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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월 6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12.06 13:42 조회 1,208 추천 0


주일예배설교(2015_Dec_6)
< 그 옛날 심방 받는 마음으로 > 누가복음3:1~6


<목양기도>   찬양: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 공동기도제목


1. 내 안에 다시 한 번 주님이 성탄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신앙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겨울철의 사순절,
  대림의 계절, 12월이 되게 하소서.
2. 12월 한 달을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게 하소서. 마지막 소망이 다 이루어지게 하소서.
3. 대한민국의 안정과 통일, 교회의 부흥, 가정의 평안, 자녀를 축복 하소서.


- 축복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12월 한 달 동안 조국 대한민국과 한서교회, 성도의 가정 위에 성탄의 은총인 희망과 구원과
기쁨과 평화가 가득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더
하나님 마음의 합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드리는 예배 가운데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있게 하시고, 예배 가운데
주님의 임재로 치유와 회복과 소생의 은총을 감동 가운데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 속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찬양을 부르고 듣는 중 내 영혼을 보듬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하여 주옵소서.
몸과 마음이 아픈 성도들을 고쳐 주옵소서. 군대와 해외에 있는 우리의 자녀들을 지켜주옵소서. 희년의 주역이며

교회의 미래인 젊은 백성들과 교회학교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축복>
  전통적으로 강림절, 대림절에는 기다림의 초를 켭니다. 지난주에 밝힌 초는 ‘희망’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오늘 밝히는
두 번째 초는 ‘길’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길을 잃어버린 우리들이 가야할 길을 여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길은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입니다. 지금 우리 다시 한 번 가던 길 멈추고 내가 그 길에 있는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길 따라 걷다가 그 길 끝에서 주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소리>
  [사진자료; 만종]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린 <만종(晩鍾)>이라는 그림입니다. 명화 중에 명화이지요. 저녁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가난한 농부 부부가 멀리 교회당에서 들려오는 만종 소리를 들으면서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모자를 손에 꼭 쥔 그 아래로는 캐다가 만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교회당은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 만종을 한자대로 표현하면 ‘저물 만(晩), 종 종(鍾)’인데, 이 말대로 옮기면 저녁 종쯤 되는 것입니다.
원제는 라틴어로 ‘Angelus’인데, 카톨릭에서 하루 3번 일과를 멈추고 기도하는 ‘삼종기도’를 뜻합니다. 저녁 삼종기도는
6시쯤 바칩니다. 그러니까 그림 속 장면은 해가 저무는 6시쯤의 기도 모습이겠습니다.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는
마음이 바빠지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부부는 그 종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를 드립니다.
밭에서 일하는 가난한 농부의 모습만이었다면 이 그림이 그리 큰 감동거리는 아니었겠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종소리에 듣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우리 마음은 숙연함을 느낍니다. 그 그림에서 우리의
인생과 삶을 봅니다. 우리 삶의 황혼에 지나온 삶을 상징하며 흩어져 있는 것들이 그림 속 쇠스랑과 삼태기와
몇 개의 감자처럼 그저 온통 생존만을 위한 흔적들뿐이라면 우리가 살아온 여정에 무슨 감동이 있겠습니까?
만종소리를 들으며 기도를 드리는 저 부부처럼 주님과 함께 호흡해온 흔적이 남아 있을 때 비로소 내 지나온 삶이
의미 있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한 온기(溫氣)가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강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한 오늘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바로 그 온기를 요청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던 고대 로마와 유대의 정치인들의 이름이 덤덤하게 소개되고 있고, 대제사장의 이름도
그들의 이름에 섞여 무미건조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분봉 왕이란 당시 유대 영토의 4분의 1을 다스리는 왕을
뜻합니다. 당시 로마는 자국의 식민지인 유대를 4등분해서 각각 분봉 왕들을 세워 유대를 통치했었습니다.
누가가 굳이 이들 정치인들의 이름을 본문의 서두에서 나열한 것은 첫째는 당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역사가들의 관례를
따라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것이고, 또 하나는 본문의 기록이 허구나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것임을
나타내려는 나름의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누가가 이 역사기록을 통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건조한 역사 속에 던져진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그저 가난한 농부의 고단함일 뿐이고, 쇠스랑과 삼태기와 감자 몇 알이 전부였을 그 화폭이,
멀리 보이는 교회당으로부터 만종소리가 들려오고 그 종소리를 따라 부부가 고개 숙여 기도함으로 영감 넘치는
저녁 풍경이 되고 있듯이 누가는 건조하게 서술되던 역사 속에 문득 영감 어린 사건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3:2)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성탄의 배경을 알기 때문에 이 장면을 무심히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는 것을 우리는 조금 후에 알게 될 것입니다.
  지난 400년 동안 선지자도 없었고, 들려오는 말씀도 없었던 유대 땅입니다. 하나니은 포로기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고는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셨습니다. 이후로 그 땅엔 선지자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데
어떻게 선지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말씀이 들려오지 않던 이 어둡고 답답했던 400년을 ‘유대의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덤 속에 계시던 그 사흘처럼, 이 400년도 그저 의미 없이 캄캄하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무덤 속의 사흘이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듯이, 400년간 이어진 유대의 암흑기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낼 준비를 하시는 기간이었습니다. 이 암흑의 400년으로 돌입하는 마지막 예언이
말라기 3장 1절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리고 정말 이 예언 그대로 400년간의 침묵을 깨고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다는 것이
