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방송

  • 서브 왼쪽

주일설교

11월 10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11.10 16:38 조회 1,298 추천 0
2013년 11월 10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3_Nov_10)
깊게 물들게 하소서 에베소서4:13~16

 건망증이 심한 부부가 휴일에 등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인이 깜짝 놀라며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어머, 여보 어떡하죠? 내 정신 좀 봐. 다림질하다가 전기 코드를 그냥 꽂아두고 왔네. 집에 불이 나면 
어떡하지?” 그러자 남편이 아주 여유롭게 씨익 웃으며 말했습니다. “걱정 마. 나도 세수하고 나서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왔어”

 연세 드신 노부부가 TV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남편이 물었습니다. “당신 
주방에 가는 거야?”, “그래요. 그건 왜 물어요?”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럼 오는 길에 냉장고에 
있는 빵과 우유 좀 갖다 줘. 까먹을지도 모르니까 종이에 적어서 가!” 그러자 부인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치매라도 걸린 줄 알아요? 걱정 말아요.” 잠시 후, 부인이 접시에 삶은 계란을 가지고 
들어오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고마워, 여보. 그런데 왜 소금은 안가지고 왔어?”

 건망증까지 닮아서는 안 되겠지만 부부는 닮는다고 합니다. 사람은 같이 지내는 사람, 늘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물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산하는 온통 겨울을 나기 위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중입니다. 그 어느 채색보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색은 너무도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범접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이면에는 매우 슬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낙엽은 겨울을 
나기 위해 나뭇잎의 영양분을 뿌리로 내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탈색의 과정과 결국 땅에 떨어져 죽는 
죽음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우직하게 감당하다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는 과정은 우리에게 무언가 묵직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을 산을 바라보는 느낌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사색하게 하고, 자신을 성찰하게 하고, 살아온 삶을 반추하게 합니다. 
 이 산하가 붉게 물들어가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깊게 물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예수님을 많이 닮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그 온유와 겸손을 본받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목회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이 가을이 온통 붉게 물들어 가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에게 깊게 물들어 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를 가진 자들을 
인정해야 하며 동시에 그 다양성은 교회의 유익과 덕을 끼치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는 
목표로 일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교회 구성원들이 먼저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성숙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닮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 몇 가지 해야 할 일을 제시합니다. 

 먼저는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이 일치할 때에 믿음이 균형 있게 성장하게 되고 결국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섭리하시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날마다 찬양하며 기쁨을 노래하고 
감사를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믿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이 터라면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은 건물과 같습니다. 터와 건물이 하나가 되어야 건물은 
견고하게 서 있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일은 체험과 경험을 통해서 몸으로 체득해서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다’는 단어는 지식으로, 생각으로, 교리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한 인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심스럽게 전합니다. 지난 심야기도회 시간에도 나눈 살아있는 간증입니다. 김근덕, 안명희권사님 
가정에 오랜 동안 기도해왔던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결혼한 딸이 아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심야기도회 시간에 제가 가장 간절한 기도제목을 내놓으면 함께 기도하겠다고 성령의 감동으로 제안하게 
되었고 안명희권사님이 용기를 내어 공개적으로 자녀를 위한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권사님의 기도제목을 변함이 없었습니다. 응답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 때도 세밀하게 기도 응답의 수순을 밟고 계셨습니다. 먼저 딸의 아기 임신의 영향을 
줄 수 있는 피부병부터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수 년이 흐른 지금 확실한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 딸에게 아기를 주셨습니다. 믿고 있었던 하나님을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그 생생한 체험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들이 드리는 기도를 응답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과 체험으로 아는 것이 하나가 될 때 우리의 신앙은 깊어지는 것입니다.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깊게 물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1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에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어린아이는 온전한 
자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미성숙한 자를 말합니다. 어린아이는 미성숙하기 때문에 잘 속습니다.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서 늘 요동합니다. 이단에 쉽게 미혹을 당합니다. 사람들의 간사한 계략을 
간파하지 못하고 당합니다.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분별력을 가지고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들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자기 밖에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이 배고플 때 엄마, 아빠 사정을 봐서 우나요? 
배고프면 어디서든지 상관없이 웁니다. 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떼를 씁니다. 엄마, 아빠가 창피해하든 상관없습니다. 
 공동체 안에도 늘 자기주장만 옳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밥을 먹으러 가도 내가 가자는 곳으로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앞장서서 하는 일을 옳은 일이고, 똑같은 일인데도 
남이 하면 틀린 일입니다. 남이 해서 잘 되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야만 합니다. 어린아이입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 남을 먼저 살피고,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을 늘 절대화 정당화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의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부분적으로 압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가장 많이 알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늘 자기가 최고입니다. 지엽적인 지식을 지나치게 절대화하고 주장합니다. 전체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종합적이고 통전적인 이해가 없이 늘 부분적인 것만을 보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불평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만 보고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당장 내일도 보지 
못합니다. 자기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오늘 당장 사야합니다. 몇 일만 기다리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참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런 어린아이의 생각을 버려야 성숙하게 되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자전적인 고백이기도 한 고린도전서13장 11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의 일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의 크기를 의미합니다. 작은 인식의 틀을 갖고 세상과 사람을 대하니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편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인식의 틀의 크기를 넓혀야 보지 못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래서 바른 시각으로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는 것입니다. 
 1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참된 것은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것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한다는 뜻입니다. 행하되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행한다는 것은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겸손과 온유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늘 자신을 손해 보는 것을 감수하는 자세입니다. 고통이 따른다 
하더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늘 따지고 계산기를 두들겨보고 자신에게 이익을 되는 일을 행하는 
사람은 아지 어린아이입니다. ‘교회 오면 늘 행복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힘이드냐고’ 말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사랑으로 행하다 보니 손해도 보고, 이상한 이야기도 듣고, 불이익도 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아이도 키우고, 가정도 지키고, 교회도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지요. 그것을 안 성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고향을 떠난 타향도,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도, 노예로 팔리고 옥에 갇혀도, 사자의 밥이 
되어도, 문둥병이 걸려도, 몸에 가시가 있어도 오히려 그 고난을 감사했습니다. 성숙한 사람들이지요. 
신앙적으로 어른들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에게 깊게 물들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자연을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알려주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계시가 맞는 것 같습니다. 이 가을이 
우리에게 큰 스승입니다. 깊은 가을, 깊게 물들어 가는 낙엽이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줍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벗어 버리고 이제는 어른이 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많이 닮아가고, 예수님께 
깊게 물들어가라 하십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게 하십시오.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십시오. 
분별력을 가지십시오. 남의 이야기도 들어보십시오. 내일을 보십시오. 그리고 사랑으로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제발 계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전부를 드려 보십시오. 그러면 어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깊게 물들어갈 것입니다. 이 가을처럼 예수님에게 
깊게 물들어 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오늘 주신 말씀이 내 심령을 물들이게 하옵소서. 그래서 내 영혼도, 내 삶도 물들이게 하옵소서. 
그래서 예수님에게 깊게 물들어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글 : 11월 17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현재글 : 11월 10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다음글 : 11월 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