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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1월 8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11.08 17:06 조회 785 추천 0


2015년 11월 8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Nov_8)
1% 순종이 낳은 기적   열왕기하5:8~14


<감사가 일상이 되는 축복>
  우리는 지난 추수감사주일에 다시 한 번 우리 한서 성도들의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단 장식을 위해
자원하여 드린 과일 바구니들이 연출한 멋진 작품에 감동을 받았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최선을 다해
신앙고백으로 드린 추수감사헌금에 또 한 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기쁨을 이웃교회와 나누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또한 감동이었습니다. 다만 그동안 우리가 열심히 전도한 것에 비해 영혼추수가 미흡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만, 풍성한 감사와 나눔이 있는 추수감사절이어서 감사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이 신앙고백을 담아 드리는 감사가 일상의 감사가 되고 범사의 감사로 이어지기를 소망해봅니다.
우리 옆에 있는 성도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000님과 한서의 한식구여서 감사드립니다.”


<1%의 믿음>
  마포지방 교역자 부부 목회세미나 중에 목회의 경험을 진솔하게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세미나의 주제는
목회의 여정 중에 가장 크게 기억되는 실패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어떻게 이겼는지?
그 과정을 통해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지?’를 두 사람이 모두 발언을 하면 그에 따라 의견을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했습니다. 그 중에 산마루교회 이주연 목사님의 말씀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목회에 과정 중에 연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목회의 과정 중에 겪게 되는 작은 실패는 나를 나 되게 하시는
    과정이었다. 그 작은 실패의 차이는 1%이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의 경우 실패와 성공은 49%와 51%로
    결정이 된다. 우리 안에는 늘 성공과 실패라는 두 극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그 중에 1%를 어느 쪽으로
    향하게 하는지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 그 1%는 바로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다. 오늘 내게 그 겨자씨의
    1%의 믿음이 서면 실패는 연단이 되고, 허물은 은혜가 된다. 그러나 오늘 1%의 믿음이 사라지면
    열매는 우상이 되고, 은혜는 자만이 된다.”


<1%의 순종이 기적을 낳는다.>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는 기적도 바로 이 1%의 믿음, 1%의 순종에서 이루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 치유의 기적도 1%의 믿음과 순종이 낳은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지금의 시리아인
아람왕국의 군사령관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당시에 큰 인물이었고, 강한 용사로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치명적인 질병인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주고도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힘과 재산이 있으니
백방의 노력을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깊은 절망 가운데 빠져 있을 때 뜻밖의 사람으로부터
희망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스라엘에서 끌려 온 소녀아이가 나아만 장군의 여주인의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그 소녀로부터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기뻐하며
왕의 허락을 받고, 이스라엘로 출발합니다. 이스라엘 왕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왕의 친서와 수많은 금과 은
그리고 열 벌의 옷을 답례로 가지고 갑니다.
  친서를 받은 이스라엘 왕은 오해하여 크게 걱정을 합니다. 문둥병은 불치의 병인데 그것을 고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것은 트집을 잡아서 싸울 빌미를 찾는 전쟁 선포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낙담하여 왕은 그의 의 옷을 찢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곧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했습니다.
이에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이끌고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내다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면 깨끗해질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나아만이 화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는 발길을 돌리며 말합니다.


