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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6월 8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6.08 12:17 조회 1,103 추천 0
2014년 6월 8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Jun_08)
새 술에 취한 사람들  사도행전2:1~13
<당신의 별명은?>
 ‘그리스도인, Methodist,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지난 설교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다른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들입니다. 자신들과는 독특한 모습으로 산다고 하여 놀리는 
의미로, 그러나 비아냥거릴 수만은 없는 범상치 않은 그 무엇이 있다는 놀라움의 의미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별명을 가진 사람들이 역사 속에 큰일을 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은 
교인들로 구성된 안디옥교회는 최초에 이방에 세워진 교회, 최초의 이방 선교의 시발점이 된 교회, 그리고 
다른 이방지역에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확산에 큰 영향력을 끼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Methodist’라는 별명을 가진 존 웨슬리와 동생 찰스 웨슬리를 중심으로 감리교가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해서 유럽과 미국을 건너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감리교회가 세워졌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감리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이란 별명을 가진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성령의 체험을 한 성도들이 최초의 
교회를 세우는 개척멤버가 되었다는 것에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이라는 오해를 받게 한 오순절 사건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예수에게 요단강이 있었다면, 제자들에게는 오순절이 있었다.”(What Jordan was to Jesus, Pentecost was 
to the disciples)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시작했고, 그의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님의 뒤를 따라 또 다른 새 시대를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제자들은 무기력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요한복음21장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사건을 경험한 후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기보다는 오히려 갈릴리로 다시 내려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디베랴  호숫가에서 예수님이 셰프가 되어서 아침을 차려 주신 사건은 부활을 경험하고 난 
이후였습니다. 부활을 경험한 일 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큰 기적을 눈으로 본 제자들이라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머리로 이해해서 아는 것에 대한 한계입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 까지는 객관적으로 
증명된 사실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남의 일입니다. 아는 것과 확신을 갖는 일은 다른 차원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순절의 성령의 체험의 역사가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순절 성령체험 이후 그들을 변했습니다. 더 이상 무기력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당당하게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당’의 일원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예수님의 부활하신 사건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랬더니 그 역사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는 감동을 받고 
가슴을 치며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자백합니다. 그 숫자가 3천명이고, 5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니까 났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떠나갑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지금 그들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이 
새로운 시작을 했습니다. 
 그들을 지켜본 사람들이 왜  그들을 술에 취한 사람으로 보았냐면 그것은 바로 말 때문이었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습성이 말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말 또 하고, 또 합니다. 그리고 혀가 꼬여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 알아듣습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소개하고 있는 제자들을 비롯한 성도들은 사도들이 하는 말을 ‘각각 자기 나라 말로’, 
즉 ‘모두가 제각기 날 때부터 쓰던 나라, 자기 나라 말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도들은 아라멕 언어를 
사용했는데, 사도들이 아라멕 어로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기 나라 말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강림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이미지로 ‘바람’, ‘진동’, ‘불’을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미지가 주는 현상에 집중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말씀의 맥락으로 본다면 소리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을 보면 성도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세찬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소리가 났고, 혀 같은 것들이 불길처럼 갈라져서 그들에게 나타났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 찼고, 혀가 불처럼 갈라져서 
각 사람 위에 하나씩 내려앉은 것입니다. ‘소리’와 ‘혀’ 곧, 말, 언어와 관련된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술 취한 사람들로 본 것은 천하 각국에서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들이 제자들이 
하는 말을 지역의 방언으로 동시통역을 해 주듯이 들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더 정확하게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필리핀 니그로 섬에 있는 선교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선교지 중에 산 중에 있는 히말라루드 
교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만큼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단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프니를 
타고 2시간, 중국인 크리스천이 제공한 4륜구동의 목재운반 트럭을 타고 1시간, 그리고 걸어서 2시간을 가야 
했습니다. 큰 산을 두 개나 넘어야 했습니다. 겨우 해가 막 지을 무렵에 도착하게 되었고, 땀에 젖은 온 몸을 대충 
젖은 수건으로 닦고 저녁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투박했지만 영감있는 찬양을 함께 부르며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하나 고민하고 묵상하는 중 주신 말씀이 시편19편 4절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여기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그들이 깊은 영감을 느낄 수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인위적인 힘이 아니라 전적인 복음의 능력,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감동이 찬양을 부르는 중에 뜨겁게 
심령 속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3번에 걸친 통역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단문으로 말씀을 전해야만 
했습니다. 풀어서 설명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은 제가 부연 설명하여 충분히 설득력을
 갖게 하여 이해를 시킨 그 이상으로 짧은 단문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영적인 분위기를 우리는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큰 감동을 받던지! 그들을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며, 성령이 서로 통하게 하시는 역사를 보며 참 깊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것을 경험한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말의 사건, 언어의 기적이라는 것이 충분히 믿어집니다.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는 것, 이것이 성령강림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새 술에 취한 것으로 보여진 말의 사건인 성령체험의 사건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수님이 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이루는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두려워서 숨어 침묵하던 제자들이 입을 열어 세상을 향해 말을 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무식한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 다니던 그가 담대한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거듭나 구약성서를 자유롭게 
인용하며 예수님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확신에 찬 설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체험을 통하여 변화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로마 총독 앞에서도 당당히 복음을 변호하는 복음의 증언자들이 되었습니다. 말이 바뀌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데 모두를 걸었습니다. 재산을 다 함께 공유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관복음의 제자와 사도행전의 제자는 정말 놀랍게 달라졌습니다. 제자들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 함께했던 제자들의 모습은 그렇게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닙니다. 
