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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0월 20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10.20 14:28 조회 2,099 추천 0
2013년 10월 20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3_Oct_20)
하나님 마음에 새겨진 사람 누가복음10:17~24
<엉뚱한 대화>
1. 선생님과 학생의 대화
 선생님이 진구에게 말했습니다. “진구야, 너 왜 필기 안하고 가만히 있니?”, “안 보여서요” 선생님은 진구가 너무 안쓰러워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 눈이 몇인데?”, “제 눈은 둘인데요.” 선생님은 너무 답답해서 또 물었습니다. “아니, 그거 말고 
네 눈이 얼마냐고?”, “제 눈은 안 파는데요.” 선생님은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어이구! 니 눈이 얼마나 나쁘냐고?”, 
“제 눈은 나쁘고 착하고 그런 거 없는데요.”

2. 아내와 남편의 대화
 아내가 설거지를 하며 말했습니다. “아기 좀 봐요.” 그래서 남편은 아기를 봤습니다. 한 시간 동안 아기를 보고만 있다가 
아내에게 행주로 눈탱이를 얻어맞았습니다.
아내가 TV를 보며 말했습니다. “커튼 좀 쳐요.” 그래서 남편은 커튼을 툭 치고 왔습니다. 아내가 던진 리모콘을 피하다가 
벽에 옆통수를 부딪쳤습니다.
아내가 빨래를 널며 말했습니다. “방 좀 훔쳐요.” 그러자 남편은 용기 있게 말했습니다. “훔치는 건 나쁜 거야.” 아내가 
던지 빨래 바구니를 피하다가 걸레를 밟고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아기를 재우며 말했습니다. “애 분유 좀 타요.” 그래서 남편은 분유통을 타고서 이리야 이리야 했습니다. 아내가 
던지 우유병을 멋지게 받아서 도로 주다가 허벅지를 꼬집혀 피멍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만화책을 보던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 자요.” 그래서 남편은 근엄하게 말했습니다. “아직 잠도 안 
들었는데 그만 자라니?” 아내의 베개 풀스윙을 두 대 맞고 거실로 쫓겨나서 소파에 기대어 울다가 잠들었습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아내가 출근하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문 닫고 나가요.” 그래서 문을 닫았습니다.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고민하고 서 있는데 화장실 가려던 아내가 보더니 엉덩이를 걷어차고 내쫓았습니다. 
아기 목욕을 시키려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기 욕조에 물 좀 받아요.” 그래서 아기 욕조에 담긴 물을 머리로 철벅철벅 
받았습니다. 아내가 뒤통수를 눌러서 남편은 하마터면 익사할 뻔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주변에서 뭐라고 하나요? 사오정, 4차원

 일반적인 상식과 생각을 뛰어 넘어 특이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을 가리켜 ‘4차원’이라고 합니다. 소통의 문제는 있지만 순수함을 
수반한 4차원의 모습은 오히려 매력이 되기도 합니다. 4차원 캐릭터를 갖고 있는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이 그 좋은 예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4차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선(線)이 1차원이고, 선이 모여 면(面)을 이룬 것이 
2차원이고, 면이 모여 입체(立體)를 이룬 것이 3차원이고, 여기에 시간이 더해진 것이 4차원입니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자들은 
우주는 이것보다 훨씬 많은 숨겨진 차원(Hidden Dimensions)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우주를 가리켜 
‘접혀진 우주’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이 다녀왔다는 3층 하늘도 그중 하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의식의 지평 속에도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라는 소녀가 꿈에 토끼 굴에 떨어져서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며 겪는 
신기한 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가적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라 말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상상력이 가능한 것은 
뭔가 우리 속에 숨겨진 차원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정말 중요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귀신을 내쫓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불안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능력이 자기들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해냈습니다. 물론 자기들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시키실 때는 능력까지도 함께 주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자기들을 통해 나타난 놀라운 현실 앞에 감격했습니다. 
영화 [벤허]의 감독인 윌리엄 와일러는 영화 시사회를 마치고 나서 “오 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단 말입니까?”
하고 스스로 감동했다고 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꼭 그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나를 통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이, 특히 생명의 
회복이 나타나난다는 것보다 더 가슴 벅찬 일이 있을까요? 갈등하던 사람들이 화해를 하고, 살맛을 잃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되찾는 일에 내가 어떤 역할을 했다면 이 보다 더 가슴 뿌듯한 일이 있을까요? 이렇듯 제자들은 황홀했습니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임무를 완수한 병사처럼 의기양양하게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를 합니다. 귀신들린 사람 앞에 서서 ‘그 사람에게 
나오라’고 외치자 복종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칭찬을 기대했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응답은 매우 차분합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19) 
그야말로 엄청난 약속이지요.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70인의 제자들에게만 주어진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어떤 일 앞에서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가능성을 따져보고, 내게 
돌아올 부담을 계산합니다. 하지만 내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확신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능력을 주시고, 장애와 반대 세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물론 물리적으로야 우리는 연약하지요. 거대한 힘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왜소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가 이루어내는 공적이나 업적의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이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들을 통해 일어난 사건에 시선을 빼앗긴 제자들에게 눈을 들어 다른 곳을 보라고 하십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20)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은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인장처럼 새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이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세계입니다. 이걸 알면 우리는 세상에서의 업적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성도들의 
기쁨은 우리를 통해 드러나는 외적인 결과들보다 더욱 근원적인 데서 유래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역할이 비록 미미하다 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새겨진 사람들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느 분이 자신은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앞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참 많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앞모습을 치장하는 일에 열심이니까요. 그런데 사람마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꼭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불일치의 정도가 심한 
사람일수록 사실 더 외롭고 공허한 사람이지요. 앞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남에게 드러내고 싶은 ‘나’일 것이고, 뒷모습은 
남에게 드러나는 ‘내 영혼의 풍경’일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앞모습에만 너무 집착하여 정작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영혼의 문제에는 소홀합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은 남루하게 됩니다. 

