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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7월 1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7.13 12:25 조회 1,327 추천 0
2014년 7월 13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July_13)
천국열쇠, 사이좋게 지내는 것 마16:19

<천국의 풍경>
 가끔은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합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이 땅에서 경험하는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 아마도 천국의 풍경일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지난 맥추절을 축하하는 
찬양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너무도 행복했고,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그 순간에는 너와 나가 
없었습니다. 오직 ‘우리’ 만이 있었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인원만 170명이었습니다. 등수에 
상관없이 참석한 선교회원들이 너무도 행복하게 목소리와 몸으로 찬양을 드렸습니다. 가끔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라주지 않아 고생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 모습이 더 순수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영상자료] 참석 못한 성도를 위해 천국의 풍경을 잠시 소개합니다. 

<천국 열쇠들>
 헬라어 원어성경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인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천국 열쇠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되어있답니다. 천국이 여러 개여서 천국 열쇠들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 천국 열쇠들은 우리가 
죽은 다음 천국에 들어갈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땅에서도 열어야할 천국 
문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이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 이 
땅에도 천국이 있는데, 이 땅에 있는 천국을 열기 위해서 열쇠가 필요해서 여러 열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죽어서 가는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입니다. 죽은 
다음에 우리가 들어갈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6~18)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2)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우리의 행위나 공로나 노력이나 수고로 말미암지 않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난 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린이 찬양처럼 돈으로도, 
물질로도, 지식으로도, 마음이 착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바로 믿음입니다. 

 임종을 많이 지켜보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얼굴은 평안합니다. 아마도 그의 
눈에 천국 문이 열리고 천국이 보이지 때문일 것입니다. 그 나라는 절대 평안과 쉼과 안식이 
보장되어 있는 곳이라 했고, 요한계시록에 묘사한 천국은 황금 길로 되어 있고,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그 좋은 곳을 가는데 두려울 리가 없지요. 무엇보다도 보고 싶었던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육신적으로는 마지막 장막을 벗는 고통을 있겠으나 얼굴은 
평안한 것입니다. 이렇게 죽어서 가는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는 
믿음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이 열쇠를 잃어버리지 마시고 끝까지 잘 간수해서 죽어 천국에 
이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강복합니다. 축원합니다. 

<사이좋게 지내는 것>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미리 경험해야 할 천국 문을 여는 또 다른 열쇠는 
무엇일까요?
 천국을 경험하고 있는 상태를 이 땅의 언어로 표현하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천국을 경험하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라는 말은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원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입니다. 이 둘의 사이가 좋으면 
행복하고, 사이가 나쁘면 불행합니다. 소통되는 사이는 이웃이고, 불통되는 사이는 원수입니다. 
천국, 행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임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 형제 사이, 
교우 사이, 직장 동료 사이가 좋아야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천국을 여는 열쇠는 바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입니다. 죽어 천국 문을 여는 열쇠도 하나님과의 사이가 좋아야 가는 
것이지요.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은 회개와 용서입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이고, 누군가에게는 피해자입니다. 이 가해자, 피해자 관계가 사이좋은 관계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회개와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와 용서 없이는 절대로 사이가 좋아질 수 없고, 
당연히 천국, 행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풀지 않으면 감옥에 갇힙니다. 창살 
있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육신이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마음이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집이 감옥이 되기도 하고, 회사가 감옥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교회가 감옥이 되기도 합니다. 맺힌 것을 풀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행복한 척을 할 수 있지요. 
무시하며 산다고 하지요. 그러나 그 사이가 좋아지지 않은 한 지금 진정으로 행복하다 할 수 
없습니다. 

 잠깐 여행을 다녀오는 것으로 그 나라를 다 알 수는 없지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짧게 독일을 둘러보면서 그 나라가 지금 유럽연합의 리더로 앞장서고 있는 한 가지 이유를 
발견하고 왔습니다. 그것은 독일이 우리나라처럼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된 나라로서 통일을 
이루고, 통일 이후에 혼란의 과정을 극소화하고 소위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었던 놀라운 힘을 
봤습니다. 그것은 ‘가해자의 회개와 피해자의 용서’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감추고 싶은 
흑역사를 후대들에게 가감 없이 공개하고 인정합니다. 철저히 잘못을 인정합니다. 지금도 전범을 
찾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본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찾은 목소리>
 용서와 화해라는 주제를 다룰 때면 먼저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은 훤칠한 키에 잘생기고 똑똑하고 강인했습니다. 형은 사립학교에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여섯 살 아래인 동생은 못 생겼고 곱사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동생도 형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또래 집단의 아이들이 동생을 놀리더니 그만 상의를 찢고 튀어나온 
곱사등까지 노출시키며 놀려댔습니다. 이 때 형은 실험실 유리창 너머로 동생이 놀림 받는 
광경을 똑똑히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저 아이가 자기 동생인 것이 창피해서 
모른척했습니다. 동생은 너무도 창피스럽고 가슴이 아파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로 한 
가닥의 노래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형은 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입대합니다. 2차 대전에 
참전하여 팔레스타인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달빛이 밝은 어느 날 고향생각을 하다가 수치를 
당했던 동생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너무도 괴롭고 아파서 형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전시였으나 어렵게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동생을 만나 지난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둘은 함께 붙들고 오랫동안 울었습니다. 그날 밤 형은 잠결에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동생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형의 진심어린 회개와 동생의 
용서로 그들은 사이좋은 관계를 회복했으며, 행복한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마음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지혜서에서도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매우 소중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금이나 은보다 
소중하다고 전합니다. 지혜서를 읽다가 사람이 영광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잠20:3)

