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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0월 12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10.12 12:12 조회 1,274 추천 0
2014년 10월 12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Oct_12)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20:1~16
<닐스 뤼네(Niels Lyhne)의 이야기>
  닐스 뤼네라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다룬 덴마크의 작가 옌스 피터 야곱슨(Jens Peter Jacobsen)이 쓴 
소설이 있습니다. 오랜 기독교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그는 태어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기독교 전통과 문화 속에서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사춘기 시절에 자신이 좋아했던 고모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경험했던 아픔과 고통이 그를 기독교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간절한 기도와 소원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가는 하나님이 그에게는 잔혹한 폭군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주는 위로와 평안을 열망하는 내면의 소리를 끊임없이 
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갖기 시작한 무신론적인 신념에 
충실하고자 노력합니다. 친한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사랑과 이별의 아픔 중에도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아들이 병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허무함과 소망 없음의 인생관을 고수합니다. 전쟁에서 입은 총상으로 죽어갈 때에도 닐스는 목회자가 
자신의 마지막 길에 동행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 닐스를 치료하면서 
곁에서 그의 임종을 지켜보던 의사인 친구는 닐스가 숨을 거둔 후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나는 마지막 순간에 내게로 개종하지 않는 저 사람에게 더 큰 복을 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가 평생에 가지고 있었던 신념을 버리지 않는 사람, 마지막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전까지는 전혀 따르지도 않고 동의하지도 않던 어떤 것을 향해 갑자기 돌아서지 않는 사람, 지조라는 
덕목을 생각할 때 이런 사람이 멋있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닐스의 친구가 한 그 말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과연 그 지조라는 것이 목숨과도 바꿀만한 정말 소중한 것이었는가? 가치가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이상한 기준>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고 합니다. 그 포도원 주인의 특이한 점을 먼저 생각해 봅니다.
  중소기업 규모의 포도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 주인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것을 보면 그는 꽤 부지런한
 것 같습니다. 일꾼의 하루 품삯을 구두로 계약하고도 하루 일이 끝난 후 정산을 할 때에 해당 액수를 
그대로 지불했다는 것은 그가 노동력을 부당하게 착취하지 않고 약속을 잘 지키는 공정한 사람임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 주인은 한 시간 정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를 지불하는 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비유가 일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주인의 모습은 
이러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이상한 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일단, 이 포도원 주인은 
사업수완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부족한 일꾼을 구하지 위해서 9시에 한 번쯤 나가는 것은 
그럭저럭 이해가 된다고 하지만, 그 이후에도 세 차례나 더 일꾼을 부르러 간다는 것은 그리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의 특이한 규칙입니다. 사실 주인은 처음에 고용한 사람들에게만 분명하게 
액수를 제시했습니다. 두 번째로 부른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고 했고 마지막에 부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를 주겠다고 아예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이라면 
주인이 나중에 어떻게 일당을 지불할지가 매우 궁금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노동 시간을 계산해서 
일당을 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당연히 늦게 온 사람은 적게 받아야 마땅한 것이라고 사회적인
 상식과 통념을 기준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기대와는 달리 아주 특이한 규칙이
 적용됩니다. 노동시간과 무관하게 모두에게 동등한 액수가 지급된 것입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침부터 와서 힘들게 일한 사람들이 불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특성과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마지막에 온 노동자들을 대한 것과 같이 
세상적인 가치로 볼 때 하나님의 상급에 대한 권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들, 곧 죄인, 여성, 빈자
, 환자, 율법을 잘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 모두를 그렇게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눈은 이 땅에 있는 모두가 구원받아야 하는 대상인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갖고 있는 주인에게는 일을 오래 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받아야 하거나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일반적인 규칙이 유효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생각하기에 당연해 보이는 요구나 
행위는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앞에서 완전히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가지고 있는 이 특이한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 자비는 눈에 거슬리는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먼저 온
자들의 수고가 무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은 그들의 수고를 인정했고, 그들은 약속한 액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먼저 온 사람들에게 문제를 삼은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을 보는 눈,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삶의 원칙, 하나님의 정의를 잘못 이해하는 그들의 비뚤어진 마음과 
생각이었습니다. 이 비유는 이렇듯 하나님의 자비라는 관점으로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공평해 보이고 부당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만 보는 우리의 잘못된 판단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극히 이기적입니다. 자기 기준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좋은 면만을 보고 단순 비교해서 삶이 불합리하다고
 하소연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 무엇의 뒷면에는 누구도 모르는 아픔과 고통이 있었다는
 것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마치 오후 5시까지 누구에게도 부름 받지 못해 좌절하고 낙심하고 
있었던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던 그들의 아픔을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겉만 보지만 하나님은 
그 안까지 들여다보십니다.    
<고등학교 친구 이야기>
  제 고등학교 친구 중에 정말 잘 사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인천에 유명한 건축회사를 
경영하는 분이었습니다. 가끔 친구의 집에 가면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일단 집이 엄청 컸습니다. 