그렇게 똑똑한 멤버도 아니었구요. 사회의 주류층도 아니었구요. 스승인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만큼 사려가 깊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앞세워 출세에 관심이 있었고, 예수님이 자신이 생각했던 대권주자가 아니라는 사실 앞에 미련 
없이 떠나 버린 매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겁도 많아서 사환 앞에서 자신은 예수당이 아니라고 3번이나 부인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길을 전혀 모르고 기도는 고사하고 
편안하게 잠을 잤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제자들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변했습니다. 무기력하고 무능한 제자들이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감동의 설교자, 웅변가가 되었습니다. 유대인 원로원들과 철학을 논하고 신학을 감히 주도하는 똑똑한 사람들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Comming-Out했습니다. 당당하게 예수당인 것을 밝혔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모든 것을 
다함께 공유했습니다. 목숨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기꺼이 불의 제물이 되었고,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한 번 설교에 
3천명이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부흥집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고, 우리가 꿈꾸는 5천명 출석성도가 그들에게는 몇 
일만에 이루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겠다는 수를 파악해 보니 남자 수만 5천명이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구원받는 자의 수가 더해져가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부활을 전한다고 하여 베드로와 요한은 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서서 대제사장과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앞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변호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죄가 없음을 변호합니다. 그들의 정연한 논리 앞에 
말로 먹고 사는 자들이 지고 맙니다. 사도들이 풀려나고 그 소식을 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마음이 되어서 
기도합니다. 그들이 드리는 기도의 내용도 더 이상 자기에게 집중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과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예수님의 이름을 높아지기를 바라며 치유와 표적과 기사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진동의 
역사가 일어나더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담대하게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소유욕을 내려놓았습니다. 새 술에 취하지 전까지는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더 
높아지려고 했고 더 많이 가지려했고, 더 많이 누리려했습니다. 그래서 시기도 했고 질투도 했고 편법을 쓰기도 했으며 
서로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달라졌습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부터 35절까지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32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이들에게 있어서 ‘내 것’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나’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만 있을 뿐입니다. ‘공동체’만 
있을 뿐입니다. 새 술에 취한 결과입니다. 말부터 변했습니다. 생각이 변했고, 행동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진정한 
기적은 말에 변화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오순절 성령의 체험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회만 다니는 교인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 됨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겨우 자기 신앙을 유지하는 정도의 무기력한 성도에서 즐겁게 헌신하며, 능력 있게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는 것으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말이, 언어가 
변화는 영적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름들이 그런 우리를 볼 때 놀라움과 경외감으로 붙여주는 별명이 있어야 합니다. 
‘손해 보는 사람들’, ‘아름다운 바보’, ‘복음에 중독된 사람들’, ‘놀 줄 모르는 재미없는 사람들’, 
‘예수에 미친 사람들’, ‘찬하의 범생들’, ‘새 술에 취한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볼 때 이런 별명으로 불러야 제대로 예수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 때
부흥의 새로운 역사는 시작될 것입니다. 
<기도>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도 성령의 체험이 있기를 원합니다. 말부터 변화되게 하옵소서. 희년의 
부흥을 열망하는 한서교회 위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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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2014.06.09 10:05:00
좁은길로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다른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지만 보람있는 일입니다.
최재선 2014.06.09 16:17:03
진심이 담긴 말씀에 대한 반응을 보여 주셔서  늘감사하고 힘이 닙니다.  좁은 길이 영광의 길과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지만 늘 고난을 동반해서 쉽지 않는 길이지요..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응원해주신답니다. 그러면 신바람나게 찬양하며 걸어갈 수 있지요.. 그런 우리를 보고 세상 사람들은 새 술에 취한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권사님 내외분도 그들 중에 한 사람이지요.^^
윤은숙 2014.06.10 19:12:38
그렇게봐주시니,진심으로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