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방송

  • 서브 왼쪽

주일설교

12월 1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12.13 13:38 조회 1,142 추천 0


2015년 12월 13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Dec_13)
값진 삶, 멋진 인생  디모데후서2:20~21


<축복>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다고 고백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천국 갈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임마누엘 하신 예수님 때문에 지금까지 그 섭리하심으로
잘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광야의 길을 걷고 있을 때 광야의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어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부족하지만 일까지 맡겨 주셔서 진정한 보람과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해 예배함이 가장 큰 기쁨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림으로 다시금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한서의 모든 식구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옆에 있는 성도와 서로 축복하며 인사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쓰임 받는 그릇>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 하나 소개합니다. 들어서 정리한 것이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도굴꾼이 한적한 시골의 유명한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친구와 함께 맛있게 식사를 하고
식당 주변 마당을 잠시 둘러보는데, 개밥 그릇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프로다운 직업 정신이지요.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그 개밥 그릇은 고려청자였습니다. 그 도굴꾼은 주인에게 개를 사겠다고 합니다.
주인이 비롯 잡견이지만 아끼는 개이기에 팔 수 없다 합니다. 그래도 값을 넉넉히 쳐 줄 테니 팔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마지못해 팔기로 했습니다. 시가가 20만원 정도 인데, 50만원에 서로 합의하여 거래가
성사 되었습니다.
  그렇게 50만원을 주고 난 다음 도굴꾼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개를 팔아 이제 개밥그릇은
필요 없을 것 같으니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그 주인장이 하는 말이 “뭘 모르시는 말씀, 저 개밥그릇 때문에
이렇게 쉽게 두 배 이상의 값을 받고 개를 판 것이 오늘이 백 번째입니다.”
이 식당에서는 개 밥 그릇을 주로 개를 팔기 위한 목적으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만들어진 목적이 있습니다. 제가 늘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이 땅에 사는
7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쌍둥이어서 비슷하게 닮을 수는 있어도 똑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렇게 다르게 만드셨을까요? 왜 좋아하는 것, 관심, 취향, 취미, 성격, 성품 등을 다양하게
하셨을까요? 왜 하나님이 어쩌면 낯선 사람들인 우리를 한서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한 가족으로
살게 하셨을까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 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한서의 한 식구로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일을 할 때, 그 일로 쓰임 받을 때 행복해 합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가져 보고 누려 본 솔로몬의 고백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전도서1장2절~4절을 읽겠습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솔로몬이 누렸던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솔로몬이 의미 있는
인생론에 대한 결론을 다음과 같이 맺습니다. 전도서12장13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사람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며, 그 일을 행할 때 행복하고,
그것만이 영원히 남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하여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 가장 행복하고 보람을 느낍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고, 그 사랑으로 사람을 위해 살 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람을 위해 쓰임 받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쓰임 받는 그릇이 되기 위하여>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큰 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큰 집입니다. 어린이도 있고, 어르신도 계십니다.
아픈 사람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많이 배운 자도 있고, 기회가 없어 적게 배운 자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도 있고, 하루를 살기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성도들을 그릇으로 비유합니다. 교회 안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이 있습니다.
‘어떤 그릇이 가장 귀한 그릇일까요?’ 라고 묻는다면 지금의 우리의 가치 기준으로 본다면 금그릇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본문 21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하나님이 보시는 귀한 그릇에 기준은 바로 ‘깨끗함’입니다. 무엇으로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그 그릇이 깨끗하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그릇에 담을 때 아무리 금그릇이라도
더러우면 음식을 담지 못합니다. 하나님 보시는 귀한 그릇의 기준은 깨끗함입니다. 깨끗하다는 것은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그 거룩함은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거룩을 지향하며 추구하며 살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징은 바로 구별됨입니다. 할 것과
하지 말 것에 대한 말씀과 규례를 지켜야합니다. 우리는 그 규례와 말씀대로 살 때에 점점 변화되어
‘거룩함’에 가까이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소위 율법적인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더러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우리의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일입니다. 비롯 질그릇 같은 존재이지만 보배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기에 우리는 죄로부터 구별된
존재가 되고, 거룩을 이루게 되고,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고린도후서 4장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이 강하고 존귀하고 소중한 이유는 보배이신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존귀한 것은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더러운 죄, 우리가 깨닫지도 못한 죄까지도
다 보혈로 깨끗하게 하셨기에 우리는 비록 질그릇 같은 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4장9절~10절 말씀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이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이런 감당할 수 없는 황송한 대우를 받음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하나님이 보시는 귀한 그릇의 기준은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하냐는 것입니다. 그릇의 가치는
무엇을 위해 쓰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무리 청자 그릇이라 해도 개밥을 주는 것에 쓰이면 도굴꾼이 아닌
일반 사람들은 그것을 개밥그릇으로 여깁니다. 그 주인에게만은 큰돈을 벌게 하는 귀한 그릇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시게 귀한 그릇이요, 존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처럼 만든
재료에 따라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쓰임 받고 있느냐에 따라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우리가 한 주간 당회를 준비하는 특별새벽기도회 때에 나눈 말씀처럼 달란트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은 최고가 아니라 최선이라고 배웠습니다. 앞선 리더인 사도 바울도 소중하지만 보이지 않게 2인자로
사도 바울을 세운 바나바도 소중한 것입니다. 달란트의 차이는 역할의 차이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직분은
역할에 차이입니다. 저는 교회 안에서 사람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교회의 제사장이라면 여러분은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과 하나님을 연결해 주는 세상에 파송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쓰임 받고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는 진정한 행복함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는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 때,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위해, 사람을 위해 살 때 우리는 가장 보람이 있고,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의사이자 선교사인 슈바이처 박사는 평생을 아프리카 밀림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일생을 바친 분인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자서전 [나의 생활과 사상]에서 부르심을 받고 자신이 아프리카 밀림으로 갈 때
하나님을 위하여 세 가지를 포기하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바하의 음악을 포기하기로 했답니다.
   둘째는 유명한 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했습니다.
   셋째는 연주와 저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안 미래가 보장된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에 감사하고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은 자기가 포기했던 것보다 몇 배나 더 큰 복과 은총으로 보상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달은 것을 다음과 같이 간증합니다.
  첫째로 그는 음악 활동을 포기했지만 바하 협회로부터 열대지방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대형 페달 오르간을
기중 받아서 계속 좋아하는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고, 둘째로 그는 독일의 유명한 대학에 강단에 서는 것을
포기했지만 세계 여러 대학에서 명사로 초청 받아 그 이상의 대우를 받았고, 셋째로 그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책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 수익금으로 넉넉하게
선교 사업을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이 되기만 하면 그렇게 쓰임 받을 때 주시는 행복을 넘어
우리가 포기한 모든 것들을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덤으로 기억하면 좋을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자로 있고, 부르심에 따라 쓰임 받고 있는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 행복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 옆에 있습니다.
  용해원목사님이 쓴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내가 그 사람이기를,
우리 교회 성도 모두의 관계가 이런 아름다운 관계이기를 소망했습니다.


