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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월 7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12.08 22:54 조회 1,199 추천 0
2014년 12월 7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Dec_07)
지금, 희망을 묻는 자들에게  누가복음4:14~20

<목양기도> 찬양: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 공동기도제목
1. 내 안에 다시 한번 주님이 성탄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신앙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겨울철의 사순절, 
대림의 계절, 12월달이 되게 하소서. 
2. 12월 한달을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게 하소서. 마지막 
소망이 다 이루어지게 하소서.
3. 대한민국의 안정과 통일, 교회의 부흥, 가정의 평안, 자녀를 축복 하소서.

- 축복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12월 한 달 동안 조국 대한민국과 한서교회, 성도의 가정 위에 성탄의 은총인 희망과

구원과 기쁨과 평화가 가득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도들의 간절한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더 하나님 마음의 합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드리는 예배 가운데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있게 하시고, 예배 가운데 주님의 임재로 치유와 회복과 소생의 은총을 감동 가운데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 속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찬양을 부르고 듣는 중 내 영혼을 

보듬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하여 주옵소서. 몸과 마음이 아픈 성도들을 고쳐 주옵소서. 군대와 
해외에 있는 우리의 자녀들을 지켜주옵소서. 희년의 주역이며 교회의 미래인 젊은 백성들과 교회학교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기다림의 초>
  전통적으로 대림절에는 4개의 초를 켭니다. ‘기다림의 초’라고 하지요. 대림절 4주 동안 매 주마다 하나씩 
초를 켜면서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그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 초의 의미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
으로 희망, 구원(길), 기쁨, 평화라고 합니다. 무엇이든 첫 번째에는 그만의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초의 의미가 ‘희망’이라는 것은 지금이나 첫 번째 성탄절 때 역시 희망이 절실했다고 해석해도 틀린 
것이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의 주권을 잃고 있었고, 오랜 동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들이 바라는 것 이상 희망을 염원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법과 상식이 무너진 이 땅에서 사는
것이 더 이상 희망이 없어서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세월호 사건의 유족과 문일병 엄마의 눈물도 말라버린 
힘 없는 절규가 계속 귀에 맴돕니다. 

