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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9월 7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9.07 12:30 조회 1,206 추천 0
2014년 9월 7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Sep_14)
야곱의 고향 가는 길 창세기32:21~32

<목양기도>
 추석 명절을 앞 둔 주일 더 나은 고향,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내 영이 반응하며 가장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을 담아 드리는 이 예배를 기쁘게 
흠향하여 주옵소서. 허물 많고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의 몸과 영혼을 사랑으로 품어 주시고, 안아 주셔서 하늘로부터 
주시는 따뜻한 위로와 평안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9월 첫 주를 맞이하여 한 달 동안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맡기며 드린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을 향한 성도들 보고 싶었던 가족을 만나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다녀오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향을 가지 못하는 주변이 성도와 이웃을 살피는 넉넉한 마음을 주옵소서. 
특별히 지금 고난의 때를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치료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 성만찬 예식을 통하여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을 다시 한 번 감격 속에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들려주시는 말씀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들려주시는 생생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지게 
하시고, 그 말씀을 순종으로 살아 성화되고, 성숙하게 하여 주옵소서. 
신앙고백을 담은 찬양대의 영혼을 울리는 찬양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 모두에게는 깊고 진한 감동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9월 한 달 동안도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서 의의 길로 인도하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귀소본능>
 개인적인 가정사의 말씀이어서 조심스럽게 드립니다. 9월 2일에 입대한 아들로부터 옷이 담긴 소포가 왔습니다. 
옷과 함께 그 안에는 편지와 가지고간 작은 수첩에 일상에 대한 내용을 몰래 적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글을 
마무리 지을 때마다 집에 가고 싶고, 가족이 보고 싶다는 말로 매듭을 지었는데, 울음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일부 동물들과 사람에게는 소위 태어난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영국에 사는 어떤 부자가 
카나리아 한 마리를 사서 발목에 금가락지도 끼워주고 머리에 꽃으로 만든 관도 씌워 주면서 20년 동안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부잣집에 불이 나서, 새장의 문이 열리는 바람에 그 카나리아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부자는 오랫동안 정이 들었던 그 카나리아를 찾기 위해 사방에 수소문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 부자가 처음 그 카나리아를 샀던 마을에서 발견되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 부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가 사는 것으로부터 무려 4,800km나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카나리아는 무려 2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부잣집의 새장에서 풀려나온 후 자기의 고향을 향해 날아간 
것입니다. 그 부자는 우여곡절 끝에 카나리아를 찾았지만 더 이상 키울 수 없었습니다. 그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알았기에 고향으로 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알을 낳고 죽든, 올라오는 과정에서 잡혀서 
죽든 죽을 줄 알면서도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연어 떼는 그야말로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이죠. 본능입니다.

 왜 고생을 하며 고향으로 갑니까? 본능입니다. 거기에 부모님이 계시고 가족들이 모이기 때문에 갑니다. 어머님 
품과 같습니다. 따뜻해서 좋습니다. 계산하지 않는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좋습니다. 
모든 경계를 다 풀어 놓고 마음 편히 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잘 된 일에 나 보다 더 좋아하고, 안 된 일에는 나 보다 
더 아파합니다. 그런 곳이 고향입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고생해도 민족 대 이동을 합니다. 

<20년 만에 찾은 고향>
 오늘 본문에는 귀소본능으로 고향을 찾는 야곱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엄마와 짜고 아버지 이삭과 
쌍둥이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이 사실을 안 다혈질적인 공격적인 성격을 지닌 에서의 
분노를 피해 야반도주하고 맙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난 지 어언 20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그는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자신은 한 차례 속였으나 10번의 속임을 당하며 그의 
고백처럼 낮에는 더위와 싸우고, 밤에는 추위를 견디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했습니다. 너무도 사랑했던 여인 
라헬을 얻기 위하여 7년에 7년을 더하여 무려 14년간 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언니인 
레아도 야곱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 두 아내에게서 열 한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둡니다. 물론 두 아내가 허락한 
몸종을 통해서 낳은 아이를 포함한 숫자입니다. 막내 베냐민을 라헬이 낳은 것은 고향을 찾은 후였습니다. 아무튼 
다복한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기발한 방법으로 부자가 됩니다.

