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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9월 21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9.21 12:29 조회 1,352 추천 0
2014년 9월 21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Sep_21)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라 느헤미야8:1~12
<무너져 가는 아파트>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면 여러분의 심정을 어떻겠습니까? 불안해서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최근 뉴스에 또 다시 우리나라 고질병 중에 하나인 부실시공의 문제로 지은 지 20년 정도 되는 
전북 익산의 한 아파트가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잠시 준비한 [영상자료]를 보겠습니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 영혼의 집은 안전한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무너지는 줄 알고 대피하면 살겠지만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그냥 괜찮겠지 안일하게 생각하고 살다가는 
언젠가는 다 무너지진 폐허에서 망연자실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입니다. 
  특별히 지금 이 시대의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전만큼 기도하지 않습니다. 생명처럼 여겼던 주일성수 의식이 극도로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새벽 제단이 
무너지고, 심야 제단이 무너지고, 주일 제단마저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당장 눈에 보이는 
꾸지람이나 특별한 징조나 변화가 없으니 안도합니다. 영적 위기감이 사라지면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보다 생각하여 영적인 무감각과 무력감에 빠져 살아갑니다. 병에는 반드시 증상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심령이 허약하니 늘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됩니다. 일에 대해서는 일단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럴싸한 안 되는 이유를 찾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일 안합니다.
 해도 억지로 합니다. 소극적입니다. 심령이 어두우니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도 어둡습니다. 자신만 
정의롭다 착각합니다. 심령에 힘을 잃으니 늘 만사가 다 귀찮습니다. 그래서 불평을 늘여 놓습니다. 
주변에 머물게 됩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당연히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그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에 집착하여 더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마시면 마실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더 목이 마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런 시대적 
흐름을 주시하시며 아모스 선지자의 입을 빌려서 다음과 같이 일갈하게 하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8:11)
  지금 내 안에 있는 갈증은 무너진 제단 때문입니다. 무너진 지성소 때문입니다. 보수하던지 다시 새롭게 
짓던지 해야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늘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마르지 않은 샘을 알았으니 목이 마를 
때마다 마시기에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출애굽 할 때도, 광야에서도,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할 때도 먼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라 하셨습니다. 전쟁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성공과 성취와 행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성문 수문 앞 부흥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수문 앞 광장에서 일어난 부흥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수문은 기혼 샘과 문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수문 앞 광장이라 함은 성전 동문과 성벽 사이에 공터를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전 앞에 있는 자리라는 상징적인 의미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이 이 하나님의 전 앞에 왜 모였는가?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구약성서에서는 3차에 걸쳐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는데, 느헤미야가 주도하여 마지막 성벽 
재건을 감당합니다. 느헤미야의 감독 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너지고 소화된 성벽을 쌓았습니다. 
느헤미야는 3차례의 포로귀환과 성벽재건의 공사 과정이 매우 힘들었던 절박한 경험을 했습니다. 느헤미야 
1장에 보면 중수 중인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이 불에 타고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했습니다. 
수 일 동안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절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무너진 성벽과 성전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제단이 무너진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흥회가 무엇보다 먼저 
필요했던 것이고, 52일 동안 성벽을 중건한 후에 학사 에스라에게 부탁하여 성회를 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부흥회를 통하여 무너진 제단이 다시 수축이 됩니다. 이번에 우리 한서 신앙공동체와 나를 위하여 
계획하신 전도 부흥회가 이 수문 앞 부흥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에게서 배워야할 몇 
가지 자세를 전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은혜의 자리로 모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생활 하던 백성들이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온갖 어려움을 
물리치고 성벽을 쌓았습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쌓은 성안에서 안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쉬고 싶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영적인 갈급함을 느꼈습니다. 70여년 동안 제대로 말씀을 듣지 못하고,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편안함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1절 말씀에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당시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의 백성들은 적어도 3만에서 5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누가 모이라고 소집한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모든 백성들이 모였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모였습니다.
  내 안에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는 비결은 먼저 은혜의 자리로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서 말씀의 
은혜를 사모할 때 더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개인적으로 말씀묵상(Q.T)를 통해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일 때 더 큰 은혜가 임합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의 불이 임할 때도 120명의 성도가 함께 모였습니다. 각자 기도한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성령님을 사모하며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려면 먼저 은혜의 자리로 함께 모여야 합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들을
 모이지 못하게 합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방해를 합니다. 갑자기 아프거나,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게 
만듭니다. 은혜의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특별 새벽기도회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방해공작을 기도로 물리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번 부흥에 먼저 모이기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7곱 번의 집회에 빠짐없이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느 시간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지 모릅니다. 시간시간 은혜를 사모하며 참여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말했듯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우리들이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에 함께 모이면 살지만 흩어지면 죽습니다. 서로를 격려하여 모든 시간 부흥에
 참여하여 놀라운 하늘의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는 두 번째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번 성회에
 은혜 주시면 좋고, 안주시면 할 수 없고’ 이런 태도를 가지면 풍성한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에 손만 대도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던
 것처럼 간절함으로 모여야 합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합니다. 모든 백성이 율법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섭니다.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선포될 때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그들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무려 6시간 이상을 말씀에 집중합니다. 느헤미야 8장 18절에 보면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얼마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항상 말씀에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42:1-2) 시편 119편 131절에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헐떡였다’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눈치를 보거나, 창피하다는 생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림입니다. 진정한 부흥은 말씀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목마름은 영혼이 건강하고 하나님이 부흥을 주신다는 신호입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더 달라하면 그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음식이 맛없다고 하고, 투정한다면 그 사람은 
어딘가에 이상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이 생명의 양식을 먹고, 또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으로 건강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하늘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의 보고를 여는 마스터 키입니다.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의 백화점 왕이 된 존 워너 메이커가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대통령으로부터 체신부 장관직을 제안 받았습니다. 그 때 그는 한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대통령 각하! 