<이 땅에 유일한 희망, 예수 그리스도>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희망으로 오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여전히 소망이 없는 이 땅에 희망이 되시는지 
오늘 본문의 말씀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을 풍요롭게 지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아와 모든 것이 풍성한 에덴에서
살도록 모든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죄로 인하여서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는 야고보의 증언과 같이 인간의 욕심이 
죄를 낳았고, 그 결과 가난과 사망을 불러 온 것입니다. 가난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육체와 정신(마음)과 영혼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까지 포괄합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육체의 질병으로, 
마음의 병으로, 영혼의 병으로 가난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지라 인간의 욕망으로 하나님을 떠났을지라도 당신의 백성들이 가난과 절망 가운데 고통 
받는 것을 관망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 가운에 내려 오셨습니다. 내려오신
예수님이 인간의 향하신 하나님의 저주를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담당하시고, 그 죄값을 치루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심이라.‘(고후8:9)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엄습하는 공허와 궁핍으로 나타나는 가난은 예수 그리시도의 부재로 인한 결과입니다. 
그 가난의 저주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시도를 우리의 심령에 모실 때 우리는 진정한 부요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희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언제나 대망하시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과 더불어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나누며 사는 한서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모든 인류에게 죄의 저주를 유산으로 넘겨 주었습니다. 인간의 죄 가운데 잉태되고 
죄의 포로, 마귀의 포로가 되어 늘 어둠의 그늘 속에 사는 것 같았습니다. 마귀에게 끌려다니는 생은 결국 
이용만 당하다가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류의 모든 죄가 청산되고
마귀와 죄의 포로가 된 우리가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으니라.”(골1:13~14)
예수님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자유하게 하셨으므로,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의 
포로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솔로몬처럼 모든 것을 다 누려도 결국 ‘헛되도다’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진정한 평안과 만족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이 죄의 본질인데, 마귀의 지배 하에 
있는 인간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늘 불안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마귀의 포로로 사는 한
늘 불안합니다. 편하지 않습니다. 만족을 모릅니다. 그 만족을 찾으려 하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그 마귀의 권세를 예수님이 허무셨습니다. 십자가의 은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유를 주셨습니다. 
지금도 마귀의 포로가 되어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이유를 모르는체 희망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분이신 것을 전해야 합니다. 
그 주님을 대망하며 기다리고 다시 정중히 모시고 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아담과 하와는 영이신 하나님의 현현을 볼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말해 영적인 눈이 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영이 혼탁해지고 어두워지므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 조차 듣지 못하므로 하나님과의 소통이 단절되었습니다. 그 소통의 
단절을 결국 보이는 것만, 들리는 것만 믿는 어리석은 자로 살게 했습니다. 결국 이런 고백까지 하게 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53:1)
 예수님을 단절되어 있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간은 예수님의 
은혜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영혼이 거룩해지며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귐을 통한 소통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게 되었고, 다시 듣게 된 것입니다. 그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할수 있겠습니까? 
소통하면 사는 것이고 막히면 죽는 것입니다. 영적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시는
이유는 바로 막힌 것을 뚫어 주신 것입니다.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네 번째로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압력이나 정신적인 압력은 강도가 셀수록 변형과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특히 
정신과 심령을 누르는 압력을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스트레스가 가증될 때는 정신적으로 큰 상처와 충격을
받은 뿐만 아니라 심각한 질병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는 ‘압박’이나 ‘눌림’으로도 표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눌려서 심신이 약해졌을 때,
마귀는 미움과 분노, 시기와 질투, 불안과 우울 등 부정적인 생각과 육신의 질병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귀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무신경하게 배버려두면 마귀는 더욱 우리를 억압하며 자유를 
속박합니다. 
 무엇인가에 눌려서 미움과 분노, 시기와 질투, 불안과 우울함으로 사는 현대인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를 누르고 있는 이 마귀의 권세를 이길 힘은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 앞에 마귀는 꼼짝 못합니다.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누르고 있는 스트레스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지금 희망을 묻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유일한 희망이 되십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주시 때문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희망으로 오신 예수님을 이미 우리는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에 우리는 늘 희망과 구원과 기쁨과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우리 뿐만 아니라 지금 희망을 묻는 수많은 사람들도 
대망할 수 있도록 이 희망의 찬가를 힘차게 부르고 또 부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희망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예수님이 주시는 희망의 
소식을 주변에 있는 가난한 자에게, 포로된 자에게, 눈 먼 자에게, 눌린 자들에게 전하는 이번 성탄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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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일 2014.12.10 13:22:51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를 베풀어 주시며
은혜의 말씀으로 다스려주사 알게 하시며 깨닫게 하시어
강한 긍정의 믿음으로 인내케하사 감사함에 이르게 하시고
엘림을 보게 하사 꿈과 희망 소망을 노래하며 기쁨으로 나아갑니다
아름다운 한서교회위에 은밀히 행하시며 이루시며 역사하시는 주님
주님의 은혜아래 범사에 감사함으로 찬양과 영광을 온전히 드려
예배하며 기도하며 나아감이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그안에 있나이다
아름다운 한서교회 담임목사님과 온성도가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하며 간구하오니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혀 주사
힘찬 발걸음으로 희년의 꿈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소서
주앞에 진실되고 진솔한 마음을 주사 우리의 죄를 회개하오니
주님의 십자가 보혈 피로 죄와 허물을 씻어 새롭게 하소서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를 다스리사 인도하시며 보호하소서
주님과의 신뢰를 회복시키소서
소통과 풀림 열림으로 오시는 주여
진리의 빛으로 어둠을 비추옵소서
새벽별로 오시는 주님
화평의 왕으로오시옵소서 임마누엘 하옵소서
아름다운 한서교회위에 함께 하사
이웃과 더불어 사랑의 섬김 나눔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언약을 온전히 순종과 겸손으로 이땅위에 이루신
구원의 예수님 구속의 예수님
예수그리스도 이름 높여 감사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