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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9월 1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9.13 13:43 조회 972 추천 0


2015년 9월 13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Sep_13)
저녁이 있는 삶 히브리서 11:13~16


<축복>
  존 칼빈의 이야기로 사랑하는 한서 가족 여러분에게 축복을 전하려 합니다. 칼빈은 교회는 어머니니라고 정의합니다.
교회는 어머니 같은 따뜻하고 정이 있고 사랑이 넘쳐 우리의 지친 영혼이 쉼을 얻고 치유를 받아 평안을 얻는 곳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칼빈은 그런 어머니 교회를 통해서만 아버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친정어머님 품에 안기는 마음으로 우리의 영혼과 몸을 온전히 맡겨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 위로와 평안과
용기와 새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고향을 떠나는 사람, 고향을 찾는 사람>
  근자에 전 세계인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진이 있었습니다. [사진자료; 아일란 쿠르디]바로 이 사진입니다.
이 아이는 세 살입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아일란 쿠르디라고 합니다. 쿠르디와 그의 가족은 전쟁의 위협에서 피해
시리아에서 터키로 탈출해서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로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그 험하고 먼 바다를 고무보트를 타고 가다가
그만 높은 파도에 보트가 전복이 되어 쿠르디와 형, 그리고 엄마는 죽고 아버지만 가까스로 살아남게 되었지요.
그렇게 물에 빠져 죽은 채 쿠르디는 터키의 한 관광지 해안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일로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난민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고향을 떠날까? 사실 우리는 이해가 잘 되기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해가 잘 되지 않은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영상자료: 일본 우토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지만 사람들은
늘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저녁이 있는 삶>
  한 때 몇 몇 정치인들이 적어도 가족이 저녁에 모여 밥을 같이 먹고, 가족 간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뜻으로 ‘저녁이 있는 삶’이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염두 해 두고 어떤 이가
‘저녁 밥이 있는 삶’이라는 칼럼의 글을 썼습니다. 일부 내용을 소개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예전에 어느 항공사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하교 길에 집으로 뛰어가는 광경을 담은
그 광고의 카피는 이랬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때는 걸어서 가지만 집으로 갈 때는 뛰어갑니다. 그것은 세상 어디에서나
똑같습니다.’ 야구는 가정적인 운동경기다. 좀 엉뚱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야구는 집을 떠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경기라고. 집을 나가려는 사람과 못 나가게 막는 사람, 공격과 수비는 그렇게 나뉜다. 점수를 내기 위해 타자는 집을
나가야 한다. 안타를 치든 볼을 잘 가려 포볼을 얻든 투수가 던진 공을 몸으로 맞든 어떻게든 집을 나가야 한다.
그리고 집을 나간 사람이 1루와 2루를 지나고 3루를 돌아 홈으로, 집으로 돌아와야 점수를 얻는 경기이다.
홈으로, 집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손을 흔들고 기뻐하는 경기, 관중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손뼉을 치고 환호하는 경기,
야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아야 이기는 게임이다.
  집을 향해 달려가는 남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은 종일 타석에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헛스윙, 어림없는 파울,
평범한 내야 땅볼 같은 것만 친 타자였다 해도, 어쩌다 방망이 중심에 제대로 맞은 타구는 내야수 정면으로 날아가
병살타가 되고 마는 그런 타자였다 해도 절망하기엔 아직은 이르다. 경기가 아주 끝난 것은 아니니까.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 돌아갈 집이 있다면, 그 집이 크든 작든, 방이 다섯 개든 하나든, 전제든 월세든 그 집으로 뛰어 간다면
우리는 끝내 홈런타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집으로 들어오는 남자의 귀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응원의 환호가 들린다.
‘오늘은 또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러니까 날마다 홈런이다.”


  이 글은 제겐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할 만큼 감동을 주었습니다. 따뜻함, 위로, 격려, 용기, 희망이라는 단어가
함께 섞여 있는 맛있는 요리를 먹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드는 생각은 사람은 누구나 다 본능적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우리가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더 애틋하고 더 간절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본향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왜 집으로 오는데 뛰어 오나요? 왜 집으로 오는데
더 조바심을 내며 더 일찍 버스나 전철 정거장에서 일어날까요? 뭐 특별한 그 무엇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좋은 것이죠. 이렇게 가야할 집이 있는 사람은 홈런을 치든 안타를 치든 볼을 얻어 오든 공을 맞고 오든 그야말로 날마다 홈런,
집으로 돌아옵니다. 날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본향을 가기 위한 연습 아닐까요?