저는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제 고향 필라델피아에 가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해야 합니다. 주일마다 
주일학교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수락해주신다면 체신부 장관직을 수락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장관을
 맡지 않겠습니다.”
  기자들이 그에게 주일학교 교사직이 체신청 장관직보다 중요하냐고 물었습니다. 워너메이커는 이렇게 
말합니다. “장관직은 임시직, 부업이지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교회학교 교사직은 영원한 직책이고 나의 
본업입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어떻게 백화점 왕이 될 수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저는 45년간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달려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마 6:33입니다. 그 말씀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입니다.”
  기자들이 다시 묻습니다. “당신 생애에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1때에 2불 
75센트를 주고, 할부로 산 빨간 성경책을 지금까지 보물처럼 소중히 여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항상 백화점 안에도 기도실을 만들어 놓고, 말씀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과서로
 여기고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워너 메이커는 미국 최고의 백화점 왕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 인생을 
밝혀주는 등불입니다. 내 인생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교과서입니다. 말씀 안에 삶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날마다 가까이 하십시오.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으십시오. 그리고 
깊이 묵상하십시오. 말씀이 나를 사로잡게 될 때 내 인생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라는 것입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듣는데 소리로 들을 때가 많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칭찬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태도가 중요합니다. 옆 사람이 들어야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내가 듣고, 내가 은혜 
받고, 내가 변화되어야 할 말씀입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말씀이 선포될 때 아멘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어지면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아멘’은 하나님 말씀을 받아먹는 숟가락입니다. 이것은 설교하는 목사에게 힘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임을 내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아멘입니다. 
입술에 아멘이 많은 사람은 말씀을 경청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또한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울었습니다. 말씀이 그들의 삶의 죄를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보여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울면서 반응합니다. 얼마나 백성들이 
말씀 앞에 흐느껴 울었던지 말씀을 선포하던 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9절) 
  매 주일 마다 설교 시간에 졸고 있던 여자 집사님이 그 날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 속으로 ‘내 설교가 오늘 은혜스러운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집사님에게 
“오늘 은혜 받으셨나 봐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집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제가 애지중지하면 
키우던 강아지가 어젯밤 갑자기 죽었어요. 목사님 말씀을 듣는데 어찌나 죽은 강아지 생각이 나던지요. 
그래서 제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목사님 죄송해요.”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때 마음이 감동되어 눈물로 반응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감격하여 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닫고 무반응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도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은 오히려 옥에 가두고,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말씀 앞에 자신을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와 세례를 받고 주님을 영접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또 한 가지 중요한 반응이 나옵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10절)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았으면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말씀의 은혜를 받았어도 나만 누린다면 합당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신
 기쁨을 나눌 때 그 능력을 더 크게 나타납니다. 
  18세기 초반, 미국과 영국에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과 영국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사람들마다 술에 취하고 집집마다 주정뱅이들이었습니다. 욕을 하지 않고는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방탕하고 타락했습니다. 가장 많이 걸린 병이 성병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존 웨슬리
(John Wesley), 조지 휫 필드(George Whitefield),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일어나 하나님 
말씀을 전하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람과 사회가 달라집니다. 제일 먼저 술집이 문 닫고, 범죄율이 
줄어들고, 가정이 화목해졌습니다. 심지어 짐승들조차 사람들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전에는 
욕을 섞어 명령을 했는데, 욕을 빼고 말을 하니 못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대나 경찰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바른 깨달음과 바른 반응에서 온 것입니다. 그들이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매 
주일마다 습관적으로 말씀을 듣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주님의 말씀 앞에 아멘으로 영광을 돌리고,
 말씀 앞에서 내 죄와 상한 모습을 바라보며 울어본 적은 언제 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내 삶에 힘이
 되고 능력이 됨을 경험 적은 언제입니까?
  금 번 전도 부흥회를 통하여 무너진 제단이 다시 수축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함께 모이기에 힘쓰십시오. 그리고 말씀이 나에게 임하시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말씀 앞에 
반응하십시오. 그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붙들고 순종의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내 안에 목마름이
 사라질 것입니다. 평안이 임할 것입니다. 사명을 찾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이 생깁니다. 가야할 
방향이 뚜렷해집니다. 나날이 행복할 것입니다. 이 기회를 잡으세요. 어쩌면 내게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믿음을 활용하세요. 사명을 찾으세요. 
<기도>
  오늘부터 열리는 전도 부흥회가 수문 앞 광장의 부흥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위한 부흥회로 
삼게 하여 주옵소서. 무너진 기도와 예배의 제단을 다시 수축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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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2014.09.24 09:24:16
좀더 주님께 다가가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