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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5월 25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5.25 14:01 조회 1,339 추천 0
2014년 5월 25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05_25) 존 웨슬리 회심 기념주일
Real Christian, True Methodist 사도행전11:19~26
 

  SNS를 통해서 보내 준 지인의 글을 소개합니다. 산을 좋아하는 인터넷 동호회원 중에 한 사람이 모친상을 당했습니다. 임원들을 
중심으로 조문하기 위하여 장례식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약속대로 임원들은 만났는데, 난처한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근데 산꼭대기님 원래 이름이 뭐지?” 그들은 모두 산꼭대기라는 닉네임만 알았지 실재 이름을 몰랐던 것입니다. 전화로 
연락하여 어렵게 이름을 알아냈고, 빈소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정중히 조문을 마치고 조의금을 전달하는데, 안내를 맡은 청년이 방명록에 이름을 적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명을 쓰면 
상주인 회원이 모를 것 같아서 먼저 닉네임을 쓰고 가로 안에 본명을 적기로 했습니다. 감자양, 아무개, 거북이 왕자 등 이름을 
적는 것을 보면서 안내를 맡고 있던 청년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참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회원의 차례가 
되어 적어야 하는데, 계속 머뭇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이 닉네임은 ‘에헤라디야’인데 조심스럽고 창피해서 다른 사람들의 글씨 
보다 작게 ‘에헤라디야’라고 적었습니다. 그 이름을 보고 안내 청년이 피식하며 웃고 있는데, 갑자기 남은 한 명의 회원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갔습니다. 모두들 민망한 나머지 그 자리를 자신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모두 큰 소리로 합창을 하듯이 
‘저승사자님 어디가세요~!’하고 뒤 따라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일행 모두는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고 장례식장을 한참을 
벗어나서 박장대소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저희와 같이 교회 나가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도 우리가 스스로 지어서 붙인 이름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곳이 소아시아 
수리아(시리아)의 수도 안디옥이었습니다. 안디옥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4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당시 로마제국의 치리 하에 
있었던 수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지금은 터기 영내에 있습니다. 안디옥은 지중해에서 24Km 떨어진 오론테스(Orontes) 강가에 위치한 
도시로 중요한 상업도시이었으며 당시 이미 인구가 50만 명에 달하는 당시 로마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상업이 
발달되었고, 무역의 중심지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래서 경기가 매우 활성화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오락과 춤과 같은 유흥문화가 발달되었습니다. 그래서 호화롭고 요란한 타락한 도시가 되었지요. 
  그런데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 박해가 더 심해지자 많은 성도들이 안디옥으로 도피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낯선 곳에, 그것도 상업적인 이유가 아니라 알 수 없는 이유로 온 그들은 올 때부터 안디옥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상한 집단의 사람들은 자신들과 삶의 방식이 달랐습니다. 돈 버는 일에도 특별히 욕심을 내지도 않고, 
자기들처럼 재미있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나쁜 일에는 절대로 가담하지 않는데, 가난해 보이지만 뭔가 행복해 보이고, 기품이 있어 
보이고, 자기들도 불쌍한데 다른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저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이래?’ ‘잘은 모르지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 ‘그래, 그러면 저들은 그리스도인이군.’라고 이웃에서 말하는 중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그 의미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 ‘그리스도를 쫓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이 말은 두 가지 느낌으로 부른 것입니다. 하나는 멸시적 의미이고, 또 하나 존경의 의미입니다. 인생의 참 재미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 돈도 쓸 줄 모르고 막혀있는 사람들, 세상을 사는 방법을 모르는 시골뜨기들이라고 보는 의미와 ‘저 사람들을 보니 
우리가 참 많이 부끄럽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경건하고, 정의롭다.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라는 시각에서 
부른 이름이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느낄만한 이유가 있음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짧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적으로 
살아있는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다같이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하나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었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는 반드시 그 결과로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부연해 주는 말씀이 그 다음에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의 소문이 예루살렘까지 나게 되었는데, 안디옥 교회를 위해서 
예루살렘교회는 바나바라는 주의 종을 파송합니다. 파송을 받은 바나바는 안디옥교회를 방문하고 느낀 소감을 전합니다. 23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며” 안디옥교회와 성도를 보면서 그들 위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은혜가 넘치게 되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바나바가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람들이 된 것은 교회 안에 작은 교회인 모범적인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오기 전, 헌신된 평신도들, 그리고 준비된 사역자 바나바, 그리고 동역자 사울(후에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그리고 헌신된 평신도와 준비된 사역자들이 있었기에 하나님도 인정하시고 사람도 인정하는 교회와 
성도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붙여진 닉네임이 있었습니다. 우리교회의 닉네임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닉네임은 무엇인가요?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부르짖은 이후 소위 프로테스탄트라는 개신교가 탄생했습니다. 감리교도 그 중에 하나이지요. 그런데 
감리교라고 부르는 영어의 ‘Methodist’라는 호칭 역시 주변 사람들이 붙여준 닉네임이었습니다. 
