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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월 26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1.26 12:56 조회 1,464 추천 1
2014년 1월 26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Jan_26)
오늘 택하라      여호수아24:14~18 

 비범한 사람은 평범한 일상에서 보석 같은 교훈을 찾아내고, 그 교훈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한 나라에 대통령이 되기까지 자신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소개한 글이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먼저 떠올랐습니다. 대통령은 유년시절 부모님과 함께 구두를 사려고 구둣가게에 갔습니다. 주인아저씨가
 “앞이 둥근 것과 각진 것 중 어떤 구두가 마음에 드느냐?” 물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그는 계속 구두를 살펴보기만
 할 뿐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날 구두를 맞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다음 날 다시 
부모님과 함께 구둣가게를 찾았지만, 여전히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답답한 마음에 자기가 
알아서 멋진 신발을 맞춰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그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구두를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내민 구두는 한쪽 코는 둥글고, 다른 한쪽은 네모진 짝짜기 구두였습니다. 울상을 
짓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구둣가게 아저씨가 말합니다. “결정할 줄 모르는 아이는 이런 신발을 신어야 하는 거야.” 
어린 그는 매우 창피했지만 그 때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주어진 기회에 결정하지 못하면 짝짜기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것을, 선택해야 할 때 신중하게 결단하지 못하면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이 어릴 때의 교훈을 마음에 담고 국정과 국사에 중요한 일을 선택하고 결단하는 시기를 놓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여호수아의 고별사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모세에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여호수아는 어느덧 노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여호수아는 이제 
백성들의 지도자요 어른으로서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우리를 참 많이도 
닮았습니다. 광야시절 어려울 때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 철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르고 달래서 
어렵게 가나안에 정착시켰습니다. 그런데 정착해서 평안해지니 점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심지어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는 이방신을 섬기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위기를 직감한 여호수아는 민족의 앞날을 염려하며 결단을 촉구하는 
단호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은 두 가지인데, ‘기억하라 그리고 선택하라’입니다. 

 무엇을 기억하라는 내용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던 땅에 거주하던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번성케 하셨습니다.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종노릇 하던 자들을 해방시켜주셨습니다. 비록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걸었지만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무기나 
군대도 없었지만 가나안의 족속과의 전쟁에서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 땅과 집과 성읍을 주셨습니다. 심지 아니한 포도와 감람 열매까지 거두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의 결과입니다.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충성스런 신앙심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것을 너희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헨'이라는 단어는 '구부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위에서 아래로 
베푸는 호의를 말합니다. 신학적인 의미로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베푸는 자발적인 호의’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Grace'입니다. 이 말을 우리의 삶과 연관시켜 아주 명쾌하게 설명한 어느 신학자의 해석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위를 향한 사랑, 그것은 예배이다. 바깥을 향한 사랑, 그것은 자비이다. 아래로 향한 사랑, 그것이 
바로 은혜이다.” 우리는 받을 자격이 전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을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성탄절 칸타타 때에 찬양으로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허리를 굽혀서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것이 은혜의 원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조건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처럼 우리 주님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마지막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까지 모두 쏟으셨습니다. 나의 죄 
값을 모두 지불하시려고 온갖 모욕과 멸시와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행위대로 보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영생을 얻었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천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여호수아가 민족의 지도자로서, 한 족장과 가정의 아비로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죽음을 앞두고 이 말을 전할 
장소로 세겜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세겜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 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 곳입니다. 430년 애굽의 종살이와 40년 광야의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꿈속에서 상상했던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와 감격 속에 처음으로 예배를 드렸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그 장소가 바로 
세겜이었습니다. 그 때의 감격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상징적 메시지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여호수아의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신앙 여정 속에 있었던 세겜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서 감격하여 예배를 드렸던 그 장소, 그 때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기억해야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합니다. 
찬양하며 예배하며 살아야합니다.  

