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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3.23 15:04 조회 1,208 추천 0
2014년 3월 23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Mar_23)
정직한 자의 당찬 기도 시편17:1~15
 언젠가 초하루 새벽기도회 시간에 문병란선생님의 시 [희망가]의 한 구절인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를 헤엄치고’라는 시귀를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겨울은 춥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가 다 죽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꽁꽁 언 냇가 
얼음장 밑에는 물고기가 헤엄을 치며 생명의 건재함을 자랑합니다. 인생의 추운 겨울을 지나야만 했던 우리들에게 얼음장 
밑에서 헤엄을 치는 물고기는 희망과 생명의 신비라는 교훈을 보게 한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신 여러분 모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옆에 있는 성도를 서로 축복하겠습니다. 
“잘 이기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는 사람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할 수 도 없고, 그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몇 차례의 상담 심방을 
하면서 기쁜 보고도 들었지만,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성도들에게 나눌 수 없는 저만이 알아야만 하는 성도의 안타까운 
사연이,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에 지금 잘 견디고,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분들을 뵐 때마다 
어떡하든 믿음으로 이겨 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아프면서도, 정말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렇듯 우리네 인생 여정 중에는 우리의 노래를 빼앗아 가고, 우리의 춤사위를 멈추게 하고, 우리네 가슴을 치게 만드는 억울한 
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는 분명한 뜻과 메시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주변의 환경과 상황을 원망하지만 결국 
자신을 성찰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는 대부분의 고난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이기에 우리는 그 성찰과 회고의 과정을 
통해서 교훈과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되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고난이 무조건 자신의 잘못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관하게 불가항력적으로 닥치는 
고난도 있습니다. 이럴 때 더 억울하죠. 분노가 생기고, 원망이 일어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의 주인공인 다윗이 바로 이런 억울한 밤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은 어떻게 했을까요? 
다윗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장차 왕이 되리라는 예언과 함께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되기까지 오랜 동안의 
시간과 시련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할례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이스라엘을 업신여기는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신앙의 이름으로 물리쳤는데, 그 대가는 백성들의 인기를 얻었지만, 그것 때문에 사울이 시기하여 쫓겨 다니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 미친 척을 하기도 합니다. 다윗이 당하고 있는 억울한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은 없으나, 
다윗이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은 명확합니다. 
 일반적으로 부당한 일,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법의 보호와 도움을 받으려 합니다. 시편에서 그리는 하나님의 모습 중에 
하나가 바로 재판장이십니다. 불의한 재판장이 아니라 공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의로운 재판장입니다. 특별히 부당한 비방을 받아 
일방적으로 당해야만 하는 이 억울한 상황을 들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찾았고,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공평하고 거짓이 없으신 재판장이시기에 자신이 의롭고 공평하고 
거짓이 없는 누구보다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하였기에 하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의로운 재판장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들어 주시는 의롭고, 공평하고, 거짓이 없으신 재판장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시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언제든지 우리가 재판을 요청하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이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쉬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씀이라고 거듭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저와 여러분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찾아오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시기 위하여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야기 꺼리를 만드시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려움도 주시고 고난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고, 함께 대화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의 제목도 
이미 해결하실 수 있는 모든 여건과 환경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칼빈은 그의 ‘기도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는 것은 첫째는 모든 좋은 것이 오직 그분께로부터 온다는 것과 둘째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살게 하시려 
함이다.” 어쩌면 우리 보다 더 깊게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라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찾는 자의 억울함만을 들으시고, 그들을 도우십니다. 
 저는 시편을 접하면서,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접하면서 다소 놀랐던 것은 다윗의 당돌하고 당찬 태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비방하고 괴롭히는 교만하고, 교활한 원수들을 혼내주고 자신을 원수들에게서 
구하여 달라고 당돌하게 요청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고 당찬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의아심이 있으면서 또한 다윗의 
당돌함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윗이 당찬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가 다윗을 하나님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텐데,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들어 주시는 분이신 걸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셔서 
자신의 정직함을 아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주어도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2절)라는 말씀 중에 ‘살피소서’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데 우리의 안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원은 ‘새를 높이 날리고 그것들을 살펴보고 찾는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의미는 사람들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어서 찾기 어려운 정직함과 공평함을 하나님은 보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당하고 있는 억울한 상황을 하나님은 다 보시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억울함을 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부당한 
일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연결해 주시는 사람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그 부당함을 이겨내셔야 합니다. 이 다윗의 당찬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이렇게 감히 하나님 앞에 당찬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정직한 삶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정직이라는 것은 ‘정확함과 충성’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일반적인 이해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자신은 이렇게 정직하게 살았으니 
마땅히 지금 이 억울한 상황에서 구원을 받아야 하며, 나를 괴롭히는 정직하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윗은 막무가내로 자신의 정직함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속속들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시험해보시도록 기도하고 자신의 정직함을 변호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끝없이 성찰하고 반성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였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3절) 행여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을까 싶어서 하나님이 시험을 하셨을 때에 잘 통과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밤에 오셔서 감찰했다는 것은
 다윗이 낮은 물론이고 밤에도 자신을 돌아보고 정직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렇게 하나님이 언제 심판하시든지 
범죄 하지 아니하고 정직하게 살겠다는 기도입니다.  
