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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3월 8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3.08 15:41 조회 1,251 추천 0
2015년 3월 8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5_Mar_08)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수기21:4~9

<축복>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로 아직도 두꺼운 옷을 벗기에는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지만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어났고, 
버들강아지와 목련나무에는 제법 몽글몽글 솜털 같은 꽃망울이 피어 올라왔습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입니다. 이 봄처럼 
움츠렸던 우리의 몸과 영혼의 기지개를 펴고 주님 앞에 살아있는 순전한 예배자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분 좋은 봄의 향기로 임하시는 따스한 성령의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은총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심령에 소복이 내리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우리나라의 한의학처럼 인도의 아유르베다 전통에서는 몸속에 쌓인 무겁고 독성이 있는 물질을 ‘암마’(amma)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 독성이 육체에 있든 정신에 있든 구별하지 않고 아유르베다 전통에서는 독소가 들어 있는 음식, 독소가 있는 나쁜 
생각 등 이 ‘암마’를 모든 질병의 첫 단계로 여기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성도의 얼굴을 보고 서로 인사할까요? ‘보기 좋습니다.’, ‘훤하십니다.’ 여러분의 얼굴이 보기 좋고, 훤하신
 것은 바로 이 독소, 암마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날 때 얼굴이나 손발의 부기가 있다면 그것은 내 몸에 
암마가 들어 있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 생기는 독소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에서 오는 마음의 독소까지 걷어 
내야 아침마다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암마>
 오늘 구약의 본문은 출애굽한 히브리인들 안에 있던 내면의 독소, 즉 암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던 그 독소는 그들의 광야 여정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암마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끊이지 않는 불평과 불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호르 산을 떠난 이스라엘이 에돔 땅을 우회하기 위해 홍해 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는 여행 기록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행 기록에서 이스라엘이 마지막으로 겪은 위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위기의 정체는 다름 아닌 그들의 내면을 지배했던 ‘암마’, 즉 ‘만성적인 불평과 불만’이었습니다. 

  4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사실 이 말씀을 곰곰이 읽어보면 그들의 내면에 차 있던 불만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본래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에돔 땅을 통과해서 왕의 대로를 따라 요단 동편으로 내려가자고 했었습니다. 
왕의 대로(King’s Highway)라는 것은 트랜스 요르단(Trans Jordan) 북쪽으로부터 아모리와 모압과 에돔을 통과해 아카바만의 
어귀인 에세온 게벨까지 이르는 거대한 국제 도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200만명 이상의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모세로서는 이 
넓은 길이 행군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대로를 통과하기 위해 가데스에서 애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놓고 당연히 에돔 왕이 허락해 줄 것으로 알고 당시 에돔 국경을 형성하고 있던 아라바 지역의 호르 산까지 백성을 이끌고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 왕은 몰인정하게도 이스라엘에 그들의 땅을 
통과하는 것을 하락하지 않았습니다.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

”(민20:18) 에돔 왕의 반응은 예상 외로 이렇게 냉정하고도 공격적이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평탄한 왕의 대로로 진입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바란 광야로 들어서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본문은 이때 백성들의 반응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4절) 38년간 광야에서 방황했던 이스라엘이 평탄한 지름길을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고 또 다시 
고역스러운 광야 길로 나서게 되자 그만 마음들이 상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말씀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그 백성의 마음이
 짧아졌다.’입니다. 인내심을 잃어버리고 낙심한 마음, 즉 쉬이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이 순간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이들의 불평과 원망이 너무도 만성적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마음의 불평과 원망을 무심히 방치해 두면 오래도록
 몸 속에 쌓인 독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단적인 예를 이들의 이어지는 태도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절 말씀도 다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아무리 화가 나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그동안 내게 보여 온 사랑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나요?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그들이
 말하는 하찮은 음식이란 다름 아닌 ‘만나’를 일컫는 말입니다. 2백만 명이 야영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아무런 생산수단을 갖추지 못한 광야에서 그들의 생명을 연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하늘의 음식’ 만나였던 것입니다. 백성들이 이 만나를 처음 대했을 때는 ‘꿀 섞은 과자와 같았다.’라고 했습니다.
(출16:31)
  그런데 하나님이 지난 40년 가까이 주셨던 이 만나를 이들은 ‘하찮은 음식’이라고 말하고, ‘싫어하노라’라고 경멸하는
 어조로 말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헤아려보기도 두렵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서 내뱉은 원망과 불평이지만
 그래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싫어했던 것은 단순히 음식이 아닌 출애굽과 그것을 주도했던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반응은 단호하셨습니다. 6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여기서 불뱀이라는 것은 문법상 복수형입니다. ‘독 있는 뱀들’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출애굽 당시 이 지역에는 붉은 
반점이 있는 독사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뱀에 물리게 되면 강력한 독성으로 인해 피부가 불에 탄 것처럼 까맣게 되고, 즉시
 온 몸에 열이 생기며 죽어가기 때문에 불뱀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불평과 원망이 그 내면의 독소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지역에 서식하던 불뱀들을 보내서 그들을 단호히 징계하신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정확하게 고백합니다. 

