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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월 20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12.20 13:45 조회 848 추천 0


2015년 12월 20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Dec_20, 강림절 제4주)
성탄이 큰 기쁨인 이유  누가복음2:8~14


<성탄의 축복>
  성탄의 은총인 희망과 구원과 기쁨과 평화가 오늘 예배드리기 위하여 오신 한서의 성도 모두와 여러분의
가정 위에 언제나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 부터는 우리는 이 성탄의 은총을 알리기 위하여
의도적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뜻깊은 성탄절 되시기 바랍니다.”


<기쁜 소식>
  한 주간 기도원에 있는데, 저희 집사람으로부터 정말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새벽기도 시간에 드리는
성도들을 위한 기도 중에는 공개적으로 기도제목을 내어놓고 기도하는 가정과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기도제목을
공개하지 못하고 기도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가정은 후자의 경우입니다.
거의 1년 가까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몇 번의 고비 때마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에 그 기도제목을 응답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던지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계속 반복된 말을 주절거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하네. 너무 잘됐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더니 하나님이 들어 주셨네.”
그렇게 주절거리는 동안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야말로 더 없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사건을 성경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미칠 소식이라고 합니다. 왜 성탄이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 될까요?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이 나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까요?


  먼저는 메시아 예언의 성취라는 것에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이 그 옛날 오래 전부터 예언했던 메시아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아픈 역사가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은 ‘메시아 오심’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다윗의 뿌리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메시아의 이름과 나라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 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6~7)


  둘째 메시아의 사역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에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11:1~5)


  셋째 메시아의 비천함과 고난에 관한 예언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2~3)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넷째 메시아의 사명에 관한 예언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여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지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1~3)
 
  이 예언에 대한 기대감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가득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오시는 그 때도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갈망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아니하든 예수님을 하나님이 그 옛날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메시아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오랜 동안 민족과 백성들의 염원이 이루어진 날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이 시작된 날입니다. 인류의 구원의 드라마가 새롭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적인 관점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을 조명하면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가 오신 것이기에
당연히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회복될 이스라엘 대한 그림은
서로 다른 동상이몽이었지만 말입니다.


  성탄이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가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지금 어렵게 만든 것은 바로 죄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그 죄로 인하여 인간은 영원히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우리를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허리 굽혀 친히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어린 양의 제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뿐만 아니라
베들레헴이라는 아주 작은 도시에서, 마굿간에서 태어나셔서 말구유에 누우셨습니다. 그리고 힘없는 목수의
아들로 살게 하셨습니다. 나사렛이라는 시골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 구원의 소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어느 특정 세력이나 특정 신분의 전유물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복음, 좋은 소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세상에 가장 낮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 누군가에 의해서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사람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
구원의 대상이 아닌 사람은 없다는 선포입니다. 차별 없는 내리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하늘의 천사가 들에서 양을 치는 천한 직업 출신인 목자들에게 메시아가 오신다는 예고의 말씀을 먼저
알려 주신 것에서, 그리고 목자가 듣고 정말 깜짝 놀랐던 말씀인 ‘온 백성에게’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이 누구를 위하여
오신다는 것을 힌트로 알려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존귀한 자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제사장들,
원로원들 등 스스로 종교적인 경건함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목자와 같은 모든 백성들에게까지
미치는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큰 기쁨의 소식은 모두를 살리고, 모두에게 유익한 소식입니다. 저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을 살리는 소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차별 없이 내리시는 내리 사랑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탄이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이유를 우리는 알았으니,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성탄하신 그 날을 기념하고 환영하고, 축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다시 이 땅에 다시 성탄하실 예수님을 기다려야할 것입니다.


<故박덕순장로님의 추도 10주기를 맞이하여>
  오늘 점심식사 대접에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일선권사님의 부군이 되시고, 박은애·박은숙권사님의
선친이 되시는 故박덕순장로님이 돌아가신지 10주기를 기념하여 사위되시는 이형호장로님을 비롯한 자손들이
섬겨주시는 식사입니다. 살면서 보여 주셨던 박덕순장로님의 사랑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가르쳐 주신대로 장로님의 길을 자신들로 가겠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매우 고맙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우리가 예수님을 대하는 마음, 그리고 성도와 이웃을 대하는 마음도 이와 비슷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를 살려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신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가장 낮은 자까지도 친구가 되어 주셨고, 극기야 온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어주신 그 사랑을 받고 있고, 알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성탄을 어떤 마음으로 기념하며
지켜야할 것인지 오늘 우리에게 강한 떨림과 울림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평생 예수님 사랑하셔서, 교회 사랑하셨고, 성도들 섬기며 사랑하셨던 그 마음을 기리고 본받기 원하여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는 이일선권사님 가족의 마음 정도는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강림절, 대림절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을 다시 한 번 묵상하고 그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겨울철의 사순절입니다. 강림절, 대림절은 가장 낮은 자들을 섬기셨던 예수님의 겸허함과
차별 없는 내리 사랑을 훈련하고 배우는 시간입니다. 지극히 낮은 나를 살려 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감사하다면
우리도 낮은 자를 찾고, 낮은 자리로 향해야 합니다. 그것이 낮고 천한 나까지도 살려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섬김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입니다. 오늘부터 기도하고 고민하십시오.
내가 가야할 낮은 자리는 어디인지 말입니다.


<기도>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살려 주신 차별 없는 허리 굽히신 사랑과 예수님의 섬김을 깊이 생각하며 경외함과 겸허함으로 성탄절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낮은 자까지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시고
닮게 하여 주옵소서. 한 주간 기도 중에 내가 찾아가야할 낮은 자리를 보게 하시고, 기꺼이 내려가 예수님 맞아하듯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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