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방송

  • 서브 왼쪽

주일설교

3월 29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3.29 13:53 조회 1,168 추천 0
2015년 3월 29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Mar_29)
고난주간 살기, 바보처럼  이사야50:4~7
[사진자료; 무위당 장일순 선생 모습]
  당대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스승으로 삼은 사람. 고(故) 리영희 교수가 “우리 사회에 이런 분 또 없을 것”
이라 잘라 말한 사람. 이현주 목사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분”이라 한 사람. 유홍준 교수가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고 한 사람. 모두 무위당(无爲堂) 장일순(張壹淳)선생을 두고 한 말입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을 지키며 힘없는 이들의 벗으로 남았고, 1970년대 반독재투쟁의 사상적 
지주 역할을 했고 1980년대에는 자연복구를 주장하는 생명사상운동을 펼친 서화가, 사회운동가, 정치인입니다. 
  그의 사람됨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시골 아낙네가 선생을 찾아와서 딸 혼수 비용으로
 모아 둔 돈을 기차 안에서 몽땅 소매치기를 당했다며, 그 돈을 찾아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선생은 그 
아주머니를 돌려보내고 원주역으로 갔습니다. 그러고는 역 앞 노점에서 소주를 시켜 놓고 앉아 노점상들과 
예기를 나눴습니다. 그러기를 사나흘 하자 원주역을 무대로 활동하던 소매치기를 죄다 알 수 있었고, 마침내는
 그 시골 아주머니 돈을 훔친 작자까지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은 소매치기를 달래서 남아있는 돈을 받아
 냈습니다. 거기에 자기 돈을 합쳐서 아주머니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 지은 뒤로 선생은 가끔 원주역에 갔는데, 그것은 소매치기에게 밥과 술을 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선생은 소매치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 영업을 방해했어.
 이것은 내가 그 일에 대해 사과를 하는 밥과 술이라네. 한잔 받으시고 용서하시라고” 앞으로 소매치기 같은
 짓을 하지 말라든가, 나무라는 말 같은 것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에게는 그들 행동의 옳고 그름보다는
 그들 존재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런 저항감과 거부감 없이 선생에게 밥과 술을 얻어먹은 그 소매치기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성경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하여
 사람들 앞에 끌려나와 공포와 부끄러움 가운데 내동댕이쳐졌던 여인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돌을 들고 서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여인을 향해 이해와 연민을 가진 한 분이셨습니다. 주님은 여인에게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요8:10) 물으시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인을 안심시키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8:11) 하시며 여인을 집으로 돌려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힐난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서는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말씀하시고, 이렇게 하시는 남다른 삶의 동기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며,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요8:29)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과는 다른 삶을 살고 가신 분이십니다. 특별히 오늘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을 맞아 우리는 주님의 ‘다른 삶’의 극치를 봅니다.
  독일의 한 박물관에는 [나귀를 타신 그리스도]의 조각이 있다고 합니다. 이 조각이 다른 그림이나 조각과는
 특이한 점은 예수님의 무표정한 얼굴 모습, 특히 예수님의 먼 곳을 응시하는 시선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의미에 ‘호산나’를 외치는 흥분한 군중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연호에
 반응하여 손을 흔들지도 않습니다. 조각에서 표현한 예수님의 시선은 눈앞에서 전개되는 온갖 소란과 움직임
 ‘너머’를 무표정하게 향하여 있습니다. 저 환호하는 군중들의 초라한 실존적 현실의 이면을 보고 계신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 조각을 바라볼 때마다, 그 분이 나의 온갖 죄악과 수치를 꿰뚫어 보시면서도 여전히 
한없는 용서와 자비와 긍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동기가 되어 시작된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슬처럼 드러나는
 인간들의 차디찬 이면을 보게 됩니다. 특히 우리는 십자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현실 문제에 얼마나 계산적이며, 이기적이며, 야만적인지를 보게 됩니다. 
  마가복음 15장에서는 골고다의 정황을 더욱 세밀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금요일 아침 
9시경에 예수님의 형이 집행이 됩니다. 그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붙습니다. 그리고 
양편으로 강도 둘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자기 머리를 흔들었다’고 했습니다. 시편 22편에 보면 머리를 흔드는 행동은 적대자에 대한 조롱의
 몸짓입니다. 그런데 그 조롱의 몸짓을 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일찍이 주님의 기적을 목격하고 감탄했던 
바로 그 군중들입니다. 벳새다 들녘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평생 잊지 못할 저녁식사를 했던 
바로 그들입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요11:9)라고 
외쳤던 그들입니다. 그런 저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막15:29~30)
  이 얼마나 잔인한 요구입니까? 이게 바로 죄로 물든 인간의 실존이며, 인간의 심성입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이 예수님을 희롱하는 옳다하니 한 몫 거듭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막15:31)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곁에 있는 두 강도의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막15:32)
  예수님은 이렇게 조롱과 욕과 비웃음 속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묵묵히 십자가를
 감내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머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저들의 조롱에 반응하여 내려올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세상의 상식과 지혜로는 이 십자가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바보나 하는 짓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실패요, 무력함이요, 패배요, 수치요, 손실이요, 좌절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예고한 
오늘의 본문의 말씀에서도 바보나 가는 길을 선택하신 메시아의 고난 받는 모습을 상세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사50:5~7)
  이사야가 전해주고 있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살의까지 품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견디기 어려운 수치와 조롱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에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어.” 
