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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2월 7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6.02.07 14:09 조회 872 추천 0



주일예배설교(2016_Feb_7)
< 설날에 본향을 생각한다. >  히브리서11:13~16


<목양기도>
- 찬양 : 나의 염려를 주님께
- 기도제목 :
  1) 한 달 동안 가정의 평안과 경제적 안정과 형통을 위하여
  2) 다윗의 마음을 품는 한서교회가 되기 위하여
  3)정치적 안정과 평화통일을 위하여
  4)선교사들의 사역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5) 몸이 아프고, 마음과 영혼이 아픈 사람들을 위하여


- 목양기도 : 2월 한 달을 맡기는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퇴색된 새해 다짐과 결심을 다시 선명하게 고추 세워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마음을 담아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은혜를 갈망하는 성도들에게 치유와 회복과
소생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감동 있는 예배를 위해 헌신하는 모든 손길들을
어여삐 여기시고, 연합하여 선을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설 명절을 맞이하여 가족들을 만나는 모든 여정이
안전하게 하시고, 즐겁고 행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잊지 않고
자녀로서의 본분을 잘 지키고,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게 하여 주옵소서.
신앙의 기본을 일깨우는 성찬식에 신령한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한 주간도 주님을 앎과 삶의 간극을
줄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듯 그 사랑으로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고>
  한 주간 기독교인이어서, 목사여서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서 유학한 신학박사이며,
교단을 대표하는 신학대학의 선생이며, 한 교회의 담임목사인 아버지가 딸을 죽였고, 그 시신을
1년간 백골 상태가 되도록 몰래 방치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것입니다. 또 다시 국민 모두를 ‘집단 멘붕’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 일에 다들 입을 열기 조심스러워하고 있는데, 김동호 목사님이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목사도, 박사도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고, 이것이 한계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자조적인 안타까움으로
토로했습니다. 신학대학 시절 어는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
말씀이 가끔 크게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하면서 어느 선배목사님이 하신 말씀도
지금 생각이 납니다. ‘목사 노릇을 잘 하려면 먼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씀을
왜 강조하셨는가? 목회하면서 비로소 깨달아 질 때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드린 말씀이 더 새롭게 다가옵니다. 영혼의 성장, 마음관리, 내면의 성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이모 목사는 박사가 되고, 어느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것만
강조하는 교육, 사회적인 풍토가 만들어낸 사생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 됨, 인성,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기본적인 예의 보다 최고가 되는 것만이 성공이 여기는 이 세상을 향한 일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세상이 점점 더 악해져가는 것, 악의 부흥도 한 원인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 자신부터 영혼관리, 마음관리, 내면관리를 잘 해야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도 한 방에 넘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강물 같은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하여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더 힘써야겠습니다. 예수님 바로 믿고, 예수님 말씀 따라 바로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1:21)
 이 말씀처럼 삼가 나 자신을 지켜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설, 섧지 않게 살기>
  우리는 지금 설 명절 연휴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일이 설날이지요. 그러면 오늘은 까치의 설날이네요.
그런데 구정을 왜 ‘설’이라고 했을까요? ‘설’이라는 말을 ‘섧다’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니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또 한 살을 먹게 되었고, 이렇게 살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 같아서 서럽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정을 ‘설’로 명명한 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새해,
새시간은 후회와 회한을 줄이고 시간을 아껴 소중히 여겨 더 잘 살아보자는 뜻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권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아끼라’는 말은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건질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기본적인 안전욕구-의, 식, 주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넘어 무언가 보람이 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 ‘의미욕구’가 충족되는 삶을 가리켜 세월을 아끼는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올 한 해 서럽지 않게 살아가는 축복의 해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설날에 본향을 생각한다.>
 이 설에 우리는 고향을 향해 갑니다. 고향이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 고향이기에
부모님을 뵈러 갑니다. 왜 우리는 힘들어도 부모님을 찾고, 고향을 찾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귀소본능(歸巢本能)’ 때문입니다.


  새 중에 ‘카나리아’라는 새가 있습니다. 영국에 사는 어떤 부자가 카나리아 한 마리를 사서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그만 불이 나는 바람에 카나리아는 그 집에서 나올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정이 들었던 차라 카나리아를 찾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 카나리아를 처음으로 샀던 마을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어렵게 들었습니다. 그 주인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자기가 사는 집에서
무려 4천8백Km나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카나리아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찾아 날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어나 코끼리에도 있는 ‘회귀본능(回歸本能), 귀소본능(歸巢本能)’ 이라 하지요.