잔디와 조경으로 잘 꾸며진 넓은 정원의 한 쪽에는 잉어들이 가득한 연못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 자기 
방 하나는 갖는 것이 작은 소원 중에 하나인데, 친구의 방은 우리 안방보다 더 컸습니다. 침대며 고급
 책상, 휴대용 카세트, 야구 글러브, 축구 공, 농구 공 등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간식도 특별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 친구가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철없던 사춘기 시절 그 친구 가정에 비해 어려웠던
 우리 가정을 비교하면서 부모님을 원망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 집에서 하루 같이 잠을 자게 되었는데, 그 날 그 친구의 꽁꽁 숨겨둔 비밀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인자하신 어머니가 친엄마가 아니라 생모가 따로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누나들이 유난히 많은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낳아서 
들여온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는 자기 집에 비해 부유하지는 않지만 교회에서 여러 친구들과 
격이 없이 지내고, 편하게 투덜거리며 부모님을 대하고 가족끼리 자연스럽게 사는 제가 부러웠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 때 그 친구가 꺼내놓았을 때의 그 슬펐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 가끔 전화합니다. 특히 술 먹었을 때 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겉만을 보고 단순 비교하여 보는 것에는 진실을 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인간의 경계와 한계를 넘어 섭니다. 우리가 겪지 못했던 그 
아픔과 고통까지 감안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계산법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눈으로 
너를 볼 때 우리도 모두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보며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하며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습니다.’(7절)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라며 삶을 저주하고 낙심과 절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음을 보게 
됩니다. 지금 하루 종일 일거리를 얻지 못하여 이제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오후 5시를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아니면 너무 적어서, 힘이 없어서, 경험이 부족해서, 여자이기 
때문에, 장애가 있어서, 외국인이라서, 많이 배우지 못해서, 가진 것이 없어서,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로부터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 이 비유에 등장하는 마지막 
일꾼들입니다.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힘겨워 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뻗은 도움의 손길에 막상 응하지 못하고
 더 움츠려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학업의 문제, 진로에 대한 문제, 재정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등으로 앞이 꽉 막힌 상황에서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해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 그래서 하루하루 시간 속에서 자신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서서히 잃어버리는 사람들 역시 오늘 이 비유에 등장하는 오후 5시에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포도원 주인은 말을 건넴으로써 관심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자리를 
줌으로써 그들이 잃어버렸던 자존심과 존엄성을 다시 찾아주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현재의 삶을 지금
 처해 있는 그 상황 그대로 계속해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가도록 놔두지
않았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시장에서 할 일이 없이 서 있지
 않도록 그들을 불렀습니다. 일을 할 수 있게 함으로 다른 수준의 삶을 살도록 했고, 자기의 가치와
 자존감을 되찾게 했습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것입니다. 비로 이런 점에서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 천국의 비유인 것입니다. 
  주인이 중요하게 여긴 것 그리고 일꾼들이 소중하게 생각해야 했던 것은 일을 한 시간이나 일을 한
 후 받을 품삯이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 그 자체’였습니다. 주인이 일꾼에게 말을 건네는 바로
 그 순간, 그럼으로써 일꾼이 잃어버렸던 혹은 잊고 있었던 자신의 가치와 자존감을 되찾고 장터에서
종일 방황했던 이전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된 그 시점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소설의 주인공 닐스는 살아가는 내내 이토록 중요한 순간을 스스로 거부했던
 것입니다. 장터에 나가서 하루 종일 서 있으면서도, 누군가가 자신에게 와서 말을 걸어주고 일거리를
 주기를 내심 바라면서도, 정작 누군가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것 같으면 그는 고개를 돌려서 시선을
 피하는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하루의 일이 끝나기 직전인 마지막 시간에도 장터에 
나가서 일꾼들을 불렀던 것처럼, 하나님 역시 마지막 순간이라도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포도원에 들어간 자와 나중에 들어간 자 모두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어떤 이들은 먼저 들어가서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을 향해 부당하게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날리며 불평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여러
 가지 힘겨운 상황들로 인해 부르는 소리에 뒤늦게 허둥지둥 들어가곤 합니다. 먼저 들어간 자에게 이
 비유는 도전이 되고, 나중에 들어간 자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이 비유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자 동시에 위로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요
 은혜라는 것을 가슴에 두고 우리도 모두를 용납하고 아직도 기회를 주신 오후 5시를 사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먼저 저희들을 
포도원 품꾼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네게 맡겨진 일이 최선을 다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더불어 교회 안에서 아직도 오후 5시를 살고 있는 저들을 포도원에 들어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게 하시고, 서로 용납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교회 밖에서 오후 5시를 살고 있는 자들에게 아직도 기회가 
있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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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일 2014.10.14 17:44:57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아래 말씀을 들어 깨달아 알게 하심은
구원의 주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쁨으로 나아가며 즐거움으로
찬양하며 감사하며 기도하며 영광을 주님께 돌리게 하시나이다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주님의 몸된 아름다운 한서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세워주시고
성령의 능력안에서 주님의 권능에 오른손으로 담임목사님을 붙드시어 세우사
주의 말씀으로 우리 모두가 한마음되어 이웃과 사랑을 나누며 더불어 함께하는
한서교회로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부흥케하사 지역에 중심이 되게 하소서
민족에 중심이 되게 하소서 열방을 향하여 힘써 일하며 나아가게 하소서
열매 맺는 한서교회로 세워 역사하여 주옵소서
거룩하시며 진실하시며 선하시며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