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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0월 13일 설교 동영상입니다.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3.10.13 13:43 조회 1,722 추천 0
2013년 10월 13일 설교 동영상 입니다.
주일예배설교(2013_Oct_13)
그 날 같은 하루를 날마다 살고 싶다. 베드로전서4:7~11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죽음 그 이후에는 영웅으로까지 추대 받는 스티브 잡스, 
그가 생전에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연설들을 모은 책들이 여러 권 출판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제품을 들고 대중 앞에 설 때마다 세상의 판도는 뒤바뀌었으며 전 세계가 그를 주목했습니다. 이에 
IT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종 분야에서 그의 영향력이 힘을 발휘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처럼 
말하고, 스티브 잡스처럼 세상을 사로잡아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스티브 잡스. 그의 연설과 프레젠테이션은 뛰어난 카리스마와 탄탄한 연출력으로 뭉친 한 편의 거대한 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가 코미디 프로에서 패러디할 만큼 현 시대를 움직였던 사람 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생전에 미국 서부의 명문대학인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연설 중에 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그는 17세 때 한 경구를 읽고서는 그것이 그의 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If you live each day as it was your last, 
someday you will most certainly be right.) 그는 이 글에 감동을 받고, 그 후 50살이 되기까지 33년 동안을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그리고 그는 이 질문에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신중하게 
다른 일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
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길게는 다가오는 우주적인 종말의 그 날과 작게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을 순간순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우리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날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우리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더욱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살면서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경거망동하지 않습니다. 세월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생각합니다. 영원히 남을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베드로전서는 스데반이 순교한 이후에 전 세계로 흩어지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이 타국에서 
객지생활을 하면서 환란과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사도 베드로가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쓴 서신입니다. 
타국에서 객지 생활을 하면서 먹고 살기도 힘이 드는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에 이들에게 
격려와 위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들에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은 말세,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을 말합니다. 이날, 세상 사람들은 
심판받고 멸망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광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그날을 그토록 기다리는 것은 모든 
고생이 끝나고 주님을 모시고 영원히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당부하면서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니 그 날을 
바라보며 세 가지 권면의 말씀을 전합니다.

