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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6월 21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6.21 13:41 조회 1,000 추천 0

2015년 6월 21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June_21)
두 가지 질문 열왕기상22:41~53
<축복>
  메르스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조심스럽게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1차 파도를 넘은 것이고, 다시
 2차 파도가 밀려오는 잠깐의 잠정기일 수도 있으니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을 합니다.
 그래도 진정되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입니다. 아직은 가뭄 해갈에는 턱 없이 부족하지만
 반가운 단비, 생명수가 내려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네 삶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하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온전한 예배자, 진정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최종평가>
  세계 오지를 여행하고 그와 관련된 여러 책을 썼고, 국제 구호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비야 씨는
 후에 예수님께 “애썼다”는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저도 깊이 
공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언젠가는 최종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요? 아니 여러분은 지금처럼 계속 산다면 과연 어떤 말을 들을까요? 
<누구의 길을 따랐는가? 정직히 행하였느냐?>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최종적으로 평가하시는 기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 보다 400명의 거짓 선지자의 예언을 따랐던 아합 왕은 비참하게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살기 
위하여 변장을 했지만 아람 병사가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죽습니다. 그 다음으로 유다 왕인 여호사밧이
 25년 동안 행한 통치를 평가하십니다. 이 두 왕 뿐만 아니라 열왕기서에 소개하고 있는 모든 왕들의 
공통된 평가 기준이 있습니다. 두 가지를 묻습니다. ‘누구의 길을 따랐으며,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했는가?’입니다.    
  여호사밧에 대하여 이 질문에 따라 평가하기를 그는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 즉 다윗의 길을 따라 
행하며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역대기서에는 여호사밧에 대하여 종교개혁을 
과감히 단행한 위대한 왕으로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처럼 하나님께 좋은 
평가를 받은 왕들은 한결같이 다윗의 길을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한 왕의 기준이 바로 다윗 
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서의 많은 인물 가운데 ‘내 마음에 드는 사람,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특별하게 
칭찬한 사람은 아마도 다윗이 유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어떤 면을 보시고 그렇게 특급 칭찬을
 하셨고, 선왕의 기준으로 삼으셨을까요?
  먼저 여러분 다윗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무엇입니까? 그래요 블레셋의 거인장수 골리앗과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그 사건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믿음을 봅니다. 나이도 어리고 체구도 작고, 전쟁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군장도 준비하지 않은 소년 다윗이 당돌하게 도발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와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얼마나 당찬 선언입니까? 
  다윗이 시를 쓸 때 자주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방패시요, 목자요, 구원이시요,
 나의 영광이요’라는 것입니다. 모든 신 보다 더 크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바라고 의지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면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셨을 것입니다.
  또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법궤가 다윗의 성으로 들어올 때에 기뻐서 뛰놀며 춤을 춘 이야기 또한 
다윗의 이야기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으려했던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를 지어 악기로 연주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7차례 찬양을 했다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정말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가식이나 체면 따윈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다윗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돌이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완벽해서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윗 
역시 인간이었습니다. 유혹에 나약한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때 욕망에 눈이 멀었던 자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하여 사람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계획적인 범죄였습니다. 죄질이 나빴다는 것입니다. 의도성이 있는 죄에 대해서는 지금도 더 큰 형량을 
내립니다. 물론 그 일로 인하여 부적절한 관계에서 낳은 아이는 죽고, 아들 압살롬에 의해 왕위를 빼앗길 
뻔 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구테타를 일으킨 것도 여동생인 다말을 겁탈한 이복형제 암논을 죽인 압살롬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특별난 것이 없는 다윗을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은
 그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며 가르치실 때에 전심으로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자복하자 곧바로 나단으로 하여금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해주셨습니다
(삼하12:13).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아십니다. 잘못할 수 있다는 것도 아십니다. 실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마음으로 회개하고 삶으로 돌이키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우리는 제자훈련에 함께 나눈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회개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돌이키면 
하나님은 그 어떠한 죄도 다 용서하십니다. 
