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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월 28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12.28 15:05 조회 1,214 추천 0
2014년 12월 28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송년주일예배설교(2014_Dec_28)
네 나이가 얼마냐? 창세기47:1~10
<축복>
  한 해와 인생을 매듭 짓는 믿음의 선배들의 한결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였습니다.’ 역시 우리의 고백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큰 아픔이 있었던 2014년, 그래서 더 견디며 넘기 어려웠던 한 해를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로 잘 지나 오늘에
 까지 이르게 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앞에 다시금 겸손히 머리숙여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우리 한서교회와 한서의 성도의 가정도 그래도 무난하게 한 해를 잘 매듭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성도님들의 믿음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한 해를 잘 매듭지을 수 있도록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큰 박수로 올려 드립시다.
<허그의 효과>
  지난 당회시에 말씀드린대로 새해부터는 예배의 시간도 예배의 순서도 일부 조정을 합니다. 특별히 지금
 시간에 예배에 참여하신 성도님들은 다음주터는 10시 40분에 예배를 시작하니 2지금 보다 20~30분 정도 
일찍 오셔야 합니다. 주일3부예배(젊은이 예배)를 신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배 순서 중에 여는 찬양이 끝날 즈음, 입례송을 부르기 전에 동성은 포옹(허그)으로 이성은 
악수로 가급적 주변의 많은 성도들과 인사를 먼저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와 국민성으로 볼 
때 악수하는 것도 어려운데 어색하게 포옹까지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하는 것은 교회에서 만큼은 할수있는대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마음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열고 에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그 예배를 더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친절한 인사를 나눔은 의학적, 심리적으로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실험한 결과 포옹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스트레스와 상관없이 아주 심각한 증상을 덜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포옹하면서 느끼는 친밀감과 안정감이 살제적으로 질병에방에 1/3 정도 기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포옹에 관하여 전에 한 번 전해드렸던 감동적인 실화가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쌍둥이의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쌍둥이 중 한 아이가 심장에 큰 결함을 안고 태어났는데, 
의사들은 하나같이 그 아이가 곧 죽게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며칠 동안 그 아기는 병세가 계속 악화되어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 한 간호사가 쌍둥이를 하나의 인큐베이터에 함께 넣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병원의 방침에 어긋나는 일이었기에 담당 의사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엄마 
자궁에서처럼 두 아이를 한 인큐베이터 안에 나란히 눕히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쌍둥이는 한 인큐베이터 
안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아이가 팔을 뻗어 아픈 동생을 감싸 안았습니다.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동생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체온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동생은 조금씩 나아졌고, 현재 두 아이는 완전히 정상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 우리의 포옹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사랑과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글과 
사진의 제목이 ‘생명을 구하는 포옹’입니다. 예수님의 심장을 가진 우리의 마음에는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한서교회가, 한서의 성도들이 이렇게 서로를 섬기며 품어주고 보담아 주는 사랑으로 생명이
 살아나기를 바라며 이 성도의 인사, 축복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오늘은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2014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한서의 성도님 덕분이었다는 뜻으로 
‘덕분입니다.’라고 허그하며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우리 장로님들(원로장로 포함)은 중간 중간 앉으셔서 성도와 인사를 나누면 더 좋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시간에 대한 이해>
  일반적으로 시간에 대하여 크게 2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첫째가 윤회적인 시간관입니다. 이것은 불교나 
힌두교의 입장이지요. 시간은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윤회적인 시간관의 관저머에서 보면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직선적인 시간관입니다.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는 이해이지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의 시간은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매일
 떠오르기는 하지만 오늘의 태양과 어제의 태양이 아닙니다. 봄은 시간이 지나면 오지만, 그 봄이 내년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오지 않은 오늘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깨닫고 주어진 시간을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우리는 바로왕의 질문과 그에 대한 요셉의 아버지 야곱의 대답을 살펴 보면서, 이제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인식하고, 보낸 시간을 잘 
매듭짓고, 새롭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낸것인가에 대한 교훈을 우리는 찾을 것입니다. 