그게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이 고난당하는 종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흉내 낼 수 없는 여유와 당당함이 우러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고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기고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얼굴을 가리지 않는” 도대체 이
 마음의 여유와 힘은 어디에서부터 우러나온 것일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 다음의 8절에 이렇게 고백하지요.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를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사50:8)  
  어떻게 이 말씀이 여러분 심장과 가슴에 박히시는지요? 그분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학대를 견딘 것이 아닙니다. 훗날의 복수를 꿈꾸며 조롱을 견디지 않았습니다. 그 힘은 바로 자기 가까이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나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고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고백에서 그분은 이미 고난당하는 종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철없고 무지한 어린 아이들이 하는
 정도로 받아들인 것이지요. 인간의 야수성, 야만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십자가의 현장에서 예수님은 오히려
 그 십자가를 저들의 야만적인 모습마저도 품어내는 사랑으로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악을 이겨내기 위해 칼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수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방법을 택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의 약함이 도리어 나에게 강함이 
되었다고 사도 바울이 고백한 이유도 사실은 바로 주님의 힘의 원천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약하고 
무능한 듯 했지만 그를 의롭다하신 이가 그의 가까이 계셨을 때, 그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강함이 빛났던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르는 일로 인해 세상의 조롱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멸시를 당했다고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복수를 다짐하며
 독해질 이유가 없게 됩니다. 
  십자가는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세상의 영리함을 내려놓으라고 말입니다. 그만 
계산하라고 하십니다. 포장되어 있는 세속의 이기심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무정하고 이기적인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을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뜻을 보라십니다. 나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의 눈, 외치는 군중들의 함성 너머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 위임하신 사명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당대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셨습니다. 저들의 야만적인 행동에 그대로 응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말없이 잡혀
 가시며 모든 수모와 수치, 조롱과 고문과 고초를 침묵으로 당하셨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은 한 때
 반짝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킨 엉뚱한 젊은 이단의 교주 정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계산적이며, 
타산적이며, 이기적인 그들의 가치 기준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바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연하셨습니다. 유연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품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자마저도 살의를 느끼는 조롱을 이겨내신 힘의 원천은 의롭다 여기시는 하나님이 가까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가슴에 새기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큰 뜻을 품은 자는 사소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죽음마저도 이겨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다른 삶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걸어가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시간입니다. 한 주간만이라도 
예수님처럼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봅시다. 계산 그만하고,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생각 내려놓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붙들고 예수님처럼, 바보처럼 살아봅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면 
손해보고, 져주고, 참아주고, 이해하고, 용납하고, 양보하고, 진심으로 기도해주고,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진심으로 아파해주고... 우리 그렇게 한 주간 바보처럼 살아가는 한서의 성도,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기도>
  고난주간 예수님 가신 길 우리도 가길 원합니다. 발과 함께 마음도 가고 손도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처럼
 바보처럼 살기 원합니다. 우리가 지는 십자가에서 이기적이고, 타산적이고, 계산적인 우리 자신을 죽이고
 순수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진정 행복한 고난주간, 예수님과의 동행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글 : 4월 5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현재글 : 3월 29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다음글 : 3월 22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고찬일 2015.04.02 13:30:08
아멘
임마누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아래
아름다운 동행으로 한서교회에 역사하신
주님 십자가의 사랑
신실하시며 진실하며 자비하신 하나님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 성취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피뭍은 오른손으로 붙들어 세워주신
영적지도자인 담임목사님을 중심으로 그 말씀이
능력에 능력으로 레마로 들려주며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어
순종하며 겸손히 낮아지는 열린마음으로
내면깊은 곳에 깨어 앎으로 심기어지게 하시어
성령의 능력안에서 충만함을 덧입혀 주옵소서
온 성도가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하며
열방을 품고 향하여 나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힘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한서사랑의 공동체위에 함께 하시고
우리들의 작은 삶속에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오직 주님의 영광만이 나타나게하여 주시옵소서
찬양과 감사와 기도가 날마다 흘러 넘치게 하옵소서
첫사랑의 회복에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새로운 변화의 봄바람이 불어오게하소서
한서의 미래세대에 대한 새로운 변화와 도전과 혁신으로
새로운 꿈과 희망 창조의 세계가 열려지게 하소서
부활의 주님
구원의 주님
구속의 주님
사랑의 주님
모든것이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은숙 2015.04.02 15:03:14
열린 눈, 열린 마음, 열린 생각
이런 모든 것들을 갖고 싶습니다
아멘,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