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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월 19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1.19 12:48 조회 1,436 추천 0
2014년 1월 19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4_Jan_19)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5:12~18
 새해 새 결심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시작했는데, 아직 젖어있는 습관 때문에, 그리고 예기치 않은 복병 때문에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낄 시기입니다. 그래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열심히 살아오신 여러분들 애쓰셨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일을 다 
내려놓고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안식을 통해 재창조함을 받는 시간입니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선생님에게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천안하면 호두과자가 유명합니다. 많은 가게 중에 80년간 변함없는 맛으로 전통을 지켜온 ‘학화 호두과자’가 원조이며, 맛도 
좋다고 제일 소문난 집입니다. 그 가게가 더 알려진 것은 얼마 전에 돌아가신 故심복순권사님 때문입니다. 사진으로 뵌 권사님의 
인상은 참 선하고 인자하신 모습이었습니다. 그 분의 인상이 좋은 것은 얼, 정신, 마음씨가 예쁘시기 때문입니다. 심 권사님은 
오는 손님들에게 정중히 복음을 전할뿐만 아니라 호두상자 안에도 전도지를 넣어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는 호두 
빵 보다 더 맛있고 한 번 먹으면 배고프지 않는 생명의 빵,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생명의 빵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다윗보다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평생소원이었던 성전 
지을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권사님은 7교회를 건축해서 봉헌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학사업과 해외 근로자들의 도우며 대모 
역할을 했습니다. 권사님이 평소에 신앙의 기조로 삼고 있고 말이 있는데, ‘모든 일을 성심(誠心)으로 하면 성심(聖心)에 이르고 
삶에 큰 유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그 뜻을 먼저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먼저 올려 드리면 자신이 행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높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사는 자는 진정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주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암송하고 있는 말씀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만을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의 말씀의 맥락상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일부분입니다. 우리에게 알려준 하나님의 뜻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 전체라고 봐야 옳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의 배경을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운 것은 제2차 
선교여행 때였습니다. 그 때가 주후 51년경으로 추정이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그 후에 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쓰여 진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데살로니가에 살던 교인들은 유대인들의 극심한 반대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모든 것을 다 걸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곧 오시니 지금 당하는 핍박과 박해의 어려움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고, 더불어 이 세상에서 사는 현실에 문제에 대해서 
당연히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것을 다 건 그들의 희망,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 갑니다. 박해는 더욱 심해집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유혹을 받아 배교하고, 교회를 떠납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무언가 정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전까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임박한 재림의 때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할 윤리적 지침이었습니다. 
그 윤리적 지침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기전까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향하며 살아가야할 하나님의 뜻을 조목조목 알려 주고 있습니다. 
먼저는 교회 안에서 수고하는 자들을 사랑하며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12절 하반절에 ‘너희가 알고’에 안다는 것은 사랑과 신뢰가 
기반이 된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마음으로 대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이 영적 질서가 파기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가르침을 무겁게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간에 서로 귀하게 여기고 화목하라고 권합니다. 몸이 아프면 큰일을 못하는 것처럼 불화하면 교회의 본연의 일이 
지체됩니다. 불화는 온전한 예배를 방해합니다. 기도를 막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 또 다른 휘장이 둘린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와 평화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게으른 자들은 권계하고,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이해가 되는데, 권계는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권계는 단순한 훈계나 책망보다는 타이르며 조심스럽게 마음으로 
호소하는 간절한 권면을 뜻합니다. 
 그리고 좀 더 어려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손해 보며 살라는 것입니다. 져주며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고 삶으로 모범을 보이신 가르침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삶을 본 받을 것을 권면합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욕을 당한 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 즉 참으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렇게 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그러나 그렇게 살기는 낯설고 부담스러운 말씀이 이어집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문맥상 여기까지가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는 말씀을 받아들이기에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항상, 쉬지 말고, 범사’라는 
단어에서 걸립니다. 그리고 이해도 안 되고 받아들이기도 어렵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셨는데, 
문제는 이 윤리, 명령이 너무도 지나치게 고상하고, 지키기 어려운 높은 윤리의 기준이 제시되었다는 것입니다. 악으로 대하는 
사람을 선으로 대하라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희노애락이 인생이라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당신의 뜻이라고 명토박아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는 이 말씀을 영남대학교 김동건 교수가 쓴 [빛 색깔 공기]라는 책을 통해서 그 답을 얻었습니다. 김동건 교수는 책에서 살면서 
항상 기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며, 이것은 삶에 대한 자세를 말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삶을 기쁨과 감사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바로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맞이하라.’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사 모든 일을 기쁨과 감사로 
맞이하면 그의 믿음대로 기뻐할 일과 감사할 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도 하나님이 쉬지 않고 들으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가 찾으면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라는 말씀도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 다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그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을 믿고,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가 살고, 내 영을 맑고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선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 쟁이 요셉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본인은 특별하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있다면 꿈을 잘 꾸었고, 눈치 없게 그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했던 것과 아버지의 편애 때문에 인생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의 요셉의 삶은 파란만장한 인생의 우여곡절을 넘은 
한편의 인간극장과 같은 드라마였습니다. 요셉의 일생 중에 반전의 사건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형제이며 원수인 형들과 재회 장면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짧게 그의 생을 보았지만 하루아침에 사지에 내몰리고 이국의 객지에서 
노예로 산 세월과 몇 차례에 죽을 고비를 넘기는 여정 속에 얼마나 부모가 그리웠고, 동생들이 보고 싶었을까? 그 그리움이 클수록 
자기 팔아넘긴 형들이 얼마나 미웠을까? 
총리가 되어 꿈속에서나 보았던 형제들을 오랜만에 보았을 때 요셉의 마음에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을 텐데 성경에는 그런 
요셉에 대해서 한 마디의 언급도 없습니다. 다만 요셉은 사랑과 용서의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몰래 감추고 
먼저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한 살에 헤어졌던 동생 베냐민을 보자 마음이 복 받쳐 안방으로 들어가 울고 나왔다는 장면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놀란 형제들을 향하여 위대한 용서를 전합니다. “나를 여기로 보내신 것은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 때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후손을 잇게 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도 말고, 한탄하지도 마십시오.”
요셉이 이런 위대한 용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필 줄 아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 
왔어도 한마디의 불평과 신세 한탄을 한 내용이 없는 것은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와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자의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삶의 기준과 목표로 삼고 사는 자를 하나님을 높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자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도 더불어 형통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이 시대 우리가 추구하며 살아갈 하나님의 뜻을 종의 입술을 통하여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 주님 오시기 전까지 
이렇게 살라고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듣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교역자와 상근자, 
평신도 지도자를 사랑하며 존경하십시오. 성도들 서로 귀하게 여기며 화목하십시오. 게으른 자를 권계하십시오.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십시오.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향하며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를 사랑과 정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명토박아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셨으니, 그 뜻대로 살기를 새롭게 
결단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서 심복순권사님처럼 행복하게 하옵소서. 요셉처럼 최후 승리하며 형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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