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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3.02 13:08 조회 1,522 추천 0
2014년 3월 2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Mar_02)
시대를 이끈 위대한 힘  요한복음12:20~26

 누구에 대한 회고인지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내 아버지의 외사촌과 결혼하신, 우리 가족의 친척이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예수님만 의지하고 밤마다 철야로 지새우는 권사님이신 나의 어머니와 함께, 세상에서 나에게 맨 처음으로 
예수님을 소개해주신 내 시골 이모님과 같은 분이시고, 천국에 가면 제일 먼저 나를 맞아주실 것 같은 분이시다. 열 한 
개 섬을 24시간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나룻배를 타고 건너다니셨다. 그분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나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섬사람들에게 그분은 예수의 증인이었고 편지였다. 
한국교회의 밑거름처럼 숨겨져 있는 한 여성 순교자, 가도 가도 전라도길, 황토 길을 더 가서 노두길 나룻배길 낙도 
길가에 핀 진달래 같은 우리들의 룻이여, 에스더여, 마리아여, 우리의 어머니여. 어는 집으로 시집을 갔더라도 
현모양처였을 분, 착하디 착하신 집사님, 충성스런 여전도사님, 갈릴리에 태어났더라면 막달라 마리아와 수산나와 요안나와
 함께 주님을 섬기다가 십자가 밑에서, 주의 무덤가에서 울고 있었을 뿐, 내가 부탁하면 대신 죽기라도 해주셨을  전도사님.
 증동리 백사장에 피 흘려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가 이 땅에 일억 배로 퍼지소서.” 
  이 글은 한국대학생 선교회를 창설하여 지금의 한국교회를 이끄는 대부분의 지도자를 양성한 김준곤 목사님의 문준경 
전도사님을 추억하며 쓰신 것입니다. 그 문준경 전도사님으로 인하여 한 마을의 90% 이상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었고, 
한국교회 각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미친 정태기목사님, 이만신목사님, 고재식교수님 등이 문준경 전도사님 때문에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삶과 죽음은 미약한 밀알처럼 보였지만 밀알에서 싹이 나서 엄청난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커다란 마침표’로 아름다운 매듭을 지은 숭고하고 멋진 삶이었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이 이렇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름으로, 죽었으나 오히려 그의 믿음으로 더 크게 말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산 것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밀알신앙’, ‘밀알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이 밀알정신과 밀알신앙이 
사람을 세우고, 마을을 변화시키고, 국가를 지켜나가는 위대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참여하기 위하여 헬라인들이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이들은 헬라인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중에 몇몇 헬라인들이 예수님에게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그 면담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전승으로 전해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헬라의 도시국가 ‘에뎃사’에서 온 사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에뎃사의 왕의 아들이 한센스 병에 걸려 절망 중에 있었는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각 종 병자들을 고쳤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시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가면 
왕자의 병을 고칠 뿐만 아니라, 이런 유능한 인재를 파격적인 조건으로 등용하면 국가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유대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달갑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에는 모두에게 
좋은 제안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면담 요청에 예수님을 조금 엉뚱해 보이는 대답을 합니다. 23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여기서 ‘영광을 얻다’는 32절과 34절 말씀에 ‘들리다’와 연결이 됩니다. 
‘들리다’는 십자가에 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위에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을 때가 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을 비유로 ‘밀알의 씨앗’을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편한 길, 
부귀영화가 보장되어 있는 제안을 거절하시고 좁은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처럼 
예수님은 죽고, 그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 많은 생명들은 살아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밀알처럼 죽어서 그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인류를 멸망에서 건지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밀알신앙, 밀알정신이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1919년 3월1일 오후2시, 경술국치가 있은 지 10년이 되기 전에 서울 인사동에 있는 태화관에서 “五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라는 서언으로 조선에 전국적인 독립운동의 불꽃이 여기서 
점화됩니다. 
 이 운동에 자랑스런 감리교회와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에 기독교인이 16명이었으며, 그중 
9명(신석구, 이필주, 신흥식, 정춘수, 최성모, 오화영, 박동완, 박희도, 김창준)이 감리교인었습니다. 또한 상동교회, 
정동교회, 중앙교회는 모든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제암리교회, 매봉교회도 빼놓을 
수 없는 감리교회의 자랑이자 역사입니다. 
 당시에 기독교인의 숫자는 겨우 전체 인구의 1.5%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같이 백성들 선도하며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에게서 배운 ‘밀알신앙, 밀알정신’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나라의 주권을 
찾고, 빼앗긴 민족혼을 되찾으려는 이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죽어서 산다.’는 밀알신앙을 갖고 있는 자랑스런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시대를 이끈 위대한 힘이었습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외부적으로 보이는 물량적인 힘과 권력이 세상을 이끄는 힘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 힘을 얻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며 싸웁니다. 한국교회도 지금까지 개교회주의에 집착하면서 개인 구원과 개인 축복만을 강조했고, 
양적인 성장만을 성공과 부흥의 척도로 삼아왔습니다. 그러나 요즘 대형교회들과 대형교회들의 목사들이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고, 진정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교회를 향한 사람들의 비웃음은 더 노골적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향하여 ‘기독교인들은 자기밖에는 모른다.’
고 비판합니다. 

 아주 오래 전 교육전도사 시절로 기억합니다. 교회의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서 버스를 탔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서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적당히 자리를 잡고 서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 있는 사람이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거장에서 버스는 섰고, 그 사람은 이것저것 물건을 챙기느라 차가 떠날 때 즈음 가까스로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정거장에서 한 무리에 아줌마들이 큰 소리를 내며 들어오더니 제가 앉으려는 자리에 어떤 못생긴 아줌마가 엉덩이를 
먼저 내밀더니 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더니 큰 소리로 앞에 있는 일행을 부르는데, 저는 정말 창피했습니다. ‘권사님, 
이리와 내가 자리 잡아놨어.’하면서 엄청난 선행을 하는 양 뿌듯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더 못생긴 아줌마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자리를 빼앗긴 괘씸한 마음과 싸구려 기독교를 만드는 저 아줌마들이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지독한 이기주의 신앙, 나 밖에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의 한 단면입니다. 자리를 
내 준 아줌마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배려와 나눔을 실천했다고 스스로 얼마나 자부했을까요? 그들만의 천국입니다. 그들만의 
교회입니다. 저는 그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부끄러운 자화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지금 살아계셨다면 통탄할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존감을 
회복합시다.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정체성을 보여줍시다. 시대를 이끄는 힘은 외향적으로, 물량적으로 큰 
힘과 권력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에서 배웠듯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듯이 죽어서 사는, 작은 시작이지만 커다란 
마침표를 찍는 ‘밀알신앙, 밀알정신’입니다.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밀알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시대를 이끄는 진정한 힘이 죽어야 사는 밀알신앙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밀알정신으로 사신 
예수님을 우리도 따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창조적인 소수로 시대를 선도하고 민족을 이끌었던 그 힘을 우리에게도 주옵소서.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산다는 것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이 세상을 만들어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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