  일반적인 안부는 생략하고 ‘네 나이가 얼마냐?’라는 바로 왕의 질문에 야곱은 ‘내 나그네의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의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철학적이며 내조적인 은유의 기법으로 멋있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들이 
나눈 대화 속에는 우리네 인생을 함축하는 모든 인생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 지금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하는가?라는 총체적인 
물음이요 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네 나이가 얼마나?’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입을 빌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신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담겨 있는 첫 번째 구체적인 질문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야곱은 과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가 바로 왕에게 대답한대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험악한 세월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여 표현한 것이 자신은 한 번
 속였으나 자신을 10번을 속인 외삼촌 라반을 떠날 때 그에게 자신의 심경을 전한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창31:40)
  야곱이 어떻게 더위와 추위와 싸우며 잠잘 시간도 없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는지 잠깐 그의 생을 
엿보겠습니다. 팥죽으로 장자권을 훔친 사건을 다 아실것입니다. 그 팥죽 사건으로 그는 노숙자 생활을 
합니다. 어렵게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살게 되는데, 그는 거기서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얻기 위하여 무려 14년
 동안 고된 일을 합니다. 일한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늘 거짓말로 야곱은 인권을 유린 당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고향으로 다시 가고 싶었으나 그것도 형에서 때문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20년이 지나 용기를 
내어서 고향으로 내려 갑니다. 형 에서와 극적인 화해를 하였지만, 그 댓가로 많은 재산을 주어야만 했고, 
얍목나루에서의 천사의 씨름으로 환도뼈가 부러져 장애를 안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은 아버지로서 견디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외동딸이 성폭행을 당하고,
 그로 인하여 아들들이 세겜 남자들을 죽이는 살인을 하게 됩니다. 가장 예뻐했던 아들 요셉은 짐승들에게
찢겨서 죽었다고 알고 살았습니다. 그 와중에 흉년이 들어 이제는 먹고 사는 일이 어려워 고향을 떠나 이집트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죽은 줄만 알았던 요셉을 만나게 되었고, 요셉 덕분에 이집트의 바로 왕을 
알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굴곡있는 인생이 느껴져거 아마도 바로 왕이 먼저 나이를 물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파란만장하고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온 야곱이 지금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고 왕을 접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인생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를 주의 깊에 읽어보면 야곱은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산 적이 그리 많아 읺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언제나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자기 욕심에 이끌려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야곱을 버리지 아니하셨고, 지켜주셨고, 인도해주셨습니다. 야곱은 뒤늦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한 번도 
자신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요셉의 아들들, 손주들을 축복하면서 고백하게 됩니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나의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창48:15~16)   
  이런 야곱이 밉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야곱을 많이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경중의 차이가 
있지만 인생 속에 아픔과 고통이 없었던 사람이 있을까요? 험악한 세월을 보냈지만, 낮에는 더위와 싸우고 밤에는
 추위와 싸우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견디며, 버티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 하나님은 
은혜였습니다. 야곱처럼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없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찾아와 주셨고, 지켜주셨고,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에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나이 값 못하고 살고 있지만 여전히 지켜봐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아닐까요?
  두 번째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어떤 삶의 목적과 가치를 두고 살고 있느냐는 질문일
 것입니다. 시간에 대하여 우리는 기독교 관점의 이해를 갖고 있습니다 지난간 시간을 우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만큼 이 땅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는 시간을 선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일 것이고, 그것이 사람의 본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권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세월을 아끼라’라고 말입니다. 아낀다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시간을 산다. 건져
 올린다.’라는 뜻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간 속에 값을 지불하고 살 만큼의 가치 있는 일을 하라. 흐르는
 시간 속에 건져 올릴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낚시를 해 보면 초자일수록 고기는 잡지 못하고 해초나 나뭇가지를 잡거나, 바위나 돌에 바늘이 껴서 고생을 
합니다. 고기를 잡아 올려야지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기, 대어를 낚아야 합니다. 
  뉴스를 보니 홍콩인가요? 현금을 수송하는 차에서 문이 열리면서 도로에 돈이 떨어졌습니다. 지폐 한 장이
 우리나라 돈으로 7만원 정도 한다나요. 그 시각에 그 도로에 난리가 났습니다. 갑자기 돈 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돈을 주어 갑니다. 뒤늦게 경찰이 와서 수습을 했는데, 전체 20억원 중에 5억원만 회수했다고 합니다.
 돈의 일련번호를 추적해서 찾는다고 하는데, 돈의 회수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에게 갑작스런 
목돈이 생겼다면 여러분을 그것으로 무엇을 할까요? 
