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방송

  • 서브 왼쪽

주일설교

5월 17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5.17 13:56 조회 1,070 추천 0

2015년 5월 17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May_17)
하늘을 품은 땅의 사람  골로새서3:1~4

<축복>
  지난 월요일 지방 행사로 공주를 다녀오며 차창 넘어 5월의 산을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푸르름의 절정이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한서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빛이 청청하고 진액이 풍족하여 날마다 푸르러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정신>
   길 가던 나그네가 어느 집 사랑채에 묵게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나그네는 숭늉을 꿀꺽꿀꺽 마시고 나서 
무심코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주인 집 사내아이가 구슬을 갖고 놀다가 떨어뜨렸습니다. 마침 이것을 지켜보던 거위가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그 구슬을 냉큼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후 얼마 뒤에 그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가보(家寶)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구슬이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온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다 뒤져도 구슬이 나타나지 않자 주인은 식객으로 묵고 있는
 나그네에게 도둑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말았습니다. 나그네는 그렇지 않다는 변명을 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그네는 결박을 당하여 사랑채 기둥에 묶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위가 구슬을 삼켰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습니다. 하룻밤 동안을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난 나그네는 다음날 관가로 끌려가지 직전에 주인에게 거위가 눈 똥을 
잘 살펴보라고 일렀습니다. 잃었던 구슬은 거위의 똥 속에서 나왔습니다. 
  주인이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거위가 구슬을 삼키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얘기를 않고 밤새 고생을 
했소이까?" 나그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어젯밤에 그 사실을 밝혔더라면 당신은 급한 김에 그 자리에서 거위의 배를
 갈랐을 게 아니오. 내가 하룻밤 고생한 덕으로 거위는 목숨을 건졌고 당신은 구슬을 찾게 되지 않았소이까.“ 