 영광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가 자유하고 떳떳하며 존경과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도 그리고 사람에게도 영광이 되기 위해서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허물을 용서하고, 다툼을 멀리 하라.’고 권합니다. 한마디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광에 이르는 길은 사이좋게 지내는 것입니다.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들처럼 여기는 동역자 디모데에게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딤후2:14)라고 권했습니다. 다툼은 유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합니다. 

 부부가 자녀를 잘되게 하겠다고 말다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렵지만 그 다투는 모습이 
자녀를 오히려 망하게 합니다. 진정으로 자녀가 잘되기 원하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자신이 없으면 자녀들이 없는데서 다투어야 합니다. 자녀를 부모가 다투는 
모습에서 자기를 둘러주는 인생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심각한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넘겨주는 최고의 선물, 최고의 자녀교육은 부부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입니다. 혹 사람들이 볼 때는 성공한 것 같이 자녀를 키워 놓았지만 만약 그 
자녀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로 인한 상처 때문에 얼룩져 있거나, 부모와 맺혀있거나, 
그 마음에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있다면 이것은 실패한 것입니다. 그 증오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멋진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면서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물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쇠를 넣고 잠그는 것을 매는 것이라고 하셨고, 열쇠를 여는 것을 푸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잠그면 하늘에서도 잠기고, 이 땅에서 열면 하늘에서도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이 땅과 하늘이 연동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 열쇠를 든 우리가 
이 땅에서 맬 수도 있고, 풀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은 우리는 사람을 용서하며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반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이가 좋은 자는 사람과도 사이좋게 지내려고 애쓰는
 자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권하기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12:18)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저히 사이좋게 지내기 어려운 우리를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기 위해서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한다고 합니다. 상대방 보다 늘 낮은데 마음을 두고, 악을 선으로 갚고,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많이 하라고 합니다. 어렵지만 이것이 그리스인의 삶의 지향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챙겨주는 마음>
 제가 감신대 83학번인데, 해마다 하는 자랑스런 행사가 있습니다. ‘동기 부부 세미나’
입니다. 취지는 동기 중에 힘들게 목회하는 친구들에게 그야말로 친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부산 수영로교회가 도심 한 가운데 있는 호텔을 인수하여 리모델링한 ‘선교센터’
에서 모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통금이 있다는 것입니다. 밤10시부터 새벽5시까지는 밖으로 
나갈 수 가 없습니다. 오직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라는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대전산성교회
 지성업목사를 강사로 모시고 속회운영에 관한 유익한 강의를 듣고 심도 있는 토의도 
나누었습니다. 만나교회 작은 ‘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시내
 관광도 했지요. 약40여명이 모였는데, 여행경비를 지원하고 자유여행을 하게 했습니다. 
여행 그룹에 속해 있지 않은 친구들이 마음이 어럽지 않도록 서로 챙겨주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목회 일정상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이 마음을 모아 주어서, 
멀리서 온 친구들 주유비를 챙겨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2박3일의 그리 길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그 시간을 위해 서로를 챙겨주는 마음을 1년의 목회의 여정에 힘이 될 만큼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의 시간이었습니다.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의 문을,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하여 덤덤히, 
그리고 담담히 고백한 말씀을 늘 우리의 심장 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6~7) 얼마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멋진 매듭입니까? 끝까지 
믿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죽어서 천국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사이좋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잘못한 것 있으면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누군가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이 
땅에 있는 천국의 문을, 행복의 문을 열어서 마음껏 목청을 높여 노래하며 천국을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크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사이좋게 하셔서 천국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큰 용서를 받은 우리 부족하지만, 아직은 서툴지만 이 
땅에서 사이좋게 살 수 있도록 화목한 관계를 예쁘게 맺으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가정이 천국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교회가 날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이 
넘치는 행복한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하여 높은 산이 
되기보다는 오름직한 동산이 되고, 내 가는 길만을 비추기보다는 누군가가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 주는 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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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2014.07.18 12:45:15
혹 저로 인해 상처를 받으신 분이 있다면 용서를 빕니다
화해하고 화목하기를 기도합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천국을 허락하신 주님께
무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