지금 매 주 목욕일마다 제자훈련 공부 중에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라는 단원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쓴 
선한목자교회 유기성목사님이 목회계획을 위해 교역자 세미나를 갔을 때의 일을 소개했습니다. 저녁 기도회 시간에 부목사님 
중에 한 사람이 베드로전서 1장 15~16절 말씀을 읽고 우리가 거룩하기 위하여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그날따라 
그 말씀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유기성목사님은 기도 중에 예수님께 물었답니다. “주여, 무엇이 거룩한 것입니까?” 
그때 유목사님의 마음에 주신 말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혼자 있을 때 주를 바라보는 것이다.” 거룩함에 대한 너무나도 
정확한 정의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교회 비전을 위해 기도할 때도 같은 말씀을 주셨다고 합니다. 교회 성장을 위해 구체적인 성장 목표를 정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때였습니다. “주여, 우리 교회는 몇 명의 성도를 목표로 삼아야 합니까?” 그때 주님께서 주신 말씀도 
같았다고 합니다. “나는 네가 혼자 있을 때 나를 바라보는 목사가 되기를 원한다.”

지난 심야기도회 시간에 김찬호목사님이 전해주신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보다는 나의 기쁨에 기울여 있으면서, 나의 
기쁨의 성취가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목회자인 저희들은 교회가 크고, 교인수가 많아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교회 성장을 목회의 본질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깊이 공감했고, 회개하였습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예수님을 전하는 것,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목회의 본질이고 우리가 믿는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큰 외침은 우리 모두에게 지금도 깊은 울림이 됩니다. 

바자회 준비를 위해 장학 사역팀과 여선교회가 앞장서서 수고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비하여 물품이 작지만 많은 분들이 이 
일에 기꺼이 한 손을, 한 겹을 보태주고 계십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여선교회 총회장을 중심으로 몇 분들이 강화에 있는 한 
포구에서 큰 통으로 새우젓을 사서 그 자리에서 작은 통에 담은 작업을 했습니다. 모처럼 잠시 시간 여유가 있어서 수고하시는 
여선교회 회원들 점심을 사기 위하여 저도 강화에 갔습니다. 잠간 다녀오면 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만만치 않는 
거리였습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주차장 한쪽에 눈치 보며 자리를 잡고 분주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격 흥정에서부터, 
현장에서 작업하는데 필요한 다라나 소금 등을 어렵게 빌려서 편치 않는 조건에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남겨서, 장학 사역팀의 좋은 뜻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고생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저로서는 너무도 죄송스럽게 감사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제 성격상 팔을 걷어 부치고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이웃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열심히 헌신하는 여선교회 회원들의 뒷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주시는 오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눈에 보이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하나님 마음에 우리의 이름에 새겨진 것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제일로 기뻐하시는 일은 예수님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 일을 감당하는 자에게 오늘 제자들에게 주신 능력처럼 병든 사람이 낫게 되고, 귀신들이 항복하고, 사탄이 번개같이 
떨어져 나가고,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를 제압하는 증거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는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신앙고백이 있는 자가 부르는 노래가 이것입니다.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기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이 금방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을 기쁘게 
보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 마음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십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앞모습에 집착했던 우리의 무지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하나님 마음에 우리의 
이름이 새겨진 것으로 기뻐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마음을 쏟게 하여 주옵소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시는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고 최선을 다해 
전도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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