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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9월 6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9.06 13:49 조회 1,124 추천 0


2015년 9월 6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Sep_6)
그루터기 신앙   이사야6:9~13


<목양기도>
[찬양] 기도할 수 있는데
[기도제목]
1. 9월 한 달 동안도 우리 교회와 대한민국과 우리의 가정의 선한목자가 되어 주소서.
2. 가을처럼 우리도 잘 익어가고, 잘 물들어 가게 하소서. 미래세대를 축복하소서.
3. 나순례 권사님을 비롯하여 병마와 싸우고 있는 성도들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소서.
[목양기도]
  9월 첫 주를 맞이하여 한 달을 맡기며 드린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여 주옵소서. 이 가을처럼 우리의 신앙도
잘 익어가게 하시고, 잘 물들어 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우리의 이 모임을 성령의 역사로 구별하고 성별하여 주시고,
하늘의 은혜가 충만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성만찬을 통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과 섬김을
다시 깊게 새기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지금 여러 가지 이유로 고난의 때를 살고 있는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인내와 믿음을 더하셔서
고난 속에 숨겨 있는 진주와 보화를 발견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완전하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신앙고백을 담은 우리의 찬양과 기도와 헌신을 기쁘게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땅의 그루터기>
  유다나라가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전쟁의 패배한 나라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그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 때 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대부분 끌려간 노예들은
여러모로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머리가 좋던지, 몸이 건강하던지, 얼굴이 예쁘던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은
먼저 끌려갔습니다. 그렇게 유다나라 백성 중에 10분의 9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잡혀 가거나 죽거나 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겨우 10분의 1이었습니다. 그것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미 잡혀간 사람들의 비하면 여러 면에서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병자들, 허약자들, 그리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이제 유다나라는 거의
끝장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옛날 언약하신 것처럼 다윗의 왕가는 영원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미 왕가도
다 잡혀가 버려서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사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초래된 결과인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신앙에 대해 회의를 갖습니다. 희망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제는 끝장났다고 유다나라 백성들은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0분의 9가 잡히거나, 죽어 갔습니다.
부복하고 연약한 10분의 1만 남았으나, 그마저도 다 멸망할 것이라는 참담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선지자 이사야는 이제 예루살렘의 파멸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백성이 수치를 당할 것이고, 기름진 포도밭은
찔레와 가시나무로 덮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차게 흐르는 유프라테스의 강물이 백성을 덮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요? 이사야의 대답은 간명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이 불의한 법을 공포하고,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제정하고,
가난한 자들의 소송을 외면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과부들을 노략하고, 고아들을 약탈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존하기 보다는 주변의 강대국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기 보다는
눈앞에 번영과 형통과 축복을 위한 이방 신들을 의지했습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돌아올 것을 권면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했습니다. 듣지 않았습니다. 무시했습니다. 멸시했습니다. 그러니 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다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신지라 그들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겨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루터기입니다. 그 그루터기, 남은 자가 있을 것인데,
그 남은 자, 그루터기 사람들을 통하여 유다를 다시 살릴 것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징계 vs 정죄> 
 우리는 제자훈련을 통해서 징계와 정죄의 차이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징계를 준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죄를 지으면 정죄를 받습니다. 율법에 의하여 죄인임이 드러나고 지옥에 가야 한다는 판결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지으면 정죄가 아니라 징계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지어도 정죄해 버리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온몸이 깨끗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목욕이 아닌 발만 씻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다시는 정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죄와 허물이 있으면 즉시 징계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지 못해서 받은 징계는 달게 받아야 합니다.
겪을 것은 겪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고난은 더러 풀무불이 되어 우리 속에 있는 맑고 순수한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겪어야할 고통을 생각할 때에 예언자는 가슴이 아픕니다.
예언자의 아픔은 곧 하나님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레바논의 시인인 칼릴 지브란은 “나는 심장에 화살이 박한 채 태어났나 보다. 빼려면 아프고 그냥 둬도 아프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예언자의 마음이 그러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언자는 아픔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오래전 함석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다. 고난을 견디고 남으로써 생명은 일단의 진화를 한다. 핍박을 받음으로
대적을 포용하는 관대가 생기고, 궁핍과 형벌을 참음으로 자유와 고귀를 얻을 수 있다. 고난이 닥쳐올 때
사람은 사탄의 적수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친구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난은 육에서는 뜯어가지만 영에서는 점점 더 닦아 낸다. 고난이 주는 손해와 아픔은 한때나,
그 주는 보람과 뜻은 영원한 것이다. 개인에게 있어서나 민족에 있어서나 위대한 성격은 고난의 선물이다.”   