  얼마전에 우리 성도님 가운데 적금 만기가 되어서 목돈을 타게 되었답니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기도하는 중에 평소에 늘 기도했던 것을 실천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적금을 탄 것과 또 다른 수입을 합쳐서 
천만원을 만들어서 정말 어렵게 우리교회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 천만원 가지고 할 일 얼마나 많았을까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의 아름다운 마음을 하나님이 매우 기쁘게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의 알리고 드렸다고 했는데, 기꺼이 그 뜻을 존중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자녀들의 가슴에 새겨진 
깊은 교훈은 아마도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 자녀들에게 새겨진 가치있는 삵의 대한 기억은 그들에게
 어디서도 배울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평생 자산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대부분 배운대로 하는 것이거든요. 절대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당부로 이 정도로 말씀드립니다만, 아마 이것도 그 분은 미리 말씀드렸다면 마다하셨을
 것입니다. 흐르는 시간이라는 바다에서 대어를 낚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한 해를 보내는 이 즈음 나이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 아버님이 알고는 있었디만 내년에 
팔순이시라는 것이 믿이지지 않습니다. 나이를 묻게 되고, 나이를 생각하게 하는 이 즈음 오늘 말씀 ‘네 나이가
 얼마냐?’라는 말씀이 큰 무게로 다가옵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잘 견디게 하신 것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아갈 것을 새롭게 다짐하고 묵은 해 잘 보내고, 새 시간 새해 희망으로 맞이하는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2014 감사, 2015 희망 카드>
  이 시간에 조금 번거롭더라도 몇자 적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이미 나눠드린 2014 감사, 2015 희망카드에
 부연할 필요없듯이 한 해를 지나오면서 가장 크게 감사했던 것, 그리고 2015년에 꼭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적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지만 무언가에 매듭을 가는 것과 그렇게 않은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하여 그 카드는 선교회별로 게시해서 걸어놓을 겁니다. 이름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소속된 
선교회는 꼭 적으시기 바랍니다. 선교회를 모르시면 이름을 적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찬양 [하나님 한번도 나를] 
찬양을 부르는 중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다 적으신 것은 헌금 시간에 헌금함에 넣으시면 됩니다. 나눠드린 볼펜은
 나가실 때 반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 적은 후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고 제가 마무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시간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한 해를 매듭짓는 송년주일에 지나온 일년을 뒤돌아보며 험악한 
세월이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잘 이겨왔음에 감사를 드리고, 새해 새롭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을 가치있게 
살 것을 소망 가운데 결단하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까지 힘겨웠지만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 더 잘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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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일 2014.12.30 21:06:55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24:16)

반석을 가르신즉 물이 흘러나서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이는 그 거룩한 말씀과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그 백성으로 즐거이 나오게 하시며 그 택한 자로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
열방의 땅을 저희에게 주시며 민족들의 수고한 것을 소유로 취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며 그 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시편105:41~45)
아멘

올 한해를 지내며 하나님의 은혜아래
십자가 사랑으로 묶어 주시어 손에 손잡게 인도하신
거룩하신 하나님 온전히 언약을 이루신 예수그리스도 앞에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온전히 돌려드립니다
주님 영광 홀로 받으시며 주님 한서교회위에 임마누엘 하옵소서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정결케 하시고 성결케 하시어
주의 말씀에 온전히 믿음으로 순종하며 겸손히 섬김으로 낮아지게 다스려 주옵소서
주의 종 최재선 담임목사님을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 손으로 붙드시어
말씀에 능력에 능력을 부어 주사 듣는 우리에게 성령충만 함으로
주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알게 하사 온성도가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가오니
새 힘을 주옵소서 주님 말씀이 중심되어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품어 주시며 감싸 안아 주시는 주님
새해 새 꿈과 새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여
소망에 풍성함에 이르도록 우리의 지경을 넓혀 주시어
이웃과 열방을 향하여 사랑으로 열려지게 하소서
구원의 하나님
구속의 하나님
하나님 은혜에 은혜를 더하시고
하나님 감사에 감사가 넘치는
복된 새해를 주시어
한서의 힘찬 발걸음위에 형통과 소통 축복으로 임하소서
거룩하시며 인자하시며 신실하시며 진실하시며
자비와 긍휼를 베풀어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