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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2.23 12:49 조회 1,459 추천 0
2014년 2월 23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Feb_23)
하나님의 계산법  마태복음25:14~30

  한 주간 여러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이집트 성지 순례단 폭탄 테러와 폭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경주에 있는 
한 리조트 강당 건물이 무너져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황망하게 목숨을 잃은 영혼들과 유족들 위에 
그야말로 인간의 말로 위로할 수 없는 하늘의 위로함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이렇듯 우리네 삶이 우여곡절이 많고, 만만치 않은데, 여기까지 그래도 잘 견디고 잘 살아 오셨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으로 살려고 오늘 여기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지금 잘 살고 있고, 잘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그 누구보다 
더 여기까지 잘 살아왔고, 여기 예배에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을 여러분 스스로가 축복하며, 여러분을 소중하게 
여기고 여러분 스스로를 칭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여러분을 향하여, 여러분을 응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놀라운 은혜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마음의 빗장을 열고 우리를 응원하시는 따뜻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한 주간 동안 또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에 진한 아쉬움을 갖게 한 것이 김연아 선수의 은메달 소식입니다. 이틀 
연속 무결점 연기를 펼치며 ‘피겨 여왕’의 면모를 보인 김연아의 스케이팅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해외 외신들도 판정에 대해 의문을 계속 제기했습니다. 러시아의 홈 텃세가 아니냐며 
이해되지 않는 편파 판정에 대한 비난 목소리를 높였고, 한국빙상연맹은 공식적으로 재심의 요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아나운서는 ‘푸틴, 동네 운동회를 할 거면 우릴 왜 초대 한 거냐. 소치는 올림픽 역사의 수치’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누구보다 아쉬워할 김연아선수를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다시 재기하여 한 차례 국제대회를 
참석하고 예전에 실력을 내며 멋지게 현역생활의 매듭을 지은 김연아선수에게 경의를 표하고,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김연아선수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뿐이네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소치 올림픽에서 
심판들의 홈 텃세는 두고두고 수치로 남을 듯. 신경 쓰지 마요. 김연아는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는 여왕이니까요.’ 
 
 이렇게 우리 국민들의 민도와 의식의 수준이 매우 성숙해져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꼭 메달을 따지 
않아도 그 메달을 향한 도전의 과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을 하고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영상으로 소개한 대로 이규혁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상화선수가 나온 힐링 캠프에 그 다음 주에 출연했다는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하시는 기준도 메달을 획득했느냐 보다 메달을 따기 위하여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보신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의 핵심 내용입니다. 
  본문은 흔히 ‘달란트의 비유’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당시에 익숙한 생활과 문화의 단편들을 비유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래서 귀족들이 로마의 원로원에 가서 분봉왕(지방 영주와 같은)의 직위를 받아 오곤 했습니다. 그 
주인이 세 명의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출타하게 됩니다. 한 달란트는 일반 
노동자의 20년 연봉쯤 되는 돈입니다. 지금 우리의 돈 가치로 환산한다면 한 달란트는 4억 원 정도, 두 달란트는 8억 
원 정도, 다섯 달란트는 20억 원 정도 된다고 봅니다. 작은 액수가 아니죠. 이 맡겨진 달란트는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삶의 모든 자원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앞에는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종말론의 중심 주제인 ‘준비하고 깨어있음’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이 오시는 날을 준비하고 깨어 있다는 것이 단순한 믿음만을 가지고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믿음을 활용하여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어서 달란트의 비유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종말의 시대에 잘 사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하여 오늘 본문의 말씀을 좀더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21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이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하고” 그리고 23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이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하고”
 앞 선 21절 말씀은 다섯 달란트를 맡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남겨서 받은 칭찬이고, 23절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두 
달란트를 남겨서 받은 칭찬입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산법은 지금 우리의 계산법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본 다면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금메달,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은메달,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동메달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산법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금메달,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금메달, 
그리고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실격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만큼의 이익을 남겼느냐가 아니라 내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느냐를 보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 까지 내게 주신 은사와 내 삶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자는 동기가 순수한 착한 사람이요, 충성스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을 기다리는 자의 올바른 삶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만 가만히 기다리는 자세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자는 동기가 악하고 게으른 자인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은 복음을 위해 바쁘게, 신나게 일하며 살라는 부름이었습니다. 신령한 삶, 영적 승리의 삶을 
위한 고단한 삶으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그의 제자들의 삶이 쉽고 편안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길은 처음부터 좁은 길이이었습니다. 충성의 길이었습니다. 그 충성의 대가는 절제와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그것들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종말의 시대에 삼가야 할 태도가 바로 게으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적해야할 치명적인 악이 바로 게으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게으름에게 질 수 밖에 없고, 
마지막 때 충성의 열매는 맺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님이 쓴 [게으름]이란 책에서 “비전의 사람, 사명의 사람들에게는 이 땅의 삶이 유한하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짧다. 시간을 선용하는 것이 충성이다. 그러므로 게으름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성향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불충성이요, 맞서 싸워야 할 내속의 악이다. 게으름은 충성하기 위해 제거되어야 할 대표적인 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몸이 게으르다고 혀까지 게으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일수록 그의 입은 더욱 
분주합니다. 핑계 대기에 바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비판하기에 바빴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내가 남겼나이다.’라는 말로 끝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무슨 말이 그렇게 많고 핑계가 
많은지 혀가 분주하기 짝이 없습니다. 

