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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1월 9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11.09 12:24 조회 1,198 추천 0
2014년 11월 09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Nov_9)
우리, 서로 사랑하자 요일4:7~16
<축복>
  성경은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를 가리켜 지체, 혹은 가족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뗄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죠. 그 땔 수 없는 관계를 묶어주고, 유지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다루는 
다큐는 볼 때마다 큰 감동을 줍니다. 새끼를 낳아서 지극 정성을 다해 돌보는 모습은 숭고하기 까지 합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적으로 돌보는 힘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죠. 교회는 이런 사랑을 배우는 
곳입니다. 이런 사랑을 나누는 곳입니다. 우리 옆에 있는 지체를 향해 듬뿍 사랑을 담아 서로 
축복하겠습니다. “우리는 한지체입니다. 한가족입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책선물>
  지난 생일에 아들로부터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몇 권의 책을 받았는데, 그 어떤 선물 보다 참 
좋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제자훈련 교재를 집필한 유기성목사님이 쓴 오늘 설교제목과 같은 
[우리,서로 사랑하자]입니다. 책을 받아들고 책의 프롤로그를 먼저 읽었습니다. 처음 몇 줄을 읽을 때부터
 작은 떨림이 왔습니다. 계속 읽어 내려 가는 중 신학대학 시절 학교 채플의 경험을 소개하는 내용을 접했을 
때는 마치 유목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제 앞에서 고백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책에 있는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신학교 3학년 시절, 학교 채플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날 설교자로 오신 목사님의 성함이나 모습은 
기억나지 않지만 설교 본문은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본문의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7절의 말씀인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는 것입니다. 성경봉독 시간에 그 말씀을 읽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정말 서럽게 울었답니다. 주위에 있는 친구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눈물을 억제하기 
힘들었답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자.’ 그 성경 구절이 마치 주님의 탄식처럼 들렸고,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져 있는 목사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한 아픔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그렇게 울고 난 다음 유목사님의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답니다. ‘내가 목사가 되면 
정말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교회를 만들거야.’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각인되어 있는 교회는 싸우는 교회였는데, 그래서 안게 된 쓴 뿌리와 상처, 곧 싸우는 교회의 기억이 천국
 같은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교회를 세우라는 소명으로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요한일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울면서 말씀을 준비하며 울면서 설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설교를 모아 책으로 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제 마음에도 감동이 일면서 이 말씀을 전해야 하겠다는 강한 성령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제 안에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아들이 준 선물이기도 했지만, 지방 사경회 제가 맡은 
과목이 바로 요한서신이었습니다. 왜 사도 요한이 ‘우리, 서로 사랑하자.’라는 것을 힘주어 강조했는지, 
그 짧은 외침 속에 담겨있는 함축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한 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의 바르고 건강한 삶이 무엇인지, 흔들리는 교회를 세우기 위한 진정한 지도자들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저 하지 않고 책의 제목 그대로를 
설교 제목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내용의 대부분은 [우리, 서로 사랑하자]라는 책에서 발췌했음을 미리 전제하고 말씀을 
전합니다.
<사랑이 부흥입니다>
  이스라엘 선교사님 한 분이 지금 이스라엘 안에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세 부류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유대인 기독교인, 아랍인 기독교인, 외국인 
기독교인들이 있는데, 지금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부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예언한 
것처럼 복음이 다시 유대인으로 돌아가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흥분한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많이 일어나고, 유대인 교회가 많이 세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님은 아직도 기도할 때라고 합니다. 유대인 기독교인, 아랍인 기독교인, 외국인 
기독교인의 진정한 하나 됨이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역사가 온전히 이뤄졌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진정한 구원의 역사는 단순히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가 교인수가 많아지는 것만을 보고 부흥이 일어나고 있고,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고 단순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눈에 보이는 성장이 교회 부흥의 진정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정말 교회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예수님의 교회라는 증거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가 되어야,
 그 사랑의 결과로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성경적인 바른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아마 이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푸근하고 너무나 좋은 말씀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걸 없을걸’
이라는 노랫말이 있는 것처럼 사랑하자는 말처럼 듣기 좋은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8절의
 말씀을 읽으면 마음에 부담이 옵니다. 그냥 좋기만 한 말씀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야, 이거 큰일인걸. 나는 
사랑에 인색한 사람인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조금 부담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12절로 내려가면
 부담이 더 커집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사랑을 해도 하나님처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본문의 말씀이 매우 부담스럽고 어렵게 다가오는 말씀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말하려는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거나 부담스럽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처럼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려는 핵심은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하나님처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처럼 사랑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럴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명령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라고 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셔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가득 찰 때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랑의 부흥이라고 합니다. 
