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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3월 1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6.03.13 13:33 조회 842 추천 0


2016년 3월 13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6_Mar_13)
< 진을 떠나 회막으로 나가라 >  출애굽기 33:1~11


<축복>
  성도 여러분들의 기도에 힘입어 은혜 중에 중국에 잘 다녀왔습니다.
중국 남방에 있는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그 지역의 교역자들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저녁에는 지역교회에서 평신도 리더 교육도 했습니다. 다 흩어져 사역을 하여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습니다. 사진자료를 보면서 짧게 보고합니다.    [사진자료; 중국 H국 신학 세미나]


  14년 동안 꾸준하게 섬겨온 목사님의 사역에 힘을 보태었습니다. 선교 현장에 가면
그 자체가 강력한 영성훈련 프로그램이 되어 큰 도전을 받게 됩니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복음의 생명력입니다. 박해든, 관리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하더라도 복음이 뿌려진 곳에서는
싹이 트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우리 보다 훨씬 자유롭지 못한 여건 속에서도 지금 중국
기독교인의 숫자가 1억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구원을 갈망하는 손길들이 세계 도처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간절하게 드는 거룩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존재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 복음의 생명력을, 이 복음의 능력을 마음껏 전하기 위해서
더 힘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복음에 생명을 걸고 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키우는 일에 쓰임 받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옆에 있는 성도와 서로 인사하며 축복하겠습니다.    “00님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일상을 떠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중국에 다녀오는 중에도 공항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어렵다고 하면서도 여행 갈 돈은 있나봅니다.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회가 되면 여행을 가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부럽기도 하구요.
여행을 하면 적어도 3개월 동안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여행을 가기 전 한 달부터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 때문에 여행만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행하는 기간 동안 당연히 행복할 것이구요. 그리고 다녀와서 그 추억을 더듬으면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생각을 하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 사람에게 있어서
여행은 삶의 활력소가 충분히 되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과 가정을 건강하게 지키는 예방도, 힐링도 되는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기도원과 선교지를 다녀오면 말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더 깊은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여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기도원 더 자주
다녀오셔야 겠어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제 성향 상 홀로 어디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가족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여행을 가도 가급적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려고 합니다. 혼자 밥 먹는 것 많이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있는 시간이
제게는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가지려 하는 것은 먼저는 당면한 과제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집회의 준비나 중요한 목회계획, 예를 들면 교회 건축에 관한 ‘마스터 플랜’을 위해서는
기도원에 가야 합니다. 그리고 사역의 깊이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주님과 더 친해지기 위해서
홀로 있어야 합니다. 깊은 묵상과 사색을 위해서는 잠시 일상과 세상에서 떠나 있어야 합니다.
바로 보고, 멀리 보기 위해서, 정견과 선견을 가기지 위해서 성령이 보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목사 시절 담임목사님의 배려로 교역자들에게 1년 중에 정말 쉼과 재충전이 필요할 때
5일 정도 기도원을 다녀올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5일 동안 홀로 보내는 시간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참 좋았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삶에서 시간이 나를 쫓아 오도록 하는 여유를 참으로 오랜만에
가질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여유를 가지니 자연히 그동안 시간에 쫓겨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더 가까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미루어 두었던 책도 읽고,
좋은 음악도 듣고, 여유롭게 산책도 즐겼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홀로 있는 시간에 대한 어색함과 두려움은 사라졌고, 바쁠수록 일상과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을 더 갖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우리 교역자들에게도 이런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회막으로 나가라> 
  신앙의 여정, 믿음의 세계에 있어서도 가끔 이런 여행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 기회를 놓치면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여행을 시키십니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이던지,
앞으로 꼭 가야할 길을 알려 주실 때 우리를 광야로, 빈들로, 회막으로 나가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핵심적인 내용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나안인가?
하나님이 없는 가나안인가?"
의 문제입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지나서
광야로 들어가기 전에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시나이 반도였습니다.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한 달 동안 머물렀습니다. 모세는 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서 지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게 된 때의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만들어서 범죄 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몹시 회가 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32:9~10)

