가게 하시고, 예수님에게 더 아름답게 물들어 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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