  때로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별 큰 일이 없는 것 같으니 괜찮나보다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대충 살고,
 사람을 속이고 사는 사람들이 더 잘 되는 것을 보면서 그냥 저렇게 살아도 되나 보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기 때문에 당장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회를 주실 때, 잘못 산 것에 대한 작은 경고의 사인이 있을 때,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돌이키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고, 그런 자를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가나안을 향한 출애굽의 광야 여정과 그 이후에 이어지는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끝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는데,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변합니다. 왕을 세워달라는 진짜
 이유도 하나님을 더 잘 섬겨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왕을 세운 옆 나라처럼 잘 살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왕을 세운 이후 결국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겨 남과 북이 갈라졌고, 끝내는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까지 
겪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들, 선지자를 세워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잘못 가고 있는 길에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안 들어요. 다윗처럼 순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중에 몇 사람은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다윗을 길을 따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연약해서, 의지가 약해서, 본의 아니게 잘못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그리고 사람에게 말입니다.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거나, 무시하고 지나는 중 주로 강단에서 설교로 혹은
 그 외 다양한 도구로 우리에게 사인을 보내시거든 즉시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침상이 다 
젖도록 눈물로 회개하고, 삶으로 회개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면 하나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용서하시고, 안으시고, 용납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고, 우리를 다윗처럼 마음에 드는,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하실 것입니다. 다윗의 길을 따라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는가? 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때로 사기꾼이 
그러하듯이 정직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생각까지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감출 수도, 숨길 수도 없습니다. 정직히 행하되
 거짓말 탐지기를 손에 끼우고, X-Ray, MRI를 보시면서 물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정직성이란 속임이나 꾸밈이 없는 일관성과 진지함’이라고 사전은 정의합니다. 그 정직성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은 ‘온전함(Wholeness)’ 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속마음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보이지 않는 것이 정직한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면 우리도 부담스러워 합니다. 하나님은 더 잘 아시니 
더 괘씸하게 생각하시겠죠. 예수님도 바라새인과 사두개인에게 혹독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겉과 
속이 달랐어요. 회칠한 무덤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사람이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수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완벽주의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한 사람도 실수도 하고 죄를 짓는데, 정직한 사람은 자기의 부족한 것을 
숨기지 않고 시인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정직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보여 드리는 자가 정직한 것입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잘못했다면 잘못했다고, 
실수했다면 실수했다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 정직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정직한 자의 후손이 잘 되도록 축복하시고, 정직한 자자 결국 최후의 승리자가 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정직하게 인정하고 사는 것이 귀찮고, 시간이 많이 가고, 돌아가는 것 같고, 늦은
 것 같고,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정직한 자를 형통하게 하신다고 하나님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정직이 진정한 성공의 경쟁력입니다. 정직은 성공의 확실한
 무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정직한 자의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
  위지안이라는 중국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노르웨이의 숲’
에 반해 ‘숲에 미래가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됩니다. 그녀는 귀국해서 숲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숲 프로젝트’를 정부에 제안하는 등 활동을 벌이던 중 서른 살 때 세계 100대 명문에
 속하는 상하이 푸단대학교의 최연소 교수가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꿈을 채 꽃피우지 못합니다.
 그녀는 자기 인생의 가장 정점이던 때 한 살배기 아들과 자상한 남편을 두고 그만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녀가 온몸에 전이된 암세포로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으면서 ‘삶의 끝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매일 같이 에세이로 적은 것이 있는데, 그 글들을 모아 출판한 책의 제목이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입니다. 이 책에서 위지안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과도 같다.’고 말하면서 ‘어떤 씨앗을 내가 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뒤에도 쑥쑥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열왕기서를 새벽에 묵상하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왕들의 대부분은 앞선 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산 왕들의 삶이 후대 왕에게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삶이 넓게는 교회적으로 우리 미래세대의 마음에 씨앗이, 그리고 부모로서의 삶이 자녀들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살면 우리의 후대들은 커다란 좋은 나무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과의 약속 때문에, 다윗 때문에 악을 저지르며 사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아주
 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고 계속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다윗의 길을 따라갑시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애썼다’, ‘내가 다 안다.’ ‘수고했다.’는 하나님의 위로와 칭찬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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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2015.06.24 11:07:15
위로의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얼마나 좋을까요 내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시면...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