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방송

  • 서브 왼쪽

주일설교

5월 10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5.10 11:07 조회 1,145 추천 0
2015년 5월 10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May_10)
다 갚을 수 없는 은혜  사무엘하18:31~33
<축복>
  오늘은 부활절 후 여섯째 주일과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 어느 때 보다 하나님 마음과 어머니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이 겹치는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죄에 상한 사람을 위해 스스로 땅에 내려와 몸을 상하신
 하나님과 자식의 아픔을 자기 가슴에 묻고 같은 아픔으로 살아가는 부모님의 마음은 그 동기가 사랑이라는
 점에서 참 많이 닮았습니다. 그 전부를 주신 사랑에 우리는 평생 빚진 자이지요. 다 갚을 수 없지만 
잠시라도 그 은혜 기억하고 늘 보답하는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자녀인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계신 어르신들을 비롯해서 성도님들의 부모님들 영, 혼, 몸이 늘 강건하시기를 중심으로 축복합니다. 
<지진 속 엄마의 사랑>
[사진자료] 요즘 인터넷에 큰 화제가 된 뉴스 중에 하나입니다. 네팔 지진 사고 복구 작업 중의 한 장면입니다.
 작업 중에 한 여인을 발견하고 황급히 살펴보았지만 이미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복구
 팀장이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자세로 있는 여인의 자세히 살펴보니 그 엄마 아래에 어린 아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조심스레 흙을 걷어내고 꽃무늬 담요에 쌓여 있는 잠들어 있는 3개월 아기를 구조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입니다. 담요 안에 있는 휴대폰에 엄마가 아가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 같은 글귀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가야, 만약 네가 생존하거든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단다.” 이 기적의 현장에 있었던
 구조대원들은 엄마가 남긴 마지막 이 글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감동어린 기사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한결같습니다. 이미 전부를 주셨는데, 또 줄 것이 없어서 안타까워하십니다.
 우리가 잘 났던 못 났던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자식이기에 모든 것을 다 품으십니다. 언제나 나 보다 
나를 더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그 은혜는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를 향한 부모님의 한결같은 가슴 아린 사랑을 알려 주는 많은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다윗의 눈물, 내 아들 압살롬아>
  다윗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제일 잘 생기고 영리한 아들이 압살롬이었습니다. 그는
 지략이 뛰어나고, 용기 있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의 마음속에 이기적인 야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절제되지 않는 야망은 자신은 물론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갑니다. 그는 아버지의 왕좌를 빼앗으려는 
야심을 품고, 4년 동안 몰래 군대를 훈련시킵니다. 아버지 다윗을 향한 민심을 이간질시킵니다. 마침내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예루살렘 성에서 쫓아내고 왕좌에 앉습니다. 후에는 아버지를 죽이고자 
합니다. 아버지의 군대와 아들의 군대가 목숨을 걸고 치열한 싸움을 합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불행한 싸움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이 싸움에서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전쟁은 다윗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승리의 반가운 소식을 들었지만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에 왕의 체면도 생각지 않고 성곽에 올라가 얼굴을 가리고 대성통곡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 다윗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버지 다윗의 마음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부모님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마음과 닮은 부모님의 마음을
 다윗을 통하여 헤아려 봅니다.
  첫째로, 부모님은 불효자라도 끝까지 사랑합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아들 압살롬은 특별한 사랑과 애정을 쏟았던 자식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흥분하고, 분노할 수 있습니다. 당장 잡아서 목을 치라고 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쟁터로 나가는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 장군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삼하18:5) 이 말을 할 때 함께 있던 모든 백성들이 듣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당치도 않은 말이 아닙니까?
 전쟁을 일으킨 주범을 너그럽게 대해주라는 다윗의 요구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다윗은 혹시 압살롬에게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문 앞에서 아들에 관한 소식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이것이 자식을 향한 아비의 마음입니다. 아버지는 이미
 아들을 용서하고 압살롬이 무사하기만을 기원합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마음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같습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패역한 짓을 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지만 택하신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속죄의 제물로 보내십니다. 가장 처절한 십자가의 고통을 바라보시면서도 끝까지 침묵하십니다. 마침내
 “다 이루었다” 선언하시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 사랑은 곧 하나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사랑치 못하는 자가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십니다. 구약에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출21:15-17)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못된 자식일지라도 끝까지 감싸 안으시고, 사랑하시는 것이 우리 
부모님이십니다. 아무런 사랑받을 가치조차 없는 형편없는 모습까지도 끌어안으시고, 품어 주시는 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을 알고, 이런 사랑을 덧입고 살아왔다면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성을 다하는 것은 마땅한 
자식의 도리가 아닐까요? 
  둘째로, 부모님은 자식의 불행을 자기 탓으로 여기며 괴로워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자식이 잘되면 부모님의 마음은 기쁩니다. 반대로 아무리 자식이 못됐어도 
불행해지면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사실 엄격하게 따지면 압살롬의 불행은 다윗이 
뿌린 씨앗을 거두는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남편을 고의로 
살인을 합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 다윗이 참회함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범죄의 결과에 
대한 심판은 면하지 못했습니다.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10) 그리고 집안에 재앙이 일어나고, 태어난 아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다윗은 압살롬은 반역은 바로 자신의 범죄의 결과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음이 분명합니다. 아들이 
죽었다는 슬픈 소식 앞에서 다윗은 결국 자신의 죄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는 심한 자책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짓는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성한 
