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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1월 2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11.23 15:16 조회 1,414 추천 0
2014년 11월 23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Nov_23)
구도자의 물음, 전도서의 대답 전도서7:1~10
<고 김자옥권사>
  탤런트 김자옥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연예인이 63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는 충분한 화자 거리가 될만했습니다. 잠간 ‘안됐네’ 정도의 아쉬움을 갖긴 했어도 
그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기독교인이었고, 그것도 매우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에 조금더 관심이
 갔습니다. 그러던중 한편의 영상을 전달받게 되었습니다. 김자옥권사의 간증이었습니다. 참 진솔했습니다.
 그리고 참 맑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선명한 복음의 이해와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자옥권사님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영상자료]
  마치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의 고백을 많이 닮았습니다. 돈, 명예, 인기 등 다 누려보았는데, 어쩌면
 우리가 지금 바라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전도서가 바라보는 세상은 헛된 세상입니다. 헛된 일로, 헛된 것으로 가득찬 세상입니다. 전도서에서 
구도자는 지금까지 해 아래 헛된 세상에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전도서 6장의 마지막이 그런 사정을 대변합니다.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에게 말해 줄수 있겠는가?”(전6:12) 전도자는 이처럼 ‘무엇이 좋은지를 누가 알겠는가?’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던 구도자의 말이 전도서 7장에 들어서면서 그 어조를 달리합니다. 글의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해 아래 세상살이에서 비교대상이 되는 것들을 고르고 그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은지를 
관찰하는 쪽으로 새색의 방향을 틀게 됩니다. 세상살이에서 더 나은 가치, 더 나은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묻는 구도자의 물음에 가치의 상대적 비교를 통해 더 나은 쪽을 선택하도록 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좋은 이름이 기름보다 낫다’(1절)고 합니다. 이름과 기름은 히브리어에서는 그 소리가 
비슷합니다. 이름은 ‘쉠’이고, 기름은 ‘쉐멘’입니다. 좋은 이름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얻는 명성, 
명예를 의미합니다. 좋은 기름은 향유를 의미합니다. 향유는 옛 이스라엘에서는 재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름과 기름을 비교한다는 것은 명성과 재산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좋은 이름이 재산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깁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만 남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고, 누렸어도, 아무리 많은 것을 거느리고 있었어도, 아무리 많은 것을 차지하고 있었어도, 
죽고 나면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름 없이 이 세상에 왔다가 이름만 가지고
 이 세상을 떠납니다. 인생을 마친 후에도 김자옥권사처럼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인생을 잘 
산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출생의 날보다 죽음의 날이 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고 채희동목사의 추모기념행사> 
  감신대 출신 중에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훌룡한 선배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한계레 신문에 
조 현이라는 논설위원이 선배인 고 채희동목사님의 이름을 언급한 기사가 있었서 눈여겨 보았습니다. 
그 기사 내용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사진; 채희동목사]
“당신은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돈과 권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 인명인가 보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인 삼성 이건희(72) 회장이 지난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많이 회자되는 말이다. 이건희 회장이나 70살을 못 넘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돈이나 의술이 없어서 그리되었겠느냐는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였던 스티브 잡스도 3년 전
 56살로 생을 마감했다. 
돈과 권력이면 안 되는 게 없는 것 같은 세상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결국엔 자신의 생명은 어쩌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세계대왕 알렉산더도 33살로 생을 마감했고,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고 천하의 불로초를 구해 
먹던 진시황도 50살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한 시대의 걸물인 이들은 이름을 남겼다. 그리스 <오디세이아>에서 ‘반신반인’으로 태어난 절륜의
 전사 아킬레우스(아킬레스)는 ‘신으로서 무사태평하게 영원히 살 것이냐’, ‘젊은 날 죽어서라도 영원히 
이름을 남기느냐’의 선택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한다. 그러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은 모래에서 
황금을 찾는 것만큼이나 드물다.
최근 개봉해 잔잔한 감동을 불러온 <안녕, 헤이즐>이란 영화는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10대 남녀의 사랑과 
죽음 이야기다. 폐를 점령한 암세포 때문에 항상 산소통과 호흡기를 몸에 달고 다니는 16살 소녀 헤이즐은
 골육종을 앓아 한쪽 다리를 잘라내고 의족을 달고 다니는 어거스터스를 암환자 모임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암이 갑자기 온몸에 퍼지는 바람에 헤이즐을 제치고 먼저 죽음을 맞게 된 어거스터스가 말한다. 
