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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1월 24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11.24 13:39 조회 1,555 추천 0
2013년 11월 24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3_Nov_24)
멋진 매듭, 더 멋진 내일   디모데후서4:1~8

 우리교회 남녀선교회 회원들은 참 일을 잘 합니다. 마치 군 작정을 방불케 했습니다. 올 해 일사분란하게 김장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선교회 총회장과 임원들이 절인 배추를 가지러 간 사이 
남선교회 총회장과 임원들은 식당 안에 있는 의자와 테이블을 정리하고 나무로 김장 속을 버무릴 틀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절인 배추와 무가 도착하자 제자훈련 성경공부를 하러 온 예비 된 제4기 제자훈련생들과 함께 
하역 작업을 마치고, 남선교회 회원들은 무 채썰기 작업까지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기도회를 마친 여선교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절인 배추를 다시 씻었고, 오전에 본격적인 김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김장은 제가 심방을 다녀왔더니, 그 시각이 오후2시 즈음되었는데, 이미 다 
끝냈다는 이야기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김장작전 완료라는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여선교회입니다. 

 맛이 궁금하신가요? 맛은 당연히 최고입니다. 국산 재료를 엄선해서 썼고, 거기에 정성이 들어갔고, 특별히 양념 
비비는 중 저도 조금 힘을 보탰는데, 제가 원래 땀이 많아 제 땀, 육수도 들어가서 그런지, 제가 지금까지 먹어 
본 김장 김치 중에 최고입니다. 궁금하시면 오늘 점심 식사 때 겆절이 한 김장 김치를 주신다고 하니 맛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그 김장 김치의 일부는 우리교회 교우 중에 김장을 담그기 어려우신 분들과 함께 나눠 먹기 위하여 10Kg씩 비닐에 
담고 야무지게 매듭을 지어 아이스박스에 다시 넣어서 ‘사랑의 김장’이라는 글귀와 함께 직접 배달해서 보내 
드렸습니다. 특별히 교회의 어르신이신 원로장로님들 가정도 택배로 보내 드렸습니다. 참 보기 좋았습니다. 
일사분란하게 서로 도우며 함께 일하는 모습도, 사랑의 마음을 담아 어르신과 어려운 교우들에게 나누는 모습도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우리교회가 이렇게 섬김과 나눔이라는 사랑의 끈으로 야무지게 묶여 있는 것 같아 너무도 
감동을 했고,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큰일을 아름답게 매듭지을 수 있었습니다. 

 김장을 하고 비닐로 포장하고 매듭을 잘 지어야 그 모든 수고와 정성이 잘 전달될 수 있듯이 우리의 삶과 신앙에 
있어서도 매듭을 잘 지어야 합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의 하나로 시간을 듭니다. 인간만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고, 그 흐름을 잴 수 있는 
도구인 시계를 발명하며 그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시간의 흐름의 매듭을 지어 그 의미를 부여하고, 그 시간의 매듭의 의미들이 모여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매듭의 중요성을 잘 알려주는 나무가 대나무입니다. 대나무는 유연하게 잘 휘어지지만 부러지지 않습니다. 
그리 두꺼운 나무가 아니어도 단단합니다. 그래서 선비의 절개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대나무가 작지만 그렇게 
강할 수 있는 것을 바로 매듭 때문이라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입니다. 주어진 시간의 매듭을 바르게 맺었기에 
그 매듭을 발판 삼아 새로운 줄기가 터를 잡고, 더 탄탄한 대나무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 절기상 성령강림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 주 부터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대망하고 정성으로 
준비하고 맞이하는 강림절,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전통적으로 한 해의 실질적인 시작을 예수님을 맞이하는 이 때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해의 시작을 의미하는 대림절을 앞두고 야무진 매듭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주변적인 이야기는 그만두고 본말의 질문을 드립니다.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한 해를 매듭을 지을까요? 사도 
바울이 권면하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인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최후를 맞을 준비를 하면서 디모데에게 준 
유언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앙의 대선배요, 스승이요, 원로인 바울이 믿음의 후배요, 젊은 동역자요, 아들처럼 
여기는 디모데에게 그야말로 마음을 담은 고별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가장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색채가 짙은 최후 유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을 요약하는 세 마디가 있습니다. ‘싸웠고, 마쳤고, 지켰노라’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여기서 ‘싸웠다’는 이미지는 고대의 여러 운동 종목들 가운데 레슬링 경기를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레슬링 경기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싸움이었습니다. 지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의 방심도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사투였습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고통스런 싸움을 해왔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때문에 굶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배가 파선이 되어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기고, 한마디로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이와 같이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하는 싸움이 선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는 싸움이 선한 싸움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인생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공부를 하고, 왜 돈을 벌고, 왜 사업에 성공하고, 왜 인생에 
성공해야 하는지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단지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싸움이었는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싸움이었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의 경우임을 전제하고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외과 의사가 하루에 얼마나 많이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의사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제가 얼마나 굶주려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병원의 경우에는 수술을 한 횟수에 따라서 돈을 받게 되나 봅니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수술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돈이 궁하면 궁할수록 그 날은 수술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무엇에 굶주려 있나요? 존 웨슬리는 감리교 설교자들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언제나 그 목적을 분명히 상기 시켜 주었습니다. “나라와 교회를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확장시켜나가기 
위해서.”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나요? 무엇에 굶주려 있나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나요? 존 웨슬리처럼, 사도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사도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달리기 하는 선수가 끝까지 완주했다는 말입니다. 마라톤에서 
일등을 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지만, 끝까지 완주하는 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의 경주 앞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이후 17절 하반절에 보면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라는 표현처럼 박해와 핍박 중에 잘 견뎌내어서 끝까지 완주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큰일을 합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잘 참고 견디어 내어서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입니다. 