<나그네를 넘어 순례자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가 가야할 궁극의 고향인 본향을 향해 날마다 걷고 또 걷고 있는 자로서,
나그네라고 우리의 정체를 분명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죠. 나그네라는 말을
헬라어로 ‘파레피데모스’라고 하는데, 이는 임시로 거주하는 자를 말합니다. 임시로 거주하는 나그네라는 말은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는 것, 여기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행의 경험이 많은 사람과 여행 초보와의 차이가 있습니다. 여행을 자주 다닌 사람의 짐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행의 초보일수록 거기서 천년을 살 것처럼 짐을 싸갑니다. 그리고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은 물건을 살 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하고는 처음 가자마자 사지 않습니다. 여행의 말미에 그것도 정말 기념이 될 만한 것을 구입합니다.
  여행객이 짐이 많으면 고달픈 것처럼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너무 욕심을 부려 많은 것을 가지려 하면
그때부터 고달픈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중한 것이라도 언젠가는 다 두고 가야하는 것을 아는 자는
과도한 집착과 욕망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남을 것에 과감하게 최선을 다하여 투자합니다. 그런 자를
성경은 지혜로운 자라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일찍이 정말 지혜로운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그래서 제가 평소에 반복해서 강조하여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관광객, 구경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구경꾼, 관광객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자기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을
해 달라고 합니다. 자기가 가고 싶고 보고 싶은 곳에 데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순례자는 자신의 뜻 보다는
우리가 가야할 궁극의 고향 본향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가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갑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도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순종하며 기꺼이 합니다.
순례자에게는 선명한 사명이 있고, 선명한 푯대가 있습니다. 가야할 분명한 목적지가 있습니다.
가야할 집이 있습니다. 가야할 고향이 있습니다. 가야할 본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그래서 그냥 좋습니다.
  오늘 교회를 향한 발걸음이 가볍고 좋은 것은 여기가 이 땅에 있는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는 것이 좋았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알 수 없는 평강과 기쁨이 흐릅니다. 기분 좋은 기대와 소망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순례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습하다가 본향으로 자연스럽게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는 아일란 쿠르디 가족처럼 가야할 집이 없는 난민들이 있습니다. 본향을 잃어버린
영적인 난민들이 있습니다. 난민을 보호하고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고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웃 국가들의 공동의 책임이듯이, 본향을 잃어버리고
지금도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여 해매이고 유리하며 방황하는 자들에게 본향이 있음을 알려주고,
집으로 가는 길을 찾게 해주는 책임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가야할 홈, 집, 고향, 본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아직도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자들에게 집으로 가는 길, 본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수감사절, With-Day 더불어 함께 하는 날, 더함날을 50일 앞두고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길을 집중적으로 우리의 모든 힘과 능력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알려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뜻을 하나님께 보고 드리고, 우리 모두는 한마음으로 이 순례의 길에 기꺼이 동참하고자 하는
결의를 다지기 위하여 오늘 그 선포식을 가지려 합니다.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시고 반가워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날짜를 정한 것은 아니지만 본향의 길을 찾게 해주는 일의 지경을
넓히기 위하여, 더 넓게 품고 이 길을 알리자는 뜻으로 15일에 10명의 선교단들이 우리교회와 자매 선교지인
카자흐스탄 빠블라다르 소망교회를 방문하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편한 동남아지역이 아니라
어려운 중앙아시아지역을 연결하신 데에는 여기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끄시는대로 다만 순종할 따름입니다. 두 교회가 이름다운 협력으로 더 많은 영혼들을 집으로
들어오게 하라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우리는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가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두 교회,
두 나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을 알려주신 것만큼, 한 번에 한 걸음씩 깨닫고 내딛고 오도록 여러분들의
뜨거운 중보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마도 우리 성도님들도 저희가 다녀온 이후 한 번씩은 다 다녀오셔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어쩔 수 없이 조국과 고향을 떠나는 난민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그들이 찾은 것은
하루 편안히 살고 쉴 수 있는 집이었을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 궁극적으로 가야할 집,
본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영적인 난민들이 있음을 봅니다. 그들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 줄 책임과 사명이
지금 이 땅에 삶과 죽음 사이에 순례자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먼 나라, 복음의 오지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일에 생명을 바치는 순례자를 우리 선교단 일행이 만나고
올 것입니다. 여러분을 오늘부터 더 새로운 마음의 각오와 결단으로 먼저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들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축원하며 부탁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먼저 저희들에게 본향의 길을 찾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영적인 난민들에게 그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한서의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서 편한 것, 좋은 것만을
탐닉하는 관광객, 구경꾼으로 살지 않고, 하늘의 뜻을 가슴에 품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오늘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순례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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