<근본을 붙들라.>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그루터기 예언은 몇 가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한 가지만 먼저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려울 때일수록 근본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람에 흔들릴 때
더욱 단단하게 흙을 부여잡는 뿌리처럼 살아야 합니다. 바람이 불 때 집을 짓는 새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쭉정이는 걸러내고 알맹이를 찾아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허둥거립니다.
임시방편으로 해결책을 찾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위기일수록 근본을 살펴야 합니다.
  이사야는 외세를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아마 냉소로 응대했을 것입니다.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붙들라니요? 평화로운
시절이라면 ‘아멘’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그 급박한 시점에 무슨 이상론이냐고 비웃었을 겁니다.
적들의 위협은 매우 구체적인데 비해 하나님의 도움은 너무 먼 데 있는 것 같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언자들은 사람들에게 마술적인 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위기가
고통이 없이 끝나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통은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시련과 고통 너머에서 이미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련의 때는
멍하게 흐려졌던 정신을 가다듬을 때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 아닌 것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인생을 의지하고, 방백을 의지했던 생각을 버리고 우리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 망한 것 같지만 남아 있는 그루터기를 통하여 새 역사를 써나가십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어 세워 나갑니다.


<조태중 권혜숙 권사 이야기>
  우리 한서의 식구 중에 행주산성 근교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 조태중·권혜숙 권사님이 계십니다.
[사진자료-두 사람 얼굴, 사업장 전경] 지금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기 까지 그야말로 겪어야할 고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사실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은 바로 그 옆에 지금의 식당하고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큰 식당을
꿈을 갖고 열게 되었습니다. 식당이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믿었던 건물 주인이 계약 관계에 문제가 있다며
트집을 잡는 바람에 결국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타협을 보아 그래도 얻어낸 식당이 지금 운영하고 있는
작은 식당이었습니다. 다시 작은 식당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날 개업예배를 드렸습니다.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권사님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피눈물을 나게 한 그 건물주가 너무 야속하고 미웠습니다. 사실 제가 몇 차례 사업상의
관계는 지혜가 필요하고, 무조건 믿지 말고 잘 살펴서 시작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주의 종의 말을 좀 더
신중하게 듣지 않았던 권사님 두 분에게도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새벽에 기도하며 말씀을 준비하는데,
도저히 말씀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시 개업예배를 드리는 당일이 되어도 여전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차를 타고 가는데
제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루터기’였습니다. 바로 성경에서 그루터기에 관련된 말씀을 찾았고,
그 날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은혜가 되었지만 두 분 권사님도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가 작고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루터기이다. 여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다시 일으키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새 역사를 써 나가실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사람을 의지했던 것 회개하고 근본이신 하나님을 붙들어라.
그래서 보란 듯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방에 알리고 선포하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참석한 교역자와
심방대원들이 뜨겁게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지금 그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고 큰 나무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기존에 있던 식당 옆을 확장했고, 지금은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2층까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을 만큼
많은 소문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우리 성도 중에는 여전히 10분의 9, 아니 삶의 전부를 잃어버린 것 같은 고난의 때를 살고 있는 성도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보증을 잘못 서서 집을 빼앗긴 성도가 있습니다. 한평생 열심히 살아온 죄 밖에 없는 것 같은데
건강을 빼앗긴 성도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제자 정신으로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직장을 빼앗긴 성도도 있습니다.
꿈도, 희망도, 비전도 상실하고 살아 갈 이유마저 빼앗긴 성도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이 이 시대에 예언자로
이사야 대신 종을 세워 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그들에게 들려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빼앗긴 그 자리에서, 베어버린 그 상체기의 자리에서 또 다른 구원의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다.
남아 있는 보잘 것 없고, 쓸모없어 보이고, 다 망해버린 것만 같은  그 그루터기에서 희망과 생명이 자라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한서의 가족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근본을 붙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단단히 붙드십시오.
우리 안에 하나님 아닌 다른 주인들을 내 보내십시오. 사람, 인생의 경험 방법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오늘도 부족한 종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이 시대에 이사야의 역할을 하라 하셔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사랑하는 한서의 식구들에게 전했습니다. 잘 듣게 하셨습니다. 마음에 새기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의 근원과 근본이신 하나님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다른 주인을 다 내 보내게
하옵소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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