  본문 7~9절까지의 말씀을 교독하겠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해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자신들의 허물을 제대로 아는 자만이 이처럼 하나님의 용서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드리는 회개는 하나님을
 돌이키게 하시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그들을 위해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모세가 만들어 단 놋뱀에 무슨 주술적인 힘이 있어서 그런 치유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핵심은 ‘놋뱀을 쳐다보면 산다.’라는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몸속에 쌓인 원망과 불평이 독소가
 되어 결국 그로 인해 심판이 그들에게 임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인해 치유와 구원도 그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살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한 번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라는 처방은 우리의 신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게 해줍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이 말씀은 예수님이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심으로써 ‘옛날 광야의 놋뱀과 같이
 당신께서 달리실 십자가는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진 구원의 처방’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광야에 높이 달렸던 놋뱀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광야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자에게 구원이 임했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구원이 임합니다. 

  결국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은 ‘우리 시선의 방향’입니다. 지금 나의 시선이 어디를 항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 옛날 광야에서 원망을 쉬지 않던 사람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길로 인해 마음이 상하곤 했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과 편안함을 향한 그들의 탐닉은 끝내 그들의 영혼의 상실감에 젖어들도록 만들었고, 어느덧 만성이 된 탐닉과 상실감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마저 하찮다며 불평하는 마음으로 반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장대 끝에 놋뱀을 매달으신
 것은 땅에 붙박여 있는 시선을 하늘로 들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할 곳은 이 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동기가 된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이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니고데모는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하고 당혹해 합니다. 우리는 니고데모의 이 당혹해 하는 모습에서 그가 지금껏 어디에 
시선을 두고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었고, 이스라엘 선생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땅에 붙박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생의 갈증을 해갈할 수 없었던 것이고 그래서 그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잘 믿는다고 착각하는 것이 니고데모처럼 탐닉에 의한 자기만족을 위함은 아니었는지를 들여다보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탐닉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쉼 없이 자기만족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자기만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부와 권력의 축적이고, 지식과 명예의 획득이고, 산더미 같은 음식에의 집착이고, 색욕과 사랑의 구분이 없는 성적 만족 
등입니다. 이런 탐닉은 우리의 내면을 부질없이 망상에 젖어들게 하다가 마침내는 불평과 원망의 독소에 중독되게 만듭니다. 
불뱀에 물려 독이 번져나가면 마침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독소를 제거하고 살 길은 놋뱀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땅에 것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을 먼저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독소가 빠져 나갑니다. 
그래서 보기 좋은 사람이 되고, 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디 있어도 그 사람은 빛이 납니다. 그에게서 뿜어 나오는 
아우라에 모두가 경의를 표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
  독소가 제거되어 보기 좋은 사람들, 우리 한서교회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최근에 있었던 하늘을 바라본 
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인사하시며 두툼한 봉투를 별도로 내밀면서, 마음이 변할 수 있어서 감동 주실
 때 얼른 드린다고 하면서, 목사님이 지난번 말씀하신 영상장비 교체하는데 작지만 보태라고 하십니다. 나중에 재정보고를
 들으니 작지 않았습니다. 매우 컸습니다. 
  또 한분 이것도 지난주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성도님이 500만원의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누군지 확인해보니 그분의 
마음을 알만 했습니다. 그동안 아파서 고생했던 아들이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되는 것에 감사하여, 주신 감동에 순종하여 
드렸을 것입니다. 
  또 한분 대보름을 맞이해서 어느 성도님 저희 문 앞에 오곡밥과 갖은 나물을 놓고 가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제가 대신 
맛있게 먹었습니다만 예수님을 대접한 것이지요.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닮으며 살려고 하는 성도들이 우리 교회에 많이 계셔서, 가끔 이렇게 울컥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성도들의 얼굴은 날마다 달덩이처럼 훤하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장대 끝에 놋뱀을 매달으신 것은 땅에 붙박인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들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두고 살아가야 할 곳이 탐닉에 의한 자기만족을 위한 삶이 아니라 생명까지 순종하며 하늘의 
뜻과 영광을 위해 사신 예수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정체를 바로 찾고 그렇게 살 때 우리는 독소를 빼내고 
건강하게 밝고 맑게 빛을 드러내며 살 것입니다. 남은 생 그렇게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정히 축원합니다. 


<기도>
  자기만족과 자기욕망이라는 불뱀에 물려 퍼져가는 독소에 중독되어 있는 우리를 오늘 말씀을 통해 보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금 십자가 앞에 서서 하늘을 우러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우리의 마음에
 언제나 주님의 마음을 담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마음으로 너를 보고, 우리의 이웃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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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일 2015.03.11 09:18:47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시편62:1)
아멘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경외함과 의지함으로 거룩하신 보좌 앞에 나아가 두손을 들고
찬양하며 기도와 감사로써 모든 영광 돌려드립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자비하심과 사랑하심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사오며
진리가 되시며 빛이 되시는 주님
성령 충만함을 덧입혀 주소서
눈을 들어 보게 하소서
귀를 열어 듣게 하소서
마음을 열어 내면 깊은 곳에 깨달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로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으로 인하여
우리들의 입술을 열어 증언자의 사명을 감당케 하소서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구원의 주 예수그리스도여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죄양으로 십자가의 길을
순종하며 걸어가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들의 입술을 열어 진정한 마음으로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소서 가정과 교회와 지역과 민족을 회복시키소서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주소서
아름다운 한서교회위에 임마누엘 하시어
행복한 동행으로 손에 손잡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함께 예수님 마음 닮아 서로서로 사랑으로 감싸며 품으며
우리들의 삶속에 아름다운 동행을 이루어 주옵소서
구원의 주님
구속의 주님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은숙 2015.03.13 10:51:37
오늘 많이 생각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