  1907년, 한국 교회 안에도 사랑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두 집 살림하던 남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흥이 일어나면서 두 집 살림하던 남자들이 자기 생활을 정리하고 본부인에게로
 돌아가서 화합하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났습니다.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미국은 이혼하는 일이 흔한데
 조선에서 일어나는 부흥이 미국에서도 일어나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어떤 하인이 주인의 돈을 가로채고 부정한 일을 했다는 고백을 공개적으로 했고, 주인이 그 하인을 
용서해서 받아들이는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미워했던 것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부인은 예배 중에 간증을 하겠다고 나와서 
꺼내기 어려운 간음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부인의 남편이 그 자리에 있었기에, 선교사님은 마음을
 졸였습니다. 부인은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리고 돌아가서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아내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는 아내를 용서하겠다며 끌어안았습니다. 
성도들이 그 부부의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축복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런 일들이 당시에는 흔히 
일어났다고 합니다. 당시에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선교하던 요나단 고우포스(Jonathan Goforth) 선교사님이
 본인의 책에서 이런 일화들을 상세히 기록한 것을 보고 알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 안에 사랑의 부흥이 일어나면 우리도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심령 안에 가득 채워지고, 그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 
이웃을 향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랑으로 모든 것을 용납하고 용서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 그 결과로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여러
 가지 능력도 행사하는 일들이 벌어질 때 이것이 진짜 하나님이 하신 일인지, 아닌지는 드러나는 기적과 
은사를 보고 아는게 아닙니다. 사랑을 보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은
 정말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교만해지고, 남을 비판하고, 욕심을 부리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16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랑 안에 
계십니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역사인지는 사랑으로 아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우리는 이 즈음에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하나님처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구원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한다면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유기성목사님은 ‘불같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을 하지 못하는 분,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은 아직 그런 불같은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본래 사람은 나쁩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이런 사랑을 못한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그런 사랑을 못받은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렇게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하나님의 사랑을 들어서 아는 것은 아직 사랑을 체험한게 아닙니다. 대부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적어도 여러 번은 듣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불같은 사랑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은 뜨거운 음식만 먹어도 티가 납니다. 저 사람이 뜨거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불같은 사랑을 받으면 주변의 사람들이 다 압니다. 그 사람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 
사람이 진짜 예수쟁이 인지를 알아봅니다. 불같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사랑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합니다. 나눠주고 싶고, 전해주고 싶고, 함께 가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불같은 사랑을 받은 사람의 
공통점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으로 구별하고, 차별해서 사랑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사랑합니다. 가족사랑과 교회 성도 사랑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교회 성도와 교역자를 향한 사랑과 다른 
교회 성도와 교역자 사랑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불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한결같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를 사랑합니다.
<군종시절, 군견부대 군종병. 오산리 기도원에서의 경험.>  
  요즘 더 깊이 목회가 무엇이며, 사는 게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지체가 계셔 장례를 집례하면서, 병의 원인을 알고 치료하면 낳을 수 있는 경우는 그래도 마음이 많이 
무겁지 않지만 원인을 알 수도 없으니 치료의 방법도 못찾고, 치료해도 완치를 기대할 수 없는 성도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사람을 믿은 것 밖에 없는데 사기를 당하고 돈도 집도 빼앗겨버린 
성도를 지켜보면서, 부부간의 오해와 다름으로 인하여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가정을 보면서, 함께 
신앙생활하는 한지체요 한가족끼리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서로 반목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오는 주시는 ‘우리, 서로 사랑하자’
라는 말씀이 자꾸 편협된 사랑에 빠져 있는 우리를, 저를 채찍질 하는 것만 같습니다. 
  얼마나 산다고? 얼마나 잘 났다고? 얼마나 똑똑하다고? 얼마나 영적 세계를 안다고? 얼마나 신앙을 
안다고? 
  다 사랑이 부족한 탓이라는 생각입니다. 다 제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이유라 생각이 
듭니다. 다 불같은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원인이라 여겨집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특별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것, 한서교회라는 
한 교회 안에서 한지체로, 한가족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섭리 중에 
섭리입니다. 우리를 왜 이렇게 기적같은 섭리로 묶어주셨나요? 사랑을 배워서 서로 사랑하라고 연결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린,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사랑이
 너에게, 지체에게, 이웃에게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여전히 나에게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은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 사랑을 여전히 이웃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진정성을 담아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주고 또 주어도, 나누고 또 나누어도 전혀 아깝지 않고, 더 주고 싶고, 나누고 
싶은 우리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지금 우리에게 날마다, 순간마다 불같은 사랑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 불같은 사랑으로 
원수도 품고 녹여서 나를 대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다짐하는 오늘이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불같은 사랑을 부어 주옵소서. 그 불같은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먼저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우리 교회의 지체와 가족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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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일 2014.11.10 14:06:42
할렐루야
사랑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감사하며 나아갑니다
주님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아가8 :14)

주님의 몸된 아름다운 한서교회를 섬기는
담임목사님을 중심으로 온성도가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서로사랑으로 아름다운 동행에 손잡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덧입혀주시어
주님 은혜에 사랑의 강물이 흘러가게 하소서
말씀안에 섬김과 섬김으로 충성하며 나아가게
강하고 굳센 믿음으로 인내케 하옵소서
구원의 주
구속의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