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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3.30 12:44 조회 1,577 추천 0
2014년 3월 30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Mar_30)
깊은 밤, 깊은 간구 시편41:1~13
 어느새 교회 앞마당에 목련꽃이 휘들어지게 피었습니다. 그 꽃을 보고 지나칠 수 없어서 사진에 담았습니다. 
완연한 봄이 왔습니다. 목련꽃의 아름다운 자태에 흠뻑 젖고 예쁘다고 칭찬하며 돌아서려는데 지난해에 
기도원에서 가져와 심어 놓았던 부추와 돗나물이 자기들도 보아 달라고 수줍게 부릅니다. 그 연한 연두 빛의 
살이 너무 예뻤습니다.신기했고 대견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도 추운 겨울을 잘 견디고 그 여린 생명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그 생명의 신비, 자연의 섭리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신 것입니다.한 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들 역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이해인 님이 노래한 것처럼 겨울에도 하나님은 홀로 일하시며 돌봐주셔서 오늘도 우리는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저 그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자로 서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속에 행하신 일들을 소리 높여 
찬양하며 영광을 올려드리는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네 인생 여정에는 누구나 만나게 되는 인생의 깊은 밤이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지치고 피곤한 곤고의 밤, 절망의 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인생의 깊은 밤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은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사람들이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여길 만큼 매우 위중한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 아픈 틈을 타서 아들인 압살롬이 반역을 도모합니다. 아버지가 아파서 
죽게 되었는데, 그동안에 서운한 일이 있었더라도 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자식이 도리이거늘 구테타를 일으켜 
왕의 자리를 강탈할 기회로 삼았다는 것에 다윗의 절망감은 더 컸을 것입니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다윗과 
함께했던 사람들마저도 아픈 다윗을 향하여 위로하지는 못할지언정 악담과 비방합니다. 다윗의 가까운 친구와 
지인들이 다윗에 대하여 무슨 말을 했는지 5절~9절까지의 말씀을 저와 함께 교독해서 읽겠습니다.  
“5.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6.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7.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9.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발꿈치를 들었다’는 것은 악의에 찬 노새가 병든 
사자를 뒷발로 채버리듯 걷어 차나다는 것입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위로는 못하고, 오히려 악성 댓글을 
올리듯 저주와 악담과 비방을 퍼 부었다는 것은 아픈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꼴 일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운동하다가 아킬레스건이 파열되어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목사도 사람이기에 다칠 수 
있지만 축구하다가 다쳤다는 것은 자랑스럽게 알릴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병원에 있는 동안 내내 하나님께도, 
성도님들에게도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 성도님들이 한 사람도 그런 내색 없이 저의 그 
마음을 헤아리셔서 같이 아파해주시고, 진심으로 염려하며 기도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혹여 누군가 
‘목사가 뭔 축구, 내 언젠가 저럴 줄 알았어. 한 번 다쳐봐야 정신을 차리지.’ 이런 말을 들었다면 말은 
못하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윗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야말로 참담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서운한 일이 있었어도 그래도 
아버지인데,어려울 때 피는 물보다 진한다고, 믿을 것은 가족인데, 가족마저도 등을 돌립니다. 그동안 
믿어왔던 가까운 친구들도 다윗을 버립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를 믿겠습니까? 누구를 의지하며 누구에게 호소한다 말입니까? 다윗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동서남북이 다 막혔습니다. 유일한 길 하늘만이 열려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린 하늘을 
향하여 깊은 탄식의 간구를 드립니다. 가슴으로 드리는 절규입니다. 아마도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렸던 
기도가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한 맺힌 피눈물의 부르짖음이었을 것입니다. 아니 너무도 기가 막혀서 소리 
내어 기도할 힘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하나님의 영이 말할 수 없는 깊은 탄식으로 대신 기도해 주셨을 것입니다.    
 다윗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4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여호와여 은혜를 내려 주소서. 나를 고치소서.”
‘하나님,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나를 고칠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나를 고쳐주세요. 나를 살려주세요.’ 깊은 밤, 깊은 간구를 드렸습니다. 
이런 가슴이 저리고 아프도록 드리는 다윗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였고, 지금 이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믿었던 사람도, 믿었던 그 무엇도 다 떠나고 잃어버리고, 가슴이 아파 기도는 해야 
되겠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끙끙 앓는 신음으로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는, 절박함으로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가 많이 아픕니다. 제가 죽을 것만 같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고쳐주십시오.’
 다윗은 우리와 같은 인간적인 성정을 가지고 있고, 사실 매우 인간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 범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야 장군을 전쟁에 몰아 죽인 일과 아들 압살롬을 마음으로 용납하지 아니하고 형식적으로 
받아들인 일은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결국 압살롬을 제대로 품지 않은 일로 아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되는데, 엄밀히 말하면 압살롬의 반역에 원인 제공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우리와 다른 한 가지는 그는 고난과 위기 앞에 언제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어디에 있든지 늘 하나님을 향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자리는 죽음과도 같은 수렁이고 낭떠러지기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있으면 우리는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늘 하나님을 지향하는 태도와 자세를 하나님은 매우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맞는 자,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인정하시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을 재 
창건하고, 그 다윗의 혈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이 탄생하시게 된 것입니다. 