 창세기 30장 4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야곱이 거부인지를 상기시켜 주는 것은 형 에서에게 줄 선물의 양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전에 14절과 
15절에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다같이 읽겠습니다.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이 정도의 짐승의 수를 관리하려면 노비도 엄청나게 많았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야곱은 자신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자수성가한 훌륭한 기업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많은 자녀도 두었습니다. 
성공한 인생입니다.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리브가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성경에는 야곱이 라반에 집에 있을 때 죽었다고 했으니 어머니의 소식을 들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아마도 가장 많이 보고 싶었던 사람이 야곱에게는 자신을 너무도 사랑했던 어머니였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계신 그 고향을 가기 위해서 야곱은 그동안 20년 동안 쌓았던 모든 기반을 내려놓고 맙니다.

 그리고 야곱이 고향을 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형 에서 때문이었습니다. 7절 말씀에 야곱의 심경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죽을 수도 있는 고향 길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의 위협이 있는 길을 
선택합니다. 왜, 그 길을 가야만 했을까요?

 부모님의 계신 곳,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깊은 근원, 
뿌리인 하나님이 만드신 본능 때문입니다. 그 신비의 힘에 이끌려 결국 가는 곳이 고향입니다. 죽음이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내 삶의 터전을 내 포기해야만 하더라도 갈 수 밖에 없는 곳이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고향입니다. 
부모님이 계신 곳이고, 가족이 있는 곳입니다. 
 야곱은 후에 흉년 때문에 가족과 살기 위하여 애굽으로 이민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땅세 죽게 되었을 
때에도 역시 귀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에게 자신의 시신을 가나안 묘실에 장사할 것을 부탁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귀소본능입니다. 고향을 찾는 이유입니다.

<야곱의 고향 길에서 본향을 본다.> 
 우리는 야곱이 고향을 향해 가는 길을 보면서 더 나은 고향, 영원한 고향, 본향을 보게 합니다. 야곱이 그렇게도 
간절히 가고 싶어 했던 고향도 결국 궁극적 고향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 
말씀을 교독해서 읽겠습니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야곱이 귀소본능으로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을 찾아 갔듯이 우리 모두는 우리를 창조하신 영원한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한 고향 본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우리를 가리켜 나그네라 합니다. 
이민 온 외국인이라고 합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늘 꿈꾸고 그리워하는 더 나은 
고향, 그곳이 하나님이 계시는 본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교회 오면 왜 평안하고 좋은지 아십니까? 여기가 본향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외형적인 모습을 말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곳,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곳이기 때문에 편안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 본향은 우리의 삶의 터전을 포기하더라도, 생명의 위협이 있다하더라도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잃어버린 
본향을 찾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찾게 하셨습니다. 그 찾은 길은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 소중합니다. 내 삶의 터전을 포기할 만큼,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하더라고 가야할 길입니다. 
왜냐구요? 그것이 우리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인간을 이끄는 가장 근원적인 힘입니다. 
우리는 그 힘에 이끌려 본향을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어도 고생해도 고향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야곱이 고생해서 얻은 안정된 터전을 내려놓고,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이 있어도 가야만 했던 길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는 길에서, 야곱이 고향을 찾는 길에서 우리는 다시금 영원한 본향을 찾는 우리가 
가는 길을 보게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길, 아들을 죽이셔서 찾게 하셨는데 우리 모두 그 길을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고,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 하나님이 영이 안내하시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마침내 본향에 이르러 
기쁨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야곱의 고향 가는 길을 통하여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고향, 본향을 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게 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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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일 2014.09.11 10:57:30
아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갑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야곱의 하나님
그 뜻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 주시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2:7 )

창조의 하나님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히 순종으로 이루신 주님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만이
우리의 구원이시며 구속하신 사랑의 은혜임을
날마다 고백하오니 주여 오시옵소서
성령이여 충만한 은혜를 덧 입혀 주옵소서
본향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름다운 성산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며 호흡이 되시는
주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 높이어
감사와 찬양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윤은숙 2014.09.15 10:19:29
나의 귀소본능은 어느곳을 향하고 있을까요
물론 아버지계신 하늘나라겠지요
꼭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연어처럼
처절하게 노력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