“난 내가 영웅이 될 줄 알았어. 내 이야기가 책이나 신문에 실리게 될 줄 알았어.”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이토록 허망하게 떠날 줄은 몰랐다며 비탄하는 어거스터스에게 헤이즐이 말한다. “넌 나에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함을 줬다”고. 그리고 단 한 사람에게 새겨진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내게도 역사책엔 씌어지지 않은 나만의 위인전이 있다. 내 가슴에만 살아 있는 나만의 영웅들이다. 내 친구
 채희동 목사도 그중 한명이다. 충남 아산에 코딱지만한 교회를 세우고, 들판에서 시골 아이들과 공을 차고,
 시를 읊다가, <샘>이란 잡지를 펴내던 채 목사는 40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떴다. 
그는 신문 부고란에 날 만한 직함이나 업적을 남긴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떠난 날이면 많게는 수백명,
 적게는 수십명이 그와의 따뜻했던 만남을 되새길 만큼 사랑의 불꽃을 심어준 이였다. 그가 떠난 지 10년이
 되는 오는 11월10일 마지막 추모예배가 열린다. 이제는 그런 행사조차도 없어질 것이지만, 그의 잔잔한
 평화와 기쁨은 여전히 내 가슴에 살아 있다.
역사책엔 살아 있지만 단 한 명의 가슴에도 진정한 사랑을 주지 못한 위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채 목사 같은 사람은 아닐까.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사자의 물음 같은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듣고도 회한보다는 자족의 미소를 지을 그런 사람을.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리고 2절 부터는 삶과 죽음을 대조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잔칫집’과 ‘초상집’을 비교합니다. 
결혼식과 장례식을 비교합니다. 초상집은 ‘애곡하는 집’입니다. 진칫집은 ‘마시는 집’입니다. 왜 이 둘을
 비교했을까요?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인생살이에서 중요한 통과의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결혼식을 
거쳐 인생살이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장례식을 거쳐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혼인집에 가는 사람이나 
초상집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통과의례를 지켜보는 증인들입니다. 이 관문을 통과하고, 통과하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잔칫집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다’(2절)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잔칫집에 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지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잔칫집에서는 
즐거움을 맛보지만 초상집에서는 인생의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생을 깊게 성찰하게 됩니다. 삶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날의 끝이 있음을 아는 자는 인생을 함부로 경거망동하며 살기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시간을 의미있고, 값지게 살기를 고민합니다. 흐르는
 인생이라는 시간 속에서 건질만한 가치있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자를 가리켜 
서신에서는 ‘세월을 아끼는 자’라 했습니다. 바로 죽음이 주는 유익이요, 지혜입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이 생각이 납니다. 보불전쟁 당시 
프랑스가 프로이센에 점령되면서 모국어를 빼앗기게 됩니다. 말썽꾸러기 프란츠가 어느날 땡땡이를 치려다가 
늦게 학교에 갑니다. 살금살금 교실에 들어가는데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아멜 선생님이 화를 내지 않고 마을의
 어른들도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것었습니다. 선생님이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잎으로는 독일어를 
배워야 하니까 프랑스어는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그날 참석한 어른들도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수업에 임했습니다. 프란츠도 그동안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집중했는데, 그렇게 어렵던 프랑스어가
 얼마나 쉬운지 신기했습니다. 미자막이라고 하니 진지했고, 최선을 다했던 것의 결과였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숙연해집니다. 얼마남지 않은 인생을 치열하게 살다 
보니까 의미 있는 인생으로 멋진 매듭을 짓기도 하고, 심지어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사실,
 엄격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한 해를 매듭짓는 
연말이 다가오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어둔 밤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원하는 구도자의 질문에 전도서는 또 하나의 답을 제시합니다. 제대로 살려면, 바로 살려면,
 책망 듣기를 주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다’(5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신앙은 전통적으로 지혜자로부터 듣는 책망을 삶의 교훈으로 
삼았습니다. 지혜자가 주는 꾸지람을 바로 새길 때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는 것 중에 하나가 꾸지람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꾸지람을 듣기 싫어합니다. 꾸지람을 
하면 불쾌하게 생각하고 반박합니다. 한국교회 강단에서 촌철살인 같은 예언자적 메시지가 사라졌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 이야기 합니다. 옳은 게 좋은 것인데 말입니다. 옳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전도서는 무엇이 인생을 망가뜨리는지를 지적합니다. 바로, 마음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예를 들면 ‘탐욕’, ‘뇌물’, ‘교만한 마음’, ‘분노’ 같은 것들이 사람살이를 망치게 한다고 지적합니다. 