 지난 28~29일, 1박2일 동안 장로부부세미나를 잘 다녀왔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몇 가지 프로그램 
중에 하나 에니어그램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내 안에 있는 ‘참 나’를 찾는 내적여행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에니어그램은 그리스어로 ‘아홉 개의 점이 있는 그림’이라는 뜻인데, 원과 아홉 개의 점, 그리고 그 점들을 
잇는 선으로 구성된 단순한 도형이지만 그 안에 우주의 법칙과 인간 내면의 모든 것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인간의 성격 유형을 아홉 가지로 분류하는데, 모든 사람은 선천적으로 그 중에 하나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크게는 배 형, 가슴 형, 머리 형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각 유형마다 반드시 
강점과 약점이 있습니다. 저는 1번 형인데, 배 형입니다. 완벽주의자이고, 개혁가이어서 일 중심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일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해서 근면, 성실해서 놀면 불안하고 심지어 죄책감을 느끼는 유형이라고 
합니다. 실수, 잘못, 연약함 등을 용납 못하고 항상 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하여 혹독하고 
정신적, 심리적 기저는 원망, 분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운전하다가 누가 창 밖에 담배꽁초를 버리면 
못 참습니다. 누가 확 껴들기 하면 분노를 표출합니다. 제가 그러면 충성스러운 성격의 6번 형인 아내는 제발 
참으라고 말립니다. 이 6번 형은 두려움이 많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 에니어그램을 통하여 제가 얻은 작은 결론은 우리 안에 있는 강점을 감사로 받고 잘 활용을 하고, 약점인 
죄성은 그야말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이시기에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점도 주셨지만, 약점도 주셨는데, 오히려 그 약점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하는 것이라면 더 은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약할 때 오히려 
강합니다. 약함을 오히려 자랑합니다.’라고 했던 사도 바울 생각을 많이 하면서 늦은 밤에 깊은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깊은 밤, 깊은 간구를 드린 다윗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현실이 하나님이 주신 것도 아니고, 아들의 
반역과 친구들의 배신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4절에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라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다윗은 자신을 배반하고 대적한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10절 말씀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여기서 
‘보응하다’라는 히브리어 원어는 우리가 잘 아는 ‘샬롬’입니다. 깨진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온전해지는 
평화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샬롬, 평화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그들을 용서하겠다는 것입니다. 
 화해와 용서의 의미는 다릅니다. 화해는 상대방과 함께 문제를 풀어 쌍방 간의 이견을 조정하는 것이라면 
용서는 상대방과 상관없이 내 마음의 돌들을 내려놓고 그들을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품는 것입니다. 화해를 
용서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용서입니다. 죽어주신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주신 것입니다. 그 
용서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켰고,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이런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로 대합니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받은 사람인가요? 
다른 사람에게 은혜로운 사람입니다. 죽었던 우리를 살려 주신 용서를 받았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다시금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용서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입니다.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으며 살 때 우리를 품기 위해 더 깊이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늘 느껴지면 아픈 것도, 
병든 것도, 가난도, 배 고품도,죽음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외형적인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그 관계는 회개와 용서로만이 열 수 있습니다. 십자가로만 열 수 
있습니다. 
 유기성 목사님이 들려주신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심야기도회 시간에 기도의 응답을 사모하며 
나온 성도들에게 ‘기도한다고 모든 병이 낫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간증의 서두에 이 말을 전하자 성도들은 
당황해했다고 합니다. 젊은 목사님인데 사모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진 지 7년 째 식물인간처럼 지내고 있고, 
게다가 목사님의 실수로 찜질팩이 터져 중화상을 입어 결국은 두 다리를 절단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개척교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이런 일을 겪었으니 얼마나 가슴을 치며 기도했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오랜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는데도 전혀 사모님은 차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의 기도가 
부족해서도, 기도의 태도와 자세가 불량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동안 기도를 드리는 중 기도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무엇을 해결해 달라는 기도에서 
지금의 이 현실을 믿음으로 사랑으로 품게 해달라는 기도로 말입니다. 기도의 기적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사랑으로 품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림으로 자신의 사랑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의식을 느끼면 삽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날마다 
그 사랑이 깊어집니다. 오랜동안 병상에 누워 있는 예쁠 것 하나 없는 아내가 날마다 예뻐 보였고, 더 따뜻한 
말로 말을 건네고, 더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깊은 밤을 만났을 때, 우리는 주변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길도 아니고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깊은 밤에 ‘하나님,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를 고쳐주십시오.’라고 깊은 간구를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억울함을 
들어 주시는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깊은 간구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근원적인 문제인 우리의 죄악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은혜를 베풀며 
살지 못한 부족함을 깨우치십니다.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리니, 원수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며 그들을 사랑으로 용서하며 
품게 됩니다. 
어느새 내 마음 안에 샬롬이, 평화가 찾아옵니다. 마음의 평정과 고요를 주십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습니다. 
천국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바라던 천국에 이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병이, 가난이,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우리 안에 가득합니다. 우리를 선한 길, 의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신뢰와 믿음이 있기에 그저 감사하며 맡기며 삽니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날마다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크기에 다윗처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같이 본문 13절 다윗의 찬양을 나의 찬양으로 
고백합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기도>
 깊은 밤에 드리는 우리의 깊은 간구를 들어주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를 고쳐주시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고는 살 수 없는 약점을 지니고 있는 연약하고 
부족한 자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용서 받은 대로 서로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과 샬롬하고, 사람들과 평화하며 여기서도 천국을 누리며 하나님을 송축하며 살게 하시고, 이렇게 날마다 
은혜로 살고, 은혜를 베풀며 살다가 바라던 천국 올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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