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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5월 31일 설교 동영상입니다.(음질 문제로 소리가 나오지 않게됨을 알려드립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5.31 14:34 조회 1,330 추천 0

2015년 5월 31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May_31)
지금, 기적을 원한다면? 사도행전3:1~10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삶 가운데 정말 간절히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우리는 절실히 기적을 원합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앞에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성도 중에도 있습니다. 그렇게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오늘의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적의 사전적 의미는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신(神)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 
한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루어진 불가사의한 기적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부터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해 일영표가
 10도 물러나고, 몇 해 가뭄 속에 비가 내리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물 위를 걷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죽은 자를 살리고, 각색 질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도 그 많은 성서의 기적의 사건 중에 하나입니다. 선천적으로 앉은뱅이로 태어난 
사람이 생명을 연명하기 위하여 살아갈 수 있는 길은 구걸이었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 보다 성전에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은 착해서 더 많은 적선을 베풀 것이라고 기대를 갖고 많은 성전의 문중에서 ‘아름다운 문’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침 그곳에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어 기도하러 성전에
 온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오전9시, 12시, 오후3시)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제9시, 오후3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온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 
앉은뱅이는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주목하여 보면서 ‘우리를 보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앉은뱅이는 무슨 특별한 것을 주려나 하고 그들을 집중하여 바라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앉은뱅이에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렇게 말한 이후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 일어나서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적의 이야기 전말을 보면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본다’
는 것입니다. 이 보는 것이 기적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먼저 본다는 단어가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바로 두 제자가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구걸하였다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본다’의 헬라어는 
‘에이도(eido)’로 영어로는 ‘see, 보다’입니다. 이것은 의미를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야에 들어왔기에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손을 내민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 눈을 돌려 보았는데, 성경은 ‘주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주목하다’의 헬라어는 ‘아테니조(atenizo)’로 영어로는 ‘gaze, 가만히 응시하다’
입니다. 그리고 앉은뱅이를 주목한 그들은 ‘우리를 보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라’는 헬라어로 ‘블레포(bulepo)’
로 ‘look at, 자세히 살피다’입니다. ‘주목하다’와 비슷한 강도입니다. 이에 앉은뱅이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해서 바라봅니다. 여기서 ‘바라보다’는 헬라어로 ‘에페코(epeco)’로 영어로는 ‘give attention to, 온
 시선을 집중시키다’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베드로는 자신이 주목하였던 것, 앉은뱅이가 바라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6절에서 전합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가 주목했던 것은 앉은뱅이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베드로가 그 앉은뱅이에게 바라보라고 했던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지금의 베드로를 새롭게 기적으로 만드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면 우리 인생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면 우리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신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마귀가 꼼짝 못합니다. 귀신이 떠나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죽었던 자들이 복음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는 길을 알려 줍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부활과 영생을 믿게 합니다.  

  기적은 이렇게 나의 작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 크시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적은 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 하나님이 
섭리하고 역사하시는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믿음으로 반응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로 우리의 ‘의’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절감하며 살아갑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 역시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 땅에서의 생명의 수한을 늘릴 수는 있지만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바로 유한한 인간의 실존을 인정하고 우리보다 크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벽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벽을 향했다는 것을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병을 고칠 방법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손을 들었다는 것은 항복의 표시입니다. 더 이상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작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십니다. 백기를 든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자신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에 시선이 빼앗겨 있는 
한 기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은과 금에 머물러 있는 한 겨우 하루하루의 삶을 연명할 수 있어도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강물 같은 기쁨이 넘치는 기적은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자기 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직도 죽지 않았다며 여전히 자신의 방법과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힘을 먼저 앞서 해결하려고 하는 자기 교만, 이것 역시 예수님이 제일로 싫어하시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 예수님이 내 안에 있는 자는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온유합니다. 인생 죽으면 끝이지 하며 죽음을
무시하고, 경멸하나 실상은 죽음이 두려워 개가 무서워서 짖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는 위선과 가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을 믿기에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로의, 새로운 삶에로의 시작인 것을 알고 있는 자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자가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으나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성전을 지나가는 자신들을 바라보았던 앉은뱅이처럼 보았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바램은 어쩌면 예수님이라면 잃었던 나라도 되찾고, 대권을 잡으면 한 자리 차지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힘없이 잡히셨을 때 미련 없이 떠나고 맙니다. 그런데 십자가와 부활을 지나 
성령체험을 한 후 베드로가 변했습니다. 베드로 안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라보시는 영혼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참으로 멋진 기적을 선포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 안에 있는 것, 기적의 원천이 되시는, 모든 인생의 문제에 궁극적 해답이 되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가난한 동네 나사렛에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지나치지 아니하고 기꺼이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그 예수님을 너도 바라보아라. 너도 그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라. 그리고 그 예수님이 주신 마음으로 살아
 보아라. 그 분이 주시는 사랑과 능력과 권세와 생명을 의지하라. 그러면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주저앉아 있는 인생에서 기뻐 뛰며 춤을 추며 하나님은 찬미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너를 보고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베드로가 이렇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의 충만한 체험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베드로 역시 
그냥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녔던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멋지게 기적의 통로로 쓰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영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고,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그 영혼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성령받기를 간절히 원하여 기도하면 부어 주십니다.     

  앉은뱅이에 입장에서는 그가 이런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것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고, 운명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기도할 중요한 제목은 만남의 
축복입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 많은 사람 중에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축복의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건강하게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에는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많고
, 그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는 새로운 성도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우리 한서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유치한 해석일 수 있지만 온전한 성도요 예배 자는 아니지만 그가 찾아온 자리가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더라도 꾸준히 교회를 향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전 
근처에 있으니까 기도하러 오는 사람을 만났고, 그 중에 성령의 충만한 사람, 그 안에 기적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사람을 만나 그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적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모신 자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꾸준하게 나오다보면 때가 되면 일어나게 되고 문을 열고 성전으로 들어와 함께 하나님을 찬미하는 
진정한 예배 자, 진정한 예수쟁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지금, 진심으로 기적을 원한다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성전에 왔듯이 주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같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드로에게 있었던 나사렛 예수님을 집중하여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앉은뱅이도 고침 받고, 성전에서 예배하며 기뻐 뛰며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기적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믿고 도전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말입니다. 
그 기적의 주인공이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기적을 믿지 못하는 시대, 그러나 더 절실히 기적을 원하는 이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용기 있는 도전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먼저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키게 하여 주옵소서. 기적이 일상이 되는 우리 한서교회와 한서교회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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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2015.06.08 14:12:45
믿음의 뿌리가 깊어서 흔들리지 읺는
신앙생활하기를 기도합니다
저에게 있어 기적은 주님께서 저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