지금 누가가 전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한을 통해 당시 사회에 주신 던지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누가는 그것이 ‘회개의 세례’에 관한 말씀이었다고
보도합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3절)
  누가는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이 말씀에서 요한을 ‘세례 주는 자’가 아니라, ‘세례를 전파하는 자’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그가
선포하는 세례는 그냥 세례가 아니었습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회개’와 ‘죄 사함’은
예수님의 공생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중심주제였을 뿐 아니라 누가의 신학 가운데 핵심이기도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세례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그것은 구원과도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 사람들에게 겁을 주거나
억압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회개함으로 거룩해지고, 거룩해짐으로 인간의 품위가 회복되기를 바라셨습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라는 말의 의미가 성서에 몇 가지 나오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나함’과 ‘슈브’입니다.
‘나함은 뉘우친다, 슬퍼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 ‘슈브는 둘아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종합하면
회개란 자기 죄를 슬퍼하고 뉘우치며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이겠습니다. 회개에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합니다.
현재의 내 삶의 방식을 뉘우치고 슬퍼하는 ‘나함’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진정한 회개는 주님께로 돌아가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수술 받은 심장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변화에 대해 조사한 내용이 과학 잡지에 실렸습니다. 심장병 환자를 수술한 의사는 환자들에게
몇 가지 변화를 주문했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정기적인 운동을 하십시오.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관심을 갖지 마십시오. 소식하고
정기적으로 채식을 중심으로 음식을 섭취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에 무서운 말을 남깁니다. ‘Change or Die’ 무슨 뜻입니까?
‘변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그런데 놀랍게도 그 환자 중에 1년 뒤에 변한 사람은 딱 10%에 불과하답니다. 나머지는 죽는다고 해도
그 습관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눈앞에서는 당장 변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1년쯤 살다보니 별로 아픈데도 없어지면서
똑같은 삶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이것을 무얼 말하는 것일까요? ‘변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협박에도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주 작은 변화도 싫어합니다. 그런데 성서는 날마다 돌아서라고 말합니다.
변화하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닮아가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요지부동입니다. 작정하고 사명으로 알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어쩌면 협박에 가까운 설교를 들으면서도 참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20년, 30년, 40년을
교회 다녀도 똑같은 사람들이 사실 우리 주변에 적잖게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오랜 동안 침묵을 깨고 외친 요한의 소리는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 안에 진정한 변화, 회개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3~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어떻게 주의 길을 준비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분의 오실 길을 곧게 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게으르고 나태한 자아의 사막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깊게 패인 아집의 골짜기를 메워 말씀이 흐르게 하고, 교만과 위선의 산과 언덕을 깎아내려 겸손해져야 하고,
편견으로 굽은 길을 넓혀 세상을 곧게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신앙의 성숙은 결코 노력 없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신앙의 여정에는 때때로 고된 수련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 수련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덕향만리(德香萬里> 
  오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주님이 내게 오시기에 편하시도록 마음의 길을 닦아놓고 계십니까?
아집과 편견의 골짜기는 메우셨습니까? 교만과 위선의 산과 언덕은 깎으셨습니까? 오늘 강림절,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회개함으로 그 일을 하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 우리는 어떤 자세로 주님을 맞이해야 하나? 기도하고 생각하고 묵상했습니다.
그때 떠오르게 하셨던 풍경이 있었습니다. 그 옛날 심방을 받으시던 지금의 어르신 권사님들의 순수하고, 순박한 모습이
있습니다. 대심방은 집안에 대사 중에 하나였습니다. 대청소는 필수이고, 도배까지 새로이 했습니다. 집 안 뿐만 아니라
마당이며, 동네 길까지 쓸었습니다. 음식은 거의 동네잔치 수준이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첫 목회지에서 심방을 하는데, 김수남 권사님은 꼭 마당에서 키우는 꽃 한 송이를
작은 화분에 담아 예배 상 위에 두셨습니다. 그 그림은 그 단아하고 정갈하고 멋스러우신 권사님의 모습을
참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이미 제가 감동을 받고 심방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난향백리(蘭香百里) 묵향천리(墨香千里) 덕향만리(德香萬里)”란 말이 있습니다. 그윽한 난 꽃의 향기가 백리까지 퍼지고,
한지가 머금은 묵향이 천리까지 퍼진다면,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난 덕(德)은 그 향기가 만리까지 간다는 뜻입니다.
회개한 영혼, 부드러워지고, 겸손해지고 곧아진 마음에서 우러난 향기는 만 리까지 퍼져갈 것입니다. 우리의 회개가 진실할수록
향기는 더욱 진할 것입니다. 강림절 둘째 주일, 우리 영혼의 향기가 만 리까지 퍼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 다시금 우리의 신앙의 기본을 다져봅니다.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자로서,
주님이 오시는 길을 곧게 하는 자로서, 깊게 패인 아집의 골짜기를 메우고, 교만하고 위선으로 높이 쌓은 산과 언덕을 깎아내리고,
편견으로 굽은 마음을 곧게 하여 주옵소서. 그 옛날 심방을 받는 마음으로 깨끗하게 청소하고 주님을 맞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을 깊게 모시고 주님의 삶을 우리도 살게 하셔서 거기서 품어 나오는 영혼의 향기가 만 리까지
퍼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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