첫째 기도하는 삶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다가오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마지막 날을 
앞에 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마지막 때가 되면 이 세상은 엄청나게 혼란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그 날이 가까워 올수록 난리에 난리의 소문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말세가 되면 교회의 내부에서도 많은 문제들이 일어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날 것이고(마태 24:11), 교회 안에서도 불법이 성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말세가 되면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4:12) 한 마디로 
지금 보다 더 심하게 세상은 미쳐갈 것이고, 사람들은 극도의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무질서와 무법으로 극도의 혼란에 빠졌을 때 필요한 것이 분별력입니다. 그리고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먼저 해야 할 일을 알려줍니다. 7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는 단어의 뜻은 ‘지금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먼저 분별하고, 냉정함과 침착성을 유지하라’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별력과 침착함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헝클어져 있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정돈하고 지킬 수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을 지키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갖게 된 염려와 걱정을 사라지고 평안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됩니다. 옳고 그름이 보이고,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에 대한 우선순위가 자리매김 됩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과 같이 우리 한서의 식구들 가운데 좋은 일도 있지만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를 안고, 지금 광야를 살고 있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말 건네기조차 어려운 성도들을 생각하며 
담임목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을 때 안타깝고 가슴이 아플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일이 있기 전에 권면했던 목회자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언제나 결정은 이미 다해놓고 
담임목사는 그 결정대로 되도록 응원하고 기도만 해주면 된다는 것에 마음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드러진 물인데, 누구의 자 잘못을 탓하지 보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마음을 먼저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이런 상황에서 담임목사와 그 일을 겪고 있는 성도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 밖에 길이 없습니다. 사방 길이 막혀있고, 인생도 방백의 도움도 없고, 앞이 캄캄할 때 
우리가 바라보아야 길은 하늘 길입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울어야 삽니다. 기도 외에는 유가 없습니다. 
기도가 최선의 선택이고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만물이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기도하라는 베드로의 권면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기도의 시간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도전하시기 바립니다. 당장 오늘 밤부터 자기 
전에 드리는 한 날을 매듭짓는 감사의 기도부터 시행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랑하는 삶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다가오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무엇보다 더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8-9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앞서 소개하였듯이 말세에는 불법이 성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 식어져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지금 이 사회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사망한 어머니의 시신을 장례식장에 놔둔 채 부의금만 들고 5개월째 종적을 감춘 
자녀들이 있어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11일 대전경찰에 따르면 지난 5월 지병으로 숨진 유모(68·여)씨 
장례가 대전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유족으로는 두 아들과 딸이 있었습니다. 장례 
기간동안 빈소를 지켰던 삼남매는 발인 예정일인 5월 7일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병원에 내야 
할 입원비와 장례비 약 1500만원을 결제하지 않고 조문객들이 낸 부의금만 가지고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병원 측은 가지고 있던 연락처로 유족을 수소문했으나 이들의 행방을 찾기 어려워 사기 혐의로 
고소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말세의 징조입니다. 이 사랑이 식어져 가는 말세를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심히”라고 번역된 “엑테네”라는 말은 “뜨거운” “열렬한”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 단어는 원해 달리는 말이 근육과 힘줄을 최대한으로 뻗어서 힘껏 달리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말세를 당하여 우리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사랑을 최우선으로 행해야 하고, 말로만이 아니라 뜨겁고 
열렬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열심을 다해 사랑을 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1) 허물을 덮어주라는 것입니다. 
먼저는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줍니. 
일찍이 지혜자는 잠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잠언 10:12) 
그러므로 사랑의 첫 걸음은 바로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을 덮어준 부모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초보자 시절 우리의 실수를 누군가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지금 누구를 가르치는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질그릇처럼 깨지지 쉬운 연약한 존재요, 
아킬레스건 같은 약점을 가지고 있기에 덮어주는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 자신과 우리 
모두의 허물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그 보혈의 피로 덮어 주셨기에 우리가 산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덮어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노아의 허물을 셈과 야벳이 덮어 주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사랑의 겉 옷, 
담요가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면 덮어주고, 감싸주면서 상대방의 약점을 보완해 주기 위해서 자신을 
이곳에 세우셨다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간의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 상호보완해서 아름다운 그 무엇을 
만들어내는 상호보완적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연합해서 세 겹줄을 만들어 더 튼튼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우리 한서교회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어서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 기쁨으로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진정 사랑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서로 기쁨으로 대접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고, 표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면 밥을 같이 먹고 싶어 하고, 무엇이든지 마음을 담은 선물을 주고 
싶어 합니다. 사랑하면 대접하고 싶어 집니다. 여기 본문에서 “대접하라”는 단어는 “필록세노스”인데, 
이 말은 “사랑하는”이라는 의미의 “필로스”와 “나그네”를 의미하는 “크세노스”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나그네에게 사랑을 베푸는”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초대교회의 상황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세 차례 
큰 박해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하면서 이리 저리 쫓겨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었고, 
교인들은 서로 서로 그런 나그네들을 숨겨주고 대접하는 일을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분이 
탄로가 나서 도망을 다니고 있는 교인들을 대접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을 
숨겨주다 들키면 자신의 정체도 드러나 위태롭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를 숨겨주며, 
대접하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사실 자신들도 힘든 상황에서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거나 
대접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원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원망 없이 대접을 했습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도 있고, 누군가를 대접하는 일은 신경이 쓰이고, 손해 보는 일인데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나그네가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보입니다. 당장 오늘 부터라도 반찬 한 가지라도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아시 오시는 그 날까지 그렇게 작은 자, 나그네를 살펴서 사랑으로 대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셋째,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가오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 
1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선한 청지기로 섬기고 봉사하는 삶에 대해서는 본문 11절에 보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청지기 정신으로 말을 하든지 행동을 하든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온갖 종류의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우리가 가진 재물과 
부동산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날이 오면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야할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한 가치를 아는 지혜로운 자는 영원히 남을 것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남을 것을 생각하며 지금 가지고 있는 은사를, 재물과 재능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선용합니다. 하늘에 투자하고 하늘에 저축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는 사람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착한 심부름꾼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보이지 않는 영원하고 소중한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용하는 착한 청지기가 되기기를 축복합니다. 