 그런 정직함에 근거한 다윗의 당찬 기도는 그 강도가 점점 더해집니다. 그를 괴롭히는 정직하지 않은 불의한 원수들은 교만하고,
자신을 사자가 사슴을 사냥하며 몰듯이 압박하고 압제하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서 하나님이 이렇게 악을 벌하시고 의를 보호하심으로 하나님의 의와 공평이 이 세상에 실현되기를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정직하게 산 사람, 하나님 앞에 떳떳한 사람만큼 당당하고 강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윗의 이 당당함은 바로 그의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정직한 삶이었습니다. 
 기도에 관련된 몇 권의 책을 쓰신 열린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남준 목사님은 자신은 설교 잘하거나, 능력과 기사를 행하는 목사로
기억되기 보다는 깊은 기도를 하는 목사이기를 소망한다면서 그의 책에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거룩한 은혜의 세계를 늘 
드나들면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사는 사람들, 거기서 험한 세상을 이길 거룩한 힘을 얻고 날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비밀을 쌓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어느 날 수요예배가 끝난 후 강단을 내려올 때에 한 형제가 목사님에게 면담을 요청해왔다고 합니다. 성도들을 다 배웅한 후 
대화를 나누었는데,그 형제의 물음은 이것이었습니다. “목사님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간절히 기도할 수 있을까요?” 
그 때 목사님이 그 형제에게 되물었습니다. “간절히 살고 있습니까?” 목사님의 질문을 들은 그 젊은 형제는 먼 곳을 쳐다보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목사님이 질문에 
깊은 뜻을 이해하고 간절히 기도하기 위하여 간절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 젊은 청년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열망, 목사님의 깊은 기도에 대한 소망, 다윗의 당찬 기도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정직하게 살려는 간절한 삶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기도는 전인적이고, 전존재적인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든 것이 참여하는 영적 
활동입니다.거기에는 우리의 삶이 반영되고, 마음의 토대가 되며, 사랑이 역사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간절한 애착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자신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갈망하는 전인(全人)이 참여해야 합니다. 
 기도에 관한 우리의 오해가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는 반드시, 무조건 응답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삶과 
하나님을 향한 관계는 도무지 고려하지 않고 오직 기도만을 고쳐 보려는 사람들이 기도 속에서 맛보는 거절과 실패의 경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와 삶은 나뉘지 않고 둘은 함께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유통합니다. 사는 것만큼 기도하고, 기도하는 것만큼 
사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이 말씀에서도 기도 응답의 새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정직하게 간절하게 살아야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16절에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라고 기도와 의로운 삶과의 상관관계를 언급하면서 의인의 간구의 
예로 엘리야를 듭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능력은 바로 기도 이전에 이미 의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다윗이 드렸던 당찬 기도에 대한 열망이 먼저 우리 모두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당찬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다윗의 정직한 삶을 살고파하는 거룩한 소원이 저와 여러분 안에 있기를 또한 간절히 소원합니다. 간절한 기도와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간절히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서 간절한 기도와 큰 역사가 
나타나는 당찬 기도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살고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 묵상 그리고 섬김과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우리도 
따라가고 있습니다.우리가 믿고 있는 바와 살고 있는 바가 일치되기 위하여 1년의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는 사순절만이라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지금 순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미약한 몸짓이지만, 부족한 따름이지만 우리네 인생의 노래 중 
삶의 한절이라도 앎과 삶이 일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중심으로 초대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있으니 꼭 나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당차게 요청할 만큼 투명하고 진실하게 살기 위하여 사순절만이라도 온전하게 예수님을 
따라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하나님께 당찬 기도를 드렸던 다윗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들으시고 해결해 주시는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 다윗이 드렸던 당찬 기도를 드리기까지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뢰와 정직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늘 부족하여 간구하옵기는 우리를 응원해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앎과 삶이 일치되신 예수님을 우리도 
따라가고 닮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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