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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1월 16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11.16 15:20 조회 1,240 추천 0
2014년 11월 16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Nov_16)
이 길이 아닌가벼?  신명기8:1~4
<축복>
  이형호장로님이 속장으로 섬기는 속도원 부부와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자연재해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인류를 살리기 위하여 인간이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나서는 공상 과학물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하여 알아야할 7가지 팁을 제공할 만큼 난해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인간을 살려낸 힘은 과학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사랑이었다고 저는 나름 해석을 했습니다. 
우리를 살려내는 근원적인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에 있고,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사랑 때문에 이렇게 행복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저를 한번 따라하실까요? ‘우리, 서로 사랑하자.’ 그렇습니다. 구원도, 기적도 결국 사랑에서 시작되고, 
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이지요. 우리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후회없이, 아낌없이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옆에 있는 교우와 함께 인사하며 축복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더 사랑합시다.”
<길을 잃었습니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에 놀러간적이 있었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가벼운 산보삼아 산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여름방학 때니 한여름이었지요.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아주 여유있게 
등반 아닌 등반을 했습니다. 그런데 올라갈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내려올 때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미 등산객들은 올라가든 내려가든 다 갔건 같고, 한사람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아래로 내려가는 것 보다 더 올라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산 속은 밤이 빨리 찾아와서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장난 삼아 어떨결에 등반을 하게된 우리 일행들은 위험을 직감하고 긴장이 되었습니다. 
긴장을 하니 더 길이 보이지 않아 미궁 숙에 빠져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산책 정도로 생각하고 왔기에 당연히 
먹을 것 챙기지 않았고, 지갑을 챙겨온 친구들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해매다가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것처럼 어떨결에 제법 큰 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노고단 올라가는 차로를 만들때였습니다. 그 
길이 얼마나 반갑던지요.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니 작은 구멍가게 앞에 있는 버스 정거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일행 중에 한 친구의 주머니의 돈이 있어서 차비를 제하고 요구르트와 과자로 요기하고 숙소로 돌아온
 잊지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성도 여러분도 저처럼 길을 잃어버린 경험이 한 두 번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길을 잃어버리면 당황하지요. 그리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이 길이 맞나, 저 길이 맞나 이대로
영영 길을 잃어버려 미아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어제 뉴스에 소백산에 길을 잃어버린 사람을 비행하며 촬영하는 핼리캠으로 찾았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갑게도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추위를 견디지 못해 죽은 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 길이 맞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그 길 끝에는 평소 그려왔던 파랑새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왔는데, 다 와서 보니 엉뚱한 
곳에 와 있습니다. 잘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행복한 가정에 갑자기 
위기가 닥쳐옵니다. 주도면밀하게 세웠던 계획들이 갑자기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길을 잃어버린 때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나와서 홍해를 
건너고 이제 가나안이 바라다 보이는 바란광야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돌연 하나님께서 이들을 광야로 돌려 
보내십니다. 순간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길을 앓고 방황한 세월이 무려 40년입니다. 이제는 다 왔다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광야로 들어가게 된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기억해야할 믿음의 법칙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첫 번째 믿음의 법칙은 이 길의 마지막은 가나안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마음은 바로 이와같습니다. 다같이 예레미야 29장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요”
  그리고 마태복음 7장9~11절 말씀도 함게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마음은 결국 우리가 잘 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잠시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마지막은 평안이요. 
가나안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걷고 있는 광야길의 끝이 결국은
 가나안이 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십니다. 이대로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소망을 길을 떠나기 전에 확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어떤 돌발적인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이 소망의 말씀을 든든히 붙들고 간다면 힘을 얻을 것이며, 인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토라 농법>
  이스라엘은 국토의 넓이래야 강원도만한 넓이의 나라이며, 그 작은 땅도 연강우량 100미리 안팎인 준 사막에 
이르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땅입니다. 그런 땅에서 그들은 농업을 일으켜 식량자립을 이루고 있고, 해마다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사막이나 다름없는 이스라엘 
땅에서 “농업입국을 일으킨 비결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자신들은‘토라농법(말씀농법)’으로 농업을 일으켰다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농업의 성공비결은 토라농법(TORA 農法)입니다. ‘토라’란 말은 히브리어로 말씀이란 
단어입니다. 유대인들이 믿는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서를 일컬어 토라라 부릅니다. 토라농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따라 경작하는 농법이라는 것입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성경에 농삿법에 
관한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고 물을 수 박에 없지요. 그들은 성서의 이사야서 43장 18절에서 20절 말씀이 
자신들이 이룬 토라농법의 근거가 되는 말씀이라고 소개합니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사43:18~19) 
  18절의“이전 일을 기억치 말며 옛일을 생각지 말라”는 말씀을 “사막에서는 농업이 안된다”는 고정관념, 
이전의 사고방식을 버리라는 말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발상의 전환이지요. 그리고 19절의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겠다는 말씀을 불모지 광야에 농로를 열고 사막에 수로를 내겠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발상을 바꾸어 황무지를 개간하여 트랙터가 다니는 농로를 만들고 송수관을 만들어 400여Km나 떨어진 
갈릴리 호수로부터 물을 끌어들였다는 것입니다. 개척농민들과 과학자들과 농업관계 공무원들이 마음을 모아 그 
토양에 적합한 농작물을 찾아내고 재배법을 개발하여 식량자급의 터전을 닦고 나아가 년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농산물을 수출하는 농업 강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소망으로 붙들고,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척박한 광야, 사막을 일구어 농업 강국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이 ‘이 길이 아닌가?’라는 실패의 
과정을 거쳤을까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이 무모한 도전이라는 반대를 경험했으며,
 이 즈음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길을 잃어버리셨나요? 그래서 갈 길이 막막하시나요? 우리가 가는 길에 마지막이 평안이요, 미래요, 희망이요,
 가나안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지금의 최악의 상황이 우리가 맞을 최후의 
일이 아니라는 부활신앙을 가슴에 다시 새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결국, 최후에 승리할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두 번째 믿음의 법칙은 광야 길이 주었던 유익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스리엘 백성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지만, 그 세월은 그냥 허비해 버린 시간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여도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2~3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보냈던 40년의 세월은 허비해 버린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헤매이는 것 같았지만, 그 길을 가는 동안 그들이 배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점점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의 노예로 살던 근성이 금방 사라지겠습니까? 그 뼈속까지 베어 있는 노예 근성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광야학교를 통하여서 애굽에서 이방신을 섬기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늘
 불평하고 원망하던 교만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이동을 주도했던 모세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도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이 그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이 허비해 버린 
시간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길을 잃어버린 40년 동안 더 깊어졌습니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더 지혜로와졌습니다. 더 겸손해졌습니다. 더 온유해졌습니다. 더 강인해졌습니다. 
