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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월 10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6.01.10 13:23 조회 885 추천 0


주일예배설교(2016_Jan_10)
< 땅과 하늘을 잇댄 다리 > 창28:10~22


<축복>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새해도 여전히 듣게 되는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와 사건과 사고의 소식은
희망으로 출발한 우리의 마음을 움츠려들게 합니다. 특별히 잊을 만하면 터트리는 북한의 도발은
우리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분단국가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하루에 한 번은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는
군에 있는 아들로부터 몇 일째 전화가 오지 않는 상황을 접한 부모와 가족들은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믿음의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일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다는 다윗의 외침은 우리네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삼가 마음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는 한서의 교우 여러분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공간과 장소의 차이>
  한 주간 지내면서 좋은 글 하나를 만났습니다. 공간(Space)과 장소(Place)의 차이에 대해서입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텅 비어있는 곳을 공간이라 하고, 구체적인 감각적 경험(실제 행위나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가 부여되는 곳을 장소라고 구분합니다. 그러고 보니 걸어 온 인생 여정 중에 특별한 의미,
추억을 담은 나만의 장소들이 있습니다. 그곳을 지날 때면 아련한 추억으로 흐뭇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새해를 시작한 우리의 바람은 우리가 밟는 땅마다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아름다운 장소가 되는 것일 겁니다. 결단의 찬양을 부를 것입니다만 내가 걷는 길이 주님이 가신 길이 되고,
누군가가 따라오는 길이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되고, 누군가가 함께 가기를
원하는 삶이 되는 아름다운, 거룩한 장소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장소가 된 곳>
  장자의 축복권을 가로챈 사실을 안 쌍둥이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했습니다. 이에 야곱은
밧단 아람에 살고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보냅니다. 야곱은 분노한 형을 피하여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떠납니다. 하루 종일 달린 야곱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둔 밤을 만나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하게 됩니다. 그곳이 루스였습니다. 바로 그곳 루스의 빈들은 야곱에 있어서 아름다운 장소가 됩니다.
  브엘세바에서 루스까지는 이백 리, 약 80Km나 되는 거리였습니다. 그 먼 거리를 하루에 달려온 야곱은
몹시 피곤하였지만 낯선 환경에 아마도 깊은 잠을 자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야곱은
신기한 꿈을 꾸게 됩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사닥다리로 오르락내리락하고, 그 꼭대기에 서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고 고백하며 베개 하였던 돌을 기둥으로 세워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 불렀습니다. 야곱에게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장소가 된 것입니다. 


  땅과 하늘을 잇댄 사닥다리로 하나님의 임재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는 사막의 빈들,
광야였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 곳, 제단을 쌓고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은 그곳은 이미 광야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만난 장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장소,
야곱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특별한 거룩한 장소가 된 것입니다.
  특별히 땅과 하늘을 잇는 사닥다리의 체험은 야곱의 생애 중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이 보여 주신 환상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특별한 사랑 속에 자랐던 야곱이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되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간 도피도 아닙니다. 혼자였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먹을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도망갔어야 했을 겁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어둠이 찾아옵니다. 그 어둠은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어둠으로 오버랩이 됩니다. 앞길이 막막했을 겁니다.
더 이상 갈 수 없으니 거기가 잠자리일 수밖에요. 사막의 밤은 얼마나 추웠을까요. 배는 고프지요.
그리고 언제 사나운 짐승이 헤칠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을 겁니다. 자그마한 소리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잠이 왔을까요?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혼자 지새는 밤은
더 무섭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생애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광야가 벧엘이라는 거룩한 장소로 불리는 하늘다리의 경험은 야곱으로 하여금 비전의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야곱의 상황은 오늘 본문의 배경처럼 앞길이 보이지 않는 칠흙 같은 어둠이었습니다.
엄마의 소개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지만 자신을 반갑게 환대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리고 당장
이 도피의 길도 아직도 몇 날은 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막막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야할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야곱에게 비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같이 오늘 본문의 말씀 13절에서 15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에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정리하면 첫째, 땅과 자손을 많이 주겠다. 둘째,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셋째,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켜 주겠다.
넷째,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 이 말씀이 지금 야곱의 상황에서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와 힘이 되었을지는
우리는 말씀 전후 맥락을 알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다 얻은 듯한 감동과 감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야곱의 일생 동안 간직할 비전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어쩌면 야곱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할 때에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다고(창31:40) 이야기할 만큼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는 한 번
에서와 아버지를 속였지만 삼촌 라반에게는 10번을 속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야곱이 참으며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특별한 장소에서 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그 비전을 붙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살면서 ‘루’자만 들어도, ‘벧’자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었을 것입니다.        