   잠깐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헤어져도 행복을 주는 사람이 있다.
   생각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꿈과 비전이 통하는 사람
   같이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한 사람 눈빛만 보고 있어도 편안해 지는 사람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면
   그 약속이 곧 다가오기를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 행복을 주는 사람 다정한 사람이 있다.


 [사진자료; 낡은 구두] 인상주의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입니다. 자신이 신던 낡은 구두, 신발입니다.
주인을 위해 쓰임 받아 낡아버린 신발이 더러워 보이지도, 추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낮은 곳에서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한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묵직한 메시지를 받은 감동이 있어
숙연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쓰임 받아 멋지게 낡아지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한서의 한 가족 여러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후패하여 녹슬어 버리는 인생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쓰임 받아 닳아 없어지는 행복한 사람,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한서의 식구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존귀한 자로 쓰임 받아 행복한 사람으로,
정말 값진 삶,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015년 동안 이렇게 쓰임 받은 것 감사하고
2016년 더 귀하게 쓰임 받기를 오늘 당회를 통해 새롭게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불러주셔서 살려 주신 것만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인데, 그 중에 부르셔서 일꾼으로 쓰임 받게 하셔서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15년 부족했지만 행복하게 쓰임 받게 하신 것 감사드리고,
여전히 부족할 것이지만 2016년 더 귀하게 쓰임 받아, 더 행복하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한서교회 담임목사로서 간절한 기도는 우리 한서의 모든 식구들이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귀하게 쓰임 받아 날마다 행복해하고 그 행복을 나누는 더 행복한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글 : 12월 20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현재글 : 12월 1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다음글 : 12월 6일 설교 동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