  
  지난 9월에 입대하여 지금 강원도 원통에서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고 있는 둘째 아들 승준이가 보내온 편지 중에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에 입대하여 함께 입대한 동기들과 훈련을 받는 중에 드는 큰 깨달음은 자신이 
매우 똑똑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함께 입대한 동기들과 여러 훈련을 받고, 조교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며,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편지를
 받으면서 승준이 군대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늘 부족하다는 것을 체험으로 깨달았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군대에 간 충분한 보람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고백해야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인간관계와 신앙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인데, 그것을 
알아간다는 것이 매우 대견했습니다. 날씨가 추울 때 강원도 지역은 더 추워서 걱정은 되지만, 자신이 부족함을 알고 
시작한 군생활 2년의 시간들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큰 아들 용준이 처럼 잘 마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우리는 소중한 시간, 소중한 기회를 허비하고 있는 것같은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정 속에는 우리를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서 
변화되어 가고 있고, 성국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길을 잃어서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 과정을 통해 주신 유익한 것들, 소중한 것들, 진정한 보화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맞춤 은혜를 주시는 것을 기억하고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 그 광야
 길에서 주신 유익한 것들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세 번째 믿음의 법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1절),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 지니라.”(6절)는 것입니다. 
  남자들에게 이상한 속성, 버릇이 있습니다. 사우나에 들어가면 은근히 경쟁합니다. 먼저 나가면 지는 것 같아 참을 
때까지 참습니다. 쓸데없는 자존심은 운전하다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도 작동합니다. 길을 몰라도 좀처럼 물어 보질 
않습니다. 보다 못해 옆에 있는 아내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요.’해도 ‘괜찮아 찾을 수 있어.’하고 하며 
고집을 부립니다. 나중에는 아예 화를 벌컥 내지요. ‘아, 찾을 수 있나니까!’ 요즘에 네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때로 자존심을 내버려야 삽니다. 길을 잃으면 물어야 됩니다.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괜한 자존심 버리고 
길되신 주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네비게이션으로 주신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말씀 앞으로
 가면 말씀이 등불이 되어 길을 비추어 줍니다. 
  
  천하의 엘리야도 길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해서 이긴 후에 앙심을
 품은 이세벨이 그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자 그는 두려워 낙심합니다. 그리고 도망갑니다. 길을 잃었습니다. 소위 
멘붕이 왔습니다. 
  그 와중에 엘리야가 잘한 것이 있었습니다. 호렙산으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간것이지요.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칠천명을 남겨 두었으니 낙심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힘을 내라. 그리고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을 삼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고, 
또 엘리사를 세워서 네 뒤를 잇게 하라.” 길을 잃은 그에게 하나님은 말씀으로 갈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말씀은 나침반이요, 이정표요, 네비게이션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잃어버린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뚜렷해집니다. 그것도 각자에게 필요한 말씀을 시의적절하게 주십니다. 그때마다 순간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다 살다보면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과정일 뿐입니다. 종착역은 아닙니다.
 끝은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붙드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마음을 말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의 마지막은 
가나안입니다. 그 길을 가는 중에 마침내 우리를 최후 승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 보화가, 유익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길을 잃어버렸을 때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지 말고,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길이 있고, 답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 내시면 됩니다. 그 과정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 과정이 순례자가에게 주시는 행복입니다. 기쁨입니다. 각자에게 주신 길을 걷다가 종착지인 가나안에서 
만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열심히 살다보니 길을 잃어버린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오늘 주신 믿음의 법칙을 적용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길의
 마지막이 가나안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광야 길이 주는 유익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것을 연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결국 평안과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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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일 2014.11.17 17:04:08
할렐루야
주님의 사랑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높여
영광을 온전히 주님앞에 돌려드립니다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십자가의 도를 깨달아 알게 하시며
온전하시며 신실하신 주님 뜻 안에 다스려 인도하여 주소서
거룩하신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진리안에 순종하오니
겸손히 가장 낮은 자로 주님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나아가게 도우소서 승리의 길로 인도하소서
아름다운 한서교회와 함께 역사하시는 주여
주님의 권능으로 담임목사님에게 말씀의 능력을 주시고
지도자님과 온성도가 서로서로 사랑으로 섬기며 감싸며
한마음으로 한뜻으로 합심하여 기도하며 나아가게 하시니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주옵소서
부흥시켜주옵소서
구원의 하나님
구속의 하나님
하나님 말씀에
은혜로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감사로 감사가 넘치게 하시는
사랑의 주님 손길에 손잡아 우리를 인도하시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