 은혜를 기억하라고 강조한 여호수아는 그 다음으로 선택을 종용합니다. 결단을 촉구합니다. 그것도 바로 오늘, 
여기서 선택하고 결단하고 외칩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위기를 본 것입니다. 아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긴급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삶의 놀라운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10여년이 넘는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을 마치고, 이제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정착하는 단계입니다. 
그들은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더 이상 천막을 치고, 거친 모래바람 부는 광야를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면 됩니다. 여기에 여호수아의 
고민이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을 때도 있었지만, 광야에서는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았는데 평안해지니까, 이제 살만하니까, 배부르고 등 따듯하니까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은혜를 모르고 살 때가 많습니다. 잘 해주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잘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뿐더러 한 가지 서운하게 해 준 것 때문에 오히려 불평하고 화를 내는 것을 보면 
배신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군 시절 군종병과 인사과 업무를 같이 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병들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군기가 바싹 
들은 이등병을 교회에 데려가서 차와 과자를 주면서 긴장을 풀게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탈영을 할 뻔한 병사도 상담해서 위기를 잘 넘기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마운 
마음이 그리 오래가지 않더군요. 조금씩 군대 밥이 늘어가고 계급이 올라가면 교회도 안 나오고, 마주쳐도 대충 
인사합니다. 조금 편해지니까 신병 시절의 어려움을 잊어버리고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군대에서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질의 복을 많이 받았으나 인색한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며칠 
동안 여러 가지 검사를 했습니다. 드디어 검사결과를 가지고 주치의가 왔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차트를 
살펴보던 주치의가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장의사 좀 빨리 불러와!” 이 소리를 귀가 밝은 
성도가 엿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몹시 충격을 받았지요. 아마도 나를 배려해서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게하고 말하려고 자기에게는 숨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은 이상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어서 
“아니 내가 이렇게 죽는 것입니까? 제발 좀 살려주세요.” 라고 의사에게 말하려고 헸는데, 급한 환자가 
발생하여 호출하는 바람에 말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에 소리를 지르며 통곡하고 
있던 차에, 그 성도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이 문병을 왔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목사님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도하던 성도가 예배를 마친 후에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제게 넘치는 복을 주셨는데 
너무 인색했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제가 1억 원을 헌금하겠습니다.” 목사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렇게 많은 돈을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그동안 너무 미련했습니다. 제가 받은 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필요한 곳에 써주십시오.” 잠시 후에 레지던트인 장의사가 왔습니다. “어디가 제일 불편하십니까?” 
알고 보니 주치의가 장의사를 찾은 것은 차트를 확인하기 위해 레지던트를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자신의 병이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성도의 안색이 몇 차례 변했습니다. 그리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까 제가 말한 금액에서 ‘0’ 하나만 빼면 안 될까요?”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크게 웃지 못하는 것은 그 성도의 모습에 겹쳐져 있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이 인간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여호수아는 아주 단호한 어조로 제대로 살기 위한 오늘의 선택을 
촉구합니다. 다같이 본문 14~1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안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금주는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이 있는 주간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보고 싶었던 가족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의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그러나 개인정보유출이라는 사건을 접하면서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도 
거래할 은행이 있고, 돈을 융통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렵다고 하는데, 여행지에 가보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고, 아마도 설 연휴기간에도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어렵지만 정말 
그전처럼 죽을 만큼 어렵지는 않은 것이지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이 커서 그렇지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대의 문제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는 시각처럼 풍요로운 것이, 윤택한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풍요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의 신앙은 안녕하신가요? 위기감을 느낀 여호수아의 마음이 아닌가요?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이번 설 명절은 자녀들에게 생명과 번영의 길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더 이상 멀리가면 안 됩니다. 
이렇게 가면 이스라엘의 미래가 불을 보듯 뻔할 것을 안 여호수아는 위기감을 느끼며 유언을 전하듯 축복의 길을 
전했습니다. ‘기억하라. 그리고 선택하라’ 지금 이 시대, 오늘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해야할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다음세대, 미래세대에게 전할 정문일침이어야 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 섬기겠노라.’ 이 선택과 결단의 고백이 있는 성도 여러분의 복된 가정과 가문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구원하여 주시고 이만하도록 살게 해 주신 것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깊이 감사하고, 
하나님 더 잘 믿고 잘 섬기는 우리 모든 자녀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설 명절 하나님의 은혜로 안전하게 
인도해주셔서 행복하고 즐겁고 의미 있게 잘 보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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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원옥 2014.02.03 14: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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