 1968년 멕시코 시티에서 벌어진 하계 올림픽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올림픽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라톤 경기가 
열렸는데 1등한 선수를 비롯해서 모든 선수들이 다 결승선까지 들어 왔습니다. 우승한 선수들에게 메달을 달아 준 
시상식이 끝난 지 한 시간이 지났고 대부분의 관중들 역시 자리를 떴습니다. 드디어 메인 스타디움의 불도 다 
꺼지고 스타디움은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이 때 한 선수가 한쪽 다리에 피가 흥건한 채 다리를 질질 끌면서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탄자니아의 36살 먹은 선수 잔 스태픈 아크와리(John Stephen Akhwari)였습니다. 
아크와리 선수는 무릎과 발목에 심한 부상을 입어서 도저히 경기를 끝낼 수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완주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기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경기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뛰셨습니까?" 아크와리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고 분명했습니다. “내 조국은 경기를 시작하라고 나를 멕시코 시티에 보낸 것이 아니라 
끝내라고 보냈습니다.”

 올 해 나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입니까? 부장, 팀장, 속장, 교사, 찬양대원, 사역팀원입니까? 그 맡겨진 일을 
시작했다면 달려갈 길을 다 마치시기 바랍니다. 멋지게 마무리 하식 바랍니다. 멋진 마침표 찍으시기 바랍니다. 
 궁극적으로 천성을 향해 가는 순례자인 우리 모두는 순례 여정 중에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장애와 유혹과 시험이 
있을지라도 마침내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천성에서 이르는 가슴 벅찬 환희와 감동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사도 바울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여기서 믿음을 지켰다는 것은 군인이 상관을 신뢰하고 그 어떤 
명령이든지 최선을 다하여 수행하려하는 충성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전쟁 중에 상관으로부터 ‘돌격 앞으로’
라는 공격 명령이 떨어집니다. 포탄이 빗발칩니다. 적군이 공격하려고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관의 명령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목숨을 내걸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상관의 신의를 
지키는 믿음으로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의리와 신조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서는 안으로부터 생기는 많은 갈등과 싸워야 했고, 밖으로부터 오는 많은 유혹과 
환난과 맞서 싸워야 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의 지조를 굳건히 지켜 냈습니다. 

 지금도 그 잔영으로 여전히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는 지난 10월에 다녀온 국내성지 순례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신앙의 기념비로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남도 지역에 이렇게도 많은 순교자가 있었다는 것이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런데 그 당시 대한민국의 시골 변두리, 이름도 생소한 섬에서 일어난 
학살, 그들의 죽음을 누가 알아주었겠는가 말입니다. 어른들이야 자신의 의지대로 순교를 선택한 것은 이해될 수 
있지만 어린아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순교자들의 이름에 나이가 기록되어 있는데, 
아주어린 아이에서부터 초등학생들도 꽤 많았습니다. 야월교회는 한 교회 교인 전체 65명이 순교했고, 염산교회는 
전체 교인의 3분의 1의 숫자인 77명이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죽창에 찔려 죽으면서, 목에 돌을 메달아 수장을 
당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신의를,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순교 당한 어린아이들의 이름을 보면서 참 많이도 
부끄러웠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너무도 사소한 일로, 너무도 쉽게 예수님을 향한 신뢰와 지조를 깨 버렸던 나약한 우리의 모습을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한 해를 뒤돌아 볼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실 때 얼마나 많이 철없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가슴을 태우고 조마조마 하셨을까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감히 얼굴을 못 들었던 우리의 모습을 솔직히 인정하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목숨을 내 놓으시며 까지 우리를 향한 신뢰를 보여주신 그 주님께 한 해를 매듭짓는 
이때에 우리도 주님께 감히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님이 인정하실만한, 감동하실만한 신뢰를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무엇일지는 각자 다 다르겠지요. 고민해 보시죠. 예수님을 향한 나의 신의와 지조를 보여드리고 
증명할만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한 번 멋지게 보여드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6절에서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 
죽음 직전을 아니지만 이 마음으로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제라는 양이나 비둘기 
같은 제물을 제단에 올려놓고 포도주를 붓는 의식을 말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이 앞으로 순교의 제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우리네 성도의 삶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 거룩한 
산 제사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올 한해의 삶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의 삶이 되었는지 깊게 묵상하고 또 묵상해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결단으로 이 한 해를, 아니 우리 생애를 멋지게 매듭짓는 한서의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벌써 한 해를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마음에 담고 한 주간 
깊게 묵상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지향하는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시고, 올 해 나에게 맡겨진 일에 
멋진 마침표를 찍게 하시고, 죽음과 바꾸면서 신의를 지켰던 순교자들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이 감동하실만한 
신뢰를 보여드릴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네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 나는 제물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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