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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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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7.26 13:49 조회 1,092 추천 0


2015년 7월 26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July_26)
물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예레미야17:1~11)


<결혼 주례사 중에서>
  결혼 주례사에 꼭 빼 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잘 사는 길은 하나님을 잘 믿고,
양가 부모님께 잘 해드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당장은 어려워도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기를 권하는 것이
‘십의 삼조’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또 십일조는 시댁 부모님께, 또 하나 십일조는 친정 부모님께 드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형통하고 잘되고 장수하는 길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얼마간의 용돈을 받아서 기쁘기 보다는 잊지 않고 부모님을 생각해 준다는 것에
더 크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 보다 결혼한 자녀들이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가장 큰 효도로 생각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영원히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 역시 하나님이 허락하신 안정된 땅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서로 사랑하며 평안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애3:33)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렘29:11)
  그런데 자녀가 부모를 모른 척 하듯 정확히 남쪽 유다 백성들은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모른 척 합니다.
근본을 무시하는 자들은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으나 결국 그 끝은 멸망입니다.
부모를 모른 척 하는 자녀는 그 자녀가 결국 모른 척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른 척 하는 자들 역시 그 끝이
멸망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 예의의 근본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이 근본을 잊으며 사는 자를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은 인생이라고 비유합니다.
  다같이 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이 떨기나무는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목을 말합니다. 키가 작지만 매우 앙상한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벌거벗은 나무’라고도 부릅니다. 이와 같이 떨기나무는
물이 없는 사막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메마른 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막의 떨기나무는 어떻게 됩니까? 먼저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에게 좋은 일은 두말할 필요 없이 비가 오는 일일 겁니다. 나무가 자리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분이 필요한데 좋은 일이 없으니 물을 얻지 못할 것이고, 당연히 열매도 없을 것입니다.
저주받은 사람의 운명도 꼭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갈증을 해갈하기 위한 물도 얻지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그러니 기쁜 일, 신나는 일,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게 됩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에 산다는 것,
저주 받은 사람의 운명도 비참하게 버려진 신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먼저 사람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이라는 단어의 원어의 의미는 ‘단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죽지 아니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더 의지했다는 것이
불행의 씨앗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육신으로 힘을 삼았다는 것입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을 피난처로 삼았다는 것인데, 사라 없어질 힘을 피난처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흔히 내 뒤에 든든한 빽이 있다고 하는데, 그 빽이 무력하다는 것입니다.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피난처와 방패와 바위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빽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믿고 육신으로 힘을 삼은 사람’은 한마디로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사람입니다. 눈에 먼저 보이는 세상의 힘과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떠난 사람은 결국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것을 지적할 때 역사적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요.
남쪽 유다는 바벨론 제국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주변의 강대국들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본 것이
아니라 세상에 힘이 있어 보이는 강국들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주변에 앗수르나 애굽 같은 강대국들이
혹시 도와주지 않을까 하고 먼저 의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사야 31장 3절 말씀에 다음과 같이 책망하십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그렇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국가적인 위기를 당해서 애굽과 같은 강대국들을 의지하다가
도리어 배신을 당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예언자로서 지금 전하는 말이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시켜서 대신 말씀하게 하신다는 것을 명토 박아 먼저 전제하여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저도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음으로 전합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영원하신, 전지전능하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과 세상을 의지할 때 우리는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많고 지혜가 많아도 사람은 사람일 뿐입니다. 언제 변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의지할 분이시오, 기댈 반석이요, 바위요, 방패요, 피난처가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우리를 향한 기대는 떨기나무가 아닙니다. 바로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은 인생입니다.
물가에 심겨진 나무는 생각만 해도 싱그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뿌리가 냇가에 깊이 내리어 아무리 가물어도
걱정이 없고 시절을 쫒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저희는 저희만의 피서법이 있습니다. 가끔 집 보다 밖에 더 시원할 때, 사실 저희 집은 여름 내내 그렇지요.
열대야가 있는 날에 ‘로뎀나무 아래 야외카페’에서 더위를 피합니다. 교회 마당에 심겨진 느티나무, 은행나무가 주는
싱그러움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 줍니다.
거기에 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겻들이면 무릉도원도 부럽지 않습니다. 야매로 배운 것이지만 제가 내린 커피가
제법 괜찮습니다. ‘로뎀나무 아래 야외카페’가 좋은 것은 바로 그 큰 나무들 때문입니다.
물가에 심겨진 나무가 바로 그런 느낌인 것입니다. 
  이 물가에 심겨진 나무는 누구를 말하는가요? 7절에 누구인지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썩어 없어질 힘을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리의 삶과 죽음, 화와 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한 분만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 뿌리를, 사람으로 말하면 그 마음을 강변, 하나님께 뻗치고 있기에 그 사람은 세 가지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첫째,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뿌리가 물의 근원에 깊이 내려있기 때문에 가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근자에 우리가 경험한 가뭄의 때에도 물가에 심겨진 나무는 걱정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뿌리가 물에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필리핀 여행의 필수 코스 중에 하나가 ‘팍상한 폭포’입니다. 팍상한 폭포까지 두 사람이 끄는 배를 타고 올라갑니다.
팍상한 폭포 여행이 유명한 것은 자갈이 많은 얕은 물가를 두 사람이 물길을 역류하며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보다 더 깊이 인상에 남은 것이 있었습니다. 절벽을 지날 때입니다. 거기는 비교적 물이 깊은 곳인데
물가 끝을 자세히 보면 적어도 10미터 이상이 되는 절벽 위에서부터 줄기가 내려와 있는데 그 끝의 흰백색의 가늘고
연한 뿌리가 물에 닿아 있었습니다. 생명력, 그 가늘고 연약한 뿌리를 내밀어 살고자 하는 의지,
자연의 신비를 보며 뭉클한 감동을 받았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미물인 식물도 아는 것입니다.
뿌리가 어디에 닿아야 살지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뿌리를 어디에 두는 가에 따라서 불볕더위와 같은 환난을 두려워할 수도 있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무뿌리는 물가, 강변에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생명수이신 예수님께 두어야 합니다.
그럴 때 어떤 인생의 위기와 시련도 두려움 없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둘째, 그 잎이 청청(靑靑)하게 됩니다. 청청(靑靑)하다는 말은 ‘푸르고 푸르다’라는 말입니다.
싱싱하다는 것입니다.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활력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굴빛만 보아도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얼굴빛은 혈색이 좋고,
피부도 탱탱합니다. 보기 좋습니다.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건강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음도 빛깔이 있습니다. 색깔이 있습니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맑습니다. 밝습니다.
우리의 뿌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영혼이 밝습니다. 마음이 맑습니다.
영혼을 담은 꼴이 얼굴빛이 청청합니다. 보기 좋습니다. 활력이 느껴집니다.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건강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셋째,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가무는 해에 나무 열매 수확은 작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농부나 과수원 주인은 가뭄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강변에 심겨진 나무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물가에 심겨진 나무로 사느냐, 아니면 사막에 떨기나무로 사느냐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알려줍니다. 마음이 인간의 거짓과 부패의 근원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살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리석고 거짓된 행위를 그치라 합니다.
자고새는 메추라기처럼 생긴 새인데 자기가 낳지 않은 알을 품어봤자 결국 알에서 나온 새끼들은 다 달아나는 것처럼
불의로 치부하는 것은 때가 되면 다 날아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쉽게 변하는 사람, 썩어 없어질 힘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의지하고 의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늘 하나님에게로 향하여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이 늘 하나님을 향하여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사람, 육신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의뢰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 뿌리를 깊게 내려 잎이 청청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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