  다같이 7~9절까지의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7~9절)
  일종의 쓴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쓴소리는 모두 마음의 문제를 다룹니다. ‘참는 마음’, ‘교만한 마음’, 
‘급한 마음’을 언급하면서 ‘마음’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본문이 지적한 탐욕, 뇌물, 교만한 마음,
 분노는 모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불쑥불쑥 욕심이 나고, 뇌물을 줘서라도 챙기고 싶고, 괜스레 
우쭐하고, 이유없이 짜증을 부리는 현상은 모두 상처나고 멍든 마음을 돌아보라는 신호입니다. 상한 마음에서
 욕심이 치솟고, 상처받은 마음에서 뇌물을 먹여야 되겠다는 꿍꿍이가 생기고, 온전치 못한 마음에서 서두르거나
 화를 내게 됩니다. 
인생살이를 제대로 하려면 눈을 다독여야 합니다. 귀를 다독여야 합니다. 입을 다독여야 합니다. 손발을 다독여야 
합니다. 아니, 무엇보다 마음을 다독여야 합니다.
  건강하려면 음식을 잘 먹어야 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그러기에 잘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전도서는 인생살이를 건강하게 하려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살피라고 충고합니다. 사람살이가 망가지는 이유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 있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것에 있다고 충고합니다. 
  무엇이 사람의 인생을 불행하게 합니까? 마음 씀씀이 때문입니다. 못된 마음이, 못난 마음이, 모자란 마음이 
인생길을 망가뜨립니다. 그러니 행복하려면 마음이 거듭나야 합니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마음의 병이 있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자꾸 옛날 일만 끄집어 내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오늘에
 살지 못하고 과거에 파묻혀 살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이렇게 말을 이어갑니다. “엣날이 오늘
 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10절)
  사람은 나이가 들면 과거지향이 되기 쉽습니다. 과거를 미화합니다. 과거를 예찬합니다. 그런자를 오늘 말씀은
 지혜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과거보다 지금, 오늘을 잘 사는 자가 지혜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함께하시는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이 앞으로 이루어 주실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삶은 과거 
완료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현재 진행형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고치기를 원하면 지금 시작하십시오. 
오늘 하십시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벌써 또 한 해를 매듭 짓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빠른 새가 ‘어느 새’라고 하는데, 정말 어느새 올 해도
 한 달 정도를 남겨 놓았습니다. 교회 절기상 한 해를 여는 대강절이 다음 주이니 금주는 올 해의 마지막 주가
 되겠지요. 다시금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 보게 됩니다. 이러다가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그때를 멋지게 매듭지어 해피엔딩의 인생이 되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구도자가 되어 물음을 던지고 그 답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기름보다 이름을 남기십시오. 우리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기도>
  시간과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한 해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올 해도 멋진 매듭을 짓게 하시고, 인생의 마지막이 더 멋진 매듭이게 하여 주옵소서. 재산 보다 
이름을 남기게 하여 주옵소서. 어둔밤 되기전에 세월을 아끼며 살게하여 주옵소서. 말씀으로 주시는 책망을 마음에
 새기게 하여 주옵소서. 마음 씀씀이가 아름답고 예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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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일 2014.11.24 13:27:55
사랑의 하나님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시며 구속자가 되시며
생명이 되시며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하신 주님앞에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립니다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보혈의 피만이
우리의 심령을 깨끗게 하시며 새롭게 하십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나이다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어 진리의 길로 인도하소서
아름다운 주님의 몸된 한서교회를 섬기는 주의 종
최재선 담임목사님 주님 권능의 피묻은 오른 손으로 붙드사
말씀에 능력에 능력을 덧입혀 주시어 온성도가 말씀을 들어 깨달아
한마음 한뜻으로 회개하며 기도하오니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주옵소서
사랑으로 가득한 한서교회 성령의 은혜에 물결이 흘러가게 하소서
가정과 지역과 민족을 변화시키사 화평케 하소서
우리의 힘이 되신 하나님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겸손하게 하소서
섬김에 섬김으로 충성된 일꾼들로 교회를 세우소서
여호와 이래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은밀히 행하시는 주여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 주옵소서
인자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
온 땅위에 주님의 나라 임하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