 
  그때 모세는 생애를 바친 목숨을 건 중보의 탄원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아도 좋으니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단 진노를 진정하신 것처럼 보였으나 속내는 아니셨습니다.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너 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라 하시니/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출33:1~4)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로소 제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영적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약속대로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들이 범죄 하였다 하더라도 어쨌든
자기들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백성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4절)
  여기서 ‘준엄한 말씀’ 이 원문에는 '재앙의 말씀' 이라고 되어 있는데, 왜 그 축복의 약속이
그들에게 재앙의 말이 되었을까요? 그들이 무엇을 주목한 것일까요?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바로 이 말씀이 그들을 슬프게 하였고
재앙의 말씀으로 위기감을 느끼게 했던 것입니다. 가나안을 손에 넣어도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시지 아니하면 자신들의 행복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도 좋아하던 단장품을 제해버리고 슬픔에 잠기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적인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결정적인 화해의 용서의 말씀도 없었고, 결심을 굳히신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냉담한 선언 앞에서 그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같은 위기상황 속에서 모세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인에
반응했습니다. 그것은 장막을 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거하는 저 바깥 한적한 곳에
텐트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르치며 말하길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회막이라 지칭하였습니다. 이어서 모세는 다음과 같이 제의합니다.
“누구든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저 회막으로 나아가서 기도하자” 고 외칩니다.
그래서 백성 중에 한 사람 한사람 회막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삼백만 명에 가까운
백성들이 다 나간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히브리어 원의 상 ‘간절히 찾는 자,
반복해서 추구하는 자’란 의미로 깨어있는 자, 영적 민감함을 가지고 있는 자들만이
그 진 바깥으로 나아가 회막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민족의 위기상황 앞에서 가만히 앉아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리며 일상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도록 그 무엇이 가슴 속에서 역사하던 소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인 일에 종사하는 동안에 진을 떠나 한적한 회막으로 나아갔습니다.
다른 백성들이 잠자리에 들 때에도 그들은 진을 떠나 회막을 선택했고,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자신들이 다 끌어안고 특별한 만남을 원하셨던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구름 기둥이 내려서 회막 문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오해가 풀어지고 소원했던 관계에서
다시 친밀한 관계로 회복됩니다. 이스라엘이 산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진정한 가나안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창조적 소수의 사람>
  "인간의 역사는 많은 사람에 의해 진보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소수의
신념과 용기에 의해 이룩된다."
고 토인비는 말했습니다. 밀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 창조적 소수, 밀알을 통해 먼저 방향을 정하시고, 함께 일하게 하십니다.

 

  이번에 중국을 가기 전에 중국의 선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읽었습니다.
[알았던 선교, 몰랐던 중국] 이라는 책을 통해서 중국의 선교 역사 속에 역시 밀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본 자들입니다. 그 뜻을 가슴에 품고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죽음을 택한 자들입니다.


  제가 다녀 온 선교지도 너무도 더운 지역이어서 다들 포기했는데, 꾸준히 14년간
섬겨 온 배광교회 이학성 목사의 밀알 같은 수고가 있었습니다. 그도 갈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몇 번 생각을 하며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면
자꾸 생각나게 하셔서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제는 그 열매들이 보입니다.
중국교회는 정부가 관리하는 삼자교회와 몰래 그 제도권 밖에 있는 가정교회(지하교회)와
갈등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지역만큼은 너무도 독특하게 서로 협력이 잘 된다고 합니다.
그 헌신된 소수의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이지요. 참 많이 부러웠고,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도 우리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그 일 앞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우리 교회의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역의 출발, 새 일, 새 역사의 출발은
바로 편안한 진중, 일상을 떠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회막으로 나아온 자들을 통하여
시작됩니다. 기도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중보기도사역팀’을 먼저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큰일을 앞두고 ‘1만 시간 기도’를 모으는 것입니다. 교육관 건축의 비전도,
그것을 성취해 가는 과정도 회막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막으로 나아와 기도하는 자가 우리교회 진정한 리더인 것입니다.
창조적 소수인 것입니다. 밀알입니다.


  그런데 그 편안하고 즐거운 진중, 일상을 떠나 회막으로 나가서 있는 그 시간에
낯설고 두렵고, 재미없을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여호수아는
남들이 다 떠나갔지만, 모세마저 갔지만 홀로 남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만남이,
하나님과의 대화가 너무도 좋았던 것입니다. 회막, 광야, 빈들의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기쁨을 밤을 샐 만큼 너무도 좋은 것입니다. 이즈음에 떠오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찬송가의 제목을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상품이 있습니다.
  지난 민속놀이 한마당의 경품추첨을 진행했던 허준식 집사에게 배웠습니다.
제가 초성을 부를 겁니다. 절대 책을 보지 마시고요. 자 초성을 부를테니 제목을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부릅니다.

  
   ‘ㅈ ㅈ ㅁ ㄲ ㅇ ㅇ ㅇ ㅅ’


  네,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입니다. 3절을 말씀 생각하시면서 다같이 부르겠습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회막으로 나온 자들이 얻는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이 진중을 떠나 회막으로 나가는 거룩한 여행에 주님을 대신하여 제가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여행의 기쁨의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어서 주시는 영적 기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떠나 나를 성찰하고, 지금 가고 있는 길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잘못과 오해로 엉켜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람과의 관계도 잘 풀어서 친밀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편안한 일상, 진중을 떠나 광야, 빈들, 회막으로 나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순종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일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사순정 영성훈련에
그 이전 보다 한 걸음만 더 내 딛게 하여 주옵소서. 회막에서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얻는 시간으로
선용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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