  감리교를 창시하신 존 웨슬리 목사님은 동생 찰스 웨슬리, 몰간과 커크 햄 등이 옥스퍼드 대학 안에서 ‘Holy Club’이라는 
동아리를 만들고, 경건생활에 힘썼습니다. 이 동아리에서는 예배를 위한 정기모임과 기도, 희랍어원어로 성경 읽기, 라틴어 고전 
읽기, 신학적 토론, 매주일 애찬 나누기, 마을이나 감옥 순회와 자선활동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런 동아리 활동을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이 그들에게 붙여 주었던 별명들이 있었습니다. 규칙쟁이들(Methodists), 성경벌레들(Bible Moths), 
열광주의자들(Enthusiasts), 의무 이상으로 일하는 사람들(Super organists)이 그것입니다. 이 별명들 모두 위에서 그리스도인이라 
별명을 지어 주었던 정서와 비슷합니다. 비웃음도 있지만 경외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규칙쟁이’가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던 별명이었습니다. 
 그 이후 미국 조지아 선교의 실패,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의 회심의 사건, 그리고 브리스톨 감리교신도회 조직을 거치면서 
감리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규칙쟁이 존 웨슬리의 영향으로 수많은 규칙쟁이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감리교의 복음운동이 당대에 대륙을 휩쓴 피의 혁명을 
막았습니다. 18세기 영국사회를 살려냈습니다. 그 힘은 먼저 존 웨슬리의 뜨거운 가슴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지금으로부터 276년 전 1738년 5월 24일에 올더스게이트 작은 모임에서 중생체험을 통해 뜨거운 가슴을 갖게 됩니다. 존 웨슬리는 
일기를 썼습니다. 지금 몇몇 교회에서 하고 있는 영성일기는 바로 존 웨슬리가 시작했던 영적일기를 본받은 것입니다. 그만큼 
경건생활에 철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날의 경험을 일기로 남겼는데,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9시 15분 전쯤 
되어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우리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진정 그리스도를 믿고 있음을 느꼈고 구원을 위해 주님만을 의지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가 내 
죄를 다 사해 주셨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웨슬리는 이 체험을 통해서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동안 신학적으로 사유한 모든 것들에 대한 
확답을 찾게 되었고, 그 어떤 곳이라도 복음을 들고 뛰어들 능력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존 웨슬리가 이와 같은 성령의 체험으로 뜨거운 가슴을 갖기 까지는 철저히 성경을 연구하고 신학적 사유로 고민했던 
머리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그 대학에 강사로 남을 정도로 그는 신학과 
학문적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한 책의 사람’이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성경을 늘 가까이 했습니다. 늘 성서 
연구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고전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은혜의 수단이 된다고 가르칠 만큼 신앙의 무지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행동하는 손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손의 사람으로 부르는 것은 그가 실천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시절부터 매일의 생활에서 영성훈련과 함께 그에 따른 실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마음으로만 믿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성을 높이기 위하여 실천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규칙적으로 기도생활과 금식에 힘썼습니다.
  그는 평소 가난한 이를 돕고, 고통당하는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믿었고,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그는 교도소를 방문해 죄수들을 
위로하고 전도했을 뿐 아니라 교도소 개선을 위해서 애썼습니다. 학교를 후원했고, 고아들을 위한 하가교도 운영했습니다. 몇몇 
도시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료시설을 운영하기도 했고, 의료서적도 발간했습니다. 당시 첨예한 사회문제였던 노예제도와 
관련해서도 폐지를 위한 설교를 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와 관련된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존 웨슬리가 ‘Methodist’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 별명대로 살아서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쳤던 이유였습니다. 

  그 존 웨슬리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5년 전, 감리교회의 미래를 염려하면서 유언과도 같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감리교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언젠가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단지 
능력 없고 종교형태를 가지면서 하나의 죽은 종파로서만 존재하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처음 시작했던 교리, 정신, 
훈련을 굳게 믿고 고수하지 않으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보고 뭐라고 할까요?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면서 무슨 별명으로 부르고 있나요? 우리는 사람들이 기분 좋은 
관심을 갖고 우리를 지켜보며 잔잔한 감동과 교훈을 주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으로, 감리교인으로 살고 있는지요?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인가요? 혹시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아닌지요? 보기에는 아름답고 그럴듯해도 한 줌의 향기도 품어내지 
못하는 조화는 아닌지요? 회칠한 무덤처럼 겉은 아름답게 치장했지만 안은 썩은 냄새로 진동하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어정쩡한 
자세로 상황에 따라 도망칠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주님을 따른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경건의 모양을 있으나, 
행위의 능력이 없는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은 아닌지요? 
우리는 진정한 감리교인인가요? 지나치게 머리만 큰 괴물은 아닌지요? 신비주의와 열광주의에 빠진 무속인은 아닌지요? 실천만을 
강조하는 사회사업가는 아닌지요?
혹자는 한국교회에 ‘신앙의 거인을 없고 신앙의 괴물들만 많다.’는 끔찍한 독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구원파가 이단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다같은 교회로 보겠지요. 방송으로 소개된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조용기목사, 사랑의 교회와 
오정현목사, 금란교회와 김홍도목사를 보면서 사람들은 무어라고 할까요?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故한경직 목사님이 말년에 남한산성에 계실 때 많은 후배 목사님들이 찾아와서 인사를 드리며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 말미에 후배들에게 꼭 들려주실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린다고 하면 예외없이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참된 그리스도인과 진정한 감리교회가 정말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부족하지만 우리부터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고, 기초부터 
다져서 세상 사람들이 놀라서 별명을 지어주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진정한 감리교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진정한 감리교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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