  또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가난한 홀아비 무사(武士)가 떡장수네 이웃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떡집에 가서 놀던 무사의 어린 아들이 떡을 훔쳐 먹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떡장수는 무사에게 떡값을 내라고 
다그쳤습니다. 무사는 떡장수에게, “내 아들은 굶어죽을지언정 떡을 훔쳐 먹을 짓은 절대로 할 아이가 아니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떡장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당신 아들이 떡을 훔쳐 먹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데 씨도 먹히지 않는 
소리 하지도 마시오." 하고 빨리 떡값을 내놓으라고 계속 몰아세우자 무사는 순간적으로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들자 
다짜고짜로 아들을 쓰러뜨리고는 그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어 아들이 떡을 훔쳐 먹지 않았음을 백일하에 입증해 
보였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놀라 부들부들 떨고 있는 떡장수를 핏발 선 증오의 눈초리로 잔뜩 노려보던 
무사는 살려달라고 손이 발이 되게 빌고 있는 그에게 달려들어 단칼에 목을 날려버렸습니다.
  떡장수의 목이 땅바닥에 수박덩이모양 구르는 것을 지켜본 순간 무사는 정좌하고 앉은 채 두 사람을 죽인 그 칼을 
들어 자신의 아랫배에 한일자를 북 그어버렸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하는 선비정신을 두 번째 이야기는 충성과 용맹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무라이 정신을 알려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신>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살게 되었고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그리스도인이라고, 우리의
 신분과 정체성을 명토 박아 규정하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이 성육신하심으로 당신의 인간적인 삶을 우리와 공유하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우리의 인간성을 하늘 아버지의 오른편에 이끄셨다는 것에서 너무도 큰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베들레헴의 작은 마구간에 태어나 나사렛 천한 마을에서 자라신 예수님이 어느 날 십자가에게 달려 
죽으셨을 때까지만 해도 그분 안에서 하늘을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의 시체가 
무덤에서 사라지고 문득문득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면서 부터 인간 실존의 지평들이 서서히 새로운 차원으로 열리가기 
시작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사고의 한계가 새벽어둠처럼 쫓겨 가기 시작하더니, 육체에 붙박였던 
시선에 영혼이라는 새 지평이 열렸고, 현재에 고정되었던 시선엔 영원이라는 새 지평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부활과
 승천의 사건으로 제자들의 의식 가운데 생명의 신대륙(新大陸)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생명의 신대륙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걸맞게 살아야할 정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위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와 함께 쌍둥이 서신으로 알려진 빌립보서3장19~20절에 이와 유사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로니” 멸망은 구원의 반대 개념이고, 배는 
쾌락주의로 육체의 정용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며, 부끄러움은 헬라어로 ‘아이스퀴네’인데 ‘벌거벗음’이란 뜻이고,
 부끄러워할 만큼 부도덕한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땅의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우리는 이 땅에 하늘의 뜻을
 심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하는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으면 새로운 가치와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할 정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땅의 것, 위의 것>
  그러면 땅의 것은 무엇이며, 위의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의 배경과 전후 맥락으로 본다면 땅의 것은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되어 사람의 전통을 쫓고, 세상의
 초등학문과 같은 규례를 따르고, 교인들을 노략질하여 공동체를 파괴하고 개인의 영혼을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중에 한 가지를 소개한다면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시기에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르기 위해서는 천사들을 숭배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골로새서2장 23절에서
 지적하고 있는 ‘자의적 숭배’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총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는데, 
율법과 같은 또 다른 규례를 주장하여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렸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구체적으로 청산해야할 땅의 것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합니다. 5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 
그리고 8~9절 말씀도 읽겠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이 벗어 버려야 할 것들, 땅의 것들의 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욕망입니다. 
이것이 그들을 지금 다스리고 있는 신,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이란 사람들이 하나님만큼이나 아니면 그 이상으로
 좋아하며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이끄는 기준, 정신이 ‘자기의, 자기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새벽기도회 시간에 열왕기상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주 중에는 갈멜산에서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 선지자의
 한 판 정면 승부를 펼치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바알은 농사를 주관하는 신입니다. 하나님이 유일하고 위대한 
신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우상숭배에 빠졌던 것일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얻은 결론은 바로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우상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믿음의 결단을 내리기를 촉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참신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과 성도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참 진리에 대한 관심 보다는 바알이 준다는 풍요와 번영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가 
말입니다. 복음 보다는 복음을 빙자한 건강강연, 복음을 빙자한 잘 먹고 잘사는 법을 알려 주는 것, 복음을 빙자한 
인문학과 처세학의 강의에 더 솔깃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동시에 품고 
양쪽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이기적인 욕망이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땅의 것은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욕망에 따라 사는 것이라면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을 갈망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차별이 없습니다. 구별이 없습니다. 편가름이 없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대상이기에 위의 것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은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다같이 
10~11절을 읽겠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오 만유 안에 계시니라.” ‘스구디아인’은 흑해 주변에 사는 사람들 
중에 무지한 노예 계층으로 널리 알려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바로 이런 자까지도 품으시는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사는 사람들, 위의 것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은 항상 먼저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너를 보기 때문에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합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기쁨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행복을 나누고, 섬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느새 하늘이 
됩니다. 천국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가?>
  [사진자료; 영화 버킷 리스트 포스터] 영화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관한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
 수리공으로 일하던 카터와 재벌 사업가 에드워드가 암 진단을 받고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 둘은 
동병상련하여 친해지면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리스트를 적고 그대로 실행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피리미드 
꼭대기에 올라가기’였는데, 그 피라미드에 올라갔을 때 카터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집트인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멋진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영혼이 하늘에 오르면 신은 두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그 대답에 따라 
천국에 갈지, 그렇지 않을지 결정이 됩니다. 그 첫 번째 질문이 ‘당신은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이고 두 번째 
질문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느냐?’입니다. 카터가 에드워드에게 묻습니다. ‘자네는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합니다. ‘자네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가?’ 이 질문에 에드워드는 주저합니다. 딸과 담을 쌓고 남남처럼 살아 온 것이 걸렸던 것입니다.  위의
 질문에 여러분은 어떤 답을 활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기쁨이 되는 삶, 나아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사는 삶이 바로 위의 것을 추구하며 사는 삶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함께 죽었고, 다시 살아나실 때 함께 살아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 그리스도인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땅의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가슴에 품고 공동체와 너를 먼저 생각하며 차별 없이 모두를 사랑하는
 위의 것을 먼저 생각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구원으로 인생의 진정한 기쁨을 찾게 하신 것을 넘어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우리 하나님에게 기쁨을 드림으로 구원을 완성해 가는 하늘을 품은 땅의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예수님 믿어 구원받게 하셔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위의 것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고 늘 이기적인 욕망을 앞세워 사는 땅의 것을 성령의 능력으로 
과감히 버리게 하시고,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기쁨을 위하여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날마다 성화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구원을 완성하는 하늘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글 : 5월 24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현재글 : 5월 17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다음글 : 5월 10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윤은숙 2015.05.29 14:40:23
다른 사람들이 나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도해야 겠지요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