  동물들에게만 귀소본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부모님을 찾고, 고향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본능입니다. 어릴 때 고향이라는 주제가 담긴 동요나 유행가를 들으면 왠지 모르는 끌림과
깊은 감상에 젖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향의 봄’과 같은 노래와 아버님이 즐겨 들으시고 부르시는
유행가 노래가 주는 감흥이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태어난 곳이 고향이라면, 그 고향에 살고 있는데도
고향을 찾아 어디론가 가야만하는 막연한 그리움이라고 할까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더 궁극적으로는 본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입니다. 그 본향은 하나님 품이지요.
이 후에 우리가 가야할 나라이구요. 그 막연한 그리움은 바로 본향에 대한 우리 ‘영혼의 귀소본능’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런 우리는 이 땅에 사는 ‘외국인, 나그네’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야할 나라,
가야할 고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본향 가는 길을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선배들처럼 찾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잃어버린 본향 가는 길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찾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실향민이
아니라 당당한 천국 본향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때가 되면 우리는 본향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고향을 찾는 명절이 되면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을 위한 합동분향소인 임진각의 풍경을
방송에서 꼭 보여 줍니다. 거리가 지척인데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마음에 많은 실향민들이
애달파 합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도 애잔합니다.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쉘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존경받는 지성인이
폐수종이란 병으로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조차 묻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고통 속에서 소리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예리하게 파헤쳤던, 20세기 최고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였습니다.
  그는 입원한지 한 달 만에 육신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다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각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설을 보내면서 우리가 영적인 실향민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수고가 끝나면 이제 가야할
본향이 있다는 것에 감사를 새삼스레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제가 평소에 반복하여 강조하여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그네인데, 관광객이나
구경꾼이 아니고 순례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생(生)과 사(死) 사이에’ 우리가 이 땅에 있는 이유는
‘생(生)은 즉 명(命)’인 것처럼 순례자로서 해야 할 일 있어서입니다. 이 후에 우리가 가야할
저 본향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자리를 잘 지키고, 맡겨진 일을
착하게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다가 본향으로 날마다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내 영혼을 성장시키는 일이요,
나를 악에서 지키는 일입니다.


  헨리 C.모리슨(Henry Morrison)이라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금세기 초 아프리카에서
40년 동안 선교 사역을 하는 동안 자신의 건강을 잃었습니다. 가족을 잃었습니다. 이젠 나이가 든
선교사가 되어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타고 돌아오던 배에는
아프리카의 한 국가를 방문한 후 코끼리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뉴욕 항구로 입항하자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붉은 레드 카펫이 깔리고,
군악대의 팡파르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습니다.
대통령 일행이 항구를 빠져 나간 후 모리슨 선교사가 항구의 출구로 나서자 레드 카펫도 없었고
군악대의 팡파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를 마중 나온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선교사는 저녁노을이 지는 하늘을 향해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주님, 이것이 지난 40년간 아프리카에서 저의 청춘을, 저의 건강을, 그리고 저의 일생을 바친 결과입니까?”


  그때 그는 저녁노을 사이로 말씀하시는 조용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헨리야,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오지 않았단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레드 카펫이 아닌 황금의 유리 길로, 군악대가 아닌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내가 너를 마중 나오마.”


   지금은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고, 착하게 내게 주어진 사역을 성실하게
감당하면 저 본향에 올라가서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이지요.


  우리는 설을 앞두고 이 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그리움은
본향에 대한 그리움, 하나님 아버지의 품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평안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 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땅에서의 수고가 끝나면 가야할 본향이 있는,
‘실향민’ 아닌 것에 감사하고, 아직 영적인 실향민으로 남아 있는 자들이 본향을 찾도록 도와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본향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순례자인 것을 기억하고 오늘을 착하게
잘 살다가, 그렇게 나를 지키고 내 영혼을 잘 키워서 영광 중에 본향에 오르고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을 보내며 진리를 생각하게 하시는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본향을 찾았고, 하나님 아버지 품에 거하며 행복하게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영적인 실향민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본향을 찾게 하는 일에 더 간절한 마음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다가 본향에 이르러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설 명절 하나님의 은혜로 즐겁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보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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