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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6월 15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6.15 12:27 조회 1,272 추천 0
2014년 6월 15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Jun_15)
교회가 교회되게 하소서 사도행전2:37~47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에는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삶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공동체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합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배웠으며, 그 배운 대로 서로 교제를 합니다. 여기서 교제라는 헬라어 ‘코이노니아’는 영적 
사귐과 보살핌을 의미하는데, 모여서 예배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을 갖고, 그 만남을 통해 
주시는 은혜로 사람을 향하여 섬기는 마음으로 보살피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사귐이 가능하려면 
자기 방에서 나와 소통을 해야 합니다. 마음의 벽을 허물고 경계심과 무관심을 극복해야 가능합니다. 이 
경계심과 무관심의 벽이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떡을 뗍니다. 떡을 뗀다는 것은 애찬과 성찬식 모두를 포함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진정한 사랑과 희생에 대하여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기꺼이 자신의 소유를, 물건을 다 내놓았습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까지 
내놓으신 주님의 사랑과 희생에 비하면 자신의 재물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어려운 이웃을 서로 돌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힘쓰는 공동체라고 소개합니다. ‘오로지 힘쓴다’는 말의 원어적 의미로 ‘~에 
대하여 진지하다, 변함없이 계속하다, 몰두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성령의 역사를 
위해 끊임없이 성실과 인내로 기도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적인 자세와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인데, 은혜에 대한 갈망이 있었으며, 
매사에 진지하고 몰두하는 성실과 인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정신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이웃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니 
자연이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입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안에서는 사랑의 교제가 끊이지 않고, 밖으로는 
칭찬을 받는 교회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우리 한서교회가 이렇게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쓴 [긍정의 힘]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쌍둥이의 불가사의한 이야기입니다. 쌍둥이 중 한 아이가 심장에 큰 결한을 안고 
태어났는데, 의사들은 하나같이 그 아이가 공 죽게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며칠 동안 그 아기는 병세가 
계속 악화되어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때 한 간호사가 쌍둥이를 하나의 인큐베이터에 함께 
넣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병원의 방침에 어긋난 일이었기에 담당의사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결국 엄마 뱃속에서처럼 두 아이를 한 인큐베이터 안에 나란히 눕히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쌍둥이는 한 인큐베이터 안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건강한 
아이가 팔을 뻗어 아픈 동생을 감싸안았습니다.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동생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체온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동생은 조금씩 
나아졌고, 두 아이는 정상으로 무럭무럭 잘 자랐다고 합니다. 소문을 들은 한 신문사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서로를 포옹하고 있는 쌍둥이의 사진을 찍고 ‘생명을 구하는 포옹’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 공동체 안에도 누군가 우리의 사랑의 포옹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손과 목소리에는 치유의 능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희망과 치료와 사랑을 주길 원하십니다.
 이렇게 연약한 자에게 손을 내밀고 끌어안아 주어 생명을 살리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우리 교회 안에도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지금 해보죠. 만들어 보죠. 동성은 포옹하고, 이성은 악수하며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라고 
축복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우리 한서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어떻게 이런 교회가 가능할까요? 어떻게 자신의 소유를 다 포기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교회에 모일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온전한 기도자로, 온전한 예배자로 살았을까요? 
 그것은 성령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에서 배운대로 성령충만을 받으면 이길 힘이 생깁니다. 
 1) 죄를 이길 능력(요일5:18), 교회에 엵심히 다니고 봉사도 많이 하고, 착하다고 소문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는 술김에 강도와 강간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성품이 온유한 것이 죄를 이기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 없이는 죄를 
이길 장사가 없습니다. 
 2) 마귀를 이길 능력(요일3:8),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 사람들에게 설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아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행10:38)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마귀를 제압하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들을 고치시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귀를 물리치시기 위해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셨다면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마귀와 싸워 이길 수도 없고, 마귀가 하는 일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3) 세상을 이길 능력(요16:33),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둘러싸인 한복판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떤 곳입니까? 악한 영, 세상의 영이 지배하고 있는 곳입니다. 세상의 영이 역사하는 곳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성도가 한동안 
직장 식당에서 식사기도를 활 자신이 없어서 점심식사 전에 화장실에 가서 감사기도를 하고 식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비판이 의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 없이는 식사기도조차 제대로 
못하고 삽니다.
