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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4월 6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4.06 12:30 조회 1,234 추천 0
2014년 4월 6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04_06) 
은혜에 그저 감사할 따름 마태20:1~16
 여러분의 연봉은 얼마인가요? 지난 주간에 언론에서 우리나라 30대 그룹 계열 상장사 경영진과 임원들이 받는 
연봉을 공개했습니다. 가장 많이 받은 기업인은 SK의 최태원 회장으로 무려 301억500만원이라고 합니다. 그 
최고경영자와 최고임원들의 평균 연봉이 47억원이고, 일반 직원들의 연봉의 64배나 된다고 합니다. 
  일반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SK텔레콤은 1억5000만원, 삼성전자는 1억200만원, 현대자동차는 9천4백만원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다른 타 기업의 일반 직장인들에 비하면 훨씬 많은 것인데, 평생 만져보기 어려운 돈을 1년 
연봉으로 받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국가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최고경영인들 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일당은 하루에 5억원입니다. 전 
대주그룹 회장 허재호씨가 그 대단한 사람입니다. 일정 기간 동안 세금을 내지 않으면 그의 소유로 되어 있는 
재산으로 대신 갚도록 하는데, 교묘하게 재산을 은닉하여서 찾지 못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재산이 없으면 노동을 
통해 갚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미납급과 강제노역 일자 기간을 따져 계산해보니 하루 일당이 5억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황제노역이라 하지요. 꼭 다른 나라 이야기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이상하게 지급된 일당에 대하여 주인과 노동자간의 실랑이가 벌어진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의 인력센터와 같은 곳인 시장에서 포도원의 농장 주인은 이른 아침 6시에 일꾼 몇 명을 골라 농장으로 간다. 
품삯은 당시 일반 병사들이 받는 1데나리온 입니다. 지금으로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5만원 정도가 된다고 하니 
5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일용직 노동자의 노임으로는 괜찮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일꾼이 부족했는지, 오전 9시에, 오후 3시에, 심지어는 해가 다 지어가는 오후 5시에도 새로운 일꾼이 
고용되어 일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드디어 품삯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오후 5시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하루 
품삯을 다 준 것입니다. 일찍 온 사람들의 얼굴에 잔뜩 기대감이 흐릅니다. '이것 봐라, 늦게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이면 우리는 더 많이 받겠구나.' 그런데 아침에 일찍 온 사람들이나 오후 늦게 온 사람들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일당으로 주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떤 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건 
불공평한 처사라고 항의하는 사람까지도 있습니다. 이 때 농장 주인이 '내 것을 가지고 내가 주었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내가 너와 약속한 일당보다 적게 주었느냐?'하며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면서 알듯 모를 듯 한 말을 
남깁니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 비유를 이해하려면 비유의 밑바닥에 흐르는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그 시간부터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요, 자기들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자기들만이 하나님 
나라에서 소중한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무시하였고, 특별히 사마리아 사람들은 
멸시하며 경멸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이웃은 유대인만을 의미하지 이방인들은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자로 이 유대인들의 비뚤어진 선민의식, 공로주의, 율법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신앙의 위험성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구원의 길은 열려있어서, 유대인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들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결코 경제윤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구원의 특성에 
대해 이해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상이 우리의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비뚤어진 선민의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어느 주석가가 지적하기를 "포도원에 먼저 
온 사람의 결정적인 잘못은 자기가 하나님에게서 마땅히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채권자 의식에 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채무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빚을 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엇인가 갚아 주어야 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빚진 자들이지요. 
 이 공로의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 공로가 무시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힙니다. 교회 생활 중 낙심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채권자 의식, 공로 의식입니다. 10절 말씀에 '먼저 온 자들이 더 많이 받을 줄 알았더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유대인들이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7장7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정 적으니라."
유대인들도 자격이 있어서, 공로가 있어서, 당연히 받을 특권이 있어서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여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민족 중에 가장 약해서, 가장 힘이 없어서 부르신 것입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당시 팔레스틴의 상황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주인이 불러준다는 것 자체가 은혜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팔레스틴에 약 70~80퍼센트가 극빈자에 해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시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까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시간에 주인이 나갈 때마다 일꾼을 불러왔다는 
것과 마지막 오후 5시에 일꾼을 불렀을 때 왜 놀고 있느냐를 주인의 질문에 우리를 품꾼으로 불러주는 자가 
없었다고 대답했던 것을 보면 일자리 찾기가 지금처럼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느 시간이든 상당한 값을 
받을 수 있는 일거리를 얻게 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충분한 감사의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포도원 주인은 애초부터 일꾼을 고용하여 이윤을 남길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포도원 주인은 
품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포도원을 운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이상한 일당을 지급했지요. 이 
주인이 불러 주지 않으면 일할 수 없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자들과 그 가족들은 굶어야 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한 것 그 자체가 충분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가 받아야할 몫보다 적게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주인은 약속을 어긴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 
주인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은 그 주인의 관대함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이 바로 이것인데 하나님이 바로 이 포도원 
주인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포도원 주인이 베풀어준 은혜가 내 마음에 더 커야지 채권의식, 공로의식, 비교의식이 
커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봉사의 기록을 자기 마음 속에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께 드린 것을 
하늘에 기록되게 해야지 내 생각과 마음과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기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가 
커서 그 은혜에 보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렸다면 그 은혜만을 기록하십시요.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자격이 있어서, 공로가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만한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이 불러 
주셔서, 자녀 삼아 주셔서, 그 은혜로 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이 구원의 
은혜의 감격이 날마다 감동으로 다가오고, 그 구원의 즐거움 안에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안에 비교의식, 
공로의식, 채권의식, 비뚤어진 선민의식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은혜 안에 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제 내일 0시부터 연속기도회를 시작함으로 본격적인 경건훈련, 영성훈련에 들어갑니다. 이것 왜 하는 
것일까요? 받을 자격 없는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해서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베푸신 사랑, 
헌신, 희생을 다시금 깊게 마음에 새기고, 조금 이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나도 그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것이지요. 
구원해 주신것 하나 만으로 충분하여 그저 몸들 바 모르게 감사할 따름이라는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 길을 걷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사순절 그 길을 걸으면서 비뚤어진 선민의식, 공로 앞세우고, 직분 앞세우고, 내 권리 앞세우고, 비교하여 원망하고 
정죄했던 영혼의 암세포들 다 태워버리고, 구원이면 충분합니다. 그 은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저 
그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한 없이 부족하고 배은망덕하고 자격 없는 저희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원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내 마음과 생각에 가득하게 하게 하옵소서. 사순절 십자가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 더 깊이 깨닫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지만, 이 영성훈련의 기간만이라도 
내게 주어진 주님을 따라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여 주옵소서. 말로만의 감사가 아니라 마음이 느껴지는 감사를 
드리는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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