       
<한얼산 기도원 내겐 특별한 장소>
  제게도 야곱의 벧엘과 같은 장소가 있습니다. 한얼산 기도원입니다. 대성리에서 청평 쪽으로 가다보면
한얼산 기도원 입구를 지나게 됩니다. 지날 때 마다 그 특별한 은혜의 경험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수련회를 그곳으로 몇 차례 갔습니다. 잣나무 하나 부여잡고 기도하는 중에 너무도 황송해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고, 방언의 은사를 받으며 은사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부흥회 강사님들이 은혜를 받으며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이야기는 특별한 분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했는데,
은혜를 받으니 온통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새들도 노래하고, 산에 있는 나무들도 찬양을 하더라구요.
어찌나 좋던지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초막 셋을 짓자는 말씀이 너무도 실감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곳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새해를 살라>
  지금 막 출발한 2016년의 해를 아주 밝게 전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치, 경제 상황은
매우 어둡게 바라봅니다. 교회의 미래도 그렇게 밝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설교 전에 말씀드린 대로
안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는 이슬람 과격단체인 IS로 인한 테러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다시 신종 바이러스인 ‘별종의 메르스’가 발병하여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안녕도 우리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건강하다고 하여 호언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의
소치인지를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르는 한계 있는 인간입니다.
아직도 우리의 내일을 정확하게 맞춘 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도 비전이 필요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맺은 땅과 하늘을 잇댄 다리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광야를 하나님의 집이라는 거룩한 장소가 되게 한 특별한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중 그 거룩한 장소들을 다시 추억 속에서 찾아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도 여러분들에게
주신 일평생 붙들고 가야할 언약의 말씀을 다시 심령에 아로 새겨야 합니다. 그런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장소가
없다면 우리는 지금, 오늘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둡고 불확실한 미래를 희망으로 열어갈 수 있습니다.
광야도 고난도 능히 넘을 수 있으며 이길 수 있는 강하게 담대한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가족 여러분!
  세상과 미래의 전망이 어둡다고 하여 낙심하고 절망하여 포기하고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이 어둠 속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빛을 보게 하시는, 길을 보게 하시는
나를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드시기를 간곡히 권면합니다. 일평생 내가 붙들 비전을 주셨던,
땅과 하늘을 잇댄 다리의 경험을, 광야를 하나님의 집이라는 장소로 부여했던 하나님과의 만남을
다시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 뼈가 흔들리고 가슴이 떨렸던 그 전율이 지금 나에게 느껴져야 합니다.
그 숨겨 있었던 전율의 장소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없다면 오늘, 지금, 이 주간에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로
시도하고 그 장소를 만들어 내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덧붙여 축복을 드리는 것은 한 해 동안 여러분들이 가는 곳, 여러분들이 밟는 땅 중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거룩한 장소가 더 새롭게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막 시작한 2016년 한서의 모든 성도들 특별한
만남을 통해 주셨던 언약의 말씀을 붙들어 비전을 품고 담대하게, 힘차게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그곳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 장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광야도, 고난도, 어둠도,
두려움도 이겨내고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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