  가끔 내 마지막 나는 무엇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할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나는 무엇을 하다가 주님을 
만나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감신대 합창단을 
지휘하셨던 故김정해선생님이십니다. 그 어르신은 평소에 성가 지휘하다가 하늘에 부르심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어르신의 평소 염원대로 베다니교회(구, 구로중앙교회)에서 대예배 시간에 찬양대 지휘를 하는 
중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잠시 난리가 났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상황을 수습하고 아마도 목사님이 
그분의 평소의 기도의 제목을 아시니 그것을 성도와 함께 나누었고, 모든 성도들이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돌아가심 그 자체가 큰 울림의 설교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서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나고, 내 개인의 종말을 맞이하길 원하십니까? 무엇을 하는 중에 주님을 
만날까요? 오늘 말씀이 그 질문의 정답입니다. 주님 오시는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기도하며 사세요. 허물을 덮어 주고, 대접하며 서로 사랑하며 사세요. 착한 심부름꾼으로 사세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음에 머무른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시인이며 묵사이신 고 훈님의 시입니다. 
시 제목은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그날 같은 하루를 날마다 살고 싶다”


그 날 같은 하루를 날마다 살고 싶다. - 고 훈 -

죽은 줄 알고 20년 가슴에 묻은 아들, 총리되어 나타날 때, 
이제 나는 죽어도 가하도다, 감격하고 하루 종일 울었던, 
야곱과 요셉의 그날 같은 하루.
말씀이 있어, 외아들 바치러 모리아산 올라, 아들 가슴에 꽂는 순간,
아브라함아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한 줄 알았다 하시며,
칼 빼앗으시고 야훼이레 복 내리신, 아브라함과 이삭의 그날 같은 하루.
세상으로 나가, 타락하여 허랑방탕하다, 거지꼴로 아버지 집에 돌아와,
아들로 받지 말고 품꾼으로 받아 달라고, 눈물로 회개하여,
잃어버린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버지에게 다시 받은, 
탕자의 그날 같은 하루.
믿는 자 핍박하러 갔던 다메섹에서, 주님만나 거꾸러져,
육의 눈멀고 영의 눈 떠, 세상 모든 것 배설물로 여기고, 
이방인의 사도가 된, 바울의 그날 같은 하루.
실패한 사업장에 찾아오신, 주님 영접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졌다, 만선의 기적보고 회개하며,
모든 것 버려두고 주님 따랐다 대사도가 된, 
갈릴리 베드로의 그날 같은 하루.
죽어 썩어 장사된 지 나흘 된 무덤에, 주님 찾아와 “나사로야 일어나라”
하시매, 시체가 살아나 온 세상 다니며 많은 사람을, 주님께 돌아오게 했던,
다시 산 나사로의 그날 같은 하루.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는 말씀으로, 생명 건지시고,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으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창녀 같은 여자 성녀로 변화시킨, 그 날 하루를 날마다 살고 싶다. 

우리는 오늘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가?
우리는 오늘 어떤 하루를 살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려는가?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 다시 오는 그 날까지 기도하며 살게 하여 주십시오. 허물 들추어내고, 먼저 대접 
받기보다 허물을 내 사랑의 담요로 덮어주고, 먼저 작은 자 대접하며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십시오. 
내게 주신 재능과 재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드리는 착한 청지기로 살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매일을 살면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나게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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