  “아니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맞이하고 상처 위에 직접안수해 주고 문둥병을 고쳐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니. 내가 여기까지 목욕을 하고 왔는가? 목욕하려면 우리나라에 더 좋은 물이
  있는 강이 얼마든지 있는데, 이런 하대를 받으며 까지 병을 고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여기서 이 이야기는 끝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의 수하에 있는 부하들을 잘 만났습니다.
그들이 지혜롭게 장군에게 충언합니다. “장군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곱 번 목욕하고 고침을 받으라는데 이 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시킨 대로 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 설득에 나아만은 마음을 돌이켜 엘리사가 시킨 대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의
문둥병은 사라지고 그의 살결은 어린아이 살결처럼 깨끗해 졌습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 전부를 믿어서 요단강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아만 안에 분명히 이렇게 해서 병이 나을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하들의 권고로 자신이 받은 모욕감 때문에 기적을 포기했던 마음을 추스린 그 1%의 믿음과 순종으로
기적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요단강물이 치료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믿음과 순종이 치유한 것입니다.
1%의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 우리에게 있느냐에 따라 실패는 연단이 되고, 허물은 은혜가 됩니다.
감추고 싶은 나의 약함은 오히려 자랑이 됩니다. 지금의 치명적인 문제는 하늘의 기적을 경험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늘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려는 마음과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려는 마음이
공존합니다. 모든 것을 전적으로 다 수용하며 믿기에는 우리는 인간의 한계가 있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가운데서
십자가 놓지 않고, 언약의 말씀 복음 붙들고 1%의 겨자씨의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가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엘리사의 스승인 엘리야 선지자와 사렙다 과부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요구는
누가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그런 명령을 하나님이 하셨다면 저는 순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가뭄의 때에 마지막 남은 밀가루로 떡을 해 먹고, 이제는 하늘의 뜻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그 가정을 심방했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심방대원들 가지고 있는 것을 보태어서 주고 왔을 것입니다.
실제로 목회하면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제가 저렇게 없는 가정에서 심방을 마치고 그들이 끼니로 겨우 연명할 것으로 대접을 받고 왔다면
당연히 비난할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도, 사렙다 과부도 그 뜻에 따릅니다. 왜 그들인들 갈등이 없었을까요?
왜 그들인들 원망이 없었을까요? 그 마지막 남은 것을 가지고 음식을 해도 편치 않았을 것이고,
그 음식을 먹는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1%의 겨자씨 믿음을 가졌고,
그 믿음에 따라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고 동의가 되어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는 전혀 달라도, 내 상식과 경험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것이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렵지만 1%를 믿음과 순종으로 선택하며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17:14~16)  


<겨자씨 믿음>
  어떤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사업을 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그만 부도가 났습니다. 그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어느 주일 그는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설교 제목이
"겨자씨만한 믿음"이었습니다. 본문은 마태복음 17장 20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리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그날따라 목사님은 겨자씨를 직접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 성도들에게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겨자씨는 눈에 겨우 보일 듯 말 듯 한 너무나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날의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목사님에게
부탁을 해서 겨자씨 한 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는 겨자씨를 자기 명함 뒷면에 스카치테이프로 단단히
붙였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는 힘들고 낙심이 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겨자씨를
꺼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겨자씨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셨지? 그래 어려운 일을 만나
  혼란스러울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자 믿어.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당하고 있는 환난을
  하나님께서 풀어주시겠지.'


  그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낙심하지 않고 그 겨자씨를 보면서 1%로를 언제나 믿음으로 향하도록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집사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예배생활과 사명에 일단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새로운 용기를 얻고 다시금 일어설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사업에
크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극심한 시련을 극복하시고 다시금 사업에 크게 성공하셨습니까?" 


그럴 때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자기 주머니 속에서 겨자씨를 꺼내서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저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낙심하지 않고 겨자씨를 보면서 제 믿음을 굳게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기울였습니다.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제 믿음에 아름다운 보상을
  주셨습니다.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희망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적인 헌신과 순종을 원하시지만 우리의 인간적인 한계를 또한 아십니다.
우리 안에 늘 두 세력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늘 갈등하며 의심과 믿음 사이에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런 우리 안에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때로 이해가 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이지만 일단 먼저 우리를 믿음 쪽으로 기울일 수 있도록
1%의 겨자씨 믿음을 갖고 어렵지만 억지로라도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고 읽는 중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머물 때 거부하지 말고 그때 1%의 겨자씨 믿음을 활용해서 그 주신 말씀대로 순종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아만에게 임했던, 사렙다 과부의 가정에 부어 주셨던 놀라운 기적이 임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1%의 순종이 기적을 낳습니다.


<기도>
  우리는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다시 한 번 말씀을 들으며 고백하고 인정합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1%의 겨자씨 믿음을 주옵소서.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말씀에 순종해서 우리 삶에 기적을 경험하는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내게 주신 말씀 앞에 이해가 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일지라도 우선 먼저 겨자씨의 믿음을 갖고
순종하는 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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