가정 속에 불행의 씨앗을 뿌리는 부모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잘못되면 스스로 가책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식이 잘못해도 자신의 종아리를 치는 것이 부모가
 아니겠습니까? 부모님은 자식이 잘 되면 그 공로를 자식에게 돌리지만 자식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부모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셋째로, 부모님은 자신의 영화보다 자식을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다윗은 관심은 온통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아들과 벌이는 전쟁이지만 한 나라의 왕으로서 
승리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관심은 전쟁의 승패에 있지 않습니다. 
전쟁터에서 달려온 전령이 하나님께서 왕의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았다고 보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마땅히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어떻게 승리했느냐를 묻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던진 첫 
질문이 무엇입니까? “압살롬은 잘 있느냐?”(32절) 비록 아버지를 왕좌에서 몰아내고, 죽이고자 전쟁을 일으킨
 못된 아들이지만 다윗에게 압살롬은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끝까지 사랑으로 지켜야할 사랑의 대상입니다. 
  전령으로부터 왕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마음이 심히
 아팠습니다. 차마 신하들 앞에서 울 수 없어서 문 위층으로 올라가 통곡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다윗은 차라리 자기가 죽고 압살롬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통곡합니다. 자기 생명보다 아들이 살았더라면
 하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왕권보다, 나라보다도 압살롬이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를 사랑하는 진정한 부모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하고, 심지어 아버지를
 향해 칼을 겨눈 아들이라도 그 자식의 죽음 앞에서 차라리 자신의 생명을 주어서라도 그 아들의 죽음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바치고자 하는 애틋한 아비의 심정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이 다윗의 절규를 조용히 마음에 담고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들은 바로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을 길러 주셨습니다. 
생전에 계신 어버이들 역시 다윗의 그 마음을 가지고 지금도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어버이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오늘의 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저런 이유로  
너무나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무관심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이렇게 말할 주제는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송한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준비했고, 죄송한 마음을 품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떨리는 엄마의 손>
  며칠 전에 저희 어머님이 평소에 한 쪽을 떠시는 수전증 증상이 있는데, 막내가 병원에 모시고 진찰을 받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막내가 어머니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했습니다. 그런데 한편 제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제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해서 막내가 나섰다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래 전부터 간헐적으로 떨리시는 어머니의 손이 연세가 드셔서 그러신가보다 하고 가볍게 여기고 있어서 
병원까지 모시고 갈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왠만한 것은 그냥 넘기셨던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손으로 자식과 손주들이 오면
 무엇이든지 하나 더 먹이려고 이것저것 준비하셨고, 집에 갈 때는 꼭 손에 무엇이든 들려 보내셨습니다. 어느 
날은 담가 놓은 총각김치, 오이소박이, 파김치 등 손수 그 떨리는 손으로 직접 담그시고, 가져갈 여유가 없으니
 직접 배달까지 해 주셨는데, 그 일이 생각이 나서 더 죄송스러웠습니다. 그저 어머니가 아프신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병원에 모시고 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압살롬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인지 모릅니다. 사랑받을 가치조차 없는 형편없는 
자식이지만 어버이는 끝까지 사랑으로 품어 주십니다. 자식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시고, 가슴아파하는 
것이 어버이의 사랑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꿔서라도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 어버이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어버이의 놀라운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평생 갚을 수 없지만 우리는 그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내가 얼마나 어버이를 잘 섬겼느냐가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왕대밭에 왕대 나듯이 어버이에게 
효성을 다하는 부모 밑에 효성스런 자녀들이 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어버이를 향한 사랑을 애틋하게 표현합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 
  우리의 부모님이 평생을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정성을 다하여 섬기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신 후에 아무리 목 놓아 울어도 이미 때는 늦습니다. 
  어릴 때 귀 동냥으로 들었던 노래 중에 한 번 들었는데 가슴에 박혀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는 
[불효자는 웁니다]입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 발이 터지도록 피 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니여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평생에 한번 주어지는 부모님 섬김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후회하지 마시고 최선을 다하여 주님 섬기는 마음으로
 효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아쉽지만 먼저 하늘에 보내신 교우들은 우리 교회의 어르신을 부모님처럼 섬기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어버이 주일을 맞이한 우리들에게 웅변처럼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기도>
  나 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부모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그 사랑과 은혜에 언제나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한 주간 더 마음을 담아 그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한서의 속해 있는 모든 가정마다 하나님 경외하고, 부모님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아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시고, 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글 : 5월 17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현재글 : 5월 10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다음글 : 5월 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설교 동영상 음질의 문제로 영상을 삭제하였습니다.양해바랍니다.)
윤은숙 2015.05.12 14:52:09
은혜는 다 갚지 못하지만 있는 자리에서
가능한 최선을 다해 효도하겠습니다
오늘 전화라도 해야 겠어요
우리 교회는 어르신들에게 참으로
효도하는 교회라고 생각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