 4) 자아를 이길 능력(갈2:20), 우리가 가장 이기기 힘든 대상은 바로 자신, 곧 자아일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이 옳은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옳다고 판단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자아를 
이기고 하나님의 판단과 그분의 뜻대로 살리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을 받으면 신앙생활 각 부분에 능력이 생깁니다. 복음서의 제자와 사도행전의 제자가 
같은 사람이지만 차이가 나는 것은 그들은 성령의 권능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1) 믿음의 능력, 베드로는 주님을 보고도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기는커녕, 고기 잡으러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받은 후에는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담대하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고서, 비로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2) 전도의 능력, 많은 사람들이 전도하기를 어려워하고 전도해도 결실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전도에 있어서 놀라운 능력을 받게 됩니다. 
 3) 기도의 능력, 기도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있고, 영으로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영으로 하는 
기도에 더 큰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4) 사랑의 능력,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넘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성령충만에서 옵니다. 
스데반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5) 봉사의 능력,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봉사를 할 때 기쁨과 감사 보다는 ‘힘들다’,‘피곤하다’
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짜증을 내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적인 능력으로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은 우리에게 봉사할 능력을 부여합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성령충만해서 이와같은 힘과 능력과 권능의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제자들을 변화시키며, 놀라운 능력을 얻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눌 본문의 말씀 37~3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는 회개해야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고 전합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자가에 
처형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통치를 시작하셨다고 설교합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습니다. 이에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이에 회개하라고 권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지, 그 사랑을 거부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그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는 
수모와 고통을 당하셨는지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가슴을 치며 아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시작입니다. 세례는 진정으로 회개한 자에게 베푸는 의식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게 하고, 성령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죄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성결함 위에만 기름을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충만히 받으려면 회개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1907년 정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부흥집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토록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모였는데, 집회 마지막 날이 될 때까지도 아무런 특별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집회의 설교가 끝났는데도 역시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그때 장대현 교회의 수석 
장로였던 길선주 장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하면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모두가 존경하는 
장로님이 나와서 예기치 못한 말을 합니다. “제가 아간과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저 때문에 하나님이 
부흥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교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 길선주 장로가 자기가 
지은 죄를 이야기 합니다. “제 친구가 세상을 떠나면서 200원이나 되는 거금을 저에게 유산으로 
맡겼습니다. 안심하고 맡길 사람은 저밖에 없다면서 자기 아이들이 자라면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200원을 맡았는데, 100원을 급한 일에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들에게 나머지 100원만 
주었습니다.”
 길선주 장로의 회개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숨겨놓은 자신의 죄를 털어놓으며 통곡하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역사한 것입니다. 여러 날 동안 무겁게 짓누르던 장벽과도 같은 막힌 담이 별안간 
무너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가 집회 장소에 충만했습니다. 죄에 대한 애끓는 회개가 울부짖는 소리, 
통곡의 소리와 함께 예배당 전체를 휩쓸었습니다. 
  그날 집회가 회개의 집회로 변하여 그 후 몇 날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모이면 회개밖에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계기로 한국교회에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대부흥운동의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 내 소유욕을 내려놓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 사도의 가르침을 배우고 온전한 
예배자로, 신실한 기도자로 살기에 몰두하는 교회, 예수님처럼 그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살과 
피가 되고자 하는 희생과 헌신이 있는 교회. 이 모습을 보고 주변의 이웃들이 칭찬하는 교회가 되면 
날마다 부흥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한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성령 
충만의 역사는 바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인데, 작은 교회인 저와 여러분들이 진정한 회개를 
드리고,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 때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 하나님이 보시기에 보기 
좋다고 인정하시는 교회의 시작은 바로 나 자신의 진정한 회개에 달려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 한서교회의 
길선주, 한서교회의 하디가 되기를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교회가 교회되기 위하여 작은 교회인 우리 자신이 먼저 말씀 가운데 찔림으로 알려주신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 한서교회가 성령충만하게 하게 하시고, 사랑의 섬김으로 날마다 
부흥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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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2014.06.16 09:19:15
1. 믿음의 능력
2. 전도의 능력
3. 기도의 능력
4. 사랑의 능력
5. 봉사의 능력

제가 하나의 작은 교회가 되어서, 성령충만하고 은혜
나누게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