 게으름에 관하여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엉뚱한 일에 바쁜 것이 게으름이라는 것입니다. 
[게으름]이라는 책에서 이것을 ‘부지런함을 가장한 게으름’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바쁜 것은 충성의 
열매가 아니라 내 욕망을 실은 육체의 열매입니다. 자기 일에 바빠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이 게으름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고 낮잠만 잤을까요? 아마 뭔가 자기 일에 분주했을 것입니다. 자기 인생 
목적을 상실하고 엉뚱한 일에 바쁜 것이 게으름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계산법은 세상의 계산법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상대 평가하여 줄을 세우고, 
비교하고, 순위를 매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평가하십니다. 사람들끼리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순위도 매지기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진정성의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하느냐를 보십니다. 그러면 모두가 금메달입니다. 
하나님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또 하나 하나님의 계산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29절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충성된 종은 더 풍성해 진다는 것입니다. 종말을 준비하며 애쓰는 성도 여러분의 작은 충성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충성된 자는 더 풍성하게 되고, 게으른 사람은 있는 것도 빼앗기기에 두 사람의 
마지막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여러분의 인생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영적 수준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충성되면 더 높은 차원의 영적인 거인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복이 여러분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 충성하면 하나님은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더 나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징기스칸에게는 그가 황제가 될 것을 믿고 끝까지 생사고락을 같이 한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징기스칸은 그들을 
‘타르 탄’이라고 불렀습니다. 징기스칸은 황제가 되자마자 타르 탄들에게 다음과 같은 특권을 부여했습니다. 

  첫째, 언제든지 누구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왕의 집에 들어올 수 있다. 
  둘째, 전쟁이 끝나고 나면 노획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먼저 골라 가질 수 있다.   
  셋째, 세금이 면제된다. 
  넷째,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지어도 9번까지는 용서받을 수 있다. 
  다섯째, 나라 안에서는 가지고 싶은 땅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여섯째, 이러한 권리는 앞으로 4대까지 부여한다.

 이 세상의 나라인 로마제국, 몽골제국에 충성한 자에게도 커다란 보상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자에게 
하나님은 금메달 이상의 면류관을 분명히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최고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자를 착하고 충성되게 보십니다. 우리가 대적해야할 치명적인 악은 게으름입니다. 
엉뚱한 일에 바쁜, 부지런함을 가장한 게으름을 정리하고 정돈해야 합니다. 지금의 작은 총성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충성하는 종은 더 점점 더 풍성해집니다. 어느새 영적인 거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이렇게 살다가 하나님이 걸어 주시는 금메달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종말의 시대에 하나님의 종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내게 맡겨진 일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하게 하여 주옵소서. 게으름을 몰아내고 충성되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 하고 있는 작은 
일을 귀하게 여겨 더 풍성하게 깊어지고 높아지게 하옵소서. 주님 오시는 그날에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한 자에게 주시는 
하늘의 금메달을 목에 걸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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