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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7월 12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7.12 13:50 조회 1,029 추천 0


2015년 7월 12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July_12)

두 가지 소원  (잠언30:1~9)

<소원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살자>

  소원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소원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중에 고민하여 선택한 두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갑내기 노부부가 결혼 40주년 기념일을 자축하고 있는데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그동안 두 사람의 금슬이 좋았으니 소원 한 가지씩을 들어주마.”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먼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워낙 가난하다 보니 세상 구경을 못했어요. 세계일주 여행을 해봤으면 좋겠네요.” 천사가
지팡이를 흔들자 세계일주 항공권이 나왔습니다. 다음은 할아버지 차례입니다. 60세 된 할아버지는
“난 나보다 서른 살 젊은 여자와 살았으면 좋겠군.”이라고 소원을 말했습니다. 천사가 지팡이를 흔들자
영감님은 90세 노인이 됐다고 합니다.

  김형호님의 <나 그대 사랑해도 될까요?> 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꼬마야 너도 아까 봤겠지만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은 짧단다.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빌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니?
  바로 소원을 항상 가슴속에 담고 있어야 하는거야.
  순간 순간 생각나는 소원은 소원이 아니라,
  자신의 모자람을 보상받으려는 욕심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너도 소원 하나쯤은 항상 가슴에 품도록 노력해 보렴.

  여러분에게는 어떤 소원이 있나요? 한 주간 지내시면서 죽기 전에 꼭 들어 주시기를 원하는 소원 하나쯤
가슴에 품어 보시면 어떨까요?

<아굴의 두 가지 소원>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소원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잘 살펴보면 그 소원의 내용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됨됨이와 인격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듣기 생소한 아굴이라는 사람의 소원을 살펴볼
것입니다. 짧게 소개되어 있지만 아굴은 인생을 통찰한 현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것에서 교훈을
찾고, 늘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하나님 앞에 인간이 얼마나 한계 있는 나약하고 부족한 자인지를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개미에게서 부지런함을 배우고, 거머리에게서는 탐욕을 깨닫습니다. 또한 사자의 갈기에서 제왕의 위엄을
보고, 사반 즉 너구리에게서는 협동심을 배웁니다. 그런가 하면 남녀의 동침의 자리를 통해서 인간의 음흉한
끊임없는 욕망을 보고, 종이 임금이 되는 것을 보면서 부조리한 현실을 봅니다. 삶을 관조하는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 보다 어리석다고 여겼으며, 총기가 없고, 배움이 모자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짐승과 같다고 까지 표현하며 겸손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그였기에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두 가지 소원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굴의 두 가지 소원은 먼저 헛된 것과 거짓을 내게서 멀리하게 해 달라는 것과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것입니다. 소원을 아뢰는 순서에서도 우리는 아굴의 지혜를 봅니다. 현실적인 것, 물질적인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지켜야할 삶의 자세를 구합니다. 옳음을 위해 살고, 정직하게 사는 것은 인간이 가져야할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이 근본이 기초가 되지 않는 눈에 보이는 성공의 탑은 언젠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할수록 아굴의 기도는 단순하지만 참 깊다는 것을 묵상할수록 깨닫게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겉으로는 부와 명예로 권세로 성공한 인생을 산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한 방에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지 않습니까? 특별히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믿음의 기업가들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의
추한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지금의 정부와 언론을 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깨끗하고 정직한
삶으로 청부를 이루었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다고 말하면서, 남이 안보는 가운데 부를 몰래 축적하고 있는
이중적인 삶이 드러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것을 알고 있는 아굴은 그래서 먼저 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옳은 길을 가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아굴이 이런 기도를 먼저 드린 것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이루어주시는 기도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평가하시는 기준 두 가지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두 가지 질문입니다. ‘너는 누구의 길을 따랐느냐? 너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느냐?’
안타깝게도 북쪽 이스라엘의 19명의 왕들은 이 질문에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로마서 3장 4절에 보면 ‘사람은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을 참되시다 할지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참되신 하나님은 참되시기에 진실하기 못한 말이나 행위를 싫어하십니다. 시편15편 2절에 ‘하나님의 성산에 오르는
자는 정직하게 행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행위 가운데
 진실하지 못한 것을 쉽게 감찰하십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의 눈만 의식하는
거짓된 기도를 하는 것에 대하여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 하신 다윗의 기도를 살펴보면 왜 하나님이 그를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는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다같이 시편 17편 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아니하는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다윗도, 아굴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을 또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굴은 인생에 있어서 진정으로 행복한 것은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을 때라는 것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사람마다 양심이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속에는 진실을 추구하는 본성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9)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된 것과 거짓말을 서슴없이 행하게 될 경우 그 마음속에서 이를 거부하는 반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5) 고 하였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거짓되지 않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은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당당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안이 되고,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을 모릅니다.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정직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굴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평생 그렇게 살기를 하나님께 가장 먼저,
가장 큰 소원으로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굴의 두 번째 소원, 그의 기도 또한 인생을 깊게 통달한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는 지나친
부와 극단적인 가난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9절에 보니
‘혹 내가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라는 말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조심스러움이
묻어 있는 것을 봅니다. 일반적으로 물질이 풍성하고 배부르게 먹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은 하나님께 물질의 복을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재물이 많아지고
부요하게 되면 교만하게 됩니다. 내 힘으로 이루었다고 자만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어려운 시절은 생각하지 않고 없는 사람을 멸시합니다. 다윗 시대의 마온 땅에 살던 나발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을 향하여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라고 폭언을 하며 멸시하였습니다.(삼상25:10~11)
  가난할 때 오는 문제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조심스러워 합니다. 옛말에 ‘삼일 굶으면 남의 집 담장을 뛰어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배고픔은 참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생계형 범죄’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너무 가난하여 가족들의 생계가 어렵게 되면 원치 않는
과오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빈부가 섞여 사는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소유가 많고 적음에 따라서 사람의
능력이나 인격을 비교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존심이 상하고 좌절감도 가지게 됩니다. 이런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앙에 상처를 입게 되기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아굴은
꼭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소원한 것입니다.  

<모자람의 풍성함>
  철학자 플라톤(Plato)은 행복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고 합니다.
첫째, 생활하기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사람들이 칭찬하기에는 조금 떨어지는 용모.
셋째,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사람들이 절반 정도 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청중의 절반 정도는 박수를 치지 않는 말솜씨를 들었습니다.
  플라톤이 제시한 다섯 가지 조건은 전부 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입니다. 약간 모자란 듯한 삶,
어쩌면 여기에 행복의 비결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야 나의 모자람을 인정해야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나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되지요. 그리고 그렇게 믿고 의지하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도에 넘치는 부와 소유욕, 분수에 넘치는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을 모릅니다. 감사를 모릅니다.
감사를 모르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진정한 최고의 영성가 입니다. 진짜 예수쟁이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소원을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지금 품고 있는 소원이 여러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굴의 두 가지 소원을 한 주간 깊이 묵상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주시는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에 드릴 평생의 소원을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렇게 살기를 다짐하고
새롭게 남은 생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아굴의 소원을 되내어 봅니다. 가슴에 새겨 봅니다.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여 주옵소서.’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도 이제 남은 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갈 소원을 주시옵소서.
다윗처럼, 아굴처럼 하나님이 인정하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소원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 